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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共防諜] 정몽헌씨는 햇볕정책의 희생자







■ 햇볕정책의 「희생(犧牲)」





산케이신문(産經新聞) 2003년 8월4일 석간(夕刊)





한국(韓國)에서 북조선(北朝鮮)에 대한 경제협력사업(經濟協力事業)을 독점(獨占)해 온 재벌(財閥) 현대그룹의 정몽헌(鄭夢憲)씨 자살(自殺)은, 김대중(金大中) 前 정권(政權)이 「정경유착(政經癒着)」으로 진행(進行)해 온 「햇볕정책」의 일종(一種)의 희생자(犧牲者)라고 할 수 있다.





현대그룹 자체(自體)는, 북조선이 고향(故鄕)인 창업자(創業者) 정주영(鄭周永)씨[고인(故人)]의 강한 생각으로 인해 북조선에 대한 지원사업(支援事業)에 이전(以前)부터 적극적(積極的)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전 정권은 그 현대그룹을 이용(利用)해, 남북정상회담실현(南北頂上會談實現)을 위해 북조선에 제공(提供)한 거액(巨額)의 비밀자금(秘密資金)[4억 달러]을 송금(送金)한 것 외에, 정권간부(政權幹部)가 현대그룹으로부터 150억원의 정치자금(政治資金)을 받았다는 의혹(疑惑)마저 나와 있기 때문이다.





정몽헌씨의 자살원인(自殺原因)에 대해서는, 이미 기소(起訴)되어 재판(裁判)이 진행되고 있는 대북비밀송금사건(對北秘密送金事件)이나, 새롭게 검찰수사(檢察搜査)의 대상(對象)이 되어 있는 정치자금의혹(政治資金疑惑) 외에, 큰 적자(赤子)를 내고 있는 금강산관광(金剛山觀光) 등 사업경영(事業經營)의 어려움이 겹쳐, 심리적(心理的)으로 쫓기고 있었던 결과(結果)는 아닐까 라고 보이고 있다.





정몽헌씨는 유서(遺書)에서, 창업자인 아버지의 유지(遺志)를 이어 앞으로도 북조선에 대한 경제협력사업은 강력(强力)하게 진행하면 좋겠다고 호소(呼訴)하고 있다.





그러나, 정주영·정몽헌 부자(父子)라고 하는 중심적(中心的)인 추진역(推進役)이 없어진 현재(現在), 현대그룹의 대북사업(對北事業)은 자금조달(資金調達)의 어려움도 있어, 이대로 진행되는지 어떤지 큰 전환기(轉換期)를 맞이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정권도 북조선의 핵문제(核問題)가 미해결(未解決)인 상태(狀態)에서는, 김대중 전 정권이 한 것처럼 자금융자(資金融資)를 포함(包含)해, 정부(政府)가 민간기업(民間企業)인 현대를 적극적(積極的)으로 지원하는 것은 어렵다.





한국 최대(最大)의 재벌인 현대그룹은 정주영씨의 사후(死後), 실질적(實質的)으로는 해체상황(解體狀況)에 있다.





축구계(蹴球界)의 거물(巨物)로 알려진 형 정몽준(鄭夢準)씨도, 2002년 말(末) 대통령선거(大統領選擧)에 출마(出馬)하였다가 「도중하차(途中下車)」해 여론(與論)의 비판(批判)을 받았다.





정몽헌씨의 자살을 「정씨 일가(一家)의 몰락(沒落)」이라고 보는 견해(見解)도 있다.





http://www.sankei.co.jp/news/evening/e05iti002.htm














■ 북조선(北朝鮮) 선거(選擧), 99.9% 투표율(投票率) 100% 찬성표(贊成票)





지도간부(指導幹部)에 큰 변동(變動) 없음





교도통신(共同通信) 2003년 8월4일 22:28





조선중앙통신(朝鮮中央通信)에 의하면, 북조선(北朝鮮) 중앙선거위원회(中央選擧委員會)는 8월4일, 김정일(金正日) 총서기(總書記)를 시작으로 합계(合計) 687명이 8월3일 실시(實施)된 최고인민회의(最高人民會議) 제11기 대의원선거(代議員選擧)에서, 100%의 찬성표(贊成票)를 얻어 당선(當選)되었다고 발표(發表)했다.





최종적(最終的)인 투표율(投票率)은 99.9%로 임기(任期)는 5년이다. 대의원수(代議員數)는 제9기, 제10기 때와 같으며, 제10기 선거 때처럼, 약 반수(半數)가 바뀐 모양(模樣)으로, 세대교체(世代交替)가 진행(進行)된 것을 나타내고 있다.





9월9일 건국(建國) 55주년(周年)을 앞에 두고 제1회 회의(會議)가 소집(召集)될 것으로 보인다.





서열(序列) 20위 이내(以內)의 조선노동당(朝鮮勞動黨)이나 국가지도부(國家指導部)에 큰 변동(變動)은 없고, 후계체제(後繼體制)의 준비(準備)를 엿보게 하는 움직임도 없었지만, 지금까지 대의원을 맡았던 조선인민군(朝鮮人民軍) 고급간부(高級幹部) 중에는 박기서(朴基西) 차수(次帥) 등 후보등록(候補登錄)을 하지 않아 선출(選出)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http://flash24.kyodo.co.jp/?MID=SBS&PG=STORY&NGID=intl&NWID=200308040100047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