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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서의 자유(6)





◈죄에서의 자유(6)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 중 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 제국의 속국이 되어 신음하였고, 또 세계의 경찰 국가 로마는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기는 하였어도 그래도 세계 모든 국가를 통솔할 공의와 정의가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더러는 그를 메시아로 추켜 세우면서 은근히 모세처럼 이스라엘 민족의 주권을 회복하여 로마 제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독립할 줄 기대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민족의 그런 기대를 어찌 몰랐겠습니까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세보다 더 완전한 자유독립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무지한 백성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을 한낱 종교적인 도덕으로만 속단하고, 정치적인 독립에는 하등의 능력이 없는 교양서적 정도로만 곡해 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최 강대국 애굽왕을 정치적인 무력과 능력으로 꼼짝달싹 못하게 굴복시키고 그 압제에서 자기 민족들을 해방시켜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들은 하나님의 권력으로 가나안 복지를 차지한 후 물질적으로 부강하게 되자 가나안 원주민보다 더 우상을 섬기고 각종 부도덕한 성범죄에 빠져 제2의 소돔과 고모라 민족으로 타락하였습니다. 그 원인은 그들이 육체적 폭압독재에서는 벗어났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근본적으로 미워하시는 영적 폭압독재자 마귀에게서는 벗어나 자유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애굽왕 바로 밑에서 육체적인 폭압에 시달렸을 때에는 그래도 지옥 불에 들어갈만큼 마귀들의 폭압독재에 의한 타락한 범죄행위는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즉 육적인 폭압독재자 애굽왕 바로 밑에서 살아갈 때에는 그래도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만큼 인간적으로는 순진하였으나, 가나안 복지에서 먹고 마시고 배부르고 난 후 영적인 폭압독재자 마귀 밑에서 살아갈 때에는 인간적인 순진함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고 오히려 오늘날 이 땅의 청.장년층들처럼 지옥 불에 던져 넣을 정도로 완악하게 타락하였습니다.



이런 때에 찾아 오신 예수님, 이제 또 옛날 같이 로마제국을 정치적인 권력으로 굴복시켜 이스라엘 민족에게 열국을 호령하는 주권국가가 되도록 자유를 주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니 인간들을 더욱 영적으로 강건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육적인 고통과 고난을 당하도록 내 버려 두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호세아 선지자로 하여금 다시 찾아 올 구원자, 곧 메시아는 모세와 같은 육적 부요와 권력으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지 않고 오히려 아골 골짜기 같은 고난의 땅과 참혹한 고통으로 소망의 문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호세아2:15)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이 멸망하게 된 근본원인, 곧 죄악에서 해방되지 않은 상태하에서는 어떤 육적인 낙원과 천국을 먼저 주어 구원시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이 죄악에서 해방되지 않은 상태하에서 갖는 모든 육적 천국(복지)은 범죄하는 일에 소용되어 더욱 지옥 자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육적 폭압 독재자(폭군, 가난, 질병 등등)에게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영적 폭압 독재자(죄악)에게 벗어나는 길임을 깨우쳤으나 그러나 이미 심령으로 심히 부패타락하여 짐승화 된 이스라엘 민족들은 예수님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눈앞에 닥친 육적 독재자에서 벗어나고자 예수님께 먹고 마시고 입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모세의 기적만 바라고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요구를 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마치 유치원생들에게 들려 줄 교양지식 수준과 같은 덕담만 가르쳤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당면한 시급한 문제는 로마 군병들의 폭압정치와 가난과 질병에서의 해방되는 길이지, 하나님께로 내려온 도덕적 윤리적 교양 지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전한 그런 지식이야 말로 참으로 이 세상 모든 종류의 폭압 독재자들을 물리치고 깨드릴 수 있는, 모세의 지팡이보다 더 강력하고도 근원적인 능력들이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고기가 먹고 싶은 사람에게 고기를 잡아다 주는 수준이지만,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지식은 고기가 먹고 싶은 사람에게 고기 잡는 방법과 같은 수준입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데살로니가후서3:17) 하심 같이, 모세가 하나님께로 오신 대표적인 표적이 홍해를 가르는 이적기사라면,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오신 대표적인 표적은 이와 같이 부활보다도 더 큰 의미가 있는 "죄악에서의 벗어나는 지식"입니다. 천지개벽하는 육적인 이적기사보다 심령을 변화시키는 영적인 이적기사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바로 이성 없는 짐승들의 수준입니다.



모세는 죄악을 범하지 않고 피하는 율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예수님은 죄악을 근본적으로 맞아 싸워 정복할 수 있는 힘과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세의 권능은 육적 폭압 독재자들만 굴복시킬 수 있지만, 예수님의 권능은 영적 폭압 독재자 마귀를 이기고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분이 소유하고 있는 능력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큽니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육적 막가파 지식자들은 영적 선지자들의 기묘한 교훈을 무시합니다. 지금 당장 미국의 부시가 어떻게 행동하고 이북의 김정일이가 어떻게 맞대응 한다는 하찮은 소문에는 눈에 불을 켜고 살피지만, 지금의 남북한과 미국을 좌우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세상을 치리하는 실세자의 마음이 지금의 우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지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식합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이라면?... 자기에게 별무관심인 이런 무식한 백성들로 하여금 저들이 알고 있는 잘난(?) 지식대로 서로 치고 받고 싸워 죄악의 결론(자멸)에 이르도록 내 버려 두었을 것입니다. 어느 한 쪽도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만한 순진한 인간성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저들 속에 자라난 죄악의 공포감으로 유식할 뿐, 하나님께서 눈여겨 보실 만한 가치 있는 참된 인간미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닥쳐 올 어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위기보다도... 자신들이 하나님 눈밖에 나 있어서 쓰레기 취급당하여 소돔.고모라인들처럼 불청소 당하게 되는 이 절대적이고도 절박한 위기가 더욱 선결되어야 할 급선무입니다.



나의 보잘 것 없는 미미한 정의감으로도 이런 판단이 서는 데, 하물며 불꽃 같은 눈으로 살피시는 그분의 정의감으로는 어떤 진노가 담겨 있는지...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어찌 나와 같은 정의감에만 묶여 있고 천지만물을 창조한 창조의 사랑을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내가 미쳐 이르지 못하는 자비심으로 이 백성들의 무지한 소치(所致) 그대로 갚으시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는 회개하고 뉘우치는 자들에게는 무한하시지만, 그런 무한한 자비심이 있다는 것만 전제하고 마냥 범죄 소굴에 눌러 앉아 회개할 생각을 하지 않는 잔머리 꾼 범죄자들에게조차 자신의 자비심이 이용당하게끔 방치하지 않습니다. 그런 잔머리 꾼 범죄자들을 살려 줄, 하나님 이상의 자비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이상의 희생이 또 있을 줄 알고 그들이 연구개발한 우상의 하나님과 꾸며 만든 인조 구세주를 의지한 채, 죄악에서 해방되는 일을 과소평가하여 차일피일 지연시키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http://cafe.daum.net/kblw 기독 애국 신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