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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김대중칼럼] 대통령과 응원단장 에 대해서

조선 [김대중칼럼] 대통령과 응원단장 에 대해서







(홍재희) =======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방상훈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김대중 이사기자는





" 지도자는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카리스마와 권위가 있는, 군림하는 강한 지휘자 타입이고, 다른 하나는 권위를 찾기보다는 옆집 아저씨 또는 동네 할아버지처럼 ‘일반인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타입이다. 이 같은 지도자상은 그 나라의 역사와 국민성, 제도, 또 모든 주변 환경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한지도 이제 일년이 넘게 지났다. 언론은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게 되면 취임 초기에 지도자적 자질이나 대통령상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하게된다. 그리고 대통령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다양한 평가는 대통령의 국정업무수행능력을 통해서 국민들이나 사회 그리고 언론에 의해서 내려진다. 그러나 2004년 6월5일자 김대중 칼럼은 대통령이 취임한지 1년이 훨씬 넘게 지났는데 대통령이 행정부를 대표해서 추진하고 있는 각종정책이나 국정수행능력에 대한 비판적 대안의 평가가 아닌 아직도 대통령의 성향분석에 한가하게 머물고 있다.







(홍재희) ====== 2004년 6월5일자 김대중 칼럼 내용 어디에도 취임 1년이 훨씬 지난 이 시점에 노무현 대통령이 펼쳐 보인 정치 . 외교 . 남북 문제 . 경제 . 군사 . 문화 . 사회. 교육 등의 각종정책과 국정수행에 대한 언론으로서의 긍정과 부정의 객관적 평가를 한 김기자의 칼럼 분석 글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부연한다면 김대중 이사기자가 흠잡을 만한 대통령의 국정수행상의 흠결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의 머리스타일이나 탈 권위의 대통령 직무스타일 그리고 대통령의 말과 국회의원당선자들과 청와대에서 가진 회합동정에서 나타나는 지엽 말단적인 문제를 가지고 마치 스포츠 신문의 가십란을 연상케 하며 왈가왈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칼럼의 타락?을 우리 언론소비자들은 지금 목격하고 있다.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 적대적 주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족과 계층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가난과 자원부족을 극복해 나라를 빈곤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것이 세계의 역사적 경험이었다. 정치·경제적으로 비교적 평안하고 온건한 환경의 나라, 예컨대 북구(北歐) 같은 나라에서는 공동체적 질서를 상징하는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지도자를 선택해왔던 것도 같은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중 이사기자가 " 정치·경제적으로 비교적 평안하고 온건한 환경의 나라, 예컨대 북구(北歐) 같은 나라에서는 공동체적 질서를 상징하는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지도자를 선택해왔던 것도 같은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현상은 역사 속에서 불변의 가치로 자리매김된 채 정형화 된 것이 아니고 공동체 내부에 주어진 적대적 주변 환경의 도전에 끊임없는 자기 교정이라는 공동체 내부의 응전으로서 시간적으로 오랜 역사와 공동체의 값비싼 희생을 통해 어렵게 만들어 낸 것이다.







(홍재희) =====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 볼 때 김대중 이사기자는 북구(北歐) 같은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킹이라는 단어를 김대중 이사기자는 기억할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면 바이킹의 출현은 김대중 이사기자가 주장하고있는 정치·경제적으로 비교적 평안하고 온건한 환경의 나라, 예컨대 북구(北歐) 같은 나라가 역사적으로 과거에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주변 환경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부적으로 팽창할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을 의미한다.







(홍재희) ====== 그리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20세기 말에 북구(北歐)에 속해 있는 한 국가의 수상이 정치적 반대자에 의해 암살 당하는 우여곡절과 정치적 격동의 과정을 거치면서 북구(北歐)를 김대중 이사기자가 주장하고 있는 정치·경제적으로 비교적 평안하고 온건한 환경의 나라로 공동체들이 변화 시켰고 예컨대 북구(北歐) 같은 나라에서 공동체적 질서를 상징하는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정치발전으로 까지 이어졌다고 본다. 부연한다면 이러한 정치환경은 김 기자의 주장대로 역사 속에서 이미 규정되어진 형태가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끊임없는 자기교정작업을 통해 오늘의 정치적 환경이 만들어 졌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분석이 될 것이다. 부연한다면 서구 민주주의의 성장과 발전 과정을 의미한다고 본다.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 우리나라는 어떤가. 수천년에 걸친 왕조(王朝)가 사라진 뒤 민주공화국을 설립한 이후에도 또 다른 형태의 왕(王)을 가져왔다. 우리의 리더십은 권위에 젖어있다 못해 권위주의에 몰입해 군림하는 대통령의 형태로 존재해왔다. 건국 이후 한 차례 짤막한 실험이 있었고 그 뒤 꾸준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이 내각책임제에 눈길을 돌리지 않았던 것도 이 같은 우리의 오래된 지배구조, 지배의식, 지배형태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봉건 왕조의 몰락과 함께 민주공화국 설립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민족공동체의 가치체계를 매장할 수도 있는 묘혈을 파는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라는 외세가 이식해 놓은 군국주의 왕조의 등장으로 민족공동체 구성원의 자율적인 근 현대 정치공동체 발현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외세에 의한 탄압이라는 정치 현실을 빌미로 해서 원칙과 상식을 버리고 그때그때 상황에 편승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존하는 것을 미덕? 으로 받아들이는 외세 굴종적 사대주의가 우리나라의 보편적 민주정치질서가 형성되기 이전에 폭넓게 형성되는 과정 속에 방상훈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가 똬리를 틀며 함께 하면서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자양분을 섭취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홍재희) =======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 왕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일본군국주의에 충성을 맹세하며 한민족의 숫처녀들을 일제의 성 노리개인 일본군 종군위안부로 내모는 데 적극적인 나팔수 역할을 통해 한민족의 어린 딸들의 소중한 정조를 유린하는 패륜적이고 파렴치한 인격살인행위를 서슴치 않았고 한민족의 어린 아들들인 나이어린 학생들을 일제의 학도병으로 내몰아 일제의 총알받이가 되도록 내몰아서 수많은 한민족의 어린 아들들의 목숨을 앗아가게 했다.







(홍재희) ====== 그뿐 만 아니라 방응모 당시 조선일보 사장은 자신의 돈으로 직접 고사포를 구입해 일제에 헌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시베리아 만주벌판에서 풍찬 노숙하며 일제와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독립군들을 살상하도록 일제를 부추겼다고 볼수 있다. 이러한 친일 반민족 범죄집단들이 일제가 패망하고 미국이 분단된 한반도에 들어오자 친미반공의 옷으로 갈아입고 친미 반공이면 민주헌정질서를 총칼로 짓밟으며 군사독재체제도 용인해주던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편승해 한국사회에 친일 반민족 의 권위주의 독재정치를 뿌리내리도록 기여했다.







(홍재희) ====== 그러한 친일 반민족 범죄집단인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는 미국의 한반도 분단고착정책에 편승해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헌정질서를 총칼로 짓밟고 정통성 없는 군사독재정권을 한국사회에 강요하는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 정권과 수십년 동안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권언유착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언론자유의 목을 비틀고 있을 때 태어난 두가지 형태의 지도자상? 이 있었다. 하나는 초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제왕적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지도자상 이었고 또 하나는 스스로 정치권력과 야합해 순수한 언론의 역할을 포기한 채 권력화된 방씨 족벌의 밤의 대통령이라는 웃지 못할 수구 언론세습족벌권력이 유착해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민주 정치를 유린하며 권위주의에 몰입해 군림하는 밤의 대통령의 형태로 존재해왔다.









(홍재희) =-====== 이렇듯이 한국사회에서 보편적 민주정치의 가치실현을 시도하는 민주인사들의 목숨을 건 투쟁이 탈 권위주의적이고 열린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상을 지닌 노무현 대통령을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는 깨어있는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치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친일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조선일보와 수구정치집단이 고착화 시킨 색깔론과 용공조작 그리고 지역주의의 배타적 정치권력의 얼어붙은 동토를 뚫고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열린 리더십의 정치권력을 탄생시키는 정치혁명이 국민들의 깨어있는 의식을 통해 투표로 표출되기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정통성 없는 군사독재정권의 오래된 권언 유착의 지배구조, 지배의식, 지배형태에 오랜기간 동안 순치돼 왔던 사회공동체들이 타성의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 그런 우리가 이번에 여름밤 평상에 앉아 얘기하듯 하는 ‘옆집 아저씨’, ‘깍두기 머리’에 사주도 보고 점도 쳤다고 실토하는 ‘동네 통반장’ 스타일의 지도자를 선택했고, 그 지도세력도 “군기 잡으려 하면 물어뜯어 버리겠다”는, ‘한때 빨갱이 노래’로 몰렸던 노래를 청와대서 부르게 된 것에 감격하는 사람들을 뽑았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군림하는 통치자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대단히 중대한 변화이고 심각한 선택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방상훈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와 수구정치집단들의 야합에 의해 유린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옆집 아저씨’와 같은 정치인 노무현 은 맨몸으로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방상훈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와 수구 정치집단들인 군사독재체제에 맞 써 싸웠다.







(홍재희) ===== 조선일보와 군사독재정권의 야합과 권언유착으로 형성된 수구적 깍두기 폭력집단들의 민주화와 민족화해 그리고 언론자유와 인권신장 파괴라는 폭력적 행위에 맞서 김대중 칼럼이 ‘깍두기 머리’로 표현하고 있는 그런 머리 스타일을 한 정치인 노무현이 맞써 싸웠다. 그러한 민주화 쟁취과정은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방씨 세습족벌의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으로 상징되고 있는 수구정치집단이 반세기 동안 주류를 이룬 대한민국의 정치판의 판 갈이를 통해 사주도 보고 점도 쳤다고 실토하는 ‘동네 통반장’ 스타일의 지도자가 대통령이 되는 한국정치 주류교체의 참여민주주의 선거혁명을 통해 한국정치에서 수구(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초법적 권위주의정치(한나라당)의 유물들을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에서 과감하게 퇴출시키는 유권자 투표혁명이 일어났다.









(홍재희) ======== 이러한 참여정치는 그동안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으로 상징되고 있는 수구정치집단들의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 행위로 인해 거꾸로 선 대한민국 사회의 가치관을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는 국민들의 참여정치혁명을 통해 사주도 보고 점도 쳤다고 실토하는 ‘동네 통반장’ 스타일의 지도자를 선택해 한국사회 가치관을 바로세워 놓고 있다. 동시에 대한민국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홍재희) ====== 그러한 민주화의 도도한 흐름을 타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으로 상징되고 있는 반민주 독재정치 권언유착 집단들은 민주화와 인권신장 그리고 남북의 분단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용공조작으로 투옥하고 좌경용공으로 매도하며 한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데 앞장섰다. 이 땅에 이만큼의 민주화가 절차적으로 진전되기 까지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으로 상징되고 있는 반민주 독재정치 권언유착 집단들에 의해 수많은 민주 인사들과 노동자 . 학생 그리고 광주 시민등 이땅의 풀뿌리들이 무참하게 투옥되고 학살 되는등 온갖 정치적 박해를 다받았다.









(홍재희) ======== 그들과 함께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으로 상징되고 있는 반민주 독재정치 권언유착 집단들의 민주정치 질서 파괴행위에 맞서 싸운 집단이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이고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는 국민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은 이만큼이나마 한국의 민주화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파괴하는 가해자였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와대에서 부른 `산자여 따르라` 라는 한국의 민주화를 이룩한 애국자들의 노래소리에 질겁을 하고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 가 ` 한때 빨갱이 노래` 라는 모욕적인 표현을 처음사용하며 폄하하고 있다. 이제 며칠 지나면 한나라당의원들이 ` 산자여 따르라`를 김대중 이사기자의 선창에 따라 ` 한때 빨갱이 노래` 로 표현하고 나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홍재희) ====== 한나라당은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집권한 살인정권의 후신이었다. 이러한 살인마정권의 등장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극찬했던 집단이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였고 광주항쟁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었던 현 김대중 이사기자는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광주시민들을 폭도들도 매도했다. 이들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 그리고 한나라당은 ` 산자여 따르라` 라는 노래속에 묻혀 있는 민주화 투쟁 속에 희생된 이땅의 애국민주열사들에게 겸허히 무릎꿇고 독재정치와 인권유린 그리고 분단고착정치를 통해 한국사회의 민주적인 가치관을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며 수구정치의 영구집권을 위해 민주인사들의 희생을 초래한 죄를 고백성사해야한다.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 안 그런가? 방씨족벌의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가 적어도 민주주의를 이야기 하고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요청되고 있는 삼권분립하의 지도자 리더십을 얘기하는 것이라면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독재체제와 온몸으로 맞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까지던져가며 싸워 희생당한 거룩한 민주의 넋들을 기리며 기꺼이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산자여 따르라` 라는 노래를 그런식으로 비아냥거려서는 안된다.









(홍재희) ===== 그것은 21세기 한국사회가 추구해 나가는 민주적인 가치질서에 대한 방씨족벌의 조선일보와 김대중이사기자의 정면 도전이라고 밖에 볼수 없다.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조선일보 그리고 김대중 이사기자와 한나라당은 더 이상 `산자여 따르라` 라는 노래를 수구적 흉기로 부관참시하는  경거망동을 즉각 중단하라. 그것은 곧 이땅의 민주주의 가치 를 위해 싸우다 산화한 광주영령들과 민주열사들을 부관참시 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한국의 민주화과정에 소중한 가치를 부관참시하는것이나 다름없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부관참시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홍재희) ======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가 어찌 감히 `산자여 따르라` 라는 성스러운 한국민주화의 찬가를 ‘한때 빨갱이 노래’로 매도하는가? 부끄럽게 살아있는 자들은 방씨 족벌 조선일보 김대중 이사기자 그리고 한나라당으로 상징되고 있는 한국민주화 파괴의 가해자들도 포함된다. 또한 이들 민주화 인사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대한민국정치에서 더 이상 군림하는 통치자를 원치 않게 되는 국민 참여정치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홍재희) ======= 김 대중 이사기자는





" 문제는 우리 국민이 이런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질 것이냐에 있다. 이런 지도자를 선택하는 데 주도권을 쥔 새 세력과 세대가 따로 있고 그 선택에 반대했던 세력과 세대가 따로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중에서는 지도자의 ‘수준’을 염려하는 소리가 너무 많이 들린다. 과거 대통령들에 대해서는 못 듣던 소리들이다. 어쩌면 뽑긴 ‘자전거 타는 지도자’를 뽑아놓고 기대하기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제왕적 지도자를 기대하는 유권자들의 이중심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중 이사기자는 " 문제는 우리 국민이 이런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질 것이냐에 있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중 이사기자는 민주주의를 얘기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이고 선거는 국민들의 투표참여를 통해 정치지도자를 선택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러한 민주적 선택의 적법한 과정을 거쳤다. 그렇다면 그러한 국민적 선택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모두가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사회의 덕목이고 민주 시민의 자세이다.









(홍재희) ====== 그러나 지금 김대중 기자의 칼럼은 민주적인 국민적 선택에 대한 불복의 여론을 지속적으로 지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적 선택과정을 통과해서 대통령이 됐고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부추기고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한 대통형 탄핵으로 현실 정치적 유배를 당했으나 4 . 15 총선에서 국민들은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부추기고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한 수구정치 집단을 한국정치주류의 자리에서 소수집단으로 밀어내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사실상의 전 국민적 재신임을 4 . 15 총선을 통해 보여줬다. 어디 그뿐인가?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지않은 보수적인 헌법재판소의 심판관들은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부추기고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기각해버렸다. 이로써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와 총선 그리고 탄핵을 통해 정치적으로 사법적으로 철저하게 검증되고 명실상부하게 선택된 대한민국의 당당한 대통령의 지위를 확보하게 됐다.







(홍재희) ======= 이러한 정치현실에 대해 김대중 기자 칼럼내용을 보면 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한 김대중 기자의 주장은 아주 어렵게 반세기 만에 활착 되고 있는 민주정치를 다시 뒤업고 권위주의적인 정치질서를 물리적으로 강제하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러한 김대중 기자의 칼럼 내용은 대단히 위험한 정치적 쿠데타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홍재희) ====== 김대중 기자는" 이런 지도자를 선택하는 데 주도권을 쥔 새 세력과 세대가 따로 있고 그 선택에 반대했던 세력과 세대가 따로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중에서는 지도자의 ‘수준’을 염려하는 소리가 너무 많이 들린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하는 데 주도권을 쥔 새 세력과 세대의 지지로 당선됐다. 그리고 취임했으나 노무현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선택하지 않고 반대했던 세력(방씨족벌의 조선일보)와 세대(수구정치집단인 한나라당) 에 의해서 탄핵소추 됐으나 헌법재판소의 기각결정으로 또 한번 검증 받고 대통령 직에 복귀했다.







(홍재희) ====== 동시에 4 . 15 총선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에 반대했던 세력과 세대들이 다시 비토 했지만 대다수국민들의 지지로 여대야소 정국이 형성됐다. 이러한 정치현실 속에서 김대중 기자가 " 이런 지도자를 선택하는 데 주도권을 쥔 새 세력과 세대가 따로 있고 그 선택에 반대했던 세력과 세대가 따로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중에서는 지도자의 ‘수준’을 염려하는 소리가 너무 많이 들린다. " 라고 주장하기에 앞서 먼저 2002년 대통령 선거와 2004년 4 . 15 총선 그리도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기각결정등 정치적으로 두 번의 검증과 사법적으로 한번의 검증등 세 번의 검증을 거친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철저하고 면밀하게 검증된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한 한국사회의 결정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나 반대하는 세력은 분명하게 결과에 대해 승복할 차례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언론인으로서 김대중 기자의 입장이어야 하지 않을까?









(홍재희) ====== 그래야 대한민국의 국정이 안정이 된다. 이러한 두 번의 정치적 검증 (대선 . 총선) 한번의 사법적 검증(탄핵기각) 등 세 번의 검증을 거친 노무현 대통령의 현 재위치를 김대중 기자가 " 이런 지도자를 선택하는 데 주도권을 쥔 새 세력과 세대가 따로 있고 그 선택에 반대했던 세력과 세대가 따로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중에서는 지도자의 ‘수준’" 운운하며 다시 편을 갈라놓고 국론을 사분오열 시키고 있는 것을 대한민국 사회가 언론인의 당연한 주장으로 용납해줘서는 안 된다.









(홍재희) ====== 이러한 김대중 기자의 펜을 악용한 테러행위는 한국의 민주정치에 대한 반칙의 쿠데타를 부추기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사회는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김대중 기자를 응징해야 한다. 김대중 칼럼의 내용은 언론의 주장이 아닌 수구정치폭력집단의 한국민주정치에 대한 일종의 테러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김대중 이사기자는" 어쩌면 뽑긴 ‘자전거 타는 지도자’를 뽑아놓고 기대하기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제왕적 지도자를 기대하는 유권자들의 이중심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김대중 이사기자에게 묻겠다. 지난 1년 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어떠한 국정수행상의 문제점 때문에 아니면 노무현 대통령이 정책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어떠한 사안이 염려가 된다는 것인지 김 대중 칼럼 은 제시해 버여야 한다. 그러나 김기자는 그러한 사실내지 진실을 제시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추상적으로 대통령의 머리 스타일이나 탈권위적인 리더십 발휘 그리고 서민적인 채취를 꼬투리삼아 상식이하의 치졸한 저질 비방의 언론플레이를 구태의연하게 자행하고 있다.







(홍재희) ===== 김대중 기자에게 묻겠다. " 여름밤 평상에 앉아 얘기하듯 하는 ‘옆집 아저씨’, ‘깍두기 머리’에 사주도 보고 점도 쳤다고 실토하는 ‘동네 통반장’ 스타일의 지도자" 의 수준이 그렇게도 염려가 되는가? 그러한 스타일의 지도자인 노무현 대통령이 박정희와 같이 배타적 독재를 했는가? 전두환. 노태우와 같이 국민들을 살상했는가?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같이 한국의 민주화와 언론자유의 목을 비틀었는가? 그런 경우는 아니지 않은가?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국제적인 망신을 시킨 일 이 있기를 한가? 그게 아니지 않은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 어쩌면 뽑긴 ‘자전거 타는 지도자’를 뽑아놓고 기대하기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제왕적 지도자를 기대하는 유권자들의 이중심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김대중 이사기자의 주관적인 판단이다. 대통령은 다수국민들에 의 뽑혔다. 그리고 소수의 반대자들이 탄핵했으나 다시 다수의 국민들의 뜻에 따라 헌재의 기각결정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4 . 15 총선에서도 다시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여대야소 정국 속에 대통령이 국정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무엇이 또 문제라는 말인가? ‘자전거 타는 지도자’를 뽑아놓았으면 그러한 지도자를 선택한 국민적 선택에 승복하면 된다. 김기자 안 그런가?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 그래서 더 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지도자가 그들 세력 안에서조차 서로가 ‘나나 그나’ 별로 다를 것 없다는, 그래서 그 지도자의 권위와 영(令)이 서지 않는 분위기가 생겨나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이다. 그 지도자가 오늘 이 말 했다가 내일 저 말 하고, 국회가 운동권의 각축장 수준에 머물며(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말), 새 주류세력이 나라의 진로와 방향을 혼미하게 만든다면 이것은 단순히 ‘평지(平地)로 내려온’ 대통령, 막말을 일반 대중과의 눈높이화법(話法)으로 착각한 지도자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기자는 " 그래서 더 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지도자가 그들 세력 안에서조차 서로가 ‘나나 그나’ 별로 다를 것 없다는, 그래서 그 지도자의 권위와 영(令)이 서지 않는 분위기가 생겨나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중 이사기자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김기자는 마치 집권세력 핵심부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얘기하고 있다. 그들세력 내부의 누가 그런 걱정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근거 있는 주장인가?









(홍재희) ===== 김기자가 그렇게 염려해도 노무현 대통령이 제왕적 지도자의 초법적인 권위를 강제하지 않고 대한민국 국군들과 대한민국 경찰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공무원들 그리고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 리더십을 지지하고 따르고 있지 않은가? 김대중 이사기자는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이시점에 있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 그리고 한나라당으로 상징되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수구정치집단들의 저항이다.







(홍재희) ===== 그러나 수구정치집단들은 극복의 대상이지 상생의 대상일수는 없다. 방씨족벌의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이 변화와 개혁의 미래한국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과 상생하려면 먼저 시대착오적인 수구 정치적인 테러의 흉기부터 버려라? 김대중이사기자는 " 그 지도자가 오늘 이 말 했다가 내일 저 말 하고, 국회가 운동권의 각축장 수준에 머물며(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말), 새 주류세력이 나라의 진로와 방향을 혼미하게 만든다면 이것은 단순히 ‘평지(平地)로 내려온’ 대통령, 막말을 일반 대중과의 눈높이화법(話法)으로 착각한 지도자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홍재희) ====== 김대중 기자야 말로 수구정치인인 김덕룡과 함께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제왕적 대통령의 도래를 꿈꾸는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반역의 기회주의적이고 수구정치적 인 자기체면에서 하루속히 깨어나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바보인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을 선택하고 또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부추기고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한 대통령 탄핵세력을 총선을 통해 현실정치의 주류에서 다시 밀어내고 보수적인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기각 결정한 것을 보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바보란 말인가?









(홍재희) ===== 김대중 기자가 " 그 지도자가 오늘 이 말 했다가 내일 저 말 하고, 국회가 운동권의 각축장 수준에 머물며(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말), 새 주류세력이 나라의 진로와 방향을 혼미하게 만든다면 이것은 단순히 ‘평지(平地)로 내려온’ 대통령, 막말을 일반 대중과의 눈높이화법(話法)으로 착각한 지도자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라고 악의적으로 매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대한민국의 일반 국민들과 사법부(헌법재판소) 가 21세기 미래한국의 앞날을 개척해나갈 대통령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을 실사구시적으로 인정해 줬다고 본다.







(홍재희) ====== 이것은 곧 김대중 이사기자의 칼럼이 악의적인 비방과 허위와 김대중 이사기자의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삐뚤어진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고 김대중 이사기자의 주장이 옳다면 노무현 대통령을 대선과 총선에서 두 번씩이나 정치인으로 신임한 대다수 국민들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기각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가 바보라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김대중 칼럼은 노무현 대통령을 두 번씩이나 정치적으로 신임한 대다수 국민들과 탄핵기각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를 바보로 만들려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김대중 칼럼은 한국사회가 극복해 나가야 한다.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 우리는 지금 총알이 비오듯 쏟아져도 ‘돌격 앞으로’의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의 지휘에 따라 돌진하지 않으면 안되는 전투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일반사람과 다를 것 없는 비권위, 무권위만으로 누가 죽기를 각오하고 총알 쏟아지는 고지를 향해 돌격하겠는가.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중 이사기자는 월간조선의 조갑제와는 또다 른 형태의 수구 정치적 쿠데타를 선동하고 획책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김대중 이사기자는 제왕적 대통령의 역할을 아직도 긍정하고 있다. 그러한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과 김대중 이사기자가 몸담고 있는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권언유착을 통해 오늘의 조선일보라는 외형적 성장의 수구족벌탑을 쌓아 올려 놓았기 때문이다.







(홍재희) ======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관행을 탈피한 열린 리더십의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어서 수구적인 권위주의의 향수에 젖은 방씨족벌의 조선일보는 권언유착의 동반자 라기 보다 열린 리더십에 의해 변화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극복대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절박한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가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지속적으로 확대재생산 시켰던 수구정치집단 이라는 과거의 시대착오적이고 썩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발버둥치고 있다.







(홍재희) ===== 우리 언론소비자들이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 보자. 지금 대한민국사회가 ‘돌격 앞으로’의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의 지휘에 따라 돌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전투의 세계에 살고 있는가? 아니라고 본다.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식의 돌격 앞으로의 강요와 순치된 백성의 수동적인 아나로그식 정치풍토와 수구적 관행으로는 더 이상 21세기의 정보화시대에 디지털 정치로 살아 남을 수 없다. 이러한 시대에는 제왕적 권위가 통용되지 않는다.







(홍재희) ====== 김대중 기자는 부시미국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부시미국대통령은 지금 전 세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를 불법 침략하며 ‘돌격 앞으로’의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의 역할을 하며 죽기를 각오하고 총알 쏟아지는 이라크 전쟁의 수렁 속을 향해 돌격하고 있으나 결과는 어떤가? 김대중 이사기자식의 ‘돌격 앞으로’의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인 부시는 세계로부터 지금 버림받고 있다. 미국의 국내 여론도 ‘돌격 앞으로’의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 부시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시대는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









(홍재희) ======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이사기자가 대한민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이 ‘돌격 앞으로’의 명령을 내리며 총알이 쏟아지는 고지를 향해 돌격하는 대통령상을 추구하고있는 것은 아직도 김대중 이사기자가 시대착오적이고 수구 정치적인 쿠데타를 꿈꾸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김대중 이사기자는 진정으로 쿠데타를 꿈꾸고 있는가? 김대중 이사기자의 비방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끌어 가는 민주적인 리더십의 현정부는 제왕적인 대통령의 권위로부터 벗어나 민주적인 열린 정치의 권위를 새롭게 형성해 나가고 있다. 김대중 이사기자는 그러한 21세기 한국의 미래정치가 만들어 나가고 있는 새로운 권위는 보이지 않는가?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 작년 다보스 포럼에서 미시간대 경영학 교수 프라할라드는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도자(leader)는 좋은 선수여야 한다. 지도자는 동시에 좋은 코치여야 하고 좋은 레프리여야 한다. 그리고 또 좋은 경기규칙을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도자는 좋은 응원단장(cheer leader)이어야 한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중 이사기자와 미시간대 경영학 교수 프라할라드에게 묻겠다. 지금 이라크 불법침략전쟁의 장기화라는 수렁속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는 부시미국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떠한 유형에 속하는지 감히 묻고자 한다.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대우기자가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이 세계에 모든 관객으로부터 외면 당한채 이라크 불법 침략전쟁이라는 경기에서 어떠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어떠한 선수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어떠한 코치이고 또 무엇을 응원하는 응원단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 지도자라고 그 모든 것을 다 잘 해낼 수는 없을 것이지만 적어도 그것들의 몇가지를 아우르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우리는 지금 프라할라드가 말한 마지막 덕목, ‘좋은 응원단장’이 절실하다. 그리고 우리와 다른 높은 수준의 의지와 실천능력이 절실하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금 이시점에서 청산해 나가기를 바라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의 초법적인 권위주의를 무너뜨리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 그리고 한나라당은 천문학적인 `차떼기` 부정부패의 정경유착구조를 파생시킨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인 구 체제 를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러한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치문화가 망쳐놓은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에 가장 커다란 희생자들이다.









(홍재희) ======= 이러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제왕적 대통령 문화의 청산요구에 가장 좋은 응원단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제왕적 대통령의 초법적 통치스타일과 스스로를 엄격하게 절연시키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다른 면에 있어서는 냉정하게 비판 받을 소지가 다분히 있을수 있지만 제왕적 대통령 문화의 청산이라는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고 있는 깨어있는 국민들의 뜻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좋은 응원단장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우리모두 부인할수 없다고 본다. 부연한다면 제왕적인 대통령 문화의 관 뚜껑에 열린 리더십의 대통령 문화라는 대못을 대고 힘찬 망치질을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새로운 대통령 상은 정파와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것으로 긍정해야 한다.







(홍ㅈ배희) ====== 제왕적 대통령 문화의 청산을 지향하고 있는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고 있는 깨어있는 국민들의 편에 서서 제왕적 대통령의 초법적인 통치행위와 시대착오적인 카리스마로 한국정치와 경제를 수십년 후퇴시킨 대통령 문화를 적극적으로 바꿔나가는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 볼 때 대한민국 국민들이 추구하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 문화 극복의 가장 좋은 응원단장이라고 본다. 노무현 응원단장은 6 . 5 지방 재보궐선거의 정치적 패배에 일희일비하지말고 대국적인 견지에서 추호의 흔들림 없이 대한민국 대다수의 국민들이 염원하고 있는 언론개혁에 대해서도 좋은 응원단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







(홍재희) ====== 그리고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 이사대우 김대중기자는 비겁하게 노무현 대통령의 말투나 서민적인 풍모 그리고 탈권위적인 새로운 관행의 본질이 아닌 꼬투리를 잡아 지엽 말단적으로 비방하는 소모적 언론플레이를 즉각 중단하고 정정당당하고 떳떳하게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각종정책이나 국정수행업무중에 나타나는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적 대안제시 라는 언론본연의 자세를 견지하기 바란다. 젊은 언론인들이 김대중 이사기자의 파렴치하고 패륜적인 칼럼을 보고 따라 배울까 심히 우려된다.









[김대중칼럼] 대통령과 응원단장(조선일보 2004년 6월6일자)











지도자는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카리스마와 권위가 있는, 군림하는 강한 지휘자 타입이고, 다른 하나는 권위를 찾기보다는 옆집 아저씨 또는 동네 할아버지처럼 ‘일반인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타입이다. 이 같은 지도자상은 그 나라의 역사와 국민성, 제도, 또 모든 주변 환경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적대적 주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족과 계층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가난과 자원부족을 극복해 나라를 빈곤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것이 세계의 역사적 경험이었다. 정치·경제적으로 비교적 평안하고 온건한 환경의 나라, 예컨대 북구(北歐) 같은 나라에서는 공동체적 질서를 상징하는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지도자를 선택해왔던 것도 같은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수천년에 걸친 왕조(王朝)가 사라진 뒤 민주공화국을 설립한 이후에도 또 다른 형태의 왕(王)을 가져왔다. 우리의 리더십은 권위에 젖어있다 못해 권위주의에 몰입해 군림하는 대통령의 형태로 존재해왔다. 건국 이후 한 차례 짤막한 실험이 있었고 그 뒤 꾸준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이 내각책임제에 눈길을 돌리지 않았던 것도 이 같은 우리의 오래된 지배구조, 지배의식, 지배형태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우리가 이번에 여름밤 평상에 앉아 얘기하듯 하는 ‘옆집 아저씨’, ‘깍두기 머리’에 사주도 보고 점도 쳤다고 실토하는 ‘동네 통반장’ 스타일의 지도자를 선택했고, 그 지도세력도 “군기 잡으려 하면 물어뜯어 버리겠다”는, ‘한때 빨갱이 노래’로 몰렸던 노래를 청와대서 부르게 된 것에 감격하는 사람들을 뽑았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군림하는 통치자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대단히 중대한 변화이고 심각한 선택이다.



문제는 우리 국민이 이런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질 것이냐에 있다. 이런 지도자를 선택하는 데 주도권을 쥔 새 세력과 세대가 따로 있고 그 선택에 반대했던 세력과 세대가 따로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중에서는 지도자의 ‘수준’을 염려하는 소리가 너무 많이 들린다. 과거 대통령들에 대해서는 못 듣던 소리들이다. 어쩌면 뽑긴 ‘자전거 타는 지도자’를 뽑아놓고 기대하기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제왕적 지도자를 기대하는 유권자들의 이중심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지도자가 그들 세력 안에서조차 서로가 ‘나나 그나’ 별로 다를 것 없다는, 그래서 그 지도자의 권위와 영(令)이 서지 않는 분위기가 생겨나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이다. 그 지도자가 오늘 이 말 했다가 내일 저 말 하고, 국회가 운동권의 각축장 수준에 머물며(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말), 새 주류세력이 나라의 진로와 방향을 혼미하게 만든다면 이것은 단순히 ‘평지(平地)로 내려온’ 대통령, 막말을 일반 대중과의 눈높이화법(話法)으로 착각한 지도자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총알이 비오듯 쏟아져도 ‘돌격 앞으로’의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의 지휘에 따라 돌진하지 않으면 안되는 전투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일반사람과 다를 것 없는 비권위, 무권위만으로 누가 죽기를 각오하고 총알 쏟아지는 고지를 향해 돌격하겠는가.



작년 다보스 포럼에서 미시간대 경영학 교수 프라할라드는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도자(leader)는 좋은 선수여야 한다. 지도자는 동시에 좋은 코치여야 하고 좋은 레프리여야 한다. 그리고 또 좋은 경기규칙을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도자는 좋은 응원단장(cheer leader)이어야 한다.”







지도자라고 그 모든 것을 다 잘 해낼 수는 없을 것이지만 적어도 그것들의 몇가지를 아우르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우리는 지금 프라할라드가 말한 마지막 덕목, ‘좋은 응원단장’이 절실하다. 그리고 우리와 다른 높은 수준의 의지와 실천능력이 절실하다.

(김대중·이사기자) 입력 : 2004.06.04 18:36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