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을 거부하는 종교인에게 헌법에 규정한 양심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종교와 법을 모르는 촌부라고 하더라도 상식에 어긋나는 결정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상식에 어긋난다면 재판을 한 판사의 양식과 적용한 법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헌법 해석상의 오류 문제는 이미 여러 곳에서 지적되었으므로 여기서는 개인에게 양심적 행위가 있는지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인간에게 총을 겨누고 쏘는 일은 특정 종교인이 아니라도 결코 해서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총을 만지고 사격하는 훈련을 하고 전쟁이 나면 목숨을 내놓고 적과 맞서 싸우는 일을 하는 것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월급을 30만원이 아니라 백만원을 준다고 해도 돈 때문에 사람을 살상하는 군 생활을 선택할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국방 의무를 지고 어쩔 수 없이 하는 병역을 종교적 신념 때문에 거부하는 것은 아집이며 울타리 기준이다.
종교적 신념이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전쟁을 일으키고 총칼로 사람을 죽인 힘의 논리의 원천이 되고 있음은 인류 역사가 입증해 주고 있다. 종교적 가치 기준으로서는 힘의 논리를 부정할 수 없고 따라서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을 내세울 수 없다.
대한민국이 여호와의 증인만이 사는 왕국이 되는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북한이나 외국이 무력으로 도발해 올 때 손을 들고 나라를 내어줄 것인가. 국가의 3대 요소인 국민과 영토 및 주권을 지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가기 위해서는 전쟁이 싫고 살생이 싫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갈등과 대립이 상존하고 전쟁이 실재하는 세계와 우리 현실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양심은 군 입대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국방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면서 힘의 논리를 근본적으로 청산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사회 정의에 부합될 때만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정의는 다른 표현으로 대원칙이라 할 수 있으며, 국가 안에서는 국민이 같이 잘 사는 삶으로서 이는 같이 좋은 인간 본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같이 좋은 삶은 공감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려면 사회에 반하는 편견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인간에게 헌법이나 사회정의를 초월한 양심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인간 본질 원리를 알 필요가 있다.
본질원리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사고는 언어의 분별력이라고 한다. 삼라만상은 모두 언어적 표현이며 언어는 개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가운데 형성된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도 알 수 없는 태초에 뭇 실체가 만나 같은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공유 또는 분유하면서 지각하는 생명체, 즉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인간본질시대가 온다'(헝덕 손복영 지음/도서출판 말과흙) 中 인간본질원리 참조)
인간의 의식이 같이 내는 소리를 공유 또는 분유하면서 생긴 것이므로, 개체만이 아는 소리나 의식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 또는 울타리 기준으로 알고 고집할 양심이나 가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말을 하며 인간이 되고 공간이 생명을 얻는 대상과 나 사이는 상호 원인으로 존재하는 인간이므로 같이 좋은 모습이 본연이며 같이 좋은 사회도 당연히 본연이다.
때문에 편견을 지키려고 고집하는 것은 인간본연에 반하는 악과 또는 원죄와 같은 것으로서, 다름 아닌 고통의 인간역사를 만들어 온 유신론과 유심론적 가치구조이다.
허구에 근거한 편견이 힘의 논리를 만들어 고통의 인류 역사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인간은 인간답게 살지 않으면 안되는 절대적인 방향을 지향해 오고 있다.
말을 하며 인간이 되는 본질과 상호 원인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무한히 좋은 본연이 절대가치임을 알 때 절대가치에 의한 세상 기준이 세워질 수 있고 모든 군사력을 해체하여 진정한 인류 평화를 실현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소리는 개인과 집단 이기주의의 일면으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종교적 신념은 교리의 의식화 또는 체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란 언어도단이다.
그렇다고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징역형을 고집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면 대안을 찾아볼 수 있다.
집총 때문에 병역을 거부한다면 집총 훈련 대신에 요리 강습이나 통신 또는 운전 기술을 가르쳐 전문 기술병으로 병역을 필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예비군 훈련은 사회 봉사활동으로 대체하고 유사시에는 기술병으로 동원되어 국가에 봉사할 수 있다. 이마저도 거부한다면 장기간의 강제노역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더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인간본질시대운동본부 헝덕 손복영
http://www.essenpi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