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의 향기로운 노후이야기- 이용만씨
투탕카멘의 유물보고 역사공부 시작
"도시생활이라는 것이 집 밖을 나서면 돈이 드는 일이어서 노후에 발이 묶이는 데는 경제적인 문제가 클 거야. 젊어서 많이 내더라도 연금을 더 받았으면 좋겠어" 이용만(61세. 서울 송파구 가락2동)씨의 말이다. 그는 88년부터 직장가입자로 국민연금에 가입해 지난 7월까지 16년을 가입하고 현재 66만원의 연금을 받고 있다.
이용만씨는 건강하고, 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와 잘 키운 두 아들이 있어 별다른 노후걱정이 없는 화목한 모습이지만 당신 스스로가 평안할 수 있는 데는 내 주머니의 돈,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연금이 큰 몫을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 세대들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전쟁을 겪었고, 폐허 속에서 먹고 자는 것이 문제였다. 어떻게 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걱정해야 했으니까. 결혼해서는 내 집 마련에 아이들 학교문제로 자신은 없는 거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의무를 어떻게 실현시켜야 하느냐와 싸우는 시기였다. 노후를 어떻게 멋지게 잘 보낼 것이냐 하는 것은 사치였다.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남들만큼 해 줄 수 있을까? 그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였다.
▶다시 태어난다면 프랑스에서 태어나 살고 싶다. 수렵과 강탈의 역사가 아니라 1년 농사를 지으면 풍족하게 살 수 있었던 자연환경과 남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수용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대혁명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제일 먼저 부르짖은 나라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가 좋겠다는 생각이다.
▶퇴임을 하고 좋은 것은 스트레스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어떻게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고 살까 그런 걱정을 하긴 하지만 직장생활과 비교할 수가 없다. 조직생활이란 일 자체가 스트레스지만 3월이 오면 올해는 어떻게 되나 불안했었다. 매년 구조조정이 있어 왔고, 이번에는 내 차례가 아닐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내가 아니더라도 후배들이 젊은 나이에 반 강제로 회사를 떠나는 것을 봐야 하는 고통도 컸다. 퇴임 이후엔 그런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지난 해 3월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 거의 매일 산을 찾는다. 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서면 남한산성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데에 5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게 혼자 운동 삼아 취미로 산을 오르지만 친구들과 함께 갈 때도 많다. 동료들이나 회사를 다니면서 알게 됐던 거래처 친구들이다. 나름대로 재미있다. 젊어서는 제대로 휴가도 가지 못했다. 직장 다니면서 산에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제대로 즐기고 음미하는 그런 여행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산을 자주 찾는다. 여유를 가지고 얼마든지 즐기면서 다닐 수 있어 좋다.
노후가 되면 신체기능이 많이 떨어진다. 열심히 사느라 간(肝)에 얼마나 부담을 줬겠는가? 우리 세대는 성장기에 잘 먹지도 못했다. 그것이 노후에 다 나타난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것도 즐겁게. 그래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건강은 본인도 그렇지만 자식의 짐을 더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에겐 다양한 것을 접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우리 때는 선생들이 아이들 공 차는 걸 보면서 '저 자식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걱정했다. 공도 차고 클럽활동을 하면서 내가 흥미 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학문이나 직업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선생이 이끌어 주었으면 한다. 우리 사회는 그런 다양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깊이가 없다. 무엇이 좋다하면 한꺼번에 몰려든다. 각자가 하고 싶은 거 잘 할 수 있는 거를 하면서 사회적으로 조화를 이뤄 나가면 국가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
▶생활의 구속과 억압 때문에 그 동안 해보고 싶었던 거, 해보지 못한 것이 많다. 그림도 그렇고 악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다. 전쟁이후엔 교실이 없었다. 산에다 칠판을 걸어놓고 공부했고, 선생 얼굴을 볼 수 있는 날도 많지 않았다. 그 뒤로는 입시위주에 취업중심의 공부를 했기 때문에 공부다운 공부,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했다. 최근에 역사책을 보면서 예전에 왜 이런 공부를 못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고대역사를 비롯해 인류의 흥망성쇠는 정말 흥미롭다. 찬란했던 문화들이 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는지 아는 것이 재미있다. 몇 년 전에 업무 차 이집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집트박물관의 투탕카멘 유물과 피라미드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런 문화와는 달리 박물관 앞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이집트인들은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었다. 찬란한 문화의 흥망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그래서 공부를 하게 됐다.
▶개인의 흥망 역시 인류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젊어서 잘 나가던 사람이 노후를 초라하게 보내는 경우를 보게된다. 국민연금과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다는 것이 다행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젊어서 많이 내고 노후에 그만큼 더 받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국민연금으로 공공요금도 내고 부담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술 한잔을 할 수도 있다. 매달 일정한 연금이 나온다는 것이 큰 힘이다. 아무쪼록 국민연금이 잘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
흔히 산다는 것이 고행이라는 말을 한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모습으로 살면서 나름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각자가 어떻게 살아왔든 노후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노후행복이라고 특별한 것은 아니다. 먹고 싶은 거 먹고, 가고 싶은 데 가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그만큼의 여유만 있다면 가능 할 것이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노후란 열심히 살아온 젊은 날에 대한 보상에 다름 아닐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