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있음으로 희망찬 미래가 있다.
오영찬/제주도 남제주군 남원읍
스산한 늦가을 바람이 어느새 초겨울을 알리는 것처럼 쌀쌀한 게 제법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올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나에겐 뜻깊은 계절이었다. 무더위는 어느 해 보다도 더욱 기승을 부렸고 지병은 더욱 심해져 힘들었지만 연금수혜자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난 어느 해 보다도 활기차게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여느 때처럼, 지금 난 시외버스를 타고 작은애 집으로 향하고 있다. 한 손에는 첫 연금을 탄 돈으로 산 손주에게 줄 장난감 하나가 쥐어져 있다. 그 동안 귀여운 내 손주를 볼 욕심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매번 갔다왔다 하면서도 그때마다 빈손으로 손주를 찾을 때면 할애비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항상 마음이 편치 못했었지만 오늘은 당당히 소주녀석을 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빨리 도착해서 손주놈에게 이 장난감을 쥐어주고 싶은데 버스는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왜 이렇게 더딘지 모르겠다.
그게 언제였던가?
5년 전 초여름이었지 아마? 매스컴이 온통 국민연금 얘기로 시끌벅적한 어느 농사일이 한창이던 그 날 리사무장이 찾아와 고개를 꾸벅하고는 다짜고짜 용지 한 장을 코앞으로 내밀며 다짜고짜 무조건 도장을 찍으라는 것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민연금 자격취득신고서였다.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읍사무소에서 온 듯한 직원이 7월부터는 의무적으로 가입해야되고, 장애시 어떻고, 사망시 어떻고 해 가면서 국민연금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해대는 것이었다. 그래도 난 매스컴을 통해 보고 들은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설명으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옆집에 누구와 친척되고 얼마납부하고, 앞집, 뒷집에서도 얼마.......하면서 인간관계를 들먹이며 계속 설득하였다. 연신 땀을 쓸어내며 정성을 쏟는 젊은 친구의 모습이 안쓰러워, 그러면 제일 적은 금액으로 가입하겠다고 했더니 이왕 가입하는 거 오만원정도로 하자며 계속 이웃주민들 납부액을 들먹이며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었다..그래도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고 이 세금 저 세금 납부하고 나면 생활비도 쪼들리고 힘들어서 도저히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읍직원이 "그러면, 납부하시다가 힘드시면 금액도 조정이 가능하니까 참고 몇 달만 납부해 보라는 것이었다. 통사정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그냥 도장을 찍고 말았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자동이체도 했다. 읍직원은 고맙다고 돌아가면서 이 고맙다는 말이 나중에 선생님이 저한테 하실 날이 있을 테니까 두고보세요 하며 웃으며 얘기하는 것이었다. 난 그 얘기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사유로 막상 가입하고 나니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나이는 들어 농사일은 점점 힘들어 가고 수입은 점점 줄어들어 마이너스 통장이 이천만원이 넘어가고 생활도 점점 어려워져갔다. 보다못한 집사람이 이제 그만 국민연금인가 뭔가 하는 거 납부하지 말고 아껴서 생활비에 보태자고 나를 닥달하면서 전화기를 내 앞으로 내미는 것이었다. 국민연금으로 전화를 하라는 것이었다. 우물 쭈물거리자 직접다이얼을 돌려서 수화기를 내 귀에다 갖다 대는 것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신호음이 가자 덜컥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제주지사입니다."
"거기 국민연금 돈 관리하는 곳 맞죠?"
"예, 맞습니다.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국민연금을 해약하고 싶은데 가능합니까? 보험료 납부하는 게 힘들어서요."
그러자 직원이 해약은 안되고 납부예외 처리는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납부한 돈도 바로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돈 내가 찾겠다는 데 왜 안되냐고 하면서 거칠게 따졌다.
"그러면 보험료 액수라도 하향조정 해주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너무 흥분해하자 담당자가 바뀌었는지 다른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직원은 국민연금의 취지, 목적들을 설명하면서 한가지 나에게 물어왔다.
"선생님께서 원하시면 보험료 액수는 낮출 수가 있는데요, 그 전에 한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선생님! 지금 누구와 생활하고 계십니까?"
"자식들은 전부 출가해서 큰놈은 서울에서, 작은놈은 제주시에서 생활하고 집사람과 단둘이 생활하는데 그건 왜 물어보쇼? 그러자 직원이 "그럼, 노후에 서울에서 큰아드님과 생활하실 겁니까? 아니면 작은 아드님과 생활하실 겁니까? 하는 것이었다.
말문이 콱 막히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른 말이 나오질 않았다. 거기까지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직원은 기회다 싶었는지 지금은 당장 한 푼이 아쉽고 어려워도 조금만 가난을 저축해 두시면 나중에는 그 가난이 행복으로 오지 않겠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잠시 머뭇머뭇하다가 미안하다고 하고 수화기를 그만 내려놓고 말았다. 집사람은 통화내용이 궁금한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어떻게 됐어요?"
"그냥 계속 납부하기로 했으니까, 아무 말 말고 그렇게 알고 있어."
"뭐라구요! 계속 납부하기로 했다고요. 나 참! 기가 막혀서......
정신이 멍하니 아무 생각도 없었다. 조금 전 공단 직원의 말이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래! 내가 나이 들면 자식놈들하고 같이 생활할 수 있을까? 농사를 지을 힘도 없고 경제적 능력도 없으면 과연 내 자식들이 나를 반겨줄까? 아니 손주놈들은 또 어떨까?
과연 우리 나라에서 자식에게 부양 받으며 생활하고 있는 노인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도 부양 받을 권리가 있다"고 어느 노인단체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현실은 이들의 외침을 철저히 거부하고 있지를 않는가! 예전 같으면 자식농사가 곧 노후대책이었지만 오늘날 어디 그런가. 들리는 소리가 전부 부양을 기피하여 부모 버리기, 오히려 돈을 내놓으라며 폭행하는 자식들이 지금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결론은 하나였다..
맞아! 내 노후는 내가 준비해야지! 그래야 자식들에게 손도 벌리지 않고 떳떳하겠지.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길어봤자 이년도 남지 않았는데.....
조금만 참자 하면서 견뎌냈다. 이래저래 힘들게 납부는 하였지만 내가 납부한 돈이 제대로 들어가서 나중에 정말 연금으로 탈수 있는지 항상 걱정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공단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선생님께서 납부하신 연금은 잘 관리되고 있다"는 공단직원의 친절한 안내로 안도하곤 했다.
그런 와중에 세월은 흘러 이제 납부한 지도 5년이 돼가고 있었다. 그럴 즈음 공단에서 리사무소에 가서 연금을 신청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국민연금 수혜자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고,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직접 공단 사무실로 찾아가 신청했다. 신청을 하고 공단 사무실 문을 나설 때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드디어 첫 연금이 입금되었다. 2000년 8월 31일 이 날을 난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연금이 내 통장으로 입금된 날이었다. 앞으로도 매달 내 통장으로 입금된다고 하며 매년 물가상승률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연금액도 늘어난다고 하니 정말 꿈만 같고 행복했다. 그렇게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내가 납부한 돈에 비하면 월등히 많은 금액이었다. 이제는 정말 내가 국민연금의 수혜자가 되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회한에 잠겼다. 가입당시 실랑이를 벌였던 리사무장. 읍사무소 직원 그리고 납부하는 것이 힘들어 해지하려고 할 때 나를 설득시킨 공단직원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이제는 집사람도"효자가 따로 없다며 매달 꼬박 꼬박 통장으로 입금되는 국민연금이 효자다, 효자야!"라며 마냥 좋아한다. 이제 이 돈으로 뭘할까? 어렵게 납부해서 받는 연금인데 대책 없이 낭비할 순 없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손주놈이었다. "그래 손주놈 학비는 내가 대야지"하고 적금을 들었다. 한달 한달 들어가는 것이 이제 넉달째 돼가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작은놈 집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이 생각 저생각으로 걷다보니 금새 작은놈 집에 다다랐다.
손주놈이 "할∼아부지"하면서 내 품안으로 뛰어와 안겼다. 이 손주놈이 나이 들어 노후가 될 때는 모든 국민들이 연금 혜택을 받아 안정된 노후를 보장받는 시대가 될 테지."어이구 내 새끼" 자! 선물이다. 장난감을 건네주니 마냥 좋은지 손에서 뗄 줄 모르고 이리보고 저리보고 신기해 한다. 며늘아기는 생활비도 넉넉지 못하실텐데 어떻게 장난감을 사오셨을까? 의아해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나는 자랑스럽게 그 동안 연금에 가입된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떠들어댔다. 그러자 며늘아기가 "죄송해요! 저희가 조금만 신경 써서 대납이라도 해드렸으면 좋았을 텐데...."하며 몸들 바를 몰라했다. 그러면서 선진국에서는 국민연금제도가 이미 시행이 되어 정착되었다면서 우리도 이제서나마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를 이만큼 이나마 경제적으로 일으켜 세운 기성세대가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것이 매우 가슴아팠다고 하며 그때 그분들이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는 만큼 정부에서 늦게나마 이런 정책을 실시하게된 게 퍽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듯 얘기하는 것이다. 며늘아기와 나는 어느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국민연금에 대하여 얘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산업이 점차 발전하면서 핵가족화 돼가고 노인 인구수는 급속도로 늘어 어느새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노인문제는 이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우리사회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충분한 대비를 해오지 못하였고 그나마 노후의 빈곤을 예방하기 위한 소득보장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 국민연금 제도이며, 그 동안 애쓴 결과로 맺은 첫 열매가 나 같은 농어촌 주민들이 연금을 받게됐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앞으로 점차 많은 노인들이 혜택을 받게 될 거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며 어려운 농어촌지역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 국민연금은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이다. 그럴수록 모든 국민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며 며늘아기에게 한바탕 훈수를 늘어놓았다.
손주놈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장남감을 뜯었다. 붙였다 하며 혼자 희희낙낙거리며 놀고 있다. "어이구 내 새끼 그렇게도 좋으냐? 다음에 올 때는 더 좋은 것 사 갖고 오마! 그리고 ."아가야. 아비한테도 연금에 가입하도록 얘기해라"하고 손주놈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를.....
이젠 나도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접고 나의 이웃들에게 때를 놓치지 말고 국민연금에 가입하여 약속된 노후, 풍요로운 노후를 즐기라고 열을 올려 권유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동안 국민연금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을 버리는데, 나는 수급자가 되서야 그걸 깨달았으니 어리석은 소인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많이 보아왔다. 배고파하며 헤매는 노인들, 집이 없어 길거리에 노숙하는 노인들, 양로원에 전전하는 노인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국민연금이 있음으로 희망찬 미래가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끝)
오영찬/제주도 남제주군 남원읍
국민연금이 있음으로 희망찬 미래가 있다.
스산한 늦가을 바람이 어느새 초겨울을 알리는 것처럼 쌀쌀한 게 제법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올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나에겐 뜻깊은 계절이었다. 무더위는 어느 해 보다도 더욱 기승을 부렸고 지병은 더욱 심해져 힘들었지만 연금수혜자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난 어느 해 보다도 활기차게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여느 때처럼, 지금 난 시외버스를 타고 작은애 집으로 향하고 있다. 한 손에는 첫 연금을 탄 돈으로 산 손주에게 줄 장난감 하나가 쥐어져 있다. 그 동안 귀여운 내 손주를 볼 욕심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매번 갔다왔다 하면서도 그때마다 빈손으로 손주를 찾을 때면 할애비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항상 마음이 편치 못했었지만 오늘은 당당히 소주녀석을 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빨리 도착해서 손주놈에게 이 장난감을 쥐어주고 싶은데 버스는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왜 이렇게 더딘지 모르겠다.
그게 언제였던가?
5년 전 초여름이었지 아마? 매스컴이 온통 국민연금 얘기로 시끌벅적한 어느 농사일이 한창이던 그 날 리사무장이 찾아와 고개를 꾸벅하고는 다짜고짜 용지 한 장을 코앞으로 내밀며 다짜고짜 무조건 도장을 찍으라는 것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민연금 자격취득신고서였다.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읍사무소에서 온 듯한 직원이 7월부터는 의무적으로 가입해야되고, 장애시 어떻고, 사망시 어떻고 해 가면서 국민연금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해대는 것이었다. 그래도 난 매스컴을 통해 보고 들은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설명으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옆집에 누구와 친척되고 얼마납부하고, 앞집, 뒷집에서도 얼마.......하면서 인간관계를 들먹이며 계속 설득하였다. 연신 땀을 쓸어내며 정성을 쏟는 젊은 친구의 모습이 안쓰러워, 그러면 제일 적은 금액으로 가입하겠다고 했더니 이왕 가입하는 거 오만원정도로 하자며 계속 이웃주민들 납부액을 들먹이며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었다..그래도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고 이 세금 저 세금 납부하고 나면 생활비도 쪼들리고 힘들어서 도저히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읍직원이 "그러면, 납부하시다가 힘드시면 금액도 조정이 가능하니까 참고 몇 달만 납부해 보라는 것이었다. 통사정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그냥 도장을 찍고 말았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자동이체도 했다. 읍직원은 고맙다고 돌아가면서 이 고맙다는 말이 나중에 선생님이 저한테 하실 날이 있을 테니까 두고보세요 하며 웃으며 얘기하는 것이었다. 난 그 얘기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사유로 막상 가입하고 나니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나이는 들어 농사일은 점점 힘들어 가고 수입은 점점 줄어들어 마이너스 통장이 이천만원이 넘어가고 생활도 점점 어려워져갔다. 보다못한 집사람이 이제 그만 국민연금인가 뭔가 하는 거 납부하지 말고 아껴서 생활비에 보태자고 나를 닥달하면서 전화기를 내 앞으로 내미는 것이었다. 국민연금으로 전화를 하라는 것이었다. 우물 쭈물거리자 직접다이얼을 돌려서 수화기를 내 귀에다 갖다 대는 것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신호음이 가자 덜컥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제주지사입니다."
"거기 국민연금 돈 관리하는 곳 맞죠?"
"예, 맞습니다.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국민연금을 해약하고 싶은데 가능합니까? 보험료 납부하는 게 힘들어서요."
그러자 직원이 해약은 안되고 납부예외 처리는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납부한 돈도 바로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돈 내가 찾겠다는 데 왜 안되냐고 하면서 거칠게 따졌다.
"그러면 보험료 액수라도 하향조정 해주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너무 흥분해하자 담당자가 바뀌었는지 다른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직원은 국민연금의 취지, 목적들을 설명하면서 한가지 나에게 물어왔다.
"선생님께서 원하시면 보험료 액수는 낮출 수가 있는데요, 그 전에 한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선생님! 지금 누구와 생활하고 계십니까?"
"자식들은 전부 출가해서 큰놈은 서울에서, 작은놈은 제주시에서 생활하고 집사람과 단둘이 생활하는데 그건 왜 물어보쇼? 그러자 직원이 "그럼, 노후에 서울에서 큰아드님과 생활하실 겁니까? 아니면 작은 아드님과 생활하실 겁니까? 하는 것이었다.
말문이 콱 막히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른 말이 나오질 않았다. 거기까지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직원은 기회다 싶었는지 지금은 당장 한 푼이 아쉽고 어려워도 조금만 가난을 저축해 두시면 나중에는 그 가난이 행복으로 오지 않겠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잠시 머뭇머뭇하다가 미안하다고 하고 수화기를 그만 내려놓고 말았다. 집사람은 통화내용이 궁금한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어떻게 됐어요?"
"그냥 계속 납부하기로 했으니까, 아무 말 말고 그렇게 알고 있어."
"뭐라구요! 계속 납부하기로 했다고요. 나 참! 기가 막혀서......
정신이 멍하니 아무 생각도 없었다. 조금 전 공단 직원의 말이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래! 내가 나이 들면 자식놈들하고 같이 생활할 수 있을까? 농사를 지을 힘도 없고 경제적 능력도 없으면 과연 내 자식들이 나를 반겨줄까? 아니 손주놈들은 또 어떨까?
과연 우리 나라에서 자식에게 부양 받으며 생활하고 있는 노인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도 부양 받을 권리가 있다"고 어느 노인단체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현실은 이들의 외침을 철저히 거부하고 있지를 않는가! 예전 같으면 자식농사가 곧 노후대책이었지만 오늘날 어디 그런가. 들리는 소리가 전부 부양을 기피하여 부모 버리기, 오히려 돈을 내놓으라며 폭행하는 자식들이 지금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결론은 하나였다..
맞아! 내 노후는 내가 준비해야지! 그래야 자식들에게 손도 벌리지 않고 떳떳하겠지.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길어봤자 이년도 남지 않았는데.....
조금만 참자 하면서 견뎌냈다. 이래저래 힘들게 납부는 하였지만 내가 납부한 돈이 제대로 들어가서 나중에 정말 연금으로 탈수 있는지 항상 걱정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공단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선생님께서 납부하신 연금은 잘 관리되고 있다"는 공단직원의 친절한 안내로 안도하곤 했다.
그런 와중에 세월은 흘러 이제 납부한 지도 5년이 돼가고 있었다. 그럴 즈음 공단에서 리사무소에 가서 연금을 신청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국민연금 수혜자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고,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직접 공단 사무실로 찾아가 신청했다. 신청을 하고 공단 사무실 문을 나설 때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드디어 첫 연금이 입금되었다. 2000년 8월 31일 이 날을 난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연금이 내 통장으로 입금된 날이었다. 앞으로도 매달 내 통장으로 입금된다고 하며 매년 물가상승률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연금액도 늘어난다고 하니 정말 꿈만 같고 행복했다. 그렇게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내가 납부한 돈에 비하면 월등히 많은 금액이었다. 이제는 정말 내가 국민연금의 수혜자가 되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회한에 잠겼다. 가입당시 실랑이를 벌였던 리사무장. 읍사무소 직원 그리고 납부하는 것이 힘들어 해지하려고 할 때 나를 설득시킨 공단직원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이제는 집사람도"효자가 따로 없다며 매달 꼬박 꼬박 통장으로 입금되는 국민연금이 효자다, 효자야!"라며 마냥 좋아한다. 이제 이 돈으로 뭘할까? 어렵게 납부해서 받는 연금인데 대책 없이 낭비할 순 없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손주놈이었다. "그래 손주놈 학비는 내가 대야지"하고 적금을 들었다. 한달 한달 들어가는 것이 이제 넉달째 돼가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작은놈 집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이 생각 저생각으로 걷다보니 금새 작은놈 집에 다다랐다.
손주놈이 "할∼아부지"하면서 내 품안으로 뛰어와 안겼다. 이 손주놈이 나이 들어 노후가 될 때는 모든 국민들이 연금 혜택을 받아 안정된 노후를 보장받는 시대가 될 테지."어이구 내 새끼" 자! 선물이다. 장난감을 건네주니 마냥 좋은지 손에서 뗄 줄 모르고 이리보고 저리보고 신기해 한다. 며늘아기는 생활비도 넉넉지 못하실텐데 어떻게 장난감을 사오셨을까? 의아해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나는 자랑스럽게 그 동안 연금에 가입된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떠들어댔다. 그러자 며늘아기가 "죄송해요! 저희가 조금만 신경 써서 대납이라도 해드렸으면 좋았을 텐데...."하며 몸들 바를 몰라했다. 그러면서 선진국에서는 국민연금제도가 이미 시행이 되어 정착되었다면서 우리도 이제서나마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를 이만큼 이나마 경제적으로 일으켜 세운 기성세대가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것이 매우 가슴아팠다고 하며 그때 그분들이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는 만큼 정부에서 늦게나마 이런 정책을 실시하게된 게 퍽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듯 얘기하는 것이다. 며늘아기와 나는 어느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국민연금에 대하여 얘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산업이 점차 발전하면서 핵가족화 돼가고 노인 인구수는 급속도로 늘어 어느새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노인문제는 이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우리사회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충분한 대비를 해오지 못하였고 그나마 노후의 빈곤을 예방하기 위한 소득보장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 국민연금 제도이며, 그 동안 애쓴 결과로 맺은 첫 열매가 나 같은 농어촌 주민들이 연금을 받게됐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앞으로 점차 많은 노인들이 혜택을 받게 될 거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며 어려운 농어촌지역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 국민연금은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이다. 그럴수록 모든 국민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며 며늘아기에게 한바탕 훈수를 늘어놓았다.
손주놈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장남감을 뜯었다. 붙였다 하며 혼자 희희낙낙거리며 놀고 있다. "어이구 내 새끼 그렇게도 좋으냐? 다음에 올 때는 더 좋은 것 사 갖고 오마! 그리고 ."아가야. 아비한테도 연금에 가입하도록 얘기해라"하고 손주놈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를.....
이젠 나도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접고 나의 이웃들에게 때를 놓치지 말고 국민연금에 가입하여 약속된 노후, 풍요로운 노후를 즐기라고 열을 올려 권유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동안 국민연금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을 버리는데, 나는 수급자가 되서야 그걸 깨달았으니 어리석은 소인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많이 보아왔다. 배고파하며 헤매는 노인들, 집이 없어 길거리에 노숙하는 노인들, 양로원에 전전하는 노인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국민연금이 있음으로 희망찬 미래가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