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정의의 사회를 향한 피맺힌 절규!
그대들은 알고 있는가.
그 수많은 날 들을.
사회악과 맞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숨죽여 가며
정의의 불씨를 살리려 했던
나는 이제 꺼져가고 있다.
오직 진실 하나만을 의지하여...
고열에 시달리며
폐에 구멍이 뚫리는 순간에도,
나는 짙은 어둠을 뚫고 뛰고 또 뛰었다.
그들의 보복과 테 러, 회유, 협박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았는데...
나는 또 다시 그들에게 쫓기고 있다.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하나.
그 동안 돈과 정치권의 비호세력에 의해
20여 년간 온 갖 범죄는 은폐돼 왔고 천신만고 끝에
수원지검 이OO 부장 검사님의
고독한 정의의 칼날에 밝혀진 진실이,
사법부의 법봉에 매장되어 그 빛을 잃었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 람들이 현혹되어
피눈물을 뿌려야만 하는가.
아...어떻게 밝혀진 진실인데...이럴수가..
정녕 누구를 위한 법이란 말인가.
과연 우리 사회에 정의는 살아 있는가.
정의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은
법률조문이 아니라 정신인 것을...
사람을 제물로 삼는 행위를
서 슴치 않는 종교빙자 조직범죄와
파렴치한 인간이 하나님으로 가장해
‘종교’ 라는 이름아 래 온갖 감언이설로 혹세무민하며
수많은 국민들의 인권이 짓밟혀도
침묵하며 몸 사리는 이 시대의 종교인과 지식인들,
그리고 이 사회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
이렇게 정의의 촛 불은 결국 꺼져가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이 나라도. 마지막 진실도.
이제 나의 마지막 남은 신음은 그래도 사회적 정의와 진실은 그 어딘가에.....
내과 병동에서.. am 01:20 / 04년 5월 26일
K. W.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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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교 판결 유감>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서울고등법원 형사5 부(재판장 이홍권 부장판사)는 2004년 5월 24일 영생교 신도 살해, 암매장 사건 항소심공판에서 영 생교주 조희성(73) 피고인에게 ‘살인교사’부분에 있어서 무죄를 선고했다. 사형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신도를 살해하도록 지시한 혐의에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고 다 만 범인의 도피은닉죄만 인정해 징역 2년만을 선고했다.
함께 구속돼 재판을 받은 피고인 라경O이 살인죄로 사형을 받았고, 1심에서 사형선고를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피고인 김진O가 원심대로 무기징역을, 라씨의 공범인 정연O이 징역 15년, 조성O가 징역 12년 을 선고 받았다.
법리와 실체의 간극 이 이렇게도 천양지차일 수 있는가. 우리는 이 판결을 보면서 정의가 무너진, 죽은 정의의 사회에 한없는 슬픔과 비애를 느끼며 희망을 잃은 채로 분노마저 낼 기력이 없을 정도로 쇄진해 삶의 의미 조차 유지할 수가 없다.
어떻게 사형과 무죄 라는 극과 극을 오가는 판결이 법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는가? 실체적 진실이 1심 때와 항소심 때 갑자기 변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진실이 하나라면 도대체 어디에 진실이 있는 것인가?
영생교는 어떤 종교인가
승리제단 영생교는 1980년대 초에 박태선 전도관으로부터 이탈해 나오는 신도들을 흡수하면서 커진 교단이다. 전도관 은 1950년대 중반 기독교의 장로이던 박장로가 부흥사로서 유명해지면서 경기도 소사에 ‘신앙촌’ 을 건립하고 전국의 신도들을 모아 그들의 재산과 노동력으로 기업을 일으킨 대표적인 신흥종교다. 한국동란을 치른 폐허 위에서 지친 영혼들에게 ‘천년왕국’건설의 메시지는 구원의 신호로 여겨졌 다. 많은 사람들이 가산을 정리해 ‘영모님’의 구원의 손길을 받으러 소사로 몰려들었다. 소사가 넘치자 2차 신앙촌이 덕소에 지어지고 이어서 3차 신앙촌이 부산의 기장에 만들어졌다. 당시 박장 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반증이다. 박장로가 안수를 한 물이 ‘만병통치’의 생수로 통했으며 신앙촌 기업들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물건들이 신도들이 발품을 파는 ‘소! 비조합’을 통해 전국적으 로 팔려 나가면서 종교는 물론이고 기업으로도 크게 성공하게 되었다. 박장로는 이제 예수를 전도 하는 입장에서 스스로가 신이 되고 싶어 했다. 1980년대 들어 ‘예수는 마귀XX’, ‘성경은 99%가 거짓말’이라는 충격적인 발표를 하면서 스스로 하나님, 이긴 자, 감람나무가 되었다. 이때 부터 ‘예수교 전도관’은 ‘천부교 전도관’으로 명칭이 바뀐다.
영생교를 세운 조희 성은 1970년대에 남대문 시장에서 <공유물산>이라는 상호로 오퍼상을 하다 부도를 내고 도피 중이었는데, 지금의 영생교 본부가 있는 역곡 근처의 밀실이라는 곳에서 추종자 몇 명을 데리고 있 는 홍업비라는 여자의 무리 속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소사 전도관의 부흥을 보고 전도관에 몸담기 도 한다. 드디어 종교사업에 눈을 뜬 조희성은 홍업비를 없애고 그 무리들을 접수하는 한편 박태선 의 ‘예수는 마귀 XX’ 발언 이후 이탈하는 신도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소사 바로 옆 역곡에서. 처음 영생교가 시작될 당시에는 조희성의 사진이 아니라 박태선의 사진을 걸어두었었다. 이후 조희 성은 스스로 박장로에게서 보아 온 방법을 사용해 교주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마귀를 ‘이긴 자’, 하나님이 되어 사람들을 미혹했고 전도관을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왔다! 가 박태선 장로의 기행(소문 으로는 XX안찰 등의 이야기가 퍼지고 있었음)에 실망한 사람들이 영생교에 솔깃한 것은 당연한 일 이었다. 교리도 다듬어지고 정교해졌다. <정감록>을 인용하고 나아가 박장로를 위해 만든 가 짜예언서인 <격암유록>까지 이용해 조희성은 어느 덧 말세의 구세주로 둔갑했다. 박태선의 감람나무도 끌어다 썼고 나아가 사진이 뿌옇게 만들어 ‘이슬성신’이 내린다는 수법도 그대로 베 껴 썼다.
신도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왜 신도들을 죽여야 했는가
전도관에서 ‘종교 사업’을 배운 사람은 조희성 한사람이 아니다. 한때 ‘연탄가스를 마셔도, 독약을 먹어도 죽지 않 는다’고 가르쳐 실제로 일가족이 독약을 먹고 죽은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동방교>의 노광공 , 경기도 가평에서 <에덴성전>의 이OO 등 교리와 예배방법, 설교방식 등이 비슷한 교단들이 박장로 이후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희성을 괴롭힌 강력한 인물은 양해금이라는 자다. 양해금도 조희성과 마찬가지로 전도관 전도사를 역임했다. 처음에는 조희성과 의기투합해 자신의 집에서 신도들을 모아 예배를 시작했던, 영생교 신도번호 1번인 사람이다. 그가 어느 날 독립할 움 직임을 보이자 세를 빨리 불려 번듯한 종교단체의 모습을 갖추고 싶었던 조희성은 회유와 협박을 여러 차례 하다가 결국 그를 없애는 쪽으로 결심했고 그러자니 행동대원들! 이 필요했다. 그때 등장 한 이가 지성O이다. 그는 지역 ‘조폭’들을 대동해 조희성의 목적을 이루어 주었고 그 후 몇 년간 조희성의 총애를 받으며 수족 노릇을 했다. 양해금 이후 실종된 사람들이 양해금과 관련되었던 박 차O 할머니 등이다. 그 후 지성O을 포함한 교단의 핵심간부들마저 실종되는데 그것은 교단의 이러 한 비밀을 알게 된 것이 원인이 되었다. 지성O은 이러한 사실로 거액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 고, 손점O, 이영O, 전영O 등의 간부들도 재단의 총무를 맡았거나 교단 신문의 편집장 등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다. 지성O 이후 조희성의 수족은 이번 재판에서 사형과 무기징역을 받은 라경O, 김진 O, 정연O(징역 15년), 최영O(현재 도피중) 네 사람이다. 물론 이들도 처음엔 종교심에서 나오는 충 성심이 있었겠지만, 가까이서 보는 교주는 ‘하나님’과는 거리가 있지 않을 수 없는 게 아닌가. 폭행과 살인, 종교단체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온갖 추악한 죄악들이 바로 신도 들을 올바르게 지도해야 할 간부들이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지만,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필요로 하듯이 범죄는 또 ? 摸?범죄를 낳는 법. 은폐를 위해서는 입을 막을 수밖 에 없는 것이다. 지? 튟이 살해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조희성은 지성O의 행방을 추적하는 지씨 휘하의 행동대원 정모씨를 김진O에게 살해하라고 지시하고 이번 사건의 테입이 조희성에게 전 달되자, 이번엔 Y씨에게 김진O씨를 살해하라는 증거 인멸을 위한 연쇄살인을 지시했다. 이외 에도 수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여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판사는 수사기록을 제대로 검토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조희성은 정말 몰랐을까?
신흥종교의 특징상 교주는 절대 권력자다. 교주 개인의 신비한 능력을 보고 빠져들게 마련이고 그래서 교주는 하나님 이고 신이다. 모든 일이 교주의 결정 없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설사 교주가 몰랐다 하더라도 94년 초부터 영생교는 신도 실종의혹이 매스컴을 통해 계속 보도되고 있었고 종교연구가인 탁명환 씨의 테러로 영생교는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키지 않았던가. 그런 내용을 교주가 모를 수 있을까? 1995년 에는 용인의 쓰레기 하치장에서 유골이 발굴돼, 또 한번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때도 교주가 몰랐을까? 알았다면 그래서 본인이 정말 아무 관련이 없다면 의혹이 있는 범인들을 공개하고 물의 를 빚은데 대해 종교인답게 사죄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이후 조희성은 어떻게 했는가? 사 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주범인 라경O과 김진O, 정연O 등의 용의자들을 신도! 들의 조직을 이용해 은닉 , 도피시키지 않았는가. 왜? 이들이 잡히면 자기의 죄상이 밝혀질 수밖에 없으니까. 이 부분은 이 번 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되었는데, 왜 1심처럼 ‘넉넉히 추론할 수 있는’ 증거로 받아들여지지 않 은 걸까?
이번 재판을 위해 영생교는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들을 다섯 명이나 고용하고 각각에게 수억 원의 변호사 비용을 들였 다고 영생교인들의 소문이 자자한데, 하나님이 무엇이 두려워 인간세계의 변호사들을 그렇게 많이 고용했다는 말인가.
김진O의 진술번복
어쨌든 이번 무죄판 결의 주요 원인은 1심에서 사형선고의 결정적인 원인제공을 했던 김진O가 2심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는 것인데, 그가 왜 그랬을까? 그는 이미 60세 중반을 넘긴 나이로 오랜 도피생활로 건강도 악화돼 , 마지막으로 가족들을 위해 목돈을 요구하기 위해 시체유기 장소들을 비디오로 촬영했던 것인데, 조희성이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마음을 바꿔 먹고 검찰에 가 자수를 이번 재판이 열리게 된 것 이다. 그런데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이후 조희성의 변호사가 매일 김 씨를 면회했다고 하는데, 무슨 얘기가 오간 지는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몇 천만 원이 건네졌다는 소문이 있다. 몇 억이라 는 설도 들려온다. 어쨌든 그는 ‘조희성에게 지시를 받았고 또 보고도 했다’는 1심에서의 진술을 뒤집고 ‘조희성의 지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라경O의 지시를 받았다’? ?번복해 버렸다. 당시 지성 O이 살해한 김 씨와 라 씨는 일종의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조희성이 누구에게 누구를 죽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 감시하고 피하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김 씨는 라 씨에게서 지시를 받 았다고 진술을 했다. 그 결과로 조희성은 무죄가 되고 라 씨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다.
요약하면 이번 재판 에서 죄를 고스란히 뒤집어 쓴 것은 라경O이다. 그가 혼자 조희성에 대한 충성심에서 저지른 일로 사건이 결론이 났다. 과연 교주 조희성의 지시 없이 10년이 넘게 교인들이 실종되고 살해될 수 있 을까?
피해자들의 분노
이번 판결로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그 동안의 수많은 영생교 피해자들이다. 천인공노할 이 범죄가 밝혀지기까지 숨죽이며 살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영생교 피해자들의 울부짖음과 억울하게 죽어간 고인들의 피맺 힌 한이라도 풀어줘야 하는데 가재만 잡고 고래는 놓친 이번 판결에 사회의 정의는 과연 존재하느 냐고 그 누가 한탄하지 않을 수 있으랴. 더욱 문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종교의 탈 안에 숨어 온갖 비리를 자행하는 ‘종교사업가들’, 사이비 ‘교주’들이 부를 쾌재의 노래다. 무릇 종교는 상식적으로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사회, 건강한 정신을 위해 선행을 가르쳐야 하거늘 말세를 내세워 재산을 앗아가는 그런 단체가 어찌 종교일수 있는가. 살인, 감금, 폭행이 끊이지 않는 곳이 어찌 종교일 수 있는가. 자신은 종교의 자유 운운하며 뒤로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 언이설로 혹세무민하여 가정파탄, 인생파탄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타인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곳이 어찌 종교로 위장될 수 있는가.
지금도 영생교의 자 금줄인 봉제공장은 계속 돌아가고 있다. 18년간 노동의 사각지대에서 청춘을 모두 빼앗긴 채 임금 착취, 정신학대, 노동학대 등으로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150여명의 노동의 현장이 ‘종교’라는 이름아래 신음하고 있다. 대한민국 안에 치외법권지대의 또 다른 나라가 있다는 것인가. 어떻게 이 런 무법천지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실로 이번 재판은 재판관의 양심을 의심하게 한다. 앞으로는 판사 1인의 판단으로 재판하는 제도를 없애고 ‘6인, 9 인의 판사평의회’라도 운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가 그동안 보복이 두려워 말도 꺼내지 못하고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가. 국가가 억울하 게 당하고 억울하게 피해보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힘없고 돈 없는 백성들은 이제 어디서 하소연 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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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람을 죽이는 종교가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영생교는 종교가 아니라 사회악입니 다.
여러분의 참여만이 이 사회의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 습니다.
<죽은 정의의 사회 http://cafe.daum.net/DeadJust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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