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육십에 새롭게 시작하는 일
이윤식/전라남도 나주시 삼영동
나이 육십이 되면 새롭게 만나는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회갑잔치, 아니면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 둘씩 기억해 내는 것들? 나는 나이 육십에 두 가지 일들을 새롭게 만나기 시작했다. 한달 동안 열심히 운전학원을 다녀 자동차 운전 면허증을 처음으로 가졌고, 늘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만 타고 다니다가 정말로 나이 60세에 내가 직접 차를 운전하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안 일요일만 되면 쉬고 있는 아들들을 불러내서 운전기사 시킨 것이 너무 미안했는데 나이 육십에 이 한가지 일을 함으로써 인생은 다시 새롭게 시작된 느낌이었다.
나이 육십에 새롭게 만난 일은 국민연금을 받게 되는 일이었다. 내가 보험료를 내고 때가 되어 연금을 받게 되는 일이 무슨 새로움이 있을까. 하지만 조그마한 사업을 운영하면서 늘 직원들의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 등의 복지만 신경 쓰다 막상 고용주인 내가 그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사실 국민연금제도가 시작될 때 나는 처음에는 부정적인 느낌을 받았었다. 87년도 겨울에 국민연금관리공단 직원이 가입신고 때문에 우리회사를 방문했을 때 나는 국민연금가입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느꼈었다. 거부감을 느낀 첫 번째 이유는 고용주로서 국민연금 납부액의 반을 부담해야 하는 금전적인 문제였고, 두 번째는 국민연금제도가 연금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장기간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마지막으로 우리 회사는 직원들이 10명인 아주 영세한 회사로서 직원들의 이직률이 많은데 과연 이 사람들이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공단직원의 말처럼 국민연금제도가 사회보장제도의 초석이고 근로자들의 안정된 노후를 위해서는 제도가 필요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이런 이유들 때문에 고용주로써 가입신고서를 제출하는데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어쨌든 이런 주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회사도 10인 이상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의무가입신고 대상이 되었기에 국민연금 가입신고를 하였고 매달 일정액의 보험료를 납부하였다.
국민연금에 가입한지 2년쯤 지났을 때 우리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이 암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평소에 위가 좋지않아 고생을 한 직원이었는데 끝내 암으로 판정되어 어린 자녀와 부인을 두고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그 직원이 죽고 난 후 몇 달 뒤에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유족연금 쳥구에 대한 연락이 왔다. 나는 처음에 국민연금 혜택이 나이가 들어 받는 노령연령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가입자가 살만하면 유족연금의 혜택을 받고, 가입자가 가입 도중에 장애를 입으면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공단에서 알려준 대로 가족들이 유족연금을 청구하니까 매달 15만원 정도의 유족연금이 지급되는 것이었다. 연금액은 사망한 직원이 낸 보험료에 비하면 엄청난 액수의 돈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국민연금을 신뢰할 수 있었다. 비로서 국민연금제도가 국민의 노후와 장애 사망에 대해서 일정액의 소득을 보장해 주는 사회보장제도라는 것을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나도 특례노령연금을 받고 있는 연금 수혜자다. 60세가 되던 4년 전부터 연금을 받기 시작해서 매달 말일이면 내 통장으로 한 달에 21만원의 연금이 꼬박꼬박 입금되고 있다. 처음에 연금을 받을 때는 한 달에 18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그 동안 물가 인상율을 반영하여 연금액도 같이 인상되어 지급이 되고 있다. 물론 내가 낸 보험료에 비하면 많은 금액이며 평균수명을 살고 거기에 유족연금으로 승계된다고 가정하면 4천만에서 7천만원에 이르는 많은 액수다.
물론 어려서부터 어렵게 살아 돈을 저축하는 습관으로 그 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노후를 여유있게 보낼 수 있는 약간의 돈도 모아두었기 때문에 연금의 혜택을 받지 않더라도 조금은 안정되게 노후를 보낼 수 도 있다. 그러나 내가 나이 육십에 연금을 지급 받는 일에 대하여 새로움을 느끼는 것은 연금지급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아직도 내가 이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하고 그 제도의 혜택들을 함께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태어나서 시골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고향 친구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물론 그 친구들 중에는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회활동에서 은퇴하여 노년을 보내고 있다.
경제적인 여유가 조금 있어 주말이면 부부기리 가까운 근교로 여행을 다니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지금 육십이 넘은 나이에도 생활이 어려워 공사장 경비원으로 취업한 친구도 있다.물론 생활이 어려운 친구들도 장성한 자녀들이 있지만 그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의지할 만큼 경제적인 여건이 좋은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 친구는 국민연금 제도의 가입 대상이 되지 않아 연금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가끔 그 친구를 만나 소주를 마시며 세상 어려운 이야기를 나눌 때에 그를 안타까워 하기 보다는 참으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느낄 때가 많다
어차피 사는 일이 마지막까지 혼자 가야 되는 것이라면 혼자되는 그 노후에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경제적인 여유를 우리들의 공동체적인 힘으로 만들어 내고 그 힘으로 노후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면 조금은 더 자유롭고 편하게 노후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가끔 87년 국민연금 가입신고를 위하여 우리 회사를 찾아온 그 공단 직원을 생각해 본다. 내가 보기에 그 직원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새로 입사해서 이제 연수를 막 끝낸것 같은 사회 초년생이었다. 국민연금제도에 대해 사회보장에 대해 근로자의 복지에 대해 말하는 그 직원의 말들이 조금은 낯설고 어설퍼 보였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서툴어 보인 그 직원에게서 그래도 진실과 신뢰는 발견할 수 있었기에 나는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신고서를 작성했던 것 같다.
국민연금이 시행된지 14년이 되었다고 한다. 연금을 받는 사람도 70만 명이 넘어섰고 기금도 70조에 이르고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노령 세대가 연금을 받고 생활하는 연금생활시대가 온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70년에서 100년 동안 시행해서 정착된 제도를 14년 만에 완벽하게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노후세대와 젊은 세대, 국민과 국가, 사용자와 근로자가 함께 하는 제도이기에 신뢰를 갖고 연금제를 하나 둘씩 만들어 가면 더욱 발전되는 제도가 될 거라고 믿는다. 국민연금제고가 처음 실시될 때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 작은 신뢰처럼.(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