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부부의 행복한 노후 만들기
글/최가영(자유자재창작실)
부슬부슬, 봄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날에 아름다운 노부부를 만났다. 남편이 우산을 받쳐들고 아내가 그 옆에서 팔짱을 꼭 낀 채로 다정히 길을 걸었다. 늘 그렇게 부부가 붙어 다녀 주위에선 혼자 다닐 양이면 반쪽은 어디 가셨냐고 꼭 안부를 물어온단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사랑을 나누고 있는 김종진(서울 서초구 반포동, 67세), 이춘자(62세) 씨 부부. 눈빛만으로 생각을 알아차리는 부부는 노령연금으로 덕을 쌓으면서 사이 좋게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김종진 씨댁은 25년 된 주공아파트다. 1남3녀의 교육을 우선으로 생각해 위치선정을 했고 아이들 출가시킨 후에는 정이 들어 떠날 수 없었던 집. 아파트 입주할 때 들인 가구들도 요새 유행에 맞춰 새것으로 바꿀 만도 한데 여전히 쓸만하기도 하고 공연한 사치하는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 덕분에 베란다에 새시를 하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새시를 하지 않은 집은 김종진 씨 댁을 포함해 단 두 집뿐. 3년 동안 실험을 하며 결국 성공시킨 넝쿨장미를 비롯해 베란다 내 가득한 여러 꽃나무들은 지나가는 이의 발을 잡을 정도라며 이춘자 씨는 새색시처럼 웃는다. 예전 회사 사택에 살 때는 그녀가 가꾼 정원이 하도 예뻐 드라마 장소로 선정되기도 했다는 귀띔. 그래서 그런지 김종진 씨 댁에서는 은은한 향내가 끊이지 않았다.
은퇴 후 무얼 할거냐고 묻는 이들이 있죠.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아내가 하던 사업도 정리하게 했고 . 도전은 후배들에게 넘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명상과 책 읽기,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동네 일 등을 하고 싶죠. 특히 사회 봉사를 하고 싶어요.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향내가 되어 나타난 걸까? 은퇴 후 휴식한지 이제 2년째. 현재 매월 약 41만원과 15만원의 국민연금을 받고 있는 김종진, 이춘자 씨는 이곳 저곳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기금을 내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언급 없이 덕을 쌓는 것만큼 값진 일은 없다는 그의 말은 가슴을 울렸다.
정년 퇴임을 한참 넘긴 65세까지 다우 케미컬 컴퍼니 기획실에 근무했던 김종진 씨는 이제 후임들에게 물려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퇴사하고 한가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다. 그에게 한가로운 일상이란 새벽 4시 45분쯤에 일어나 늘 듣던 영어방송을 듣고, 잊지 않기 위해 일어 공부를 하고 새로운 영역인 독일어에 손을 뻗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면 이춘자 씨도 그에 보조를 맞추어 아침을 짓고 아들 내외 출근시키고 책을 읽다가 함께 한 시간씩 한강변을 산책한다. 김종진 씨가 회사 다닐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내와 보내는 시간이 조금 더 많아졌다는 것. 그의 아내 사랑은 남다른 것이어서 아내의 옷은 꼭 스스로 코디네이트해 주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30분씩 전신 마사지를 해주고 있다.
가끔 아내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언젠가 다리를 보니 무언가 뭉친 것이 눈에 보이는 거야. 가슴이 아파서 혼났죠.
그 때가 십 년 전. 김종진 씨는 그냥 넘겼던 것이 가슴 아파 아픈 부위를 마사지를 해주기로 결심하고 지금까지 하고 있다. 그 덕분에 다리에 흉하게 돋았던 흔적들은 사라지고 없다. 다리 아픈 것이 사라졌대도 하루의 피로를 푸는 데 마시지 만큼 좋은 것이 없어 계속 하고 있다고. 사랑은 받은 사람이 줄 줄도 안다. 알고 보면 김종진 씨가 정년 퇴임을 넘기고도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춘자 씨의 덕이었다. 직장 생활이 힘에 부치면 언제라도 그만 둘 수 있도록 다른 일을 벌려 관리해온 것이다. 그 든든한 마음 씀씀이로 김종진 씨는 늘 저돌적으로 일할 수 있었고 덕분에 지금도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고. 그는 아내에게 다시 태어나도 사랑하자고 한다. 대신 그 때는 김종진 씨가 아내를, 이춘자 씨가 남편을 했으면 좋겠다고.
너무 다정하고 자상한 분이에요. 국민연금도 남편 덕분에 들었죠. 국가에서 보장해주는 연금이라 꼭 들어야 한다면서 .
소득이 없는 주부의 경우 반드시 국민연금에 가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종진 씨는 아내에게 연금을 들어 나중을 대비하게 했다. 다른 보험보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복지정책이 낫지 않겠느냐는 아내를 위하는 살가운 마음. 김종진 씨는 잦은 외국 출장과 유학 생활로 선진국의 복지가 얼마나 잘 되어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에게 국민연금을 들길 권했다. 그는 선진국의 연금제도와 같은 제도가 정착되려면 국민 하나하나가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금 보험료를 높게 내면 낼수록 나중에 지급받는 금액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며.
이제 와서 생각하면 직장 다닐 때 조금 더 떼서 납입했으면 좋았겠다 싶어요. 그랬으면 지금 더 많이 받았을 거 아녜요? 나는 외국 사람들이 부러워 죽겠어요. 정부가 정책적으로 좀 강하게 해서 젊을 때 일 열심히 했으니 늙어서 보상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해줬으면 해요.
점차 연금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수급자 김종진 씨. 노후에 자녀들에게 의존해 용돈을 받아가며 생활하는 것말고 국가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는 복지정책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할 길이다. 김종진 씨의 지적대로 우리는 지금 그 과도기에 서있다.
절세는 있어도 탈세는 없다 김종진 씨가 아내와 가계를 꾸리며 평생 지켜왔던 말이다. 버는 만큼 세금을 내야하며 그만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김종진 씨는 가끔 지하철을 이용할 때 받는 무임권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역무원이 승차권을 던지며 내주면 조금 불쾌하지만 바쁜 이들이니까 하고 이해한다고. 지금 받고 있는 노령연금도 당연한 것의 일종이다. 그러나 좀 더 양질의 정책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예비 수급자들의 노력이 포함되어야 한다.
젊을 때 열심히 노후 대책 마련하고 노후에는 여유롭게 남들 도우며 사는 생활은 김종진 씨 부부가 꿈꿔왔던 삶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