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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對美카드 `김정일 암살`





■ 「미군이 일본에서 사라진다」



미국 전문가 히다카 요시키(日高義樹)[前 NHK 워싱턴 지국장]





《2004년1월5일 일본에서는 미국의 세계적 군사력 재편과 동북아의 국제정치 지형 변화를 설명하는 「미군이 일본에서 사라진다」는 책이 발간되었다. 이 책에는 김정일 정권을 둘러싼 미·중의 파워게임이 상세하게 들어 있다. 이 저작은 일본의 미국 전문가인 필자가 일본인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우리가 참고할 점이 많아 1장에 주로 서술된 한반도 관련 부분을 발췌해 소개한다. 이 글은 필자가 미국 네오콘을 主취재원으로 삼아 쓴 글이기 때문에 한국의 독자들이 읽기에 용납할 수 없는 부분들이 여러 군데 눈에 띈다. 그러나 이것이 국제사회, 특히 미국 보수 강경파의 인식이라면 냉철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가 결코 우리 뜻대로 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더욱 그렇다. 강대국의 정서와 냉엄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깨달아야 대한민국의 국가 이익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 중국이 김정일을 암살한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全세계에 있는 미군기지를 정비하고 통합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2003년5월13일, 허드슨연구소가 워싱턴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주최한 `더 리틀` 상 수여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의 군사 정세가 변하면 미국의 대응도 변한다. 미군은 지금까지의 중량주체형에서 능률적인 장비조직으로 변한다. 당연히 세계적 기지를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럼즈펠드 장관의 `세계의 군사 정세가 변하면`이라는 말을 극동아시아에 끼워 맞춰 보자. 먼저 김정일의 북한 문제가 해결되면 극동아시아의 정세가 극적으로 바뀌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부시 정권은 김정일 정권을 어떻게든 붕괴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역대 미국 정부를 `가지고 놀았으며`,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핵무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CIA는 2003년8월18일자 의회 보고서에서, 북한이 폭발시험 없이 적어도 2발의 핵폭탄을 만들었다고 했다.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이 있지만 부시 정권이 확실히 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 핵무기 제조 기술이라든가 미사일이나 그 부품 등을 부시 정권이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는 이란·시리아·리비아·파키스탄 등으로 수출하는 나라라는 점이다.



부시 정권은 테러 국가, 테러 조직과 싸움을 표방하고 있다. 대량파괴무기(WMD) 확산이라는 문제에서 보면 북한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로, 미국은 어떠한 수단을 쓰더라도 붕괴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군사적으로 매장하는 것은 간단하다. 부시 정권의 수뇌가 필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북한의 군사력은 아주 약하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깜짝 하는 순간에 궤멸시킬 수 있다."



그런데 간단하지 않은 것이 미국의 군사력 행사에 아시아 국가들이 반대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과 미국이 전쟁하면 파괴적 영향이 아시아 전체에 미치며, 중국의 경제활동이 크게 저해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반격으로 서울이 커다란 피해를 입고, 많은 사상자가 나올 것을 우려한다. 일본 정부는 북한과 미국의 전쟁이 시작되면 재일 조선인들이 소요를 일으켜, 정치적으로 수습하기 어렵게 될 것을 염려한다.



이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극동아시아는 위태로운 균형 위에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일본·중국·한국·러시아, 여기에 북한을 더한 6개국 협의가 시작되었다.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5개국은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그러한 합의가 성립된 것은 정치적으로는 북한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의미한다.





# 김정일 정권 이후를 향해 움직이는 주변국



김정일 정권은 핵무기를 국가 전략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그 핵무기를 6개국 협의에서 북한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부정했다. `갖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이미 끝나 버린 셈이다.



미국·일본·중국·한국이 구체적으로 북한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세부적 지침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합의한 단계에서 주변국들은 이미 김정일 정권 이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역대 미국 정부를 마음대로 `가지고 논` 북한은 마침내 최종 국면을 맞게 되었다. 지금 김정일에게 가능한 것은 갑자기 군사 행동을 일으키는 것 정도다. 북한이 군사적으로 폭발한다면 한국은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다. 일본은 미사일 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 미사일에 독가스가 탑재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김정일의 도발과 김정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지금 북한에 대해 남아 있는 최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의 군사 도발에 대해 미국은 이미 삼엄한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다. 첩보위성 KH11을 비롯한 모든 감시 수단을 동원해 북한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김정일이 폭발할 경우 강력한 보복 태세를 취할 것이다. 김정일 체제는 도발과 동시에 미국의 군사력으로 처리된다.



또 한 가지 문제인 김정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 안에서 지금도 의견이 나뉘고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봉쇄해 나쁜 말로 하자면 거리에서 굶어 죽게 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에 대해서는 6자회담에서 합의를 추구할 것이다. 미국이 지금부터 행할 북한 봉쇄는 중국·한국·일본을 규제하는 것이다. 뒤에서 몰래 북한을 원조하려고 해도 할 수 없게 된다.



또 하나는 물리적으로 김정일을 처리해 버린다는 것이다. 즉, 암살이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CIA 같은 기관이 외국 원수를 암살하는 것을 금지해 왔다. 그러나 부시 정권이 등장해 그 규제를 풀었다. 그렇지만 김정일을 암살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부시 정권에서 군사 정책을 맡고 있는 국방정책위원회 前 의장 리처드 펄 박사가 필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 에이전트가 북한으로 잠입한다고 하더라도 하루 만에 발각되어 버린다. 미국 이외의 나라에 부탁하는 것이 당연하다."



즉, 중국이나 한국에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워싱턴이나 베이징(北京)의 지인에게서 들은 바를 종합하면 중국은 김정일을 말살시키는 것이 간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국은 `최악의 상태가 되면 암살하겠다`는 생각을 이미 미국측에 전했다고 한다. 그 시기에 대해 필자의 친구는 `2006년이 가장 가능한 해`라고 말했다.



"중국은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그 때까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한반도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부시 대통령은 2008년에는 차기 대통령선거가 시작되어 실질적인 힘을 잃게 된다. 2004년은 부시 대통령이 재선하는 해다. 이런 계획을 생각하면, 2006년이 가장 그럴 법한 시기다."



워싱턴에 있는 필자의 지인은 김정일을 암살한다는 구상이 2003년7월28일 미국의 존 볼턴 국무차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측이 들고 나온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베이징에서 중국의 수뇌와 만난 볼턴 국무차관은 중국측이 간단하게 김정일을 암살할 수 있다고 말하자 깜짝 놀랐던 것 같다."





# 중국, "김정일을 암살하겠다"



북한 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에서 북한을 제외한 국제사회는 북핵 개발 저지를 합의했다.



그러나 중국이 그렇게 말하게 된 배경에 미국의 압력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워싱턴에서는 김정일의 핵무기 개발은 중국 정부의 책임이라는 견해가 차츰 강해졌다. 필자가 인터뷰한 미국 정부의 고관과 국제문제 전문가는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핵무장을 시작한 것은 중국이 방임한 결과다. 중국이 주의했더라면 북한이 핵무기 만드는 것을 사전에 그만두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가들이 워싱턴에 늘고 있었는데, 필자가 알고 있는 한 가장 준엄한 강경파는 로런스 이글버거 前 국무장관이다. 그는 미 국무부 사람으로서는 드물게 북한에 대한 매파로, 필자가 있는 허드슨연구소와 가깝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나 그 전임자인 매들린 올브라이트 前 국무장관은 북한에 대해 비둘기파다. 격한 말은 거의 입에 담지 않지만, 이글버거 前 국무장관은 예외다.



"중국은 북한에 막대한 경제 원조를 하고 있다. 그 원조를 중지하면 북한은 핵무기 제조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



이러한 워싱턴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볼턴 국무차관은 베이징을 방문했다. 볼턴 국무차관은 부시 정권이 국무부에 들여보낸 이름난 매파다. 그는 솔직한 말투로도 정평나 있다.



"만일 북한이 핵 개발을 그만두지 않으면 다음은 일본과 대만이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다. 일본은 지금까지 미국이 엄격하게 감시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일본이 핵무기를 갖지 않는다는 보증은 없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면…."



볼턴 차관에게 이렇게 직설적인 말을 들은 중국의 수뇌는 잠깐 숨을 돌린 다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김정일에게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가능하다. 김정일이 중국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 1주일 이내에 암살할 수 있다."



암살이라는 말에 볼턴 국무차관이 깜짝 놀랐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볼턴 국무차관이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필자는 볼턴 차관의 중국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인터뷰 약속을 받았는데, 직전에 국무부 공보관에게 취소당했다. 볼턴 국무차관은 가식 없이 말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중국 방문 수개월 전 인터뷰때도 아주 솔직하게 말해 놀랄 정도였다. 볼턴 차관이 중국측과 주고받은 말을 필자가 화제로 삼는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국무부가 우려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볼턴 차관의 베이징 방문 이래 부시 정권은 그때까지의 외곬으로 나가던 엄격한 정책을 그만두게 되었다. 북한 문제에 대해 낙관적인 대응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 무렵부터 김정일은 모습을 감추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미국의 폭격을 두려워해 모습을 감추었다 등으로 관측한 것 같은데, 중국의 암살 에이전트를 두려워한 것인지도 모른다.



美 국방정책위원회의 펄 前 의장은 암살까지 생각했는지 여부와 별개로 "미국이나 동맹국, 중국 등이 북한에 에이전트를 들여보내 김정일 정권 전복 계획을 진행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이렇게 말했다.



"북한 내에서 反정부주의자의 활동을 도와 국내를 혼란하게 하면 미군이 북한으로 쳐들어갔을 때 북한측의 반격이 어렵게 된다. 미국 정부도, 중국 정부도 먼저 북한 내에서 공작을 시작해야 한다."





# 북한 내부의 反정부 활동



이 같은 에이전트의 행동이 김정일 암살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미국의 정보기관은 2003년10월말 북한 내부에서 反정부 세력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미국 정보 당국자가 밝힌 바에 의하면 북한 내에서는 이미 권력투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김정일이 이따금 모습을 감추는 것은 국내 反정부 분자의 활동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시 정권은 현재는 지상 병력을 북한으로 들여보내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라크전쟁 때 한 것처럼 反정부 세력으로 북한 군대 내부를 혼란시킨다는 모략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한편 중국 정부는 부시 정권이 실제로 김정일과 대결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북한이 핵 개발을 그만두지 않을 경우가 문제다. 부시 정권이 `핵을 가지고 있는 적은 핵으로 공격한다`는 전략으로 북한을 핵공격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중국 정부는 부시 정권의 선제공격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김정일을 경질해 정권을 붕괴시키든가 김정일을 암살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한 움직임이 현실화되면 당연히 김정일도 반격을 고려한다. 앞서 말한 김정일의 군사적 도발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면 아시아 경제는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중국의 경제 개발이 어려워질 것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김정일이 폭발하기 전에 암살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김정일을 암살하려고 결의했을 경우 당장 실행에 옮길 것이다. 그러나 그 결의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 정부로서는 미국에 대한 거래 가운데 김정일이 으뜸 패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과 사이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통화·무역·기술·외교라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미국과 상의할 때 군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약한 중국이 미국에 강하게 나오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북한과 김정일의 문제가 중국으로서는 거래 도구가 된다. 즉, 중국 정부에 북한 문제는 유효한 으뜸 카드인 것이다. 이 으뜸패를 간단히 없애 버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을 두고 미국을 초조하게 만들면서 북한 문제를 처리할 것이다.





# 중국은 2006년까지 북한 문제를 해결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중국은 북한 문제를 2006년까지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간단히 처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증거가 있다. 중국의 공안당국이나 특수부대가 북한에 들어가 김정일을 암살한다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미 북한 내부에는 중국 에이전트가 들어가 김정일의 감시 체제를 뚫고 준비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이 진정으로 마음만 먹으면 김정일과 그 심복은 암살된다. 동시에 미국은 공군력을 사용해 북한의 미사일 기지와 핵개발 시설을 철저히 선제공격한다. 북한군이 김정일 암살의 혼란 상태에 말려들어 군사행동을 일으키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렇게 중국과 부시 정권이 협력해 김정일을 말살하고, 동시에 일어날 군사적 혼란을 미연에 막는다. 한반도와 그 장래는 중국과 부시 정권의 손에 맡겨지게 된다.



특히 중국의 한반도 전체에 대한 영향력은 지금까지와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된다. 미국이 냉전체제가 남겨 놓은 선물로 생각하는 김정일의 북한은, 김정일의 암살과 미군의 집중 폭격으로 산산조각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일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실행될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 극동의 정세는 변한다.



부시 정권은 이라크·이란·북한·시리아·리비아를 `악의 축` 국가로 지명해 비난하며 힘으로 격멸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 때문에 부시 정권은 등장 이래 뉴욕타임스와 진보적 매스컴의 심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 세계평화를 외치는 자유스러운 국제파 사람들로서도 국제사회의 멤버인 특정 국가를 악한 놈이라고 부르며 군사력으로 공격한다는 것은 제정신을 가진 사람의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는 냉전이 끝나면 국경 없는 평화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일본에서도 경박한 경제학자들이 `평화의 배당금`이라고 소란을 부리며 싸움 없는 시대가 갑자기 찾아온 듯한 환상을 흩날렸다. 그렇지만 부시 정권이 악의 축 국가로 지명한 나라는 모두 냉전 체제의 잔재가 살아 남은 나라다. 미국이 새로운 국제사회를 움직여 나가기 위해서는 처분해 버리지 않으면 안 될 나라들이다.



북한은 냉전의 장본인인 스탈린이 만든 나라다. 미국의 역사가가 지적한 바에 의하면 스탈린은 조선 독립의 투사라고 칭할 만한 위인이 아닌 조선인을 김일성이라고 속여 북한으로 들여 보내 북한이라는 국가를 만들어 냈다.



이 해석이 반만 옳다고 해도 북한은 두말 없이 스탈린이 만든 나라다. 그 나라가 냉전이 끝난 지금도 남아 있다. 현재의 이라크·이란·시리아는 냉전이 한창일 당시 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가 만들어낸 석유국가다.



이라크·이란·시리아·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보면 실로 여러 대국에 유린되어 왔다. 먼저 오스만 터키가 중동 전역을 지배했다. 그 뒤에는 대영제국이 들어와 힘을 휘둘렀다. 대영제국의 힘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후퇴하자 앵글로 색슨의 또 다른 대국 미국이 중동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스탈린이 맹렬히 반발해 석유 권리를 노려 KGB를 들여보냈다.



상세한 역사 이야기에 관여할 생각은 없지만, 대충 말하면 악의 축 국가로 지명된 중동의 나라들은 1970년대 이후 소련, 특히 KGB의 힘을 배경으로 미국과 대립한 나라들이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소련이 붕괴된 다음에도 석유의 힘으로 살아남았다. 중동 국가들과 소련, 특히 KGB의 관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면 아프가니스탄에는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해 일어난 反정부주의자에 소련이 침공해 맹렬한 탄압을 가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이 저지른 잔학한 행동은 역사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많은 이슬람 사람들이 살해당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과 싸운 것은 이슬람 무투(武鬪)파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 빈 라덴을 우두머리로 하는 알 카에다 그룹이 있었다. 그들은 소련의 KGB에 이긴 후, 다음 적으로 미국을 선택했다. 리비아의 카다피도 KGB의 협력을 얻어 서방 제국과 싸웠으며 KGB가 없어진 다음에도 동일한 행동을 되풀이했다.



이 정도가 되면 너무나 혼란스러워 적과 우방의 식별도 해괴해진다. 확실하게 말해버린다면 중동 국가 전체가 냉전 체제의 잔재인 것이다. 북한을 위시하여 이라크·이란·시리아·리비아 같은 국가들이 지금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냉전이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미국의 대통령들이 냉전 처리를 중도에 단념했기 때문이다.





# 북한 처리는 냉전 마무리의 일환



독일의 슈미트 前 총리는 미국이 냉전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소련이 국내 질서를 유지할 수 없어 스스로 무너져 버렸다고 말했다. 2003년9월말, 필자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이유로 인터뷰한 슈미트 전 총리는 84세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정했다. 미국과 함께 소련과 냉전을 치른 전 총리도 이라크전쟁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미국을 비판했지만, 중동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에 역사 따위는 없다. 중동 국가 대부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



슈미트 전 총리 표현에 의하면 소련이 자멸해 버린 결과 이라크·이란·시리아·리비아·북한 등이 남게 되었다.



부시 정권은 냉전 체제에서 살아남은 국가들이 이제는 핵무기나 대량파괴무기(WMD)를 만들어 국제사회를 혼란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국가를 처리하면, 냉전 후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성가신 상황을 제거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국제사회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라크·이란·시리아·북한은 스탈린형 국가다. 독재자가 국민을 탄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나라들은 소국(小國)으로, 세계적인 전쟁을 시작할 능력이 없다. 같은 패거리끼리 대립을 일으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리버럴한` 국제파, 곧 미국의 비둘기파라는 사람들은 이 국가들의 흠을 잡지 못했다.



그러나 부시 정권 입장에서는 북한·이라크·이란·시리아 같은 소형 스탈린 국가들은 WMD를 만들어 서로 협력해 사회질서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각종 테러리스트가 일으키는 혼란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스탈린형 작은 나라들을 처리하는 것이야말로 냉전 체제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부시 정권 이란·북한 같은 국가의 대결은 계속되는 것이다.





# 저자소개 : 히다카 요시키(日高義樹)[前 NHK 워싱턴 지국장]



1935년 나고야 출생, 도쿄대 영문과 졸업, 1953년 NHK 입사, 1970년 워싱턴특파원·뉴욕지국장·워싱턴지국장,NHK 엔터프라이즈 아메리카 대표, 하버드대 다우브만센터 자문위원, 허드슨연구소 수석연구원, 미·일 관계의 장래에 관한 조사연구 책임자, 전미국상공회의소 회장 수석고문(現), 저서로 「세계 대변동이 시작되었다」「新부국강병론」 「白人의 광기와 日本」 「미국의 세계전략을 모르는 일본인」외 다수



[月刊中央 2004년3월호]









■ 역사학자가 본 중국 東北工程(동북공정)의 진짜 속셈은?



김정일 정권 붕괴 후, 북한 통치 주도권을 노린 사전 정지작업



이덕일 역사학자





《중국 정부가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왜곡, 편입하려고 함으로써 한·중 양국 간에 외교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중국이 소위 東北工程을 추진하는 속뜻은 무엇일까. 과연 기존 해석처럼 대한민국을 견제하거나 남북 통일 후 만주 중국교포사회의 동요를 막기 위함일까. 東北工程을 통해 중국이 한반도 북부사는 중국사라는 주장을 진정으로 알리고 싶은 대상은 누구일까. 중국의 숨은 의도를 분석했다》





# "중국은 `東北工程`을 한국 보다 미국에 더 알리고 싶어한다"



필자는 지난해 베이징(北京)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중국교포(조선족)를 만났는데, 그는 광밍르바오(光明日報)가 2003년6월26일자에서 ‘고구려는 중국 동북지역에 있던 변방민족 정권’이라는 내용의 글을 대대적으로 실었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광밍르바오라는 신문의 성격 때문이다.



런민르바오(人民日報)가 일반 공산당원을 상대하는 중국공산당 기관지라면 광밍르바오는 지식인 공산당원을 상대하는 공산당 기관지라는 차이가 있는데, 광밍르바오의 논설은 때로 중국공산당이 나아갈 미래에 대한 방향타 구실을 한다. 덩샤오핑(鄧小平) 집권 초기였던 1978년 광밍르바오가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實踐是檢驗眞理的唯一標準)`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 것이 그런 예다.



이 논문은 중국공산당이 개혁 개방으로 갈 것임을 알리는 방향타 구실을 했고, 실제로 중국공산당은 그렇게 갔다. 파룬궁(法輪功)을 가장 먼저 비판한 매체도 광밍르바오인데, 그 직후부터 중국 공안당국은 세계적인 비난을 무릅쓰고 파룬궁 탄압에 나섰다. 이는 광밍르바오에 실린 어떤 글들은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치밀한 계획으로 작성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광밍르바오가 `고구려는 중국 동북지역에 있던 변방민족의 정권`이라는 논문을 게재한 것은 우연도 아니고 `볜중(邊衆)`이라는 필자 개인의 견해도 아니다. `중국 변방에 사는 민중`이라는 뜻의 볜중이 가공인물이라는 점이 더욱 의미심장하다. 중국공산당 기관지에 싣는 역사 관계 논문을 이름 있는 학자가 아닌 가공인물이 썼다는 사실은 이 논문이 특정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중국공산당 지도부 의중에 따라 작성되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 한반도 북부와 한반도 남부



꽤 긴 장문의 광밍르바오 논문 중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대목은 아래 부분이다.



『서기 668년 당나라는 마침내 고씨 고려[고구려]를 통일함으로써, 고씨 고려의 영토는 당나라 안동도호부가 관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고씨 고려가 관할하던 구역에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지방정권인 발해가 들어섰고, 고씨 고려가 관할한 다른 일부분의 지역은 한반도 남부에서 일어난 신라 정권에 귀속되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부분은 여전히 안동도호부가 관할했다.



대부분의 고구려족은 당나라 내지(內地)[중국]로 옮겨져 한족과 융합되었으며 나머지 고구려인은 주위의 각 민족에 융합되었다. 이로써 고구려 왕족은 후계자가 끊겼으니, 고구려는 나라를 세운 지 700여 년 만에 드디어 중국 역사 발전의 긴 강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왕씨 고려가 건국한 것은 고씨 고려가 멸망한 때로부터 250년 후인 서기 918년이었다. 왕씨 고려는 서기 935년 한반도에 있던 신라 정권을 대치하였고 그 이듬해 후백제를 멸망시켜 반도 중남부의 대부분을 통일하였다』



고구려를 이름도 생소한 `고씨 고려`라고 새롭게 작명한 이유는 왕건이 건국한 고려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이 논문은 고구려는 `고씨 고려`, 고려는 `왕씨 고려`라는 생소한 명사를 만들 정도로 둘을 철저하게 분리한다. 고구려는 중국사이고 신라사와 신라를 이은 국가들의 역사만이 현재의 한국사라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고려는 고구려의 후예가 아니라 신라의 후예라는 주장이다.



위의 인용문 중 핵심은 `고씨 고려가 관할한 다른 일부분 지역은 한반도 남부에서 일어난 신라 정권에 귀속되었다.`는 구절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사의 강역(疆域)은 `한반도 남부`가 되고 만다.



한반도를 북부와 남부로 나누어 그 남부만이 한국사의 강역이라고 주장한 것은 볜중이 처음이 아니다. 중국 랴오닝(遼寧)성의 학자 쑨진지(孫進己·1931∼)는 그보다 일찍 고구려사는 중국사라는 현재의 중국측 주장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이다.



그는 1993년8월 옛 고구려 국내성 자리인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에서 열린 `고구려문화 국제학술대회`에서 북한의 박시형과 이 문제를 놓고 다투다 지병인 심장병으로 쓰러졌다는 일화까지 있다.



쑨진지는 1994년 중주고적출판사(中州古籍出版社)에서 펴낸 `동북민족사연구’(東北民族史硏究)1`에서 `고구려가 차지하기 전 한반도 북부는 한족(漢族)의 땅이었고, 한인(韓人)의 거주지가 된 것은 12세기 이후의 일`이라고 주장했다.



`고구려가 차지하기 전 한반도 북부는 한족의 땅`이라는 쑨진지의 주장과 `고씨 고려가 관할한 다른 일부분 지역은 한반도 남부에서 일어난 신라 정권에 귀속되었다`는 볜중의 주장은 완전히 같다. 두 글은 모두 `한반도 북부`를 중국 영토라고 규정짓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반도를 북부와 남부로 나눈다면, 그 기준은 한강이 된다는 점이다. 고구려와 신라의 강역이 아니라 현재 남북한의 강역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고조선과 고구려를 빙자해 한반도 북부를 중국사의 강역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속셈은 광밍르바오에서 고구려사 문제를 `학술화`·`정치화`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대목에 이르면 더욱 분명해진다. 광밍르바오 논문은 고구려사가 중국사라고 장황한 논리를 전개한 후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구려사에 대한 연구를 정상적인 학술연구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주장이다. 우리는 고구려사 연구에서 발견되는 역사 문제를 `현실화하는 것`과, 학술문제를 `정치화하려는` 경향과 작태에 대해 반대한다. 고구려사는 중국 역사는 물론이고 한반도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계속 깊은 연구를 요구하는 과제다.



"고구려사 연구에서 발견되는 역사 문제를 `현실화하는 것`과, 학술문제를 `정치화하려는` 경향과 작태에 대해 반대한다."는 구절처럼 고구려사를 `현실화`·`정치화`하는 언명이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역시 분명한 의도를 갖고 있는 글이다. 중국공산당측의 이런 주장의 허위성은 고조선·고구려사를 비롯한 만주사와 한반도 북부사 전체를 중국사의 범주로 넣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인 이른바 `동북공정`의 조직 체계를 보면 잘 드러난다.



2002년2월28일 정식 발족한 `동북공정`의 정식 이름은 `동북변강 역사와 현상계열 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인데, 우리말로 풀이하면 `중국 동북 변경의 역사와 그에 파생되는 오늘의 현상에 대한 연구`라는 뜻이다. 1999년 `중국 변강지구 역사와 사회연구 운남공작참`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중국변강지구 역사와 사회연구 동북공작참`이 모체다.



2002년2월부터 중국사회과학원과 헤이룽장(黑龍江)성·랴오닝성·지린성 등 동북3성은 동북공작참의 활동 결과를 바탕으로 중앙의 비준을 얻어 동북공정을 정식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동북공정이 과연 중국 정부의 주장이나 우리 정부 일각의 해석처럼 정부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자율조직인지는 `동북공정영도협조기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동북공정영도협조기구는 이른바 동북공정의 방향을 지도하는 상부 기관인데, 그 고문은 중국공산당 정치국원이자 중국사회과학원 원장인 리톄잉(李鐵映)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이자 재정부장인 샹화이청(項懷誠)이다.



동북공정영도협조기구 산하 `영도소조` 조장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이자 중국사회과학원 부원장 왕뤄린(王洛林)이며, 부조장은 헤이룽장성 공산당위원회 부서기 양광훙(楊光洪), 지린성 부성장 취엔저주(全哲洙), 랴오닝성 부성장 자오신량(趙新良) 등이 맡고 있다. 중국공산당 정치국원이 참여하고 동북3성의 부성장급들이 참여하는 정부 조직인 것이다.





# 동북공정은 중국 정부의 전국적 프로젝트



동북공정 조직은 중국에서도 특이한 예다. 중국의 변경지역 역사나 지리 연구를 위한 연구기관은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었다.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변경의 역사와 지리 연구센터`라는 뜻의 이 연구소는 지금까지 중국에서 수행한 거의 모든 변경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러나 유독 동북공정만은 중국공산당 정치국원이 직접 나섰으며, 중국사회과학원의 원장·부원장과 동북3성의 공산당 조직, 행정조직이 총동원되어 수행하는 전국적 프로젝트인 것이다.



중국공산당 중앙 차원의 이런 지원은 중국측이 오히려 고구려사 연구에서 발견되는 역사 문제를 `현실화하는 것`과, 학술문제를 `정치화하려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은 이 문제가 한국과 북한 등 관련 당사자들에 의해 현실화·정치화하는 것을 우려해 `현실화`·`정치화`를 반대했을 뿐 그 자신들은 이미 깊숙이 `현실화`·`정치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왜 이 문제의 `현실화`·`정치화`를 두려워하는지는 광밍르바오 논문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서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구오대사(舊五代史)`와 `신오대사(新五代史)`는 가장 먼저 고씨 고려를 왕씨 고려전에 기록한 책이었다. 그리고 `송사(宋史)`는 왕건이 고씨의 지위를 계승하였다[王建承高氏之位]는 표현을 최초로 사용한 책이다. `구오대사`와 `신오대사` 그리고 `송사`에 등장하는 이 기록은 그 후에 나온 여러 역사서의 기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되었다』



광밍르바오의 주장은 고구려와 고려는 전혀 별개의 나라인데, 역대 중국 사서들이 동일한 계통의 국가로 보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구오대사·신오대사·송사 등의 중국 역사서들은 고려를 고구려의 계승국가로 서술하는 큰 오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광밍르바오의 주장이 얼마나 무리인지는 그런 잘못 된 인식[?]을 가진 역사서가 위의 책들에 그치지 않는 데서 명확해진다.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 송사 `고려전`은 앞부분에서 `신·구오대사`의 기술을 종합하고 이러한 기초 위에 두 역사서의 작자가 명확히 밝히지 않았던 왕씨 고려와 고씨 고려 간의 관계를 왕건이 고씨 고려 왕의 자리를 계승하였다고 함으로써, 고씨 고려와 왕씨 고려가 계승 관계에 있는 것처럼 기술했다. `요사`·`금사`도 원나라 사람 탈탈 등이 편찬한 것이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잘못이 발견된다.



그 후에 나온 역사서들은 이렇게 잘못 된 기술을 답습하였다. `명사(明史)`는 이전에 나온 잘못 된 역사서보다 한 발 더 나갔다. 명사는 명 왕조가 이성계를 조선의 국왕으로 책봉한 것에 대해 합리적인 해석을 하려다 보니 앞의 몇몇 역사서가 저지른 오류를 답습했을 뿐만 아니라, 이씨 조선 정권의 연혁에 대해서도 아주 잘못 된 계통을 세워주었다』



구오대사·신오대사·송사 뿐만 아니라 요사·금사도 잘못 기록했으며, 심지어 명사는 `이전에 나온 잘못된 역사서보다 한 발 더 나가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명사의 오류에 대해 볜중의 견해는 분명하다.





# 현실의 권력으로 과거 역사를 재단하는 중국



『즉 명사는 `기자조선-위씨조선(위만조선)-한사군-고구려-동사복국(東徙復國)-왕씨 고려-이성계가 국호를 바꾸기 전의 고려-이씨 조선`이라는 계통을 세워 줌으로써, 중국 역사에 속하는 기자조선과 위씨조선·한사군·고구려를 모두 조선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이렇게 중국 역사서의 기술에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다방면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전란으로 문헌이 유실된 데다 왕씨 고려에 대한 오도(誤導)가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볼 수 있겠다』



여기에서 `동사복국`은 나당연합군에 패망한 고구려의 후예들이 동쪽으로 옮겨가 세웠다는 나라로서 발해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광밍르바오는 `기자조선-위씨조선(위만조선)­한사군­고구려­동사복국`은 모두 중국사인데 중국 사서들이 잘못 기록했다는 것이다.



『중국 사서들이 명백한 오류를 범함으로써 중국의 고대 변방 민족이 사용하던 `고려[고구려]`라는 명칭을 삼한(三韓) 신라의 계승자인 왕씨 정권[고려]이 도용하게 되었고, 한 발 더 나아가 왕씨 정권의 계승자인 이조(李朝)는 기자조선이 쓰던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을 또 도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중국 고대 동북 지역에 있었던 변방정권의 연혁을 이해하는 데 많은 혼란과 잘못된 견해를 갖게 되었다』



중국공산당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전개하는 동북공정의 논리는 광밍르바오에서 잘못 기술했다는 중국의 옛 사서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중국 사서들이 명백한 오류를 범함으로써`라고 흥분하는 대목에서 이미 논리적 파탄을 맞았다. 구오대사·신오대사·송사·요사·금사·명사가 모조리 고구려사를 잘못 기술하고 있다면 그것은 과연 이 모든 중국 역사서들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중국 역사서들이 잘못되었다는 광밍르바오의 인식이 잘못 된 것일까.



그 답은 자명하다. `현재 중국 영토 안에서 과거에 벌어진 모든 역사는 중국 역사` 라는 현재 중국공산당의 역사 인식은 현실의 권력으로 과거를 재단하려는 후세인(後世人)의 월권이자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산일 뿐이다.





# 북한 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생각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필자는 이 시점에서 앞에서 인용한 광밍르바오의 `고씨 고려가 관할한 다른 일부분 지역은 한반도 남부에서 일어난 신라 정권에 귀속되었다.`는 부분과 쑨진지의 `고구려가 차지하기 전의 한반도 북부는 한족의 땅이었고, 한인의 거주지가 된 것은 12세기 이후의 일`이라는 대목을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이 두 기술은 모두 고조선·고구려사를 빙자해 현재의 북한 영토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동북공정의 취지문은 중국이 중앙 차원에서 왜 이런 사업을 전개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특별히 근 10여 년 이래로 동북아의 정치·경제의 지위가 날로 상승함에 따라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뜨거운 지역이 되었는데, 아국(我國)[중국] 동북의 변경지구는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하여 극히 중요한 전략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런 형세 아래 일부 국가의 연구기구와 학자들이 역사 관계 등의 연구에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고, 소수 정치인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여러 가지 잘못된 주장을 공공연히 펼치면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리하여 동북변경의 역사와 현상 연구가 많은 도전에 직면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아울러 이 방면의 학술연구에 새로운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고구려사의 `현실화`·`정치화`에는 반대하는 중국공산당이 동북공정의 취지문에서는 그 연구 목적이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동북아의 `현실화`와 그 `정치화`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근 10여 년 이래로 동북아의 정치와 경제` 문제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중국의 급격한 경제발전을 뜻하는 것일 수 있지만 그보다 북한 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동북아에서 북한만큼 큰 변화를 겪은 나라는 없다. 냉전체제의 종식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가 북한이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국가 자체의 존립이 위협받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서 외부적으로는 미국과 핵을 매개로 대립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지미 카터 前 美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베이징 6자회담이 난관에 봉착하자 美 유력 전국지 USA투데이 2003년9월2일자 기고를 통해 `우리는 잠재적으로 궤멸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제2의 한국전이 발발할 수 있는 높은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면서 6자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대화를 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6자회담을 성사시켰던 중국인데, 중국의 영향력 또한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연합뉴스 2003년12월30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센터의 알렉산드르 만수로프 박사는 `아시아 국가들의 중국에 관한 논의`라는 제목의 특별보고서에서 `북한 지도층은 중국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고, 특히 김정일 스스로 중국의 잔소리를 듣는 것을 싫어하고 간섭을 거부하기 때문에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前 주중대사였던 정종욱(鄭鍾旭) 아주대 교수는 지난해 8월의 6자회담을 평가하면서 중국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중국 지도부의 핵심 주역들이 미국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국제사회의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식으로 자세를 바꾸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도 북핵 문제를 더 이상 중국에 부담으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 이상주의와 사대주의



중국으로서는 지금과 같은 경제 고속성장의 중요한 배경인 미국과의 협력이 북핵 문제 때문에 깨지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나아가 미국이 이라크처럼 북한을 공격해 군사적으로 점령하는 상황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한반도 북부는 중국사라는 내용의 대규모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과연 기존 해석처럼 대한민국을 견제하거나 남북통일 후 만주 중국교포사회의 동요를 막기 위함일까. 동북공정을 통해 한반도 북부사는 중국사라는 주장을 진정으로 알리고 싶은 대상은 한국이나 만주의 교포들이 아니라 미국 아닐까. 중국의 전통적인 외교정책, 즉 `먼 곳과는 교제하고 가까운 곳은 공격하는` `원교근공(遠交近攻)` 전략과 동북공정은 무관한 것일까.



세계적 베스트 셀러 `문명의 충돌`을 썼던 美 하버드대의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만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해져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상황이라면 한국은 어느 편에 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자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결국 중국 아니겠습니까"라고 답변했다[중앙일보 2003년7월10일자].



이것이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라면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공중에 떠버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월간중앙 2003년9월호에 실린 前 NHK 워싱턴지국장 히다카 요시키(日高義樹)가 `김정일 제거 후, 미국의 북한 통치계획`이라는 글에서 `한국 배제, 美·러·中이 공동관리`라는 주장은 음미할 만하다.



허드슨연구소 수석연구원을 역임한 미국문제 전문가인 히다카 요시키의 분석은 그 실행 가능성은 차치(且置)하고라도 북한의 지위에 변화가 생긴다면 `당연히 남북통일로 귀결될 것`이라는 국내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의 구상에 대해 중국은 `美·러·中 공동관리’가 아니라 `중국 단독관리`를 주장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하나로 `동북공정`을 진행하는 것은 아닐까.



중국이 미국의 묵인 아래 김정일 정권을 제거하고 북한내 친중 군부세력 등을 파트너로 삼아 사실상 북한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실행할 가능성은 전무(全無)한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0년 전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김옥균·박영효 등은 일본이 한국 영토에 야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그런 순진한 이상주의가 120년 후 또 다시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사실상 정부차원에서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정부가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거나 외교통상부의 실무국장이 "[중국의] 소장 역사학자들이 변방사를 정리하려는 프로젝트를 중국 정부에 제출했고 당국이 이를 승인한 것"이라거나, "동북공정의 학자들이 중국 정부 정책의 통제 하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발언[서울신문 2004년1월12일자]을 하는 상황이라면 이미 이상주의를 넘어 사대주의로 진입한 것은 아닌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月刊中央 2004년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