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시대 닫힌 마음, 어떻게 열어야 하나
용태영 (KBS 기자)
국민연금이 불신에 놓여 있다. 사람마다 국민연금을 못 믿겠다고 한다. 여론을 선도하는 언론마저 나서서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에 앞장서고 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국민연금을 잘 알고 있는 전문 교수들의 글마저 언론에 나올 때는 국민연금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지적한다. 이러니 불신이 쌓일 수밖에 없다. 연금을 잘 내지 않는 가입자들은 앞으로 더더욱 연금을 안 낼 지도 모른다. 연금제도가 붕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연금도 재신임 투표 같은 방법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국민연금제도 개선방안이 발표됐다. 연금부담은 늘리고 급여는 줄이는 방안이다. 현재 월소득의 9%인 연금 납부금을 15% 수준으로 인상하고 또 연금 지급액을 소득의 60% 수준에서 5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이다.
언론에도 크게 보도된 바 있다. 제목은 대부분 '국민연금 더 내고 덜 받는다'다. 맞는 제목이다. 그러나 이런 제목 역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마치 국민연금을 내는 국민들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인식을 심어준다. 더구나 사설과 칼럼에서는 국민연금의 문제점과 비판적인 글만 자꾸 써대고 있다. 공무원 연금과 국민연금을 비교해서 국민연금이 잘못됐다는 주장의 기사도 나왔다. 자신이 낸 돈보다 돌려 받는 돈이 더 적다는 글도 있다. 직장가입자만 봉이라는 주장도 실렸다. 국민연금 최저생계비에 못 미친다고 비판하는 글도 있다.
언론마다 비판에 앞장서니 국민은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불신을 조장해 놓고서 일부 신문들은 또 사설에서 '국민연금, 불신부터 없애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민연금은 실제로 간단한 제도이다. 젊어서 일할 때 돈을 모았다가 나이가 들었을 때 돌려 받는 제도이다. 단지 연금공단이라는 공적기관이 1)돈을 걷고 2)관리해서 이자를 붙이고 3)나이 들었을 때 다시 돌려주는 수고를 대신 해 줄뿐이다. 이런 과정의 수고비 상당부분을 국가가 세금으로 지원해 준다. 개인연금과 비교할 경우 수익률은 당연히 국민연금이 높을 수밖에 없다. 또 국가가 나서서 운영하기 때문에 떼일 염려도 없다. 수많은 선진국들이 노후보장을 위해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간단하다. 현재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낸 돈보다 훨씬 많은 받도록 돼 있다. 결국 2047년쯤에 기금이 바닥난다. 이 때문에 언론들이 국민연금을 비판해 왔다. 연금재정이 고갈된다고 위기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나온 것이 연금 개정안이다. 납부액을 인상하고 대신 연금 지급액을 낮추는 방안이다. 그런데 이렇게 막상 고치자고 하니 이제는 또 언론들이 더 내고 덜 받는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럼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필자 역시 언론에 몸을 담고 있지만 때로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 국민연금에도 공짜는 없다. 국민이 젊었을 때 낸 만큼 나중에 돌려 받는다. 다만 다소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어 저소득층이 더 많이 받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더 내고 덜 받는다라는 식으로 국민연금을 비판하는 글을 보면 국가가 공짜로 국민에게 뭔가 줘야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국가의 돈도 다 국민이 낸 세금이다.
언론이 국민연금에 대해 국민을 이해시키기보다는 그저 비판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니 불신이 쌓일 수밖에 없다. 모든 정책마다 이런 식으로 언론이 보도한다면 국가정책 수행이 참 어렵겠다는 생각을 한다.
국민연금 대상자 가운데 실제로 이런저런 이유로 돈을 내지 않는 사람이 8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숫자가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생각될 지도 모른다. 사실 800만 명이 연금을 안 낸다고 해서 국민연금제도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연금을 낸 사람들만 낸 만큼 받는 제도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래다. 노인인구는 갈수록 늘어난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도 남녀 모두 80세 이상으로 늘어난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결국 연금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의 빈곤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부담이 될 것이다. 굶주리고 헐벗은 노인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면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효의 기능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노인의 생계를 자녀가 아닌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시대이다. 때문에 이렇게 미래에 예견되는 노인빈곤 문제를 미리 막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연금을 취재할 때 만난 사람마다 모두 국민연금에 대해 막연한 불신을 갖고 있었다. 못 받는 거 아니에요? 라고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언론에서 그러더라고 한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그래도 미심쩍어 한다. 국민연금제도 뿐 만 아니라 정부정책에 자체에 대한 불신도 깊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못 믿겠다는 식이다. 따지고 보면 간단한 제도인데도 믿지를 못한다. 사적인 개인연금보다 유리하다고 해도 못 믿는다. 불신이 쌓이고 쌓여 결국 제도 자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긴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연금기금도 100조가 넘었다. 국민연금에 대한 언론의 수많은 재정고갈 보도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살아 남았다. 근본적으로 미래 고령사회를 대처할 방법은 어떤 식으로든 국민연금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는 2008년이면 88년부터 가입해 20년 동안 연금을 냈던 사람이 연금을 받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는 국민들의 연금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직접 자기 주변에서 연금을 받는 사람과 받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의료보험 제도도 초창기에는 불신이 컸다. 그러나 막상 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 값싸게 병원을 이용하는 것을 국민들이 보게 되자 저마다 의료보험에 가입하겠다고 나서게 됐다. 국민연금은 의료보험에 비해 그 효과가 최소 20년이 지나야 나타나는 제도이다. 지금의 불신도 그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에서는 신뢰로 변할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