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국가 백년지대계
신성식(중앙일보 정책기획부 기자)
"여보! 국민연금이 또 올랐네. 이래도 되는 거야. 몇 년 사이에 보험료가 두 배가 됐어"
몇 달 전 출근길에 아내가 불평을 늘어 놨다. 아내의 말의 핵심은 '또'라는 표현이었다. 지난 99년 4월 국민연금을 도시지역 자영업자에게까지 확대할 때 가입했으니까 몇 년 째 보험료가 계속 올랐다. 보험료율도 매년 1% 포인트 올랐고 소득 과표도 올랐을 것이다. 그런 불만이 '또'라는 말에 묻어 있었다.
남편인 필자가 보건복지부를 출입하며 국민연금을 취급한 지 4년이 돼 가는데 그 가족이 보험료에 대한 불만을 표한다는 게 아이러니 하다. 아내에게 "보험료를 많이 내면 낼수록 이익이니 불만을 갖지 말고 보험료나 꼬박꼬박 내라"고 타이르고 출근을 서둘렀다.
아내는 아무리 바빠도 남편이 쓴 기사는 항상 읽는다. 기사를 보고 미흡한 점을 지적할 때도 있다. 나의 충직한 옴부즈맨이다. 지난 3월 5일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중앙일보에 '국민연금 대해부'라는 제목의 기사를 연재한 적이 있다. 아내는 그 기사도 읽었을 것이다.
당시 그 기사는 "국민연금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에 비해 노후에 받는 돈이 너무 많다"는 게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그래서 "보험료를 더 내거나 연금액을 줄여야 연금재정 불안이 줄어든다"고 연금개혁을 촉구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불만을 표한 것이다. 우리 연금의 현 주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연금을 잘 안다는 사람의 가족마저도 불만이 있는데 일반 가입자들은 오죽할까라는 생각에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국민연금을 포장해도 일반 국민들은 믿지 않는다. 속된 말로 속이 비칠 정도 국민연금의 실상을 다 보여주더라도 마찬가지다. 정부나 국민연금관리공단 입장에서는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일 것이다.
'현행 제도를 고치지 않고 내버려두면 2047년에 재정이 고갈돼 우리 후손들이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는 전형적인 논리는 일단 접어두자. 그건 너무 어렵고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일반인들이 못 믿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의 문화에서 찾아보자. 우리의 뿌리는 농경사회이다. 늙어서 노동력만 있으면 농사를 짓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자식농사가 바로 노후대책이었다. 자식만 잘 키우면 다 알아서 부모를 봉양하는 데 굳이 따로 모아둘 필요가 없었다.
이런 문화적 전통이 2000년 간 지속됐다. 국민연금은 이제 열 다섯 살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이제 중학교 2학년쯤 됐을까. 2000년에 비해 15년은 상대가 안 된다. 그러나 이제는 농경사회가 아니라 정보화로 접어든 지 한 참 됐다. 시대의 변화도 빠르듯이 국민들의 인식도 빨리 변할 것이다. 국민연금 입장에서 안도할 수 있는 점이다.
"당신과 내가 가진 게 뭐가 있느냐. 고작 아파트 한 채 밖에 없다. 믿을 데는 국민연금 밖에 없다. 당신과 나의 연금에다 개인연금을 합하면 그럭저럭 괜찮은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우리 아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 아내를 설득한 논리는 별 게 아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사회적 환경의 변화도 국민연금에게는 호의적이다. 실질적인 이자 마이너스 시대에서 노후용 저축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간 정산이다 뭐다 해서 퇴직금도 보장이 잘 안 된다. 평균 수명이 해마다 늘어 80세를 바라보고 있다.
이것저것 따지지만 결론은 국민연금이다. 선진국을 보더라도 결론은 마찬가지다. 다행히 가입자 입장에서는 지금 제도가 매우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 어떤 상품보다 유리하다. 보험료를 더 내는 게 유리하다. 아내에게 그럴 여건이 되면 돈을 더 내라고 권고한다.
일반인들의 연금에 대한 대표적인 불신이 돈을 못 받게 된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예를 보면 오해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선진국 중 연금재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연금을 지급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연금을 주지 못하게 되면 아마 '국가 부도'에 가까운 공황이 발생할 것이다.
국민연금을 시작한 지난 88년 이후 연금제도는 군사정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를 거쳐 지금은 참여정부에 와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변함이 없다. 정부를 못 믿는다하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연금은 국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이지, 정부 백년지대계는 아닐 것이다.
기업은 생물이다. 흥망성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개인연금을 더 믿고 국민연금을 덜 믿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정부에 대한 불신은 있을 수 있으나 그걸 국가로 연결해서는 곤란하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2000년 동안 존재해왔다. 참여정부든, 문민정부든 간에 정부는 길어봤자 5년이다. 회사채는 그 회사가 망하면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지만 국가가 발행한 국채는 그렇지 않다. 가장 안전한 채권이다. 국민연금은 정부채가 아니라 국채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국민연금을 들어야하나 말아야하나, 또는 보험료가 너무 많지 않은가 등의 의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보험료를 연체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연금공단 지사로 달려가자. 납부유예자라면 당장 보험료를 내자.
빠듯한 살림에 무슨 얼어죽을 국민연금이냐고 할 지 모른다. 지금 당장 배가 고파 빵이 필요한 마당에 30년 40년 후가 무슨 소용이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젊기 때문에 한 끼 굶어도 버틸 수 있지만 노인이 돼서 굶주린다고 가정해보자.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다른 데 돈을 다 쓰고 남으면 보험료를 낸다? 절대 아니다. 국민연금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가장 먼저 연금보험료를 떼 놓고 장을 봐야한다.
최근 복지부와 연금공단은 연금제도를 바꾸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연금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내놨다. 보험료를 더 내고 노후에 받는 연금을 좀 줄이자는 게 핵심이다. 쉽게 생각하자. 가입자 개개인의 살림살이를 놓고 생각해보자. 벌이는 월 2백만원이다. 지금은 애가 어리기 때문에 살림을 꾸리는 데 지장이 없다. 하지만 몇 년 후 애가 자라 학원비에다, 학습지비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2백만원으로는 살림이 거덜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나? 미리 대비해야한다. 교육보험을 들든지, 아니면 더 열심히 일해 수입을 늘리든지, 지출을 줄여 돈을 비축하든지 등의 대책을 세워야한다.
국민연금 개혁도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이대로 두면 망할 게 뻔한데 일각에서는 손을 대지 말자고 한다. 알면서도 내버려두는 것은 직무유기다. 어찌 보면 범죄일 수도 있다. 그것도 현 정부나 연금공단만의 범죄가 아니라 국민전체에게 돌아간다. 자기 책임을 후손들에게 떠밀고 있으니 말이다. 그 때 가서 누구를 탓하겠는가. 이번에 개혁안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역사에는 우리 모두가 공범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