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들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참으로 아픈 마음으로 이글을 올립니다.
저희 장애우들에게 "햇살"이 가득하도록 도와 주십시요!!!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부모가 있는 장애우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장애우들을 자녀로 둔 부모님들의 가슴 저미는 사연입니다.
장애우들을 둔 아픔보다는 그들과 함께 살수 없는 아픔들을 사회의 도움없는 사각지대에서
홀로 소리없이 감내하며 사는 분들의 아픔들입니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경우라해도
장애우를 자녀 또는 형제로 둔 가족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는 고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함께 살려고 노력했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농약을 사두고 다함께 자살을 결심했던
장애우 가정의 아픔이 있습니다. 이러한 아픔은 부모가 있는 자녀들을 받아줄 만한 사회적 제반시설이 취약한 데에서 비롯됩니다. (사회복지법인 시설에는 부모있는 장애우들을 받을 수 없는 실정임)
그렇기에 어렵사리 마련한 수천만원대의 보증금을 들고 "장애인 복지법"에 의한 시설 기준을
갖추지못한 "조건부 인가장애시설"이나 "미인가 장애시설"을 찾아 자녀들을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것도 보증금만으로 끝나지않고 매월 50만원에서 많게는 70만원까지 월정금을
내야하는 속에서 가끔씩 시설 원장으로부터 무리한 돈 요구를 받아도 행여 자녀를 데려가라고
할까봐 거절치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뜯기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제 이야기 하고자하는 "햇빛동산"도 그런 시설 중 하나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에 있었던 "조건부인가 장애인 생활시설"입니다.
장애우들은 40명이고 선생님은 6분, 주방에 아주머니 1분이 있습니다.
[장애우 대부분(90%이상)은 부모님이 있으며 자녀를 맡길 때 보증금으로 수천만원을 내었으며 월정금으로 수십만원씩을 내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hetvit.com 을 참조해 주세요)
햇빛동산은 1989년 혹은 1990년 홀트에서 나온 8명의 원생으로 출발했습니다.
지금 여자 원장이 홀트의 기숙사 사감으로 있던 시절, 홀트의 규정상 나이가 많아 더 이상
홀트에 남을 수 없었던 8명의 원생을 맡아보겠냐는 제안을 받고 시작되었답니다.
8명 장애우들의 부모들은 어렵게 자신들의 돈을 모아 햇빛동산 건물을 짓고 공동기금을
마련하여 두 원장부부에게 자녀들을 맡겼습니다. (여자원장이 지금의 남자 원장을 만나
결혼(재혼)하고 햇빛동산은 두 부부 원장의 손에 의해 지금까지 운영되어 왔음)
그러나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 공동자금도 써 버리고 남자 원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여러 사업을 벌였고 거듭되는 실패로 많은 빚이 생겼다고 합니다.
더욱이 여자원장 역시 아이들을 생활지도 선생님들께만 맡기고 자신은 아예 장애우들과 떨어져 살면서 돈벌이에만 급급하였습니다.
많은 빚으로 인하여 생긴 막대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웠던지 닥치는대로 장사를 하였습니다.
된장, 간장 , 김치를 비롯한 각종 반찬류 등의 판매(우리 아이들은 먹어 보지도 못했던)하고,
나아가서는 피라미드 판매회사와 연결하여
학부모는 물론 선생님들의 주민등록번호로 허락도 없이 마구 명의도용을 하기도 했습니다.
보기도 민망한 것은 유기농으로 만들었다는 반찬류들이 실제로는 외부에서 사다가 그 위에 살짝
양념을 얹어 파는 것은 예사이며 때로 상한 음식류도 다시 기름에 튀겨 양념을 해 판적도 있었습니다. 학부모들에게 온갖 명목을 붙여 돈을 타내거나 얻어쓰고는 갚지 않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그럼에도 햇빛동산의 장애우들이 모두 부모가 없는 고아인 양 속이고 여러 곳으로부터 후원을 받았으며, 공영방송에까지 출연(MBC "칭찬합시다)하여 자신들이 오갈데 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천사인 양 꾸미기도 했습니다.
그 많은 후원을 받고도 상황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햇빛동산의 원장 부부는 경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아이들의 먹는 음식에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나아가서는 먹어서는 안되는 유효기간을 훨씬 넘긴
"푸드 뱅크"의 음식들을 당연한 듯 먹여왔습니다.
선생님들의 거센 항의는 햇빛동산에서 쫗겨나는 것으로 매듭지어지곤 했습니다.
곰팡이가 핀 빵, 상한 계란, 너무 오래 냉동되어 기한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냄새나는 고기등...
유효기간이 1-2년씩 지난 과자는 복지관 다니는 아이들의 간식으로 보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도 여러차례였습니다.
모양이 딱 눈에 띠는 유효기간 지난 간식은 선생님들이 먹이지 않을 수 있었지만 주방에서 조리 되어 나오는 음식들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같은 음식을 먹고도 선생님은 식중독에 걸려도 아이들은 멀쩡한 경우였습니다.
새로 오신 주방아주머니는 "내가 죄를 짓는 것 같아... 음식의 간을 보지 못하고 먹으라고 내 놓으니 말이야"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보다 못한 선생님들은 주방 아주머니와 함께 상한 음식을
빼돌린 후 적은 월급을 쪼개어 아이들의 반찬을 사온 적도 부지기수입니다.
행여 빼돌린 음식이 발각되면 그 음식들을 주~욱 늘어 놓고 선생님들을 면박을 심하게 주면서
스스로 먹어보이는 원장을 볼라치면 더 이상 어떤 말이 가능하겠습니까?
먹는 문제도 심각했지만, 아이들이 정기적으로 진료 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처방약을 먹지 못하는 현실은 더욱 안타까왔습니다.
함께 살지 않으므로 아이들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여자원장(부부를 모두 원장님으로 불렀음)은
병원으로 약을 지으러 갈 때마다 자기 마음대로 아이들의 상태를 꾸며대어 약이 제멋대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변비가 없는 장애우가 변비 약을 먹는 경우는 그래도 봐 줄만 했지만 그 독한 정신과 약과 간질약을 제대로 진료 받지 못하고 먹는 경우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약을 지으러 갈 때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증상을 적어 보내기도 했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동반을 요구하기도하고 선생님이 대신 가는 것을 요청했지만 말로만 알겠다고 할 뿐 여전히 맡기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수 밖에 없었는지 나중에 안일이지만 약 값을 부풀려서 학부모들에게 받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먹어야할 약은 먹지 못하고 먹지 않아도 되는 약을 먹는 현실...
여자 원장이 하도 바빠서 우연히 약을 받으러 병원에 간 적이 있을 때 의사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아무리 후원을 받는다하여도 그 약 값을 어떻게 충당하는지.... 정말 원장님이 존경스럽군요."
어떤 내막도 모르는 그 의사 분께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네~에" 뿐.
장애우들의 명의를 도용하여 고급 승용차를 뽑거나 후원을 받으려고 모두가 부모 없는 장애우들로 소개하는 일은 그렇다쳐도 신용카드(백화점 카드 포함)까지 발급 받아 마음대로 쓰고 갚지 않아서 대환대출로 돌아가고 그마저 갚지 않아 신용불량자를 만들고....
저희는 정말 이 모든 일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그렇다고 생각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파주LG필립스LCD산업단지"에 햇빛동산이 포함되어 이주 비용으로 "14억원"이라는 보상을 받은 이 후에도 음식이나 약 ... 심지어는 카드 빚마저 갚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더 이상의 어떤 기대도 할 수 없음을 보았습니다.
14억원의 보상을 2003년 11월 말에서 2004년 1월 초 사이에 받았음에도 학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 후원자들에게는 받지 않았다고 속이고(2004년 2월 6일 학부모 총회에서는 보상금액을 더 받으려고 행정소송 에 있다고 속였음) 소송 중에 있다고 하면서 아이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선생님들이 이 내용을 은밀하게 알아보기 시작했던 1월에는 이미 14억원 중 7억원이 빚을 갚는다고 지출된 상태였고 집을 지을 땅을 구입하려는 어떠한 기미도 보이지 않았기에 두원장이 달아나려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고심하다가 학부모님들이 이 사실을 알아야한다고 결론 짓고 학부모님들께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학부모님들께서 아시게되고 압력을 넣자 두 원장은 서둘러 땅을 구입하고 4월1일에야 구입한 땅의 건축을 위한"산지전용허가신청서"를 파주시청에 접수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구입한 땅은 도로가 없는 땅인데다가, 동네 주민의 반대로 건축허가조차 얻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구입한 땅은 이미 많은 빚으로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고 땅의 일부는 소유권 조차 명의가 두원장에게로 넘어오지 않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남자 원장은 4월16일 총무로 있던 선생님을 저녁 9시 30분에 불러내어 야구방망이(알루미늄 배트)로 폭행을 가했습니다. (아침부터 야구 방망이를 찾았답니다)
폭행 후에 한 학부모님께 전화를 하여 "죽이려고 했는데 죽이지 못했다. 이제 나는 살인미수로 붙잡힐터이니 자살하겠다"고 했습니다. 유품이라고 하면서 물건도 소포로 보내왔다고 합니다. 남자 원장은 그 길로 도주하여 지금껏 나타나지 않고 있고 물론 자살은 하지 않았습니다.
유유히 컴퓨터 학원에 다니고 있답니다.(믿을만한 분으로부터의 소식임)
여자 원장은 학부모로부터 장애우들을 맡길 때 햇빛동산에 맡긴 보증금의 반환을 요구 받고도
돈이 없다거나 빌려 주었는데 받지 못했다는 핑계를 댈 뿐 전혀 돈을 내 놓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14억원이 불과 3-4개월만에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장애우들을 맡길 때 내는 보증금은 장애우들의 학부모님께는 피와 같은 돈입니다. 원래 보증금은 장애우들을 학부모님이 데려갈 때에는 돌려 주어야하는 전세금과도 같은 것입니다. (보증금은 한명의 장애우마다 수천만원대입니다.)
돈이 없다는 이들이 남자원장의 폭행 고소를 풀려고 폭행을 가한 선생님께는 많은 돈을 보상금을 준다고 하면서 고소 취하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선생님은 학부모님들의 보증금을 돌려 줄 것을 요구하고 그렇게 하면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답했지만 두 원장은 아무런 응답도 주지 않고 오히려 폭행당한 선생님의 뒷조사를 하면서 온갖 폭언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 글을 이렇게 인터넷을 통하여 고발을 결심한 것은 남자원장이야 폭행고소 건과 신용카드 명의도용건으로 법에 의해 심판을 받겠지만 여자원장은 모든 책임을 남자원장에게 미룬 후
자신은 어떠한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을 것이라 믿고 학부모가 지치기를 기다리면서 보증금의 반환은 돈이 없다며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두에 언급한대로 부모가 있는 장애우들은 부모가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까닭에, 장애인들을 위한 각종 여러가지 혜택 (의료혜택이나 법인시설에 위탁 등)으로부터 제외되어 있고 부모가 형편이 어려운 경우에는 그 고통이 말할 수 없어 정말 가족들이 장애자녀와 함께 죽은을 생각케되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기도합니다. 또한 햇빛동산과 같은 원장들을 만나서 장애자녀의 위탁을 위한 피와같은 보증금을 떼이게 되어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저희 선생님들은 몇몇의 학부모님들과 힘을 합하여 "햇살(햇빛동산 살리기)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파렴치한 두 원장( 특히 여자원장)을 벌하여 사회의 정의가 살아있음을 그들에게 보이고,
정말로 햇빛동산의 장애우들이 "제대로된 음식과 진료, 약처방, 편안한 공간"을 얻을 수 있는
"사회복지법인"의 설립을 위하여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햇살"을 시작하였습니다.
햇빛동산의 두 원장이 이제라도 학부모님들의 보증금을 돌려주기를 기대합니다.
이 글이 두 원장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줄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여전히 두 원장이 장애우들의 보증금을 마치도 자신들의 돈인양 내놓지 않고 계속 거짓을 일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글을 보신 후 아시는 모든 매체에 이 글을 알려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햇빛동산 장애우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사회복지법인"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요.!!
"햇살(가칭) 사회복지법인"에 도움을 주실 분들은 아래의 다음카페에 방문하시어 글을 올려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카페에는 이제껏 싸워 온 역사가 들어있습니다.
정말 햇살이 우리 장애우들의 얼굴에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 자세한 내용을 아시고자 하는 분은
http//cafe.daum.net/sunland04(다음 카페, 주소 끝의 04는 숫자입니다))로 방문하시면
그 동안의 햇빛동산의 "햇살"이 시작되면서 겪었던, 그리고 지금도 진행중인 일들에 대하여
상세히 아실 수 있습니다.
많은 방문과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