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의 찬성과 반대를 보면서, 어떤 분들은 문제의 본질을 떠나, 종파적 적대감을 가지고 반대를 하시는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수 년 전에 있었던 어느 단체(마이클잭슨 내한공연반대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의 헤프닝이 생각났습니다. 그 단체는 마이클 잭슨의 한국공연이 청소년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며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반대했었습니다. 교보문고와 종로서적 등 10여 개 티켓 판매 계약 회사들도 (공대위의 협조요청?에 따라) 판매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사건의 내막은 좀 달랐습니다. 나중에 조선일보 사설(96년 9월13일)에서도 다루었던 그 헤프닝의 내막은 한 기독교단체 소속 일부 개신교 인사가 마이클 잭슨이 여호와의 증인인 것으로 착각하였으며, 다분히 종파적/감정적 편견에 기인하여 반대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그 저의의 편협함으로 인해 빈축을 샀지요.
마이클 잭슨은 오해(?)를 불식시키고 한국공연을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그 당시 공대위가 제시한 반대 이유중 하나는 마이클 잭슨이 아동추행으로 조사 받은 적이 있으며, 그런 문제 있는 사람의 공연을 어떻게 허락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논리의 허약함은 국회의원(당시 국민회의 소속의원 주도)들 간의 토론에서 그대로 드러났는데, “그러면 한국에서 공연 허가를 받은 외국 연예인의 사생활이 마이클 잭슨보다 더 깨끗한가? 정부는 그런 것까지 심사하는 곳인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본질을 떠나 종파적/감정적 적대감에 사로잡히면 얼마나 ‘우습게 될’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인 것 같습니다. 균형 감각이 약해 질 수 밖에 없겠지요?
이제는 우리 사회도 과거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이번 논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니, 어떤 분들은 ‘노골적’으로 종파적/감정적 적대감을 표하는 것을 봅니다. 만일 종파적/감정적 적대감에 사로잡혀 생산적 논의를 외면하고, 단순히 누르고 싶은 생각이 드신다면, ‘공대위’의 경우는 반면교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좀 관용을 보였다면, 망신당하여 다수를 허탈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적대감을 가진 다수가 소수에게 “너는 왜 나와 다르냐?”고 다그친다면, 숨죽이고 모두 다수 편에 서야 하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입니다.
모두가 걱정하는 학교의 “이지메”나, “왕따”가 이런 경우 아니겠습니까?
우리 사회는 정말 “이지메”사회, “왕따“사회가 되어야 할까요?
우리 사회가 좀 성숙해 가고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적대감을 잠깐 접고 소수의견을 좀 들어주면 안될까요?
좀 더 생산적인 방법으로 수용하면 안될까요?
다른 방법으로 기여하겠다는 데 좀 그러라고 하면 안될까요?
추신: 한 줌(?)도 안되는데, 좀 봐주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