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글들을 보면서, 나름데로 견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남의 ‘금기’를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요?
모름지기 모든 종교에는 ‘금기’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독실한 불교인은 육식을 피하고, 독실한 기독교인은 제사를 지내지 않으며, 과거 한반도의 초기가톨릭 교인들은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문제로 순교하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경우, 종교적 이유든, 개인의 양심상 이유든 또는 종교에 기초한 개인의 양심상 이유이든,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그 행위가 일종의 종교적 금기로 비춰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 ‘금기’를 보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의 태도가 쟁점이 되겠습니다.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아마 가톨릭 교인이라면, 절두산의 많은 순교자들이 잘못된 일을 하였다고 말하지 못할 겁니다. 불교인이라면 이차돈의 순교를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또는 일제 당시 법원은 윤봉길의사나, 안중근의사를 ‘테러범’이라고 판결하였지만, 한국 사람들 중 그 판결은 법에 입각한 올바른 판결이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우리는 위의 예들이 그 당시 ‘금기’를 깨뜨렸기 때문에, 또는 그 사회의 실정법에 위배되었기 때문에 어리석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시대가 과거보다는 좀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발전하였다고 믿고 싶습니다
만일 현재 내 상황, 현실에 집착하여 그 모든 관용과 다양성을 말살한다면, 아마 우리는 과거 ‘금기’였음에도 그것에 헌신했던 많은 선열들과 순교자들과 선각자들을 욕되게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법원 판결은 소수 집단의 ‘금기’를 비현실적이라고 간단하게 반대해버리거나, 기존의 틀로 간편하게 재단해버리기 보다, 이를 생산적으로 소화해보자는 시도를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다르게 주장하시는 분들의 글은 수없이 읽습니다.
제 생각에는, 사회적 관용과 생산적으로 ‘소화’할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행동은 그 주장의 보편성 여부를 떠나 어느 정도 진실성과 일관성을 증명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우리 사회에 의해 포기된다면, 우리 사회는 관용과 생산적 ‘소화’를 실천해 볼 좋은 기회를 상실하는 것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른 ‘금기’와 다른 주장을 가진 집단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반응을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판결을 기회로 관용과 ‘생산적 소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우리 각자는 모두 개인적으로 ‘금기’를 가지고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