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퍼레이드(parade) 하지 않아 열병식(閱兵式)도 없어
중국 요청(要請)으로 자숙(自肅)인가
산케이신문(産經新聞) 2003년 7월28일 조간(朝刊)
북한에서는 7월27일, 한국전쟁(韓國戰爭) 휴전협정(休戰協定) 50주년(周年)을 「조국해방(祖國解放)의 전승기념일(戰勝記念日)」로서 축하(祝賀)하는 야회(夜會)가 개최(開催)되었지만, 예상(豫想)되었던 군사(軍事) 퍼레이드(parade)나 열병식(閱兵式) 등은 실시(實施)되지 않았던 모양(模樣)이다.
『핵문제(核問題)의 다국간(多國間) 협의(協議)에서 중개외교(仲介外交)를 전개(展開)하고 있는 중국이 영향력(影響力)을 행사(行使)한 것이 아닌가』라고도 관측(觀測)되고 있다.
조선중앙방송(朝鮮中央放送) 등은 7월27일 밤, 『위대(偉大)한 조국해방전쟁승리(祖國解放戰爭勝利) 50주년 경축(慶祝) 평양시(平壤市) 청년학생(靑年學生)들의 야회(夜會)가 7월27일 밤, [평양시내의] 김일성광장(金日成廣場)에서 성대(盛大)하게 개최(開催)되었다』라고 보도(報道)했다.
그것에 따르면, 광장은 경축일색(慶祝一色)으로 둘러싸여 내각(內閣)·조선노동당(朝鮮勞動黨)·무력기관(武力機關)·정권기관(政權機關)·사회단체(社會團體)·조선인민군(朝鮮人民軍) 간부(幹部)·동(同) 전쟁 前 병사(兵士)·각국외교단(各國外交團)·외국(外國) 손님들이 초대(招待)되어 출석(出席)했다.
그리고, 평양의 4개소(個所)에서 조선노동당·국가지도부(國家指導部)·조선인민군 장병(將兵)들에 의한 헌화(獻花)도 행해졌다.
야회 등은 북한의 다양한 기념일에 행해지고 있지만, 「전승기념일」에는 최고사령관(最高司令官)인 김정일(金正日) 조선노동당 총서기(總書記) 등 최고간부(最高幹部)가 해외요인(海外要人)들과 함께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국가행사(國家行事)로서는 상당(相當)히 수수한 것이 되었다.
예를 들면, 1993년 「전승 40주년」에서는, 김일성 주석(主席)에 의한 열병식이 대대적(大大的)으로 실시(實施)되었다. 의용군(義勇軍)으로 참전(參戰)한 중국도 「40년 축하」에 때를 맞춰, 후진타오(胡錦濤) 정치국(政治局) 상무위원(常務委員)이 이끄는 대표단(代表團)을 북한에 보냈지만, 이번에는, 그러한 고관파견(高官派遣)도 없었던 것 같다.
한반도(韓半島) 전문가(專門家)들 사이에서는, 『다국간 협의의 조정(調整)을 하고 있는 지금, 중국은 대미전승(對美戰勝)을 북한과 축하할 수는 없다. 중국이 북한에 행사자숙(行事自肅)을 요구(要求)했을 가능성(可能性)이 있다」라는 지적(指摘)도 나와 있다.
http://news.goo.ne.jp/news/sankei/kokusai/20030728/KOKU-0728-02-02-49.html
■ 군사(軍事) 퍼레이드(parade) 실시(實施)는 보류(保留)인가
휴전협정체결(休戰協定締結) 50주년(周年)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 2003년 7월27일 21:34
한국전쟁(韓國戰爭)[1950년-1953년]의 휴전협정(休戰協定)은 7월27일, 체결(締結)로부터 50주년(周年)을 맞이했다.
북한에서는 7월27일 평양(平壤)에서 열병식(閱兵式)[군사(軍事) 퍼레이드(parade)]이 거행(擧行)된다고 예상(豫想)되고 있었지만, 북한의 보도기관(報道機關)은 7월27일 저녁까지 열병식에 대해 언급(言及)하지 않고 있어, 실시(實施)는 보류(保留)된 모양(模樣)이다.
핵문제(核問題)를 둘러싼 다국간(多國間) 협의(協議)를 향한 관계국간(關係國間)의 조정(調整)이 진행(進行)되는 가운데, 미국을 자극(刺戟)하지 않게 배려(配慮)했을 가능성(可能性)이 있다.
북한은 7월27일을, 미군중심(美軍中心)의 국제연합군(國際聯合軍)과의 「조국해방전쟁(祖國解放戰爭)」에 승리(勝利)한 기념일(記念日)이라고 평가(評價)하고 있어, 1993년 40주년에는 열병식을 실시했다. 북한은 2003년 초(初)부터 「전승(戰勝) 50주년」을 중요한 전환점(轉換點)으로서 강조(强調)해 오고 있어, 기념일에는 열병식의 실시가 예상(豫想)되고 있었다.
한국 통일부(統一部) 간부(幹部)는 열병식이 보류되었던 것에 대해 『북한의 진의(眞意)는 불분명(不分明)하지만, 환영(歡迎)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해, 대화(對話)를 위한 분위기(雰圍氣)를 만들 수 있는 적극적(積極的)인 재료(材料)라고 하는 견해(見解)를 나타냈다.
외교(外交) 소식통 사이에는, 『대화실현(對話實現)을 위해 중개(仲介)를 진행(進行)시키고 있는 중국이 「열병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북한에 압력(壓力)을 가한 것은 아닌가』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
중국은, 한국전쟁에서 북한과 함께 싸운 참전국(參戰國)이지만, 50주년에 맞춘 대표단(代表團) 파견(派遣)은 알려지고 있지 않다. 중국은 40주년 때에는, 후진타오(胡錦濤) 공산당(共産黨) 정치국(政治局) 상무위원(常務委員)[현재(現在) 국가주석(國家主席)]을 단장(團長)으로 하는 대표단을 방북(訪北)시켰다.
한편, 휴전협정이 조인(調印)된 판문점(板門店)에서는 7월27일, 클라크(Helen Elizabeth Clark) 뉴질랜드(New Zealand) 수상(首相)과 키신저(Henry A. Kissinger) 前 美 국무장관(國務長官) 등 국제연합군에게 병사(兵士)나 의료부대(醫療部隊)를 파견한 21개국의 대표(代表)와 前 병사(兵士)들 약 1500명이 참가(參加)해, 국제연합군 주최(主催)의 기념행사(記念行事)를 했다. 국제연합군은, 북한 대표도 초대(招待)했지만, 북한측이 거부(拒否)했다.
http://www.mainichi.co.jp/news/flash/kokusai/20030728k0000m030068000c.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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