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Mutual living 아니면 Mutual survival) 참으로 이 나라는 윈시인 같은 민족이 살아가는 불행한 나라다. 정치인들이 간간 상생을 입에 오르내리드니 요즘 박근해 대표가 상생을 거론하고 노무현 대통령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상생을 외쳤을 정도로 부쩍 사용 빈도가 늘어났다.. 누가 그말을 믿을까?
이조 500년 역사를 보면 왕조시대 권력을 쥔 자들이 정적을 사정 없아 죽였다. 남인 북인 서인이라 칭하는 파당들이 얼마나 사화를 일으켰고 그때 마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예사로 했든 민족 이였던가?
이승만이 대한민국 이란 민주국가를 건설하고 독재를 하면서 걸림돌이 되는 정적은 가차 없이 숙청해 버렸다. 그때는 암살로 죽이고 공산당이라는 죄명을 씨워서 죽이고 테러를 가하고 정치적으로 매장 식혀버리는등 온갖 짓거리를 다했다. 박정희는 군사 굽태타를 일으켜 정적과 야댱 인사를 하루아침에 손발 입을 묵고 봉해버리고 감옥에 보내고 죽이고 온갖 인권 말살 정책을 서슴없이 폈다. 군부독재정치가 이여지는 30년 동안 이런 상태는 계속 되였다.
정당은 이름뿐이고 급조된 여당만이 있고 야당은 허수아비 였다. 김영삼
이 집권하면서 처음으로 명실상부한 여당야당이 존재하고 제구실을 다하는
가 싶더니 김대중이 집권하면서부터 서로 죽이는 일이 다시 살아났다. 이때
죽인다는 것은 생명을 끊는 살인이 아니라 정치생명을 없에 버리는 것을
말한다. 지난 1년은 과연 어떠했는가? 여소야대 정치현실에서 권력을 잡은 여당측은 정부와 결탁해서 야당을 탄합 하고 야대 야당은 죽지 않으려고 마구 투쟁했다. Power game에서 밀리면 망한다는 생각으로 극한적인 대립을 하면서 싸웠다. 이 속에서 상생이란 단어가 생겨난 것이다. 문자 그대로 서로 살자는 말은 지금까지 서로 죽였다는 사실이 숨겨진 처절한 단어다. 단순한 정쟁에서 파생된 평범한 단어가 아님을 역사가 증명한다.
어느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Mutual living 이란 단어가 있던가? 한국은
말이 선진국 문턱에 와 있는 준 선진국이라고 떠들어대지만 따지고 보면
추악한 500년 당파싸움의 역사를 등에 업은 자랑스럽지 못한 민족이고 그런
잔재는 대한민국이 역사에서도 정도의 차이 질적 차이는 있을 지라도 여전히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상생하겠다고 선언을 하는 판국이니 이는 세계에 대 놓고 한국은 지금 것 서로 죽이는 일만 했다는 고백이 아닌가? 이런 야만적인 단어를 더 이상 쓰지 말고 정당이나 정부나 정책으로 승부하고 그 목적은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행복을 Up grade 식히는 데 두어야 한다. 더 이상 이조 500년 시대로 되돌아가는 즉 왕정 복고의 후퇴는 여기서 중지해야 한다. {상생 참 씁쓸하고 무서운 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