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한 이념의 세례에 물들어 20대를 보내던
관성 때문이었던가. 노무현, 그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그리고 당선되었을 때 난 그의
정치적, 철학적 깊이와 투명성을 내내 신뢰
했다.
천박한 보수주의자들이, 제도권 언론들이
부정확한 정보와 편견으로 대통령이 된 그를
집요하게 공격하고, 결국 그를 지지했던 사람
들조차 등을 돌리기 시작했지만 나의 고집스런
신뢰의 무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그의 조급함과 부주의함을
감지하기 시작하면서 난 조금씩 흔들린다.
자리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원래의 깊이가 그 정도인지 같은 매우 유치한
의심이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시간과 노력이 차분하게 쌓여져 비로소
가능한 '전국정당=신당'건설을 위해 전술적으로
미숙하기 짝이 없는, 얕은 수를 부리는 그의 위험한
행보를 보면 한때 그에 대한 '노비어천가'식 믿음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
그런 어리석음으로 인해 결국 지지세력은 사분오열되고
정권의 기반마저 흔들릴 위기에 놓여 있다.
전국정당의 대의를 이끌어내기는 커녕, 안티-참여
정부의 외침이 점점 커져가고 있음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겸허함이
그에겐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