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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나라다운 나라`를 일본한테 배워야 하나 에 대해서

조선 [사설] '나라다운 나라'를 일본한테 배워야 하나 에 대해서









(홍재희) ========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방상훈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이번 주말 북한을 방문해 8명의 일본인 납치 가족을 데려올 것이라는 소식은 부러움을 넘어 부끄러움마저 느끼게 한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부끄러워 할 것 없다. 조선사설은 생각해 보았는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이번 주말 북한을 방문해 '8명의 일본인 납치 가족'을 데려올 것이라는 소식은 있어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이번 주말 북한을 방문해 일제 36년간 북한동포들이 민족적 차원에서 당한 참혹한 일제 식민지 지배의 고통에 대해서 일본정부가 진솔하게 참회하고 사죄하고 북한 동포들에 대해 물적 심적 책임을 다한다는 소식을 조선사설은 들어 보았는가?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지난 2002년 고이즈미 방북 이후 일본 사회에서는 “납치문제를 완전 해결하라”는 거센 비판이 일었다. 일본은 그 뒤 6자회담이든 어디든 가는 곳마다 ‘납치’만 얘기했고, 이런 일본에 “공조는 외면하고 자국민만 챙긴다”는 비난도 따랐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일본사회의 “납치문제를 완전 해결하라”는 주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물론 8명의 일본인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는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당연히 문제를 풀어나가고 북한정부도 성의를 다해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조선사설에 대해서 묻겠다. 일본인 납치문제가 그리 크게 다가오는가?







(홍재희) ====== 아직도 일제식민지 지배의 과거사가 청산되지 않고 미완인채로 살아있는 역사를 통한 북한동포들의 희생에 대해 60년이 넘도록 일본 사회나 일본정부차원의 공식사과나 물적 심적 배상 없이 오히려 일제 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하며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정부와 “납치문제를 완전 해결하라”는 일본사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북한을 압박하는 일본정부와 사회가 문명을 지향한다면 비판의 대상이 될지 언정 결코 오늘자 조선사설의 주장과 같이 '나라다운 나라'를 일본한테 배워야 한다고 일본을 칭송할 사안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홍재희) ======== 하기야 친일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방상훈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는 방응모사장의 조선일보는 일본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일제식민지 지배체제를 찬양하는 나팔수노릇을 하지 않았는가? 방응모 조선일보 사장은 자신의 돈으로 고사포를 직접 구입해서 일제에 헌납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동토의 시베리아 . 만주벌판에서 풍찬노숙하며 민족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고 있는 독립군들을 사실상 사살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홍재희) ======= 어디 그뿐인가? 방응모의 조선일보는 일제시대에 조선의 숫처녀들을 일제의 성노리개로 내몰며 종군위안부로 나가도록 독려하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일제의 나팔수 노릇을 통해 조선의 숫처녀들의 소중한 정조를 유린하는 인격살인을 서슴치 않았다. 뿐만 아니라 방응모의 조선일보는 일제시대에 나이어린 학생들을 일제의 총알받이인 학도병으로 내모는데 적극적인 나팔수역할을 통해 수많은 학생들이 학도병으로 끌려가 목숨을 잃게 한 것도 부인할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홍재희) ======= 이러한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친일 반민족적인 범죄행위에 대한 반성이나 진실고백도 없이 한마디 사죄도 없이 오히려 민족의 정론지라고 큰소리 치는것과 일본이 북한에 대한 식민지배에 대해서 지금까지 미완인채로 남녀둔채 일본인 8명의 문제에 대해 북한을 비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조선일보와 일본은 반인륜적인 과거행적에 대한 반성없는 태도에서 서로 너무 닮았다. 서로에게 많이 배워라?





















(홍재희) ======= 조선사설은



" 그러나 대북 공조에서의 ‘공조’는 공통된 부분이 있다는 것이지 각국의 독자적 문제와 이익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일본은 공조 틀 속에서도 자국민을 위한 외교라는 원칙을 지켜나가 이제 해결의 문 앞에 선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북핵문제를 빌미로 자국의 이기적 이익추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문명국가의 이익추구는 일본과 같이 배타적이어서는 안된다. 일본은 자국 국민들 몇 명의 안위에 대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성을 보이면서 일제 식민지지배로 인해 말과 글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온 북한동포들에 대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문제해결을 위한 일본정부와 일본인들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을 지닌 일본정부와 일본사회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방식에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정체성에 대해서 준엄한 비판을 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한 일본과의 대북 공조는 일본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추인해 주는 공조에 불과할 뿐이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우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모습을 미국이나 영국 같은 이른바 대국(大國)의 외교에서 늘 보고 부러워하면서도 우리의 처지 운운하며 스스로를 달래왔었다. 그러던 사이 이웃 일본 역시 그들 같은 ‘대국 외교’를 우리 앞에서 시범(示範)을 보이는 세상이 된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볼려고 하지 않는다. 조선사설은 " 그러던 사이 이웃 일본 역시 그들 같은 ‘대국 외교’를 우리 앞에서 시범(示範)을 보이는 세상이 된 것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02년 고이즈미 방북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이번 주말 북한을 방문해 8명의 일본인 납치 가족을 데리러 가는 과정을 조선일보는 면밀하게 파악해 보아야 한다.







(홍재희) ====== 그러한 변화는 일본정부의 노력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라기 보다 김대중 장권의 햇볕정책에 의해 남북이 화해와 협력을 통해 긴장상태를 급격하게 완화시키는 과정에서 북한체제가 외부세계로 문을 여는 과정에서 EU의 거의 모든 국가들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동시에 지난 2002년 고이즈미 방북이 성사됐고 이번에 8명의 일본인 가족들을 데리고 오기위해 북한을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홍재희) ====== 부연한다면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북한체제의 변화가 지난 2002년 고이즈미 방북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이번 주말 북한을 방문해 8명의 일본인 납치 가족을 데리러 가는 과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본의 독자적인 노력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이러한 전체적인 흐름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그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벌이고 있는 일본정부의 자국국민 보호 문제를 경솔하게 접근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나무도 보고 숲도 보는 혜안이 부족하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정부 통계에 따르면 납북 어부 등 487명이 북한에 억류돼 있다. 수천명의 국군 포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렇다. 이들을 위해 이 정부와 지난 정권들은 무엇을 했는가. ‘화해’와 ‘대화’도 좋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접근한다면 납북 어부와 수천명의 국군 포로문제를 정부가 방치하고 있는 듯한 주장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들을 북한측과 다각적인 접촉을 통해 해결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도 평화개혁세력이 연속적으로 집권하고 남북간의 적대적 공존을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존공영의 남북화해 협력체제로 전환시키면서 비로소 쟁점화 시키게 됐고 이러한 과정에 부수적으로 북한에 있는 일본인들의 문제도 해결의 단초를 찾은 것이다.







(홍재희) ====== 조선일보가 지향했던 남북의 적대적 공존의 시대에는 납북 어부문제나 수천명의 국군 포로문제를 조선일보가 언급조차하지 못했다. 조선일보가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정권때 납북 어부문제나 수천명의 국군 포로문제를 당당하게 권력의 눈치 않보고 감히 떠들지 못했다. 조선일보는 그 당시 정치권력의 눈치만 살는데 치중했었지 납북 어부문제나 수천명의 국군 포로문제에 대해서 언론의 역할인 공론화의 장을 마련하는데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조선사설 안 그런가?







(홍재희) ===== 그러나 1998년부터 집권하기 시작한 평화개혁세력에 의해서 남북이 적대적 공존에서 공존공영의 관계로 변화하면서 납북 어부문제나 수천명의 국군 포로문제가 공론화 되고 남북간의 각종대화채널에서도 비공식적으로 꾸준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납북어부등의 생사확인과 상봉이 진행되고 있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변화가 ‘화해’와 ‘대화’를 통해서 진전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조선일보가 외면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 백보 양보해 그게 우회적으로 북한 인권을 향상시키고 우리의 안전을 위하는 수단이라는 말도 받아들일 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국제 무대에서 북한 인권문제와 납북자 송환문제에 대해 ‘퇴장’과 ‘기권’ ‘포기’라는 못난 짓만 되풀이해온 것을 변명할 수는 없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주장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 조선사설은 " 우리 정부가 국제 무대에서 북한 인권문제와 납북자 송환문제에 대해 ‘퇴장’과 ‘기권’ ‘포기’라는 못난 짓만 되풀이해온 것을 변명할 수는 없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러한 정부의 역할이 북한 인권문제와 납북자 송환문제에 대해 무관심해서는 아니라고 본다. 지난 수십년 동안 조선일보가 지향하는 적대적 공존의 대립과 갈등에 남북관계 속에서는 북한 인권문제와 납북자 송환문제에 대해 ‘퇴장’과 ‘기권’ ‘포기’와는 정반대의 대북압박 정책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조선일보도 잘 알 것이다.







(홍재희) =======조선일보 사설은



" 화해나 대화는 국민의 안전과 국가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지 결코 수단을 지키느라 목적과 원칙을 내던져서는 안 된다. 고이즈미 방북은 ‘국가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자국민 보호라는 가장 기본적 의무를 내팽개친 국가는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없다는 교훈을 일본에서 배워야 하는 우리 처지가 서글프기만하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주장하고 있는 "화해나 대화는 국민의 안전과 국가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지 결코 수단을 지키느라 목적과 원칙을 내던져서는 안 된다. " 라는 내용대로 접근해 봐도 조선일보가 지향했던 대북 적대적 공존의 시대인 박정희 .전두환 . 노태우 시대에 주로 납북 어부 등 487명의 문제가 발생했다. 조선일보식으로 접근한다면 조선일보가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칭송해 마지않았던 철저한 반북 군사독재정권때 납북 어부 등 487명의 문제가 발생해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했었다.







(홍재희) ====== 그러나 남북화해정책을 추진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하에서는 납북 어부 등의 문제를 비롯해 남북간의 긴장이나 갈등요소들이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과거 냉전시절의 적대적 공존체제 속에서 파생된 문제들인 납북 어부 등 487명과 수천명의 국군 포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조선사설은 그러한 측면은 보이지 않는가? 그러한 노력들이 쌓여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자국민 보호라는 가장 기본적 의무를 내팽개친 국가는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없다는 교훈을 일본에서 배워야 하는 우리 처지가 서글프기만하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일보는 방씨 족벌세습사주체제의 친일 반민족 적 범죄 행위를 하고도 민족의 정론지라고 큰소리치고 있는 몰상식을 일본에서 배우고 있는 모양이다.







(홍재희) ====== 일본은 자국의 일본인 8명과 그 가족들의 일본송환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한반도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피해에 대해서는 특히 수천만 북한 동포들의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전혀 해결하지 않고 미완인 채로 남겨놓은채 로 나오고 있다. 문제해결의 선후문제로 접근해도 일본의 태도는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배워야 할것이 없다.





(홍재희) ======= 뿐만 아니라 일본인 8명과 그 가족들의 일본송환 문제의 조속해결에 집착하고 있는 일본의 태도와 일제 식민지지배의 고통을 받은 수천만 한민족의 문제 특히 미완인 채로 남아있는 북한에 있는 동포들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지배의 문제를 60년 동안 방치한 일본정부의 반인륜적인 물상식과 무성의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접근해 냉정하게 판단하지 않고 일본정부를 따라 배우라고 주장하고 있는 친일 반민족적인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 의 정체성에 대해서 우리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설] '나라다운 나라'를 일본한테 배워야 하나(조선일보 2004년 5월17일자)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이번 주말 북한을 방문해 8명의 일본인 납치 가족을 데려올 것이라는 소식은 부러움을 넘어 부끄러움마저 느끼게 한다.



지난 2002년 고이즈미 방북 이후 일본 사회에서는 “납치문제를 완전 해결하라”는 거센 비판이 일었다. 일본은 그 뒤 6자회담이든 어디든 가는 곳마다 ‘납치’만 얘기했고, 이런 일본에 “공조는 외면하고 자국민만 챙긴다”는 비난도 따랐다.



그러나 대북 공조에서의 ‘공조’는 공통된 부분이 있다는 것이지 각국의 독자적 문제와 이익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일본은 공조 틀 속에서도 자국민을 위한 외교라는 원칙을 지켜나가 이제 해결의 문 앞에 선 것이다.



우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모습을 미국이나 영국 같은 이른바 대국(大國)의 외교에서 늘 보고 부러워하면서도 우리의 처지 운운하며 스스로를 달래왔었다. 그러던 사이 이웃 일본 역시 그들 같은 ‘대국 외교’를 우리 앞에서 시범(示範)을 보이는 세상이 된 것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납북 어부 등 487명이 북한에 억류돼 있다. 수천명의 국군 포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렇다. 이들을 위해 이 정부와 지난 정권들은 무엇을 했는가. ‘화해’와 ‘대화’도 좋다.



백보 양보해 그게 우회적으로 북한 인권을 향상시키고 우리의 안전을 위하는 수단이라는 말도 받아들일 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국제 무대에서 북한 인권문제와 납북자 송환문제에 대해 ‘퇴장’과 ‘기권’ ‘포기’라는 못난 짓만 되풀이해온 것을 변명할 수는 없다.



화해나 대화는 국민의 안전과 국가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지 결코 수단을 지키느라 목적과 원칙을 내던져서는 안 된다. 고이즈미 방북은 ‘국가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자국민 보호라는 가장 기본적 의무를 내팽개친 국가는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없다는 교훈을 일본에서 배워야 하는 우리 처지가 서글프기만하다.

입력 : 2004.05.16 18:12 06' / 수정 : 2004.05.16 19:09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