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고품격 커뮤니티  ‘스브스프리미엄’

# 1941년2월16일생 北 개정일의 운명?





게칸겐다인(月刊現代) 2004년1월호는, 2002년9월 한국으로 망명한 북조선 한의사(韓醫師) 출신 최주혁(崔周革)의 수기를 실었다.



이 수기에서, 최주혁은, 1968년12월24일에 평양의 북쪽 40km에 있는 평안남도 문덕(文德)이라고 하는 마을에서, 6형제의 막내로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현지의 농장을 지도하는 평안남도 농촌경리지도위원회(農村經理指導委員會)의 하급 관리였다고 한다.



최주혁은 부모의 출신성분 때문에 김일성종합대학에 진학할 수 없게 되자 출세하기 위해 역학(易學) 및 관상학(觀相學)을 독학했고, 이를 이용해 김영남 장성택 등 북조선 고급간부 뿐만 아니라 김정일의 기쁨조 김명희 등 평양 상류 사회의 여러 인물들에게 조언을 해주었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김정일의 실제 생년월일이 알려진 1942년2월16일이 아니라 1941년2월16일 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김정일이 「1942년2월16일 항일혁명의 성지 백두산에서 태어났다」라고 대외적으로 발표함으로써 김정일의 운세를 「움막에서 잠자는 뱀」으로부터 「비상(飛翔)하는 용마(龍馬)」로 하기 위한 잔꾀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운명은 2008년에 끝나고 지옥의 국가 북조선이 해방된다고 한다.



최주혁이 말하는 2008년 북조선 붕괴가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전에 미국의 北爆, 북조선의 쿠데타, 중국의 김정일 암살 작전이 성공하기를 기대해본다.









# 김정일 여동생의 바람기에 고민하는 남편



나는 평상시에는 남성 고급 간부들을 점치는 것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예를 들면, 1997년4월에는, 현재 공식적으로 김정일 다음인 넘버2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당시에는 부수상(副首相)겸 외상(外相)]으로부터 면회의 요청을 받았다. 이 때는, 내가 김영남의 자택을 방문하면 소문이 난다고 하기 때문에, 김영남이 부인의 매부(妹夫)인 철도부장(鐵道部長)의 자택을 방문해 내가 우연히 거기에 있다고 하는 설정으로 했다.



1926년생인 이 최고 간부의 고민은, 놀랍게도 「안색(顔色)」이었다.



「양볼에 커다란 흰 반점(斑點)이 생겨, 체면이 나빠져 곤란해 하고 있다. 평상시에는 화장을 해서 속이고 있지만, 무엇 때문에 이런 것이 생기는 것인가」



김영남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상담을 받아 나는 당혹스러웠다. 70代 남성의 안색 고민 따위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 것인가. 나는 어쩔 수 없이,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래도 조상의 무덤 위치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김영남은 「그랬던가」라고 말하며,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



「나는 몇 살까지 살 수 있는가」



「네. 앞으로 19년, 90세로 천수(天壽)를 다하게 됩니다」



「조선반도의 통일은 볼 수 있는가」



「네, 그렇습니다. 조선반도는 2008년에 통일될 테니까」



김영남은 기분좋은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500달러를 주었다.



김영남이 북조선의 공식적인 넘버2라면, 실질적인 넘버2는, 김정일의 매제(妹弟)인 장성택(張成澤)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제일부부장(第一副部長)이다. 나는 장성택으로부터도, 1997년8월에 면회의 요청을 받아 만났다. 장소는, 중구역(中區域) 창광산(蒼光山) 호텔 뒤쪽에 있는 장성택 심복(心腹)[중앙당 선전선동부 과장]의 자택이었다.



장성택만은, 다른 잘난체 하며 썩은 간부들과는 다른 인격자였다. 내가 방에 들어가 인사하자,「자네, 우선 담배라도 피우지」이렇게 말하며 영국제의 담배를 꺼내, 자신이 불을 붙여 주었다. 고급 간부로부터 이런 배려를 받은 것은, 이전에도 이후로도 한 번 뿐이다.



과장이 커피를 타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장성택과 잠깐 단둘이 잡담했지만, 그 말의 한마디한마디에서는, 「자신도 인민이다」라고 하는 의식이 배어 나오고 있어 감명을 받았다.



장성택이 고민하고 있던 것은, 부인인 김경희(金敬姬)의 바람기였다. 상대는, 국민적 인기 영화 「민족과 운명」에 기타 연주를 하는 가수역으로 나왔던 신의주 방적공장 예술선전대(藝術宣傳隊) 소속의 40代 배우라고 한다.



부인이 바람피고 있다고 해도, 독재자 김정일의 여동생이기 때문에, 가혹하게 할 수는 없다. 장성택의 고뇌는 나에게도 아플 정도로 전해져 왔지만, 「두 사람[장성택과 김경희]은, 같은 병술년(丙戌年)[1946년생]이기 때문에, 서로 평생 으르렁거리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라고 정직하게 말했다.



장성택은, 「그런가」라고 한마디 중얼거린 채, 벌레를 씹은 것 같은 얼굴을 하며,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김경희가 중구역 창광산의 자택을 나와, 삼석구역(三石區域)의 별장에서 별거 생활을 시작했다고 다른 간부로부터 들은 것은,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후의 일이었다.





# 북조선의 붕괴는 2008년



나는 이와 같이, 최고 간부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15년 동안에 합계 55,000명을 점쳐 왔다. 평양의 상류 사회에서 일찌기 확고한 지위를 구축한 나는, 전국적인 「점쟁이 조직」 만들기에 나섰다. 그런데, 제자 1명이 불법인 외화(外貨) 벌이를 하다가 체포되어, 제자는 어이없게도, 나에게서 명령을 받았다고 위증(僞證)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성공을 못마땅하게 느끼고 있던 간부 누군가가 꾸민 함정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나는, 1999년 8월에, 억울한 죄로 보위사령부(保衛司令部)[인민무력성(人民武力省) 보위국(保衛局)으로부터 격상(格上)된 비밀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와 동시에 가택 수색되어 전재산이 몰수되었다.



이후는 1년 이상에 걸친 고문의 날들이다. 손톱과 발톱이 뽑혀지고, 몸에 불을 가하고, 나는 사형 직전에, 어느 간부의 조치로 구사일생(九死一生)을 얻었다.



나는 구치소를 나오자마자, 전국에 있던 고객의 집을 전전하며 몸을 숨기면서, 2001년10월에, 수중에 남은 2,000달러를 가지고 중국으로 탈출했다. 그리고, 2002년 9월에 한국으로 망명을 했다.



나는 김정일을 아주 가까이서 보았던 적은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점쳤던 적은 없다. 김정일 일가(一家)에는, `숙천왕무녀(淑天王巫女)` 라고 불리는 나이많은 여성 영매사(靈媒師)[무당]가 있다. 김정일은, 점 등은 결코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이지만, 이 할머니가 말하는 것만은 듣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실제의 생년월일은 1941년2월16일인데, 「1942년2월16일에 항일혁명(抗日革命)의 성지(聖地)인 백두산에서 탄생했다」라고 공식 발표하고 있는 것도, 이 무녀의 꾀가 아닐까. 1살 젊게 속이는 것으로, 「움막에서 잠자는 뱀」으로부터, 「비상(飛翔)하는 용마(龍馬)」로 운세가 바뀐다.



그러나, 이런 잔꾀를 부려도, 역학(易學) 및 관상학(觀相學)으로부터 보면, 김정일의 운명은, 2008년에 끝난다. 세계에 둘도 없는 지옥의 국가가 해방될 때까지, 앞으로 4~5년의 인내(忍耐)인 것이다.



http://kodansha.cplaza.ne.jp/mgendai/200401/index.html







* 김정일의 프로필. 실제 생년월일은 1941년2월16일!



이름 : 김정일(金正日)



성별 : 남



출생일 : 1942년2월16일



출생지 : 소련 하바로브스크, 양강도 백두산밀영(양강도 삼지연군) 출생 주장



직책 : 노동당 총비서, 국방위원회 위원장, 인민군 최고사령관, 공화국 원수,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최고인민회의 제10.11기 대의원



학력 :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프로필 자료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