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이 나라에서 탈북자는 신음도 낼 수 없나 에 대해서
(홍재희) =======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방상훈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자유북한방송’이 둥지를 잃게 됐다. 15평 사무실을 내주어 인터넷 방송을 할 수 있게 해준 북한연구소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테러를 하거나 소동을 벌일지 모른다”며 나가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북한방송’이 남북의 단절과 이질감을 해소하고 민족단합과 국토통일에 이바지하는 인터넷 언론매체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바란다. 조선사설은 “좋지 않은 사람들이 테러를 하거나 소동을 벌일지 모른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북한문제를 두고 접근하는 시각의 차이 때문에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로 구분해 이분법적인 접근을 강조하고 있는 조선사설이 노리고 있는 의도는 무엇인가? 남북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남북은 증오할 만큼 증오했고 미워할 만큼 미워 했다고 본다. 특히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는 남북 분단의 비극을 악용해 수구기득권을 유지해온 집단이 아닌가? 조선일보 안 그런가?
(홍재희) ====== 남북한 사이에 과거와 같은 적대적이고 소모적인 상호비방은 많이 해소됐다고 본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후에 조성된 남과 북의 화해협력 기류에 의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변화에 따라 남한에 거주하는 탈북 동포들의 대북시각도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물론 협박전화를 하는 등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남북의 화해가 진전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탈북동포들이 변화하는 남북관계와 상충되는 냉전적 대결구도를 상정해 놓고 소모적인 갈등을 증폭시키는 방송을 한다면 비록 선의에 의해서 라고 해도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홍재희) ======= 대한민국 사회도 지난 반세기 동안 ‘자유북한방송’못지 않게 북한체제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가했었지만 얻는 것은 남북간의 불신과 대립 그리고 갈등의 증폭을 통한 적대적 공존의 고착화 였다. 그렇게 반세기를 지내왔다. 남북 모두에게 깊은 불신만을 심어주는 그러한 상호비방의 악순환이 남긴 것은 남과 북의 모든 동포들에게 씻을수 없는 야만의 적대감만을 심어 줬을 뿐 동포애를 바탕으로 한 상호이해의 공존을 불가능하게 하는 거대한 심리적 벽으로 남아 남북을 가로막고있는 물리적인 경계선인 휴전선 보다 더 견고한 단절의 경계선이 돼 왔었다.
(홍재희) ====== 그러한 상호배척의 야만적인 분단의 역사를 배타적으로 공유해온 남북이 지금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공존공영의 길로 같이 나아가기 위해 상호불신의 벽을 하나씩 하나씩 극복해 나가고 있는 가운데 ‘자유북한방송’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남북은 상대에 대한 소모적인 비방이 결과적으로 남북의 의사소통과 교류협력에 장애가 될 뿐 갈라진 국토와 이산의 민족적 고통을 치유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공동인식 하에 지난 반세기 동안의 상호반목과 질시와 증오의 공동유산을 청산하기 위해 체제의 이질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화해와 협력을 통한 한반도 냉전해체에 인식을 같이하면서 최근에는 상호체제에 대한 비방보다는 상호이해의 증진을 도모하고 있는 실정이다.
(홍재희) ====== 이러한 남북간 상황의 변화는 탈북동포들이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매체인 ‘자유북한방송’의 내용과 상충되는 측면이 다분히 있다고 본다. ‘자유북한방송’은 최근 북한의 룡천역 폭발참사를 전후로한 시기에 황장엽씨를 출연시켜 북한체제에 대해 맹렬한 비판을 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정치이념과 종교 문화와 인종의 차이를 초월해서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보다는 북한동포들을 돕기위한 순수한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룡천역 참사에 고통받고 있는 북한동포들을 돕기위해 북한체제와 협조하며 하나가 돼서 힘쓰고 있는 시기에 ‘자유북한방송’이 황장엽씨의 입을 통해 북한체제를 비판한 것이 룡천역 참사에 고통받고 있는 북한동포들에게 어떤 인도주의적인 도움이 됐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홍재희) ====== 물론 대한민국은 정부나 체제에 대한 비판도 허용된 사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체제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의 비판도 막을 수는 없다.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 공동체가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지나온 반세기 동안의 맹목적인 대북비판을 통해서 얻은 것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북한체제가 달라진 것도 아니고 북한동포들의 피폐해진 삶의 질이 높아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냉전수구세력들의 지금까지의 주장대로 북한체제의 붕괴가 현실화 된 것도 없다.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북한체제 하에 있는 동포들을 돕기위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의 기회비용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을 뿐이다.
(홍재희) ======= 이러한 현실은 지금까지의 남북간 상호비판과 적대정책이 민족 내부의 에너지만을 소모적으로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해서 국제적인 탈냉전 시대에 우리한민족과 한반도만이 유일하게 야만의 분단국가로 남는 현실을 부둥켜 껴안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남북이 반세기동안 상호 적대적 비판의 단절을 증폭시키기보다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며 휴전선의 철책을 걷고 정치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며 금강산 관광을 통해 민간교류의 폭을 넓게 하고 민족이 같이 사는 길을 같이 모색하기에 이르렀다고 본다. 이러한 한반도 내부의 탈냉전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탈북동포들이 내보내는 ‘자유북한방송’ 남북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심각하게 고민해볼 대목이라고 본다.
(홍재희) ====== 수구적이고 반통일적인 방상훈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오늘자 사설은 ‘자유북한방송’이" ... 북한 당국의 비위와 남한 내 맹목적 민족화해론자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남한 정부의 노파심을 자아내게 했을 것이다. " 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조선사설의 그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북한 당국의 비위를 맞추기위해 북한체제를 비판하지 않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북한체제는 완벽한 체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그렇지만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서로에게 득이 될것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북한체제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을 통해서 얻은 소중한 교훈이라고 본다.
(홍재희) ====== 지난 반세기동안의 남북대치상태가 그것을 웅변으로 잘 대변해 주지않은가? 조선사설은 또 "남한 내 맹목적 민족화해론자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남한 정부의 노파심을 자아내게 했을 것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남한내에 맹목적인 민족화해론자들은 존재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사설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본다. 조선일보가 우호적으로 수십년 동안 접해온 자유총연맹 조차도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면서 남북간의 갈등치유에 발벗고 나서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홍재희) =======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적 시각에서 한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한 방상훈의 냉전 수구적인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오늘자 조선사설은 변화와 개혁의 길로 나서고 있는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자유북한방송’의 역할에 대해 옹호하면서 한국사회의 민족통합에 대한 합리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의 북한체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맹목적인 민족화해론으로 매도하고 있다. 북한체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상호비방을 통해서 남북이 각기 얻은 것이 없고 오히려 민족내부의 통합보다 갈등을 증폭 시켜왔기 때문에 그러한 과거의 교훈을 남북이 공유하면서 화해교류협력의 새로운 길을 닦아나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자유북한방송’이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자유북한방송’은 냉전 수구적인 조선일보의 부추김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언제부터인가 남한에서는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기 힘들게 됐고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이야기도 듣기가 어려워졌다. 한쪽 눈과 한쪽 귀로만 북한을 보고 듣는 형국이다. 이런 현실은 특히 남북한을 모두 체험해 본 탈북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안겨 준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이야기도 듣기가 어려워졌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에 대해서 묻겠다. 지금까지 반세기가 넘게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와 한국사회가 북한체제를 줄기차게 비판해 왔다고 보는데 그것도 탈북동포들을 이용해 남북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분단체제를 고착화시키며 남북간 증오와 불신의 장벽을 쌓아올리는데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의 모든 역량을 집중 시켜왔는데 그러한 조선일보가 한반도의 현 상황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홍재희) ====== 조선일보가 한번 대답해 보아라? 그래서 조선일보와 한국사회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 남북관계가 진전이 됐는가? 아니면 북한체제를 비판하면서 북한주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졌는가? 전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은 소모적인 상호비방을 남북이 자제하고 있지 않은가? 조선일보는 현재 진전되고 있는 남북간의 각종교류가 조선일보의 지속적인 북한체제의 비판을 통해 비롯됐다고 보는가? 조선일보는 현재 진전되고 있는 남북간의 각종교류가 탈북 동포들의 북한체제 비판에서 비롯됐다고 보는가? 그게 아니지 않은가?
(홍재희) ====== 그리고 지금까지 조선일보는 순수하게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왔었는가? 조선사설은 " 언제부터인가 남한에서는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기 힘들게 됐고 ... 한쪽 눈과 한쪽 귀로만 북한을 보고 듣는 형국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양쪽귀와 양쪽눈으로 북한을 보고 들어왔던 방상훈의 냉전 수구적인 조선일보는 지금도 민족화해와 협력보다는 남북간의 증오와 단절을 통한 반목의 적대적 공존을 전제로 한 대북강경정책을 고수하고 있는가?
(홍재희) ====== 그러한 조선일보의 대북인식이 한반도 문제의 새로운 문제해결방식에 어떠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조선일보는 생각하는가? 조선사설은 "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이야기도 듣기가 어려워졌다. " 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북한체제를 비판할 만큼 비판하지 않았는가? 다원화된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전후세대 국민들이 70~80 %을 점유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자유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이들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다원화된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이기 때문에 일당독재의 북한체제에 대해서 태생적으로 비판적 시각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북한체제를 조선일보 식으로 격렬하게 비판하기보다 자제하고 있는 것은 북한체제가 두려워서가 아니다. 체제경쟁에서 이미 남북간의 우열을 가리는 승패는 남한측의 총체적인 우위로 끝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체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북한체제비판 자제라는 방씨 족벌 조선일보의 주장은 더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
(홍재희)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얻은 것이 중첩되는 증오와 불신을 통해 분단체제의 고착화만을 불러 들였을뿐 한반도 통합이나 민족통합은 고사하고 남북간의 긴장해소에 전혀 도움이 안되었기 때문에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일변도의 방법에서 상호이해의 관점으로 인식을 바꾼 것이라고 본다. 그러한 성숙한 인식을 조선사설이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듣기가 어려운 현실로 호도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북한체제의 모순에 대해서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사람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물론 북한체제는 다원적인 시민사회의 가치관으로 접근해 볼 때 비판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
(홍재희) ====== 그러나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만으로 남북이 통일되고 민족이 하나가되고 적대감이 해소되는 것이라면 지난 반세기동안 북한체제를 맹렬하게 비난해온 조선일보를 비롯한 남한사회의 대북 비판을 통해서 무엇인가 북한체제의 긍정적인 변화가 가시화 됐어야 했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얻은 것이 없다는 점이다. 조선사설은 " 북한의 현실을 한쪽 눈과 한쪽 귀로만 보고듣고 있다고 하는데 조선일보는 북한의 현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조선일보가 북한의 현실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고 있으니까 몇 년전에는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서 평양에서 총살된 것으로 알려진 탈북동포인 유태식씨가 재탈북해 서울에 다시 돌아왔다는 말인가? 조선일보야 말로 북한의 현실을 한쪽 눈과 한쪽 귀로만 보고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홍재희) ======= 조선사설은
" 탈북자들의 강연도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다. 신음과도 같은 탈북자들의 작고 낮은 목소리마저 이 땅에는 발붙이기 어렵게 된 현실이 자유북한방송의 운명에 담겨 있는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탈북동포들의 강연은 남북의 화해협력을 위하기 보다 상호적대적 대립을 부추기는 분단고착세력들의 정권안보용으로 악용돼온 측면이 강했다. 그러한 탈북동포들의 강연을 조선일보가 특히 부추기고 선호했다. 그러한 탈북동포들의 강연이 한국사회에서 먹혀들어 갔던 시절은 과거와 같이 북한체제가 내부의 문을 닫고 있을때에는 탈북동포들을 통해서 만이 북한의 실상에 대해서 알수 있었을 때 활용되었던 방법이라고 본다. 그러나 현재는 남북이 금강산 관광을 가는 바닷길과 하늘 길 그리고 국도와 철도가 연결되는 등 활발한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의 인적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체제의 실상에 대해서 상당부분 남한사회에서 과거에 비해 조선일보가 냉전적인 시각으로 의도적으로 편집해 일방적으로 주입해주던 북한에 대한 상투적인 모습과는 또 다른 실체를 직접 국민들이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지금 이 시대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직시해라? 이 시대는 남북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형성됐던 냉전 체제를 극복하고 상호이해와 협력을 통해 공존공영을 서로 다짐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고 있는 시점에서 남과 북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행위는 한국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탈북동포들이 운영하고 있는 ‘자유북한방송’도 그러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내용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홍재희) ====== 현재 한반도에는 북핵과 관련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한 한반도 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반도 주변국가들이 모두 나서 한반도의 정세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대화의 테이블에 나와 6자회담의 형식을 통해 온힘을 쏟고 있는 이러한 시점에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이 한반도 상황의 긍정적인 진전과 남북간의 분단으로 형성된 이질감 해소에 어느정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수 있다고 장담하는지 ‘자유북한방송’측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수 없다. 뿐만아니라 남북의 화해협력에 대해서 철저하게 반대하고 있는 조선일보도 이번 기회에 정신차려야 한다.
(홍재희) ======= 조선일보는 햇볕정책을 반대했다. 그리고 북한동포들을 돕는 것에 대해서도 대북 퍼주기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며 비판해 왔다. 방상훈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는 햇볕정책을 통해서 휴전선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남북간에 반세기 동안 단절된 철길과 국도를 연결하는 남북한 체제 공동의 사업에 대해서도 냉전수구세력들의 목소리를 빌려 격렬하게 반대했었다. 그러한 조선일보가 이번 룡천 참사때 북한에 대한 구호물자 지원방법에 대해서 가장먼저 육로(경의선국도) 로 할 것을 북한측에 촉구했다. 조선일보와 냉전수구세력들이 단절된 국도를 잇는 사업에 반대할때를 생각해 보면 조선일보는 지금 느끼는 것이 없는가? 조선일보와 냉전수구세력들의 반대논리로 경의선 국도를 연결해 놓지 않았다면 조선일보가 룡천참사 구호물품의 육로 전달이라는 얘기는 입밖에도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일보 알겠는가?
(홍재희) ====== 조선일보와 탈북동포들이 운영하고 있는 ‘자유북한방송’은 한반도 정세와 남북의 체제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변화 그리고 한국사회의 합리적인 대북접근 방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치적 의사표시의 자유가 허용된 대한민국에서 ‘자유북한방송’에 대해 우리가 간섭할 여지는 없다. 그러나 한민족 공동체가 지향해 나가는 대북인식을 한번쯤은 조선일보와 ‘자유북한방송’이 고려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탈북동포들이 운영하고 있는 ‘자유북한방송’이 냉전 수구적인 친일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방상훈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를 너무 믿으면 낭패를 당하게 돼 있다.
(홍재희) ======= 조선일보의 북한체제 비판은 탈북동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보다 가변적이다. 방씨족벌의 조선일보는 숙주나물보다도 쉽게 변질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역사를 우리한번 냉정하게 그리고 주의깊게 살펴 보자. 방씨 족벌의 사적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민족도 배신하고 자유민주주의체제도 짓밟고 민주국가의 인권도 말살하는 데 서슴치 않는 집단이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인 것이다. 지금 북한체제를 비판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일본왕에 충성을 다짐하고 일제가 미국과 맞선 태평양전쟁때 미국과 맞서 싸웠다. 한국사회의 반미 원조가 바로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이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때 방씨족벌의 조선일보는 일제와 한편이 돼서 미국과 맞서 용감하게 싸웠다. 방응모 사장이 일제와 싸우고 있는 미국군과 우리독립군을 살상하라고 고사포를 직접 구입해 일제에 헌납했다고 볼수 있다.
(홍재희) ======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는 일제시대에 친일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방응모 조선일보 사장은 일제시대에 독립군들을 살상하라고 손수 고사포를 구입해 일제에 헌납했다. 그뿐이 아니다. 조선의 숫처녀들을 일제의 종군위안부로 내모는 일제의 나팔수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조선 숫처녀들의 소중한 정조를 유린하는 인격살인을 마다하지 않았다.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의 친일 반민족 행위는 나이 어린 학생들을 일제의 총알받이인 학도병으로 내모는데 적극적인 나팔수 역할을 했다. 탈북동포들도 잘 알다 시피 일제시대에 학도병들이 징병으로 끌려가 수많은 목숨을 잃었다. 그런 조선일보가 지금도 친일 반민족 행위에 대한 반성없이 오히려 민족의 정론지라고 큰소리치고 다닌다.
(홍재희) ======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는 일제가 망하자 일제와 함께 미국과 싸웠던 과거를 훌훌 털고 미국이 한반도에 상륙하자 친미 반공이면 군사독재정권도 용인하던 미국정부의 한반도정책에 편승해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정치질서를 총칼로 짓밟고 헌정질서를 유린한 군사독재정권과 권언유착을 통해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 그리고 언론자유를 말살하는 가해자였고 적극적인 나팔수 역할을 했다. 부연한다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총칼로 파괴한 군사독재정권과 함께 한국사회의 민주화발전을 가로막아왔다. 방씨 족벌은 군사독재정권과 함께 한국의 민주주의를 초토화 시킨 장본인이다. 그런 조선일보가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을 얘기하는 것을 탈북동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홍재희) ====== 이렇듯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 역사를 살펴보면 방씨 족벌이 사적인 이익극대화를 위해서 방씨 족벌은 일제시대에 민족반역의 친일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를 저질렀고 일제가 망하자 미국에 기대서 군사독재정권이 대한민국헌법을 유린하며 민주정치를 짓밟을 때 그들 방씨 족벌의 이익을 위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탄압에 앞장선 나팔수 역할을 적극적으로 했다. 그때 군사독재정권이 언론탄압을 할 때 조선일보도 같은 언론탄압의 가해자 였다. 군사독재 정권이 망하자 방씨 족벌은 군사독재정권을 찬양하는 것에서 비판적 입장으로 변신의 옷을 다시 갈아입고 있다. 오늘자 조선사설이 전두환의 부정축재자금을 비판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홍재희) =======그러한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 행태를 보면 지금까지 방씨 족벌이 북한체제를 비판해 왔지만 언제 또다시 방씨 족벌의 필요에 의해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을 거둬 들일지 알 수 없다. 방씨 족벌과 같이 바람에 휘날리는 버드나무처럼 시류에 잘 편승하는 집단도 한반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천하의 매국노 이완용도 자신의 일생동안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에 만족해야 했지만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는 일제와 군사독재체제 민주정치체제에 이르기 까지 민족을 배신하고 민주화를 탄압 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정치체제와 세세손손 유착관계를 유지하며 대를 이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 지하에 누워 있는 이완용이 깜짝 놀라 일어나 방씨 족벌의 발아래 무릎꿇고 스승으로 모시기를 간청하지나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홍재희) ====== 그런측면에서 접근해 볼 때 ‘자유북한방송’이 조선일보를 너무 신뢰해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을 파괴하는데 기여한 군사독재정권과 함께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신장의 목을 조른 가해자 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북한동포들의 인권문제를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그 좋은 예가 몇 년전 북한동포들이 적게는 수십만 많게는 수백만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을 때 대한민국사회에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굶어 죽어가는 북한동포들을 돕기 위한 운동이 자연발생적으로 벌어지자 대북 퍼주기라고 비판하며 반대하면서 동포들의 인도주의적인 대북지원의 쪽박을 깨뜨린 것이 바로 방상훈의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수구적인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인 것이다. 이들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북한동포들의 인권을 얘기하고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것은 한마디로 넨센스이다.
[사설] 이 나라에서 탈북자는 신음도 낼 수 없나(조선일보 2004년 5월13일자)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자유북한방송’이 둥지를 잃게 됐다. 15평 사무실을 내주어 인터넷 방송을 할 수 있게 해준 북한연구소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테러를 하거나 소동을 벌일지 모른다”며 나가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전후 사정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지난번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은 이 방송을 중단시키라고 우리 정부에 요구했다. 건물주인 북한연구소에는 왜 사무실을 빌려주었느냐는 협박전화가 여기저기서 수시로 걸려온다고 한다.
한민전이라는 북한 단체는 “범죄자들의 사이비방송을 폭파시키고 더러운 역적들의 명줄을 끊어 버려야 한다”고 위협했다. 북한과 우리 내부로부터 가해지는 갖가지 압력을 건물주 혼자 견뎌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자유북한방송은 직원 2~3명에 하루 1시간 방송이 고작이다. 탈북자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최소한의 장비를 갖춘 초미니 규모다. 인터넷 방송이라 북한 주민들은 듣지도 못한다. 남북관계 뉴스와 탈북자들의 육성 수기, 황장엽씨 강좌 등으로 짜여진 방송 내용은 북한의 실상을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이 북한 당국의 비위와 남한 내 맹목적 민족화해론자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남한 정부의 노파심을 자아내게 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남한에서는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기 힘들게 됐고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이야기도 듣기가 어려워졌다. 한쪽 눈과 한쪽 귀로만 북한을 보고 듣는 형국이다. 이런 현실은 특히 남북한을 모두 체험해 본 탈북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안겨 준다.
탈북자들의 강연도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다. 신음과도 같은 탈북자들의 작고 낮은 목소리마저 이 땅에는 발붙이기 어렵게 된 현실이 자유북한방송의 운명에 담겨 있는 것이다.
입력 : 2004.05.12 18:29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