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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가 꼬리내린 충격기사! ALIVE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기사에 대해서는, 불리한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소송도 불사하며 개거품을 물면서 달려들고 때때로 어용방송 KBS MBC를



총동원해서 깍아내리기에 열을 올리는 한국 청와대는 참으로 이상하게도



주간문춘(週刊文春) 2004년3월25일호 충격기사에 대해서는 구차하게



항의하는 선에서 그치며 꼬리를 살며시 내렸다. 이유는 소송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상업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웃기지 않은가? 주간문춘은 청와대에 북조선 스파이가 침투되어 있다고



하는데 왜 반론도 한마디 못하는지?



이것이 간접적인 시인으로 보이는데도 아직까지도 청와대에서는



아무런 대응이 없다.









■ 노무현 탄핵의 진실



청와대에 북조선 스파이가 침투되어 있었다



한국 친북 정권의 죄(罪) 제2탄



가토 아키라(加藤昭), 저널리스트



주간문춘(週刊文春) 2004년3월25일호



「우리는 마침내, 남조선 정권의 중추에 "거점" 구축에 성공하였다」



2003년2월말,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 북조선의 명승지 금강산 암벽에 위와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고, 한국 국회에서도 문제시된 바 있다.



그로부터 약 1년, 노무현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한국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소추 이유는, 노무현이 선거 중립 의무를 파기하고 사실상의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던 것인데, 이것은 문제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현수막의 건은, 노무현과 북조선 사이의 이상한 밀착적인 태도가 폭로된 사건이었는데, 이러한 노무현에 대한 불만이 이번에 한꺼번에 폭발된 것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실제로, 가결 직후인 3월14일, 북조선은 「탄핵은 야당에 의한 쿠데타」라고 격렬하게 비난, 노무현에 대한 원호사격(援護射擊)으로 나왔다.



역으로 한국 정부의 내외(內外)로부터는, 2003년 이후, 노무현에 대한 고발의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다.



「작년,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로서 연설을 하고 있었을 때에, "북조선과의 관계만 잘 이루어지면, 나머지 일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 라고 함부로 말해서 큰 소동이 일어났었다. 노무현은 그 당시부터 "김정일 위원장은 약자의 편이다. 빠른 시일 안에 평양 방문이 이루어져, 꼭 한번 만나고 싶다." 라는 말을 흘려, 비서진에게 그 시기를 만들도록 시키고 있었다」[한국 국가정보원 관계자]



3백만 명이나 되는 국민을 굶겨 죽인 독재자를, '약자의 편'이라고 한 것은 정상적인 소식이라고는 보기 어려우나, 이러한 친북 발언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셀 수가 없다.



「대통령 취임 직후, 육·해·공 3군의 수뇌들을 모아놓고 노무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주한미군 철수 후의 전략과 군사 시뮬레이션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싶다." 미군 철수를 거론한 한국 대통령들은 과거에 1명도 없었고, 미군 없는 군사 정책 또한 상정(想定)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죽 늘어앉은 3군의 장군들은,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들었다」[국방부 관계자]



주한미군의 어느 준장도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군사 기밀 유지가 매우 곤란하게 되었다. 군사 연습(演習) 등의 중요 의제를 얘기한 후,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사이에 그 내용이 평양에 곧바로 누설되고 있다. 그래서, 미끼 정보를 흘려보았는데, 어찌어찌 하여 핫라인을 통하여 기밀 정보가 흘러나가고 있는 사실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핫라인이란, 2000년의 남북 수뇌회담 후에 부설(敷設)된 남북간 최고 수준의 직통 전화를 말하는데, 놀랍게도 이 전화가 미군의 기밀 누설 루트로서 사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2003년 5월 노무현의 방미(訪美)에서 부시 대통령이 겨우 30분밖에 회담 시간을 할애 하지 않은 것도, 노무현에게 수뇌들의 비밀은 말할 수 없다 라는 판단이 작용하였기 때문」[국방부 관계자] 이라는 지적도 있다.



왜 노무현은 미국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노골적으로 북조선에 접근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일까? 「그 이유는 노무현을 둘러싼 두뇌의 멤버들에 있다」라고 한국 국가정보원의 고급 간부가 해설한다.



「노무현의 정책 입안에는 변호사 시절의 동료인 '민변(民辯) 그룹'이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386 세대'[현재 30대로,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1960년대 출생자]에 속하는 그들 대부분은, 학생 시절에 反정부 활동에 관계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반미(反美)의 입장에서 북조선에 동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은 변호사 시절, 체포된 과격파 학생의 국선 변호인의 일을 많이 처리해 왔다. 그러한 좌익 과격파의 사람들이 노무현의 측근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국정상황실장으로서 여론(輿論)의 동향을 감시하고, 공안(公安) 문제를 담당하는 이광재[2003년 10월에 사임], 대통령의전팀장인 서갑원 등이, 노무현이 동지로서 대우하고 있는 사람들이다」[국가 정보원 관계자]



정평있는 고영구 국가정보원 원장, 서동만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 "친북 3인조"이다.



한국군 사령부 간부가 말한다. 「고영구는, 전에 북조선 공작원 김낙중을 평화주의자 라고 옹호하여 즉시 석방을 요구했고, 장기간 反국가 단체로서 감시 받아온 한통련(韓統連)[재일 한국 민주 통일 연합]의 명예회복을 운동하는 조직의 대표로도 일하고 있었다」



서동만도 북조선에 동정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고, 거듭되는 서해에서의 북조선의 군사적 도발에 대하여 「우발적인 사건이고, 김정일의 지시는 아니다」라는 주장을 반복해왔다.



이 두 사람의 인사로, 국정원 내부는 공황(恐慌)에 빠졌다. 「사임(辭任)을 결심한 사람들도 몇 명 있다. 그것은 그럴 것이다. 전신(前身)인 안기부 시절로부터 장기간 주적(主敵)으로서 철저히 배워온 북조선에 대하여, 하필이면 동정심을 표명하는 책임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다」[안기부 前 직원]



2003년 4월, 노무현이 국정원 원장에 고영구를 지명하여 열린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는, 고영구의 자질이 여러 가지 각도에서 검증되었는데, 그 중에서, 어느 일본인의 이름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질문에 나선 야당 한나라당의 이윤성 의원과, 고영구의 증인으로서 출석한 앞서 언급한 서동만과의 말다툼이다.



이 의원 「와다 하루키(和田春樹)가 친북 학자로서 [파일 상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나?」



서 증인 「잘못된 분류이다. 나는 정반대의 평가도 듣고 있고, 특히 북조선 문제에 관한 한, 가장 양심적인 태도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학자의 한 사람이다」



와다 하루키란, 구(舊) 소련과 북조선의 전문가로서 알려진 도쿄대학 명예교수다. '김일성과 만주 항일전쟁' 등의 저서를 가진 진보적 문화인의 한사람인데, 2003년 일본인 납치 사건에 관한 북조선 옹호 발언으로 빈번한 비판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1956년생인 서동만은, 1975년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진학하여 좌익 운동에 몸을 던져, 1978년에 체포된 경력이 있다. 8개월 간의 구류를 거쳐 석방된 서동만은, 1986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와다의 문하생이 되었다.



서동만은 와다 밑에서 약 10년간 배우고, 1995년에 '북조선에서의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 1945-1961'이라는 박사논문을 쓰고 있었다.



앞에서 나온 국정원 관계자는, 이 박사논문에는 중대한 의심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박사논문의 참고문헌으로서 '조선 전사(全史)', '조선노동당 약사(略史)', '조선노동당/역사 교재' 등, 북조선의 원서가 죽 나열되고, 말미에 '북조선 인명록(人名錄)'이 부록으로 붙어 있다. 서동만이나 와다 연구실은 이들 저서를 어디에서 입수한 것일까」



'북조선 인명록'은 조선노동당, 정부, 여러 사회단체 등의 간부의 이력이 망라되어 있어, 반출·공표는 엄금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북조선 인명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그들이 북조선과 통하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와다의 영향력은 서동만에게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NSC 사무차장인 이종석도 와다와 친근한 사이이다.



1958년생인 이종석은, 성균관대학 대학원 시절부터 북조선 연구에 몰두하면서, 김일성이 제창한 주체사상에 빠져들어 갔다.



「이종석은 1992년, 와다의 저서 '김일성과 만주 항일 전쟁'을 번역하고 있다. 또, "북조선의 주거 이전, 여행 자유의 제한은, 사회주의의 특성이고, 남북 군사 대립 하에서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방위적인 조치다.", "김정일은 오케스트라의 연주 중, 어느 연주자의 반음(半音)의 실수까지 들어서 알만큼 음악에 조예가 깊다." 등 많은 북조선 찬양의 발언을 하고 있기도 하다」[안기부 前 직원]



한국 국방 회의의 어느 간부도, 「이종석은 핫라인을 구사(驅使)하며, 북조선과 매일같이 접촉하고 있다. 그것은 NSC 사무차장인 그의 전권(專權) 사항임엔 틀림없으나, 이종석이 국가 기밀을 누설하고 있지는 않은가 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라고 의심의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이러한 사항으로부터, 최근에는 "와다 사모설(思慕說)" 까지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서동만, 이종석을 중심으로 하는 그룹이 북조선 주도의 통일 헌법 초안을 준비하고 있는데, 와다가 나쁜 꾀를 넣어주는 것은 아닐까」[국정원 관계자]



한국에서는 북조선과의 통일 헌법안을 의논하는 것은 허락되어 있으나, 초안(草案)의 명문화나 발표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헌법 조문이 여전히, 북조선을 주적(主敵)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초안 만들기의 중심은, 임동원 前 대통령특별보좌관. 김대중 정권 하에서 '햇볕정책'을 추진하여, 남북 수뇌회담의 주역이 된 남자이다. 그룹은 임동원 이외에 5명이 더 있다고 하는데, 임동원은, 서동만과 이종석이 초안을 OK 하기만 하면 북조선이 받아들일 가능성도 클 것이라 보고, 2명을 참가시킨 것 같다」[국정원 관계자]



2003년 초, 국정원의 극비 조사로 충격적인 사실이 발각되었다. 하필이면, 북조선의 거물급 공작원이 청와대에 잠입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젊은 측근의 한 사람이고, 대통령에 대해서도 일정한 영향력을 가진 중요 인물로, 전에 활동가의 과거를 갖고 있고, 서동만이나 이종석과도 친하다」[국정원 관계자]



임동원의 존재가 분명해진 것은, 북조선의 '공작 지령서'를 주고받는 현장을 국정원이 덮쳤기 때문이다. 좌익 운동의 연락원 역을 맡은 남자를 장시간에 걸쳐 심문한 바, 마침내 지도적인 입장에 있는 남자의 이름과 지위를 자백한 것이다.



A4 용지로 28장에 걸친 지령서의 날짜는 2003년 1월. 표지에는 이렇게 써 있다. "역사적인 6·15 남북 공동 성명 실현을 위한 대중적인 투쟁의 조직과 지도방법"



전례에 따라 남한에서의 무장 봉기의 기회를 잡으라고 격문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지령서를 받아야 할 상대가 청와대 관계자였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청와대에 북조선의 공작망은 어느 정도까지 둘러쳐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서동만이나 이종석은 북조선과의 관계가 어디까지 깊어져 있는 것일까.



서동만과의 관계에 대하여, 와다 하루키 교수에게 물었다. 「서동만 군과는, 서울을 방문하면 거의 매일 만나고 있다. 서동만은 나의 연구실에 적(籍)을 두고 있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다지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다. 한국 국회에서 나와의 사제관계가 문제시 되어, 서군의 입장에 악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와다에게는 '북조선-유격대 국가의 현재'[1998년] 라는 저서가 있다. 이 저서의 집필 동기나 타이틀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1974년, 김정일이 명확히 내세운 나라만들기의 지침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 유격대 식으로"에서 유래한다. 나는 2000년부터 북조선 일본 국교(國交) 촉진 국민 협회 사무국장의 입장에 있는데, 국교가 정상화되어 항일이라는 머리 글자가 떨어져나가기만 하면, 북조선의 체제는 바뀐다고 생각해왔다. 하루빨리 국교정상화를 바라는 입장으로 말하자면, 북조선을 불쾌하게 하는 듯한 이름 부치기는 좋지 않다. 북조선을 비판만 하고 있어서는, 국교 정상화 등은 언제까지라도 실현되지 않는다」



와다는, 정상화가 되기까지는 북조선의 인권 억압 사실에는 눈을 감겠다고 공언함에 거리낌이 없다. 일본인 납치 문제에서도 북조선을 옹호했는데, 그 어느 것도 매우 정치색 짙은 발언으로, 일개 학자의 태도와는 걸맞지 않는 점이 있다.



나는 와다에게, 「당신은 조선반도를 배회하는 요괴(妖怪)다」라고 말했으나, 조선반도에는 와다 이외에도 김정일이나 김대중, 노무현 등 다수의 "요괴" 들이 발호(跋扈)하고 있다. 이번 대통령 소추를 받고, "요괴"들은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그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일본의 안전보장 따위는 삽시간에 날아가 버릴 것이다.



[문장 중 경칭은 생략했음]









日주간지 盧대통령 비하 파문



한국일보 2004-04-07 17:43:00



일본 주간지 '주간문춘(週刊文春)'이 한국 정권을 "친북 정권"으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요괴(妖怪)" 라고 표현한 기사를 게재했다가 주일한국대사관의 항의를 받아들여 유감을 표명하는 후속 기사를 게재할 예정이다.



주간문춘은 지난달 25일자 호에 '노무현 탄핵의 진실, 청와대에 북의 스파이가 침투해 있었다'는 제목으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가토 아키라(加藤昭)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남북 핫라인이 미군 기밀의 누설루트로 사용되고 있다", "고영구(高泳耉) 국정원장, 서동만(徐東挽) 국정원 기조실장, 이종석(李鍾奭) 국가안보회의 사무차장이 '친북 3인조'" 라는 등의 주장을 폈다.



또 "한반도에는 김정일(金正日), 김대중(金大中), 노무현 등 다수의 요괴가 발호하고 있다"면서 "대통령 탄핵에 요괴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잘 살피지 않으면 일본의 안전보장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와 한국대사관은 한때 이 주간지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 등 법적 대응도 검토했으나 소송이 장기화하고 오히려 상업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고 판단, "한국 국가원수와 한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강력히 항의하는 선에 그쳤다. 이에 따라 8일 발매될 주간문춘은 정정기사가 아닌 편집부 견해 형식으로 유감을 표명하는 기사를 실을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기사가 실렸던 3월25일자 호는 다나카 마키코(田中眞記子) 전 외무장관의 딸 이혼 사실을 실었다가 다나카측이 낸 발매금지가처분 신청이 도쿄(東京)지방재판소에서 받아들여져 한때 배포가 금지됐었다. 그러나 주간문춘의 항고를 받아들여 도쿄고등재판소가 발매금지가처분 결정을 취소하는 등 이 법정 공방이 화제가 되면서 인쇄분이 모두 팔려나갔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