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폭락 진짜 이유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부족이 주가폭락의 최대 요인"
머니투데이 2004/05/10 17:22
증시가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3일 동안이나 속절없이 내린 빗방울이 투자자들의 눈물이 되어 시세판을 시퍼렇게 멍들게 했다. 모래 위에 지은 화려한 누각(沙上樓閣)이 손댈 틈도 없이 한순간에 붕괴되듯, 외국인에 의해 급등했던 주가는 주식을 팔 기회도 주지 않고 투자자들에게 한숨만 남긴 채 폭락하고 있다.
10일 종합주가지수는 한때 771.31까지 떨어졌다가 전주말보다 48.06포인트(5.73%)나 떨어진 790.68에 마감됐다. 지난주말 819에서 반등에 성공해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820선은 지켜질 것이라던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찬 폭포의 물줄기처럼 주가는 밑바닥이 깨진 독에 부어진 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코스닥종합지수는 28.84포인트(6.61%) 급락한 407.41에 거래를 마쳐 400선마저 위협당했다.
주가가 오른 종목은 거래소 77개, 코스닥 91개에 불과한 반면 하락종목은 거래소 699개, 코스닥 741개나 됐다. 용천의 폭발사고와 체첸공화국의 폭탄테러가 한꺼번에 터진 듯, 증시는 영문도 모른 채 폭삭 주저앉았다.
# 이라크 송유관 화재, 국제유가 급등, 아시아증시 동반하락 등이 폭락 초래
물론 이유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라크에서 송유관 화재가 일어나 원유수출이 중단될 것이라는 우려감이 긴가민가하던 증시를 강타했다.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격이 배럴당 4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국제유가를 더욱 끌어올릴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된 탓이었다.
이 여파로 일본 닛케이평균주가가 554.12엔(4.84%)이나 떨어진 1만884.70에 마감돼 1만선도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대만 자취안지수도 215.21엔(3.56%) 떨어진 5825.05에 마감돼 6000선이 무너졌다.
지난주말 19.78포인트(1.02%) 떨어진 1917.96에 마감됐던 나스닥지수도 추가하락이 우려되고 있다. 나스닥선물지수가 13포인트(0.92%)나 떨어져 1900선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좋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예상보다 빨리 6월에 금리를 올릴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릴 경우 그동안 약세였던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고, 약세 달러를 피해 미국을 이탈해 아시아로 흘러들어왔던 투자자금이 미국으로 되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최근 한국과 아시아에서 주식을 내다파는 것도 자산재분배 과정이라는 분석이다. 이날 원/달러환율이 급등(원화가치 하락)해 달러당 1180원대로 올라선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중국이 긴축정책을 펴고 있어 중국 경제의 활황이 일단락되고 있다는 ‘차이나쇼크’도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는 요인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보면 최근 주가 폭락은 해외 악재로 인한 외국인 매도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경제는 회복국면에 있고 기업들은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있기 때문에 한국 주가가 급락하는 것은 이웃을 잘못 만난 탓이라는 억울함을 나타내는 사람도 없지 않다.
#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부족이 주가하락의 진짜 이유
하지만 주가가 폭락하는 진짜 이유는 해외 요인보다는 국내 요인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가장 큰 요인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재의 (기각) 결정이 임박하면서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집권2기’ 정책에 대한 불안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모건스탠리와 ABN암로증권에 이어 미국의 해리티지재단 관계자가 민노당을 잇따라 방문하고 있는 것은 노동문제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기각 결정으로 다시 전면에 나설 때 성장보다는 분배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아 외국인들이 한국을 불안하게 보는 것이 외국인 매도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투자자문사 사장도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에 대해 거래신고제가 시행되면서 부동산 경기도 급랭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참여정부가 본격적으로 가진 사람들을 압박하는 정책을 펼 것으로 우려한 큰손들이 주식을 팔고 있는 것도 주가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날 외국인은 거래소에서 321억원어치 순매도하는데 그쳤다. 6980억원어치 팔았지만 6659억원어치를 샀다. 순매도이긴 했지만 종합주가를 48포인트나 끌어내릴 정도로 내다 판 것은 아니었다.
외국인은 또 주가지수선물을 8688계약(4530억원)이나 순매수했다. 비록 주가지수옵션 시장에서 콜옵션을 10만8167계약 순매도하고 풋옵션도 3만5209계약 순매도했지만, 주가가 더 하락하는데 배팅하기 보다 상승반전에 무게를 둔 매매로 분석된다.
# 13개월 동안의 상승추세 꺾여..다시 상승세로 돌아서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
이날 종합주가 폭락으로 120일 이동평균이 전주말보다 0.05포인트 떨어진 849.97을 나타냈다. 120일 이동평균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작년 6월20일 오름세로 돌아선 이후 11개월만의 일이다. 120일 이동평균은 시장 추세를 나타내는 중요한 추세선이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것은 증시가 상승세를 멈추고 하락으로 돌아섰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지난 2002년 7월24일 120일 이동평균이 상승에서 하락으로 돌아선 뒤 종합주가는 2003년 3월17일 515.24까지206.17포인트(28.6%)나 폭락했다. 2002년 4월18일(937.61)보다 216.2포인트(23.0%)나 하락한 뒤 추가로 그보다 더 많이 떨어진 것이다.
종합주가가 10일(거래일기준)만에 146포인트(15.6%) 급락했지만 앞으로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특히 20일 이동평균(892.21)이 60일 이동평균(883.37)을 위에서 아래로 돌파하는 중기 데드크로스가 이르면 11일, 늦어도 12일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약세국면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에셋증권 이정호 투자전략팀장은 “투매 양상 없이 매수세 실종으로 주가가 급락함으로써 주가는 더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며 “미국 나스닥지수가 앞으로 5% 더 떨어지고 외국인 매도가 이어지면 종합주가지수는 740~700까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주식에 세일은 없다
# 삼성전자도 120일 이동평균 밑돌아.... 추가 조정 가능성 높지만 단기 반등 노린 매수 타이밍
이날 삼성전자는 전주말보다 무려 3만1000원(5.74%) 떨어진 50만9000원에 마감됐다. 최근 10일 동안 12만8000원(20.1%)나 폭락해 120일 이동평균(52만688원)이 맥없이 무너졌다. 외국인이 이날도 삼성전자를 15만주(779억원)를 순매도해 주가급락을 부채질했다.
외국인은 지난 7일 삼성전자를 5만여주 순매도하는데 그쳐 매도세가 일단락된 듯 보였지만 이날 주가 급락에도 불구하고 다시 매도물량을 늘려 추가하락에 대한 우려를 크게하고 있다. 외국인 매물이 일단락되면 낙폭과대에 대한 반등이 기대되나 당장은 상승하기에 어려운 상황이다.
10일밤 뉴욕 증시가 하락하고 11일 오전 한국 증시도 한차례 더 하락해 삼성전자 주가가 50만원 밑으로 떨어지면 매수를 검토해볼만한 타이밍으로 보여진다.
홍찬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