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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道知事 투신에 비친 시대의 그림자 에 대해서

조선 [사설] 道知事 투신에 비친 시대의 그림자 에 대해서







(홍재희) ====== 방상훈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 박태영 전남 지사가 29일 한강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박 지사는 과거의 비리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이 때문에 수사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이 자살의 이유가 됐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뿐이다. 박 지사의 자살이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빚어진 인격적 모욕감을 견디지 못한 때문인지 여부는 밝혀내야 한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먼저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고인의 명복을 빈다. 오늘자 조선사설은 박태영 전남 지사가 왜 29일 한강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정확히 알수 없다고 해 놓고 조선사설은 막연한 추측을 통해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빚어진 인격적 모욕감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것인지 밝혀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조선사설의 주장은 이율배반적이다. 道知事 투신에 비친 시대의 그림자 속에는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이 권언 유착을 통해 유지해 왔던 수구정치속에서 형성된 정경유착의 구조적인 부패정치 끝자락의 혼이 담겨져 있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한 개인이 스스로 택한 죽음을 놓고 이런저런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박 지사의 자살동기나 배경과는 무관하게 그의 죽음이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최근 들어 부쩍 사회지도급 인사들의 자살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한 개인이 스스로 택한 죽음을 놓고 이런저런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일보 사설은 지난 한해 동안 노동자인 김주익씨 배달호씨 이용석씨가 목을 매고 혹은 분신을 통해 연이어 자살을 하고 농민이 외국에 까지 나가서 스스로 자결을 하는 등 지난 한해 민생고에 시달리는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놓고 이런 저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지난 조선사설이 지난 1년 동안 독자들에게 선보였던 그 많은 사설 내용 중에 단 한줄도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노동자들 농민들이 택한 죽음에 대해 단한마디도 거론한 내용이 없었다. 조선사설은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홍재희) ====== 그런 조선일보 사설이 안상영 부산시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김인곤 광주대 이사장 등이 이턱 저턱으로 먹다 배가 터질 처지가 되자 차례로 목숨을 끊은 사실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을 하기가 곤란함에도 불구하고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번 조선사설의 주요 화두로 삼고 있다. 특히 오늘자 조선사설이 박태영 전남지사의 죽음과 관련된 논조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박지사와 비슷한 시간에 서울 청계천에서 상업에 종사하는 영세상인이 민생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택한 죽음을 놓고는 조선일보 사설이 이런저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홍재희) ====== 이렇듯이 나타나는 두 가지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조선사설이 한쪽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한쪽에 대해서는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 독자들에게 한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현상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와 접근을 가로막은 결과를 초래한다고 본다. 오늘자 조선사설을 보면 조선일보가 대한민국의 몇몇 특권귀족계층들의 장례를 치르는 집사역할에 충실하는 기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조선일보가 언제부터 한국의 귀족사회에 장례 치르는 집사장 이라는 업종까지 맡아서 하는지 어리둥절하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작년 8월 정몽헌 현대아산회장이 회사건물에서 뛰어내린 이후 안상영 부산시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김인곤 광주대 이사장 등이 차례로 목숨을 끊었다. 각자가 죽음을 택한 이유는 물론 다를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각자가 자살하기 직전까지 처해 있었던 공통점은 하나같이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이 지난 수십년 동안 권언유착과 정경유착을 통해 형성해 놓은 수구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였던 부정부패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그러나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적잖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좌절의 순간에 왜 자신을 통째로 포기해 버리는 것인가. 우리 사회의 숨겨진 한 단면, 또는 어느 때부터인가 자라기 시작한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인식 변화가 이런 비극적인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부정부패와 비리 혐의에 연루돼 자살을 선택했던 사람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얘기해야 한다. 추켜 세울 필요도 없고 폄하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오늘자 조선사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각종비리와 추문 과 부패혐의로 조사받다 자살을 택한 사람들에 대해 교묘한 미화작업을 하고 있다. 조선사설이 주장하고 있는 자살한 사람들이 사회지도급인사들이라면 그들이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지도급인사의 자격이 없다고 본다.







(홍재희) ====== 지금 한국사회는 조선사설이 미화하고 있는 자살한 유명인사들 보다 더 열악하고 처참한 삶의 질곡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건강한 시대적 정신을 지닌 풀뿌리들이 대한민국을 떠받치며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건강한 시대정신을 이끌고 한국사회의 미래를 비추는 등대역할을 해야할 지도급인사들이라면 무책임하게 자살이라는 방법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조선일보 안그런가?







(홍재희) =====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아야' 하고 고통스러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살아가는 대다수 풀뿌리들에 대해서 면목이 있는 사회지도급인사들이라면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자신을 덥쳐 온다해도 자살이라는 무책임한 방법으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회지도급인사 일수 없고 또 공인의 자격이 없다고 본다. 그들 보다더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조선일보는 더 이상 자살하는 이른바 유명인사들을 미화하지 말라?







(홍재희) ======== 조선사설은



" 비단 유명 인사가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의 중노년층에게는 성공과 좌절의 반전(反轉)이 예기치 않게 너무나 극단적인 모습으로 몰아닥치고 있다. 평생을 바쳐 이룬 성취와 지위가 어느 한순간에 구렁 속에 매장되는 그 삶의 돌연변이를 견뎌내기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을 것이다. 변화와 개혁이란 ‘추상명사’가 시대를 휩쓸어 가면서 젊음의 에너지만이 모든 것인 양 여겨지는 흐름 속에서 중년층 이상의 소외감과 무력감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이 권언유착을 통해 반세기 동안 추구해온 수구정치의 산물인 정경유착의 구조가 시대적 변화속에 붕괴되면서 정경유착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유명세를 각인시켜온 사람들이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도태의 길을 선택하는 것을 가지고 변화와 개혁이 때문에 그들이 죽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조선일보의 억지이다.









(홍재희) ====== 그리고 조선사설이 거론하고 있는 그들의 죽음만이 문제가 아니다. 성장제일주의를 주장하며 재벌경제체제를 추종하면서 부추기고 있는 조선일보가 선호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시장경제체제 때문에 파생된 부의 양극화 현상과 빈부격차의 심화 그리고 개방의 파고에 무방비로 내몰리고 있는 농민들과 열악한 노동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한해 동안 무수히 목숨을 끊은 노동자 농민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오늘자 조선사설이 단 한줄의 입장표명도 없다. 이러한 조선사설이 연말연시가 되면 연례행사 처럼 빈곤계층 소외계층을 위한 답시고 사설난을 장식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우리 언론소비자들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홍재희) ===== 이러한 조선일보의 겉 다르고 속다른 변신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방씨 족벌의 수구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그때그때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하는 것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 볼 때 오늘자 조선사설의 내용에서 잘 드러나듯이 부자들의 배부른 죽음에 대한 조선일보의 찬미와 미화는 있어도 불쌍하게 죽어간 노동자 농민등 우리사회공동체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서는 죽음같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조선일보 사설의 태도 속에서 대한민국 공동체의 목소리가 담긴 정론을 찾을 수 가 없다고 본다.









[사설] 道知事 투신에 비친 시대의 그림자(조선일보 2004년 4월30일자)







박태영 전남 지사가 29일 한강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박 지사는 과거의 비리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이 때문에 수사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이 자살의 이유가 됐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뿐이다. 박 지사의 자살이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빚어진 인격적 모욕감을 견디지 못한 때문인지 여부는 밝혀내야 한다.



한 개인이 스스로 택한 죽음을 놓고 이런저런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박 지사의 자살동기나 배경과는 무관하게 그의 죽음이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최근 들어 부쩍 사회지도급 인사들의 자살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8월 정몽헌 현대아산회장이 회사건물에서 뛰어내린 이후 안상영 부산시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김인곤 광주대 이사장 등이 차례로 목숨을 끊었다. 각자가 죽음을 택한 이유는 물론 다를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적잖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좌절의 순간에 왜 자신을 통째로 포기해 버리는 것인가. 우리 사회의 숨겨진 한 단면, 또는 어느 때부터인가 자라기 시작한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인식 변화가 이런 비극적인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비단 유명 인사가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의 중노년층에게는 성공과 좌절의 반전(反轉)이 예기치 않게 너무나 극단적인 모습으로 몰아닥치고 있다. 평생을 바쳐 이룬 성취와 지위가 어느 한순간에 구렁 속에 매장되는 그 삶의 돌연변이를 견뎌내기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을 것이다. 변화와 개혁이란 ‘추상명사’가 시대를 휩쓸어 가면서 젊음의 에너지만이 모든 것인 양 여겨지는 흐름 속에서 중년층 이상의 소외감과 무력감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입력 : 2004.04.29 18:25 16' / 수정 : 2004.04.29 19:04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