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효과`인가 `박근혜효과`인가
대통령직무정지중 증시 잘돌아가는 까닭
뉴스앤뉴스 2004/04/12 08:31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후 등락을 거듭하던 종합주가지수가 7일 909.93을 기록하며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지난 달 4일 907.43을 찍은 이후 한 달만의 일이다. 시가총액도 1999년 8월 25일 305조 원을 기록한 이후 4년 7개 월 만에 401조 5,820억 원을 돌파했다. 종합지수는 노 대통령이 탄핵되던 3월 12일 근 30 포인트나 빠져 840을 기록했다. 탄핵 이후 25일 동안 57 포인트 오른 셈이다.
이른바 탄핵정국으로 증시주변 상황이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지수가 상승하는 걸 두고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온다. 국제경제의 회복 무드와 증시 내적인 여건 호전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지만 증시외적인 몇 가지 분석이 관심을 끈다. 하나는 ‘박근혜 효과’이고 또 하나는 `노무현 효과‘이다.
이 두 가지 이론은 따지고 보면 본질은 같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가 등장하면서 열린우리당으로 쏠렸던 표심이 이동했다. 거대 여당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열우당은 한 때 3분의 2 의석을 예상하면서 표정관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동영 의장의 노인 비하 발언과 문성근, 명계남씨의 분당 발언으로 국면은 반전되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수 상승은 ‘박근혜 효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이를 ‘노무현 효과’로 분석한다. 불안을 조성하는 말을 자주 하는 노 대통령이 직무정지상태에 들어감에 따라 투자심리가 안정되었다는 것이다. 관점에 따라 표현이 다를 수 있지만 결국 동전의 양면과 같은 얘기다.
탄핵정국 속에서의 증시활황은 암시하는 바가 크다. 주식을 사는 것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탄핵과 총선이라는 두 가지 가변요인을 앞두고 증시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지난 10일 동안 외국인은 ‘사자’ 공세를 벌였고 개인과 기관은 매도에 치중했다. 이 기간 중 외국인의 순매수액은 4,970억 원을 기록했다. 열우당이 야당의 “의회 쿠데타”로 헌정이 중단되고 국정이 마비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외국인들은 한국의 장래를 밝게 보고 있다는 증거다.
외국인들은 시가총액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주식을 사면 지수는 오르고 팔면 내리는 게 증시의 생리다. 이들은 사실상 증시를 좌우하는 투자 전문가들이다. 이들이 왜 ‘사자’를 계속했을까?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노 대통령의 부작위가 증시에 선(善) 기능을 했다고 말한다. 그의 칩거를 외국인들은 안정요인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증시 랠리(Rally)는 ‘노무현 효과’에 더 가깝다.
그러나 ‘박근혜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박 대표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과 함께 차분한 말투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갔다. 이에 비해 정동영 의장은 총선을 “민주 대 反민주” 구도로 설정하면서 거대 여당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심지어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정이 나오든 극도의 혼란이 예상됨으로 이를 막기 위한 여야 대표회담을 제의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은 혁명적 분위기까지 풍겼다. 이런 접근은 투자심리에 독약이 된다.
국정 일선에서 노 대통령이 사라진 후 증시에는 3대 기록이 수립되었다. 외국인의 대량 매수에 따른 지수의 최고치 경신, 시가총액 400조 원 돌파, 삼성전자의 60만 원 대 진입이 그것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지수의 1,000 포인트 돌파까지 전망한다.
이런 장밋빛 예측에는 물론 ‘노무현 효과’ 외에 다른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세계의 반도체 가격이 상승세를 타면서 외국 투자자들은 주로 IT 주식을 사들이는 ‘바이 코리아’(Buy Korea) 전략을 동원했다. 삼성증권의 조사에 의하면 개인 투자자들도 증시 전망을 낙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월 중 주식투자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비율은 전월보다 4% 늘어난 36% 선에 이르렀다.
증시가 상승행진을 지속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것이 ‘박근혜 효과’냐 ‘노무현 효과’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 랠리가 한국 금융시장의 성숙과 우리 경제에 대한 외국인의 신뢰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다만 탄핵이 없는 상황에서보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증시가 더 잘 돌아가는 역설적 기능이 씁쓸한 뒷맛을 안겨줄 뿐이다.
김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