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게시 판에 이미 밝혔듯이 저는 더 이상 한국 정치에 관여하지않습니다. 제가 고교 평준 화 등에 제 의견을 한국의 언론 사 게시 판에 쓴 적이 있지만 그것은 한국의 정치 권과 각 정당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제 의견이었습니다. SBS에서 마치 자민련과 한나라 당이 제 의견에 가장 가까운 교육 정책을 제시한 것 처럼 보도했는데요. 우선 저는 자민련과 한나라 당을 반대합니다. 저는 그 정당들이 제 의견을 반영한 정책을 제안한다고해도 그 정당들을 반대합니다. 자민련과 한나라 당의 뿌리가 어딥니까? 독재자 박정희의 공화 당과 박정희가 키운 전두환, 노태우 군사 정권, 그리고 IMF 경제 위기를 초래한 김영삼 정권입니다. 군사 정권들은 한국의 근대사를 피로 물들인 장본인들입니다. 또 재벌에 특혜를 주면서 한국 경제의 기형 적으로 성장시킨 장본 인들이며, 종신 집권을 시도했고, 대형 권력 형 비리로 한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든 부정 부패로 찌든 정당들입니다. 그 뿐입니까? 김영삼 정권은 대통령의 아들이 대형 권력 형 비리를 저질렀고, 또 외환 위기를 몰고와서 한국민들에게 IMF 구제 금융 신청이라는 치욕을 맛보게한 정권입니다. 재작년 한국의 대선에서 한나라 당은 거의 800억이 넘는 불법 대선 자금을 받은 부패한 집단입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도 100억원이 넘는 불법 대선 자금을 받았죠. 한나라 당, 자민련은 지난 30여년간 한국을 병들게하고, 한국민들을 우롱한 장본인들입니다. 한나라 당과 자민련은 지금까지 계속 그런 짓을 해왔는데 앞으로라고 안하겠습니까? 저는 그 정당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정당들을 지지하지않으며 한국의 총선 및 정치 문제에 더 이상 관여하지않습니다. 저는 미국 시민입니다.
한나라 당, 자민련에서 제가 얼마 후에 (아마 앞으로 1년 이내에) 시작하려는 인권 침해 소송 때문에 정치 적인 타격을 입을까 우려를 하는 모양인데요. 저는 저를 정신 병원에 감금하도록 사주한 사람들이 누군지 모릅니다. 누가 제 부모라는 사람들을 매수해서 저를 여의도 성모 병원 정신 과에 강제 입원시켰는지 저는 아직 정확하게 모르고있습니다. 대충 추측만 하고있는데요. 제가 추측하는 그 배후가 한나라 당의 박근혜, 자민련의 김종필입니다. 제가 그런 추측을 하는 근거는 이렇습니다.
저는 과거 한때 육씨 성을 가진 한 여성과 한인 교회 내에서 가깝게 (친구로)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육모 씨는 저의 첫 사랑을 저에게서 뺏어간 장본인으로 추측하고있는 인물입니다. (저의 첫 사랑은 김씨 성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물론 확증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저의 첫 사랑인 김모 씨를 사랑하는 동안 육모 씨는 제 주위에서 맴돌며 저를 상당히 곤혹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럴 가능 성이 있다고 추측하고있습니다. 육모 씨가 제 눈에 띄는 행동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저는 꽤 여러 번 육모 씨에게 저를 이성으로 사랑하는지 물어보았죠. 물론 물어볼 때마다 육모 씨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저한테 이성 적인 관심이 없다면 제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말아야하는데 제 눈에 (물론 다른 사람들 눈에도) 띄는 행동은 계속하니 저로서는 불안할 수 밖에요. 저는 이미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데 육모 씨가 제 주위에서 자꾸 맴도니까, 제가 사랑하던 김모 씨로부터 오해를 받을 위험 성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죠. 제가 사랑하는 여성은 어느 날 사라졌습니다. (김모 씨는 유학생이었던 탓에 제가 자주 만나자고 말하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공부에 바쁜 사람한테 자주 만나자로 말하기가 쉽지않았죠. 더군다나 당시에 김모 씨는 중요한 시험까지 앞두고있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웠죠.) 김모 씨가 살던 노스웨스턴 대학 원생 숙소에 찾아가보니 이미 어디론가 이사를 가버렸더군요. 직감했죠. 제가 김모 씨로부터 오해를 받았다구요. 과기 대를 졸업한 제 친구로부터의 도움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 친구 조차도 저를 믿어줄지 확실하지않았으니까요. 제가 당시에 알고지내던 노스웨스턴 대학 원 생 전체에게 오해를 받고있었을 가능 성 마저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헤어지고나서도 제 첫 사랑이었던 김모 씨를 쉽게 포기할 수 가 없더군요. 그전 주소로 편지를 보내면 혹시 김모 씨가 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만나자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수만은 편지를 보냈지만 수신자가 없다고 저에게 돌아온 편지는 단 한통인가, 두통 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제가 집에서 겪은 일들입니다.
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육모 씨는 공교롭게도 김모 씨와 성만 다르고 이름은 같습니다. 제 첫 사랑인 김모 씨는 이미 다른 남성과 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 분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이름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 그 후에 육모 씨는 제가 육모 씨는 처음 만난 그 교회 담임이었던 김모 목사의 막내 동생과 결혼을 했는데요. 한국민들께서도 아마 아실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결혼을 하면 여자가 남편의 성을 따르게되어있다는 것을 아마 한국민들께서도 아실 것입니다. 한마디로 육모 씨가 김모 씨와 결혼한 다음에 이름은 공교롭게도 제 첫 사랑인 김모 씨와 같은 이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제가 제 첫 사랑과 이유도 모른채 헤어지고나서도 꽤 많은 편지를 그전 주소로 보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편지를 쓰다보면 (물론 컴퓨터에서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했습니다만) 내용이 마음에 안들어서 찢어버릴 때가 있거든요. 아마도 제 아버지라는 사람이 그 편지에 김 아무개 씨라고 쓴것을 휴지 통에서 꺼내서 읽은 모양입니다. 저는 그때 제 아버지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저를 놀리는 듯한 말투였거든요.
"육 아무개가 김씨하고 결혼을 했으니, 김 아무개가 되었지!"
저는 제 첫 사랑인 김모 씨를 만나려고 편지를 쓰고있었는데, 저보고 교회 목사의 동생과 결혼해서 성씨가 김씨로 바뀐 육모 씨에게 편지를 쓰고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런 생각을 했죠.
'어떻게 내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에 대해서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 때부터 저는 제 아버지라는 사람이 육모 씨와 제가 다녔던 교회와 어떤 거래를 하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됐습니다.
더군다나 재작년 초에는 어떤 일까지 있었느냐면요. 집안의 누군가가 제 음식에 고의로 설사 약을 타는 일까지 발생을 했습니다. 뭘 먹고나서 한 두 시간 후에 창자가 찢어질 듯이 아프고 설사는 하는데 견딜 수가 없더군요. 온몸의 수분이 다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상당히 마른 체격이어서 더욱 힘들었습니다. (저는 테너 가수치고는 상당히 마른 편입니다.) 그런 일을 무려 몇 달간이나 당했습니다. 그런데 더 소름이 끼치는 점은요. 제가 화장실에서 설사를 하고나오면 제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아주 환하게 웃고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아버지라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안하고있으면서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입이 귀에 걸려있더군요. 거기다가 한가지 더 의심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저는 왠만해서는 소화가 안돼서 토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재 작년 언제부턴가 음식을 먹으면 위에서 소화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걸렸습니다. 속이 미식거리고, 자꾸 구토가 날 것 같은데 그 원인이 뭔지를 몰랐습니다. 저는 20대 후반의 나이를 믿고 별로 신경을 안썼죠. 그런데 하루는 진짜 희한한 경험까지했습니다. 자려고누웠는데 희안한 야한 상상만 들면서 제가 잠을 자는 건지, 깨있는 것인지 구별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뜬 후에도 잠을 잔건지, 밤새 야한 상상을 한것인지 구별이 안돼더군요. 저는 아침에 눈을 뜨고나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별 희한 일도 다 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날 문득 'Traffic'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기억나더군요. 마약에 중독되어있던 한 소녀와 그 가정에 관한 얘기였죠. 한 소녀가 마약을 흡입하고 하던 행동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섹스에 엄청나게 탐닉하더군요.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에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 아버지라는 사람이 내 음식에 설사 약과 마약을 넣고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머리에 스치는 순간, 저는 두려웠습니다. 그 생각을 한 순간부터 저는 제 어머니라는 사람이 차려주는 식사에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설사 약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가 있는 것이지만 마약은 상당히 고가입니다. 당시 저의 집은 그럴만한 경제 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제 아버지라는 사람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있던 저에게 일을 해서 차를 사내라는 요구까지했을까요. 그 당시 제가 가지고있던 돈은 전부 공부하느라고 정부에서 빌린 돈이었습니다.
제가 당한 인권 침해의 배후에 김종필, 박근혜가 있다고 추측하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저를 곤혹스럽게하던 육모 씨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미국에 오기 전에 한국의 공화 당의 정치 인이었습니다. 육영수라는 인물과 연결되었을 가능 성이 있었죠. 제가 육모 씨의 부모를 집으로 찾아가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육모 씨가 자꾸 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알아내고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육모 씨의 아버지라는 사람을 만난 자리에서 그 육모 씨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내가 공화 당에 있으면서..."
"우리 육 여사..."
또 다른 단서가 있습니다. 삼촌이라는 사람이 (제 아버지의 동생) 미국, 시카고에서 한국어 기독교 신문사를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아마 한국의 기독교 계에는 꽤 알려져있는 신문입니다. 저도 미국에 오자마자 그 신문 사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당장 신문 제작 용 소프트웨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공부까지 미루고 그 일을 해야했습니다. 제가 이름만 대면 한국의 기독교 계에서는 알 수 있는 사람이 제 아버지의 동생입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저를 한동안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육모 씨의 이모 부라는 사람도 나모 씨라고 시카고 한인 사회에서는 꽤 널리 알려진 목사입니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시카고 북부에서 모 성결 교회를 담임하고있었습니다. 한가지 더 재미있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저는 제 삼촌이 운영하던 기독 교 신문 사에서 당장 급하면 만사 제치고 달려가서 일을 해야했거든요. 신문 제작에서부터, 광고 제작, 컴퓨터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문제 해결 등등 닥치는대로 다해야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문에 기사를 쓴 적은 없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도중이었는데요. 신문사에서 급하다고해서 광고 제작을 일을 두달 동안인가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신문 사에 여자 타자 수가 한 사람 일을 하고있었는데요. 그 여자 타자 수가 공교롭게도 (육모 씨의 이모부가 되는) 나모 씨가 담임을 맡고있던 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저는 전혀 몰랐죠.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타자 수가 자기 교회 담임 목사의 집안 자랑을 저에게 늘어놓는 것이었습니니다. 물론 그 집안 자랑에는 시카고 대학을 졸업했다는 나모 목사의 막내 딸 자랑까지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LA에서 목회를 한다는 큰 아들 자랑도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듣고 넘어갔죠. 이정도로 생각하면서요.
'자기 교회와 목사 집안 자랑을 너무 하는군...'
그런데 잠시 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모 목사의 딸이면 육모 씨의 사촌이 되는데... 육모 씨는 김모 목사의 동생과 결혼... 나모 목사가 담임하는 시카고의 모 성결 교회 교인은 나모 목사의 집안 자랑에 나모 목사의 딸 자랑... 게다가 내가 일하는 곳은 박모 목사가 운영하는 기독교 신문사...'
뭔가 냄새가 나도 심하게 나더군요.
게다가 당시 박모 목사는 제 아버지에게 10만불이라는 액수의 빚을 지고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신문 사는 당시에도 재정 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갑자기 제 아버지라는 사람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작은 집에서 10만 불 중에 6만을 갚았다."
저는 긴장을 하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이런 생각을 했죠.
'사정 뻔한 신문사에서 6만불이라는 돈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박모 목사가 6만불 갚았다는 얘기를 제 아버지라는 사람이 저에게 말한 시기가 언제냐면 바로 시카고 모 성결 교회 교인이 저에게 나모 목사 집안 자랑에 막내 딸 자랑까지 한 다음입니다. 긴장되더군요. 혹시 내가 나모 목사의 돈에 팔려 간 것은 아닌가? 거기다가 육 아무개가 김씨랑 결혼을 해서 김 아무개가 되었다는, 마치 저를 놀리는 듯한 말까지, 제 아버지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왔으니 제가 불안하죠. 어쩌다가 육모 씨가 제 첫 사랑과 성만 다르고 이름이 같아가지고는...
이런 일들로 인해서 저는 제 아버지라는 사람과 사이가 좋지않았거든요. 아마 제 아버지라는 사람이 어머니를 시켜서 저를 한국으로 유인해내지않았나싶습니다. 한국 내 친척들도 똑같이 저를 정신 분열 증 환자 취급하는데 뭔가를 알고있지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아참, 제 음식에 설사 약이 (어쩌면 마약 까지도) 들어간 것은 바로 재작년 제가 한국을 탈출해서 제 부모라는 사람들과 같이 살던 동안에 벌어진 일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런 일을 당하면서 제 부모라는 사람들과 같이 살 생각을 하겠습니까?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저는 지금 저를 한국의 여의도 성모 병원 정신 과에 강제 입원시킨 일을 사주한 사람들이 육모 씨의 인척일지도 모르는 박근혜, 김종필일 가능 성이 있다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인권 침해 소송을 해보면 알게되겠죠. 그런데 제가 어떻게 한나라 당, 자민련을 지지합니까?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 우리 당은 자꾸 이효리 양에게 손을 뻗치려고한다는 징후가 감지되는데... 제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 우리 당을 어떻게 지지하겠습니까?
어차피 얘기를 꺼냈으니 조금 더 얘기합니다. 제가 지금 주소에 산지가 꽤 오래되었거든요. 저는 재작년 초까지 아마 시카고 지역 한인 교회에서는 가장 교인 수 많은 것으로 알려진 시카고 북서부 교외 지역에 있는 한 장로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그런데 또래의 청년들이 저에게 말을 하는데 꼭 제가 제 집안에서 하는 말들을 전부 들은 것 같이 말을 하더군요.
제가 재작년에 한국의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당시 후보를) 지지하면서 글을 쓸 동안에는 이런 일까지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KBS 9시 뉴스를 거의 매일 인터넷을 통해서 시청하고있었습니다. 언젠가 정세진 아나운서가 이런 뉴스를 보도한 적이 있었죠. 중국이 자국의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서 한가지 종류의 철강 수입 양을 제한하겠다는 발표를 했다구요. 저는 그 보도를 보면서 이렇게 한마디 했습니다.
"(철강) 수출 품목을 다변화하면 되겠다."
다음 날 저는 KBS 9시 뉴스를 시청하면서 놀라지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세진 아나운서의 입에서 이런 보도 내용이 흘러나오더군요.
"중국의 철강 산업 보호 움직임에 대해서 수출 품목 다변화 등의 대책이 요구됩니다."
저는 이 보도를 보면서 잠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들었나?'
하지만 바로 냉정해졌죠.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만약 정세진 아나운서가 내 목소리를 듣고있다면, 한국의 정치 권, 언론, 그리고 이효리 양까지 공연 예술 인들까지 내 목소리를 전부 듣고있을 수 있다.'
한마디로 제 방과 집 안 어디인가에 도청 장치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더욱 강하게 하게된 것입니다. 더 황당한 것은 제가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email과 내용과 방문하는 웨 사이트까지 연상시키는 보도가 그대로 한국의 일반 언론과 스포츠 신문에 언급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CNN 등 미국 주류 언론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러니 사실 상 적어도 한국과 미국의 정치 권, 언론, 연예 계는 제 말을 도청 장치를 통해서 듣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되죠. 혹시 제가 제 방안에서 부르는 노래를 파바로티, 도밍고 선생 님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지휘자인 제임스 레바인이 직접 듣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까... 황당할 수 밖에요. 아무리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테너 섹션 리더 분께서 파바로티, 도밍고 선생 님과 친구 분이시지만 파바로티, 도밍고 선생 님께서 제 노래를 직접 듣고계시다는 생각을 해보십시오. 긴장이 될 수 밖에요. (저는 저희 교회 테너 섹션 리더 분을 제 스승 님으로 생각합니다. 그 분 옆에서 많이 배웠거든요. 그 분께서 직접 제 목소리를 칭찬하셨구요. 그것도 독감으로 고생하던 도중의 목소리를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히 이런 생각도 합니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거나,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헛것도, 꿈도 아니었습니다.
몇 가지 얘기를 더 하겠습니다. 한번은 MBC 뉴스 데스크를 진행하던 김주하 아나운서가 이런 보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금연을 공증 받는다.'
제가 그 뉴스를 보다가 소리를 내서 웃었습니다. 웃을 수 밖에요. 담배를 끊는다는 공증을 받는다는데... 그런데 그 취재 내용 다음에 이런 내용이 보도되더군요.
'결혼 3~4년 전에 사랑의 공증을 받는다.'
연인들에 대한 보도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금연 공증 보도 내용을 보고 웃다가 사랑의 공증 보도 내용을 보는 순간에 웃음을 멈추었습니다. 김주하 아나운서의 의도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죠. KBS 9시 뉴스를 시청하는데 홍기섭 앵커의 표정이 상당히 누구인가를 걱정하는 표정이더군요. 제가 KBS 게시 판에 재미있는 유머가 섞인 글을 써놓은 다음 날 이었기 때문에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정세진 아나운서의 뉴스 진행을 보고서야 홍기섭 앵커가 누구를 걱정하고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정세진 아나운서의 표정이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거든요. 정세진 아나운서의 표정을 본 순간에 저는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세진 아나운서 집안에 무슨 안좋은 일이 있나?'
KBS 9 뉴스를 다 시청한 후에 저는 MBC 뉴스 데스크의 기사 검색을 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전혀 당시 상황과 관련이 없는 미국을 욕하는 보도 내용이 있더군요. 저는 그 기사 제목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혹시, MBC 뉴스 데스크를 보지 말라는 의미인가?'
저는 그날 MBC 뉴스 데스크를 시청하지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에서야 저는 대충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MBC 뉴스 데스크를 하루 안보니까 다음 날 정세진 아나운서가 안심한 표정으로 뉴스를 진행하더군요.
혹시 지금 방송 사 언론인들은 저에게 이런 불만을 가지고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박형준 씨 같은 사람이 재색을 겸비한 정세진, 김주하 아나운서가 아닌 이효리 양을 사랑하는가?'
물론 제 추측입니다.
이효리 양에 대한 말을 한가지하죠. 제가 제 방안에서 우연찮게 제가 보라 색이나 핑크 색 계통을 좋아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다음 날인가 (시카고 시간으로) 밤 시간이었습니다. 보통 시카고 시간으로 밤 10시 정도면 스포츠 신문 인터넷 판이 대부분 새 기사로 바뀌는데요. 그 날 저는 모 스포츠 신문에 이효리 양의 사진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어야했습니다. 이효리 양이 얼굴을 온통 보라 빛으로 화장한 사진이 실려있더군요. 아마 홍콩인가에 가서 인터뷰한 사진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요.
그리고 언젠가는 제가 한국 고등학교의 입시 교육에 대해서 (물론 제 방 안에서)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 밤 모 스포츠 신문 기사에 한가인 양에 관한 기사가 실려있었습니다. 한가인 양이 배우로 발탁된 과정을 다룬 기사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입시 제도에 관해서 모 언론과 인터뷰한 후에 발탁이 되었다구요.
이번에는 김태희 양에 대한 말씀을 드리죠. 김태희 양이 출연했던 스크린이라는 드라마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제가 영화 산업에 관심이 많은 관계로 그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공유 군이 맡은 배역이 난을 기르는 조건으로 아파트에 돈을 내지않고 살기로 한 역이었습니다. 제 아버지라는 사람이 제가 어릴때 (저의 집이 개포 동 13평 아파트에 살때) 난을 기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문제는 난을 저와 제 동생 보다 더 아끼는 것 같다는 것이었죠. (공유 군의 대사에 있었습니다.) 공유 군이 김태희 양이 쓴 시나리오를 손봐주면서 이런 대사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제가 긴 문체를 짧게 고쳐주었죠..."
제가 KBS 게시 판에 수험 생들을 위해 쓴 글쓰기 요령에 포함이 된 내용이었습니다. (만연 체를 간결 체로 바꾸는 훈련)
게다가 김태희 양의 연인 역을 맡았던 박정철 군의 직업이 펀드 매니저였죠. 저는 거의 2년 동안 한국의 경제에 관해서 수없이 많은 글을 한국의 언론 사 게시 판에 써왔죠. 더군다나 박정철 군이 맡았던 역은 아버지 역의 정동환 선생 님과 사이가 대단히 안좋은 것으로 설정이 되어있었습니다. 이러니... 제가 김태희 양에게 신경이 안쓰일 수가 없죠. 겉으로는 서울 대 킹카 남친 어쩌구 하는 기사가 스포츠 신문에 오르내리는데... 제가 하도 헷갈려서 제 방 안에서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태희야, 오빠는 오빠에게 성실 한 여자가 좋다."
그 다음 날 KBS 9시 뉴스의 첫 보도 내용입니다. 홍기섭 앵커가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옷을 디자인 하듯이, 약을 디자인 하는..."
저는 그 보도 내용을 읽고 어리둥절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약에 대한 보도에 난데없이 왠 옷 디자인 얘기?'
그 후로 저는 제 방 안에서 이런 말을 자주했습니다.
"태희야, 오빠의 사랑을 받고싶으면, 오빠의 보호 본능을 자극해라. 질투 심 자극은 전혀 효과가 없다. 태희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보도를 보면 오빠는 기사 내용을 사실로 믿으니까 조심하기를 바란다."
얼마 후에 모 스포츠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리더군요.
'탤런트 김태희가 드라마 '천국의 계단' 촬영 도중 찬 바닷 물에 들어가는 장면을 3번 연속 찍다가 결국 탈진했다. 그리고 한정서를 (최지우 분) 차로 치고 난 후 브래지어만 입고 피가 뭍은 옷을 빠는 장면을 촬영한 후 수치심 때문에 울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자마자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어습니다.
"태희야, 오빠가 누구랑 결혼하든지 상관없이 태희가 원하기만 하면 태희를 안아줄께. 촬영하면서 무리만 하지마라. 그리고 노출 연기 급할 것 없으니까 서두르지마라."
그 후로 저는 김태희 양에 대한 기사에서 남자 친구 얘기를 본 적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장금에 출연했었던 박은혜 양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저는 아무리 한국의 여배우들이 제 말 한마디에 답을 하는 듯한 기사가 스포츠 신문에 실린다고해도 제가 한국에서 인권 침해를 당한 이상 한국의 여배우들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정세진 아나운서가 저에게 진심인지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업습니다. 저는 그래서 항상 이런 말을 버릇처럼 해왔습니다.
"아무리 한국의 여배우들에 대한 신문 기사가 내 말 한마디에 답을 하는 듯한 보도를 해도 나는 한국의 여배우들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지금 만날 수 있다면 모를까."
어느날인가 제가 이런 말을 조금 심하게 했었습니다. 제가 조금 신경이 날카로워져있었나봅니다. 그날 밤에 모 스포츠 신문에 박은혜 양에 대한 기사가 났는데 제목이 이렇게되어있더군요.
"저 남자 친구없어요. 믿죠?"
제가 그 기사 제목을 보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냥 껄껄 웃을 수 밖에요.
물론 저는 아직까지 제 집 안에, 제 방 안에 도청 장치가 되어있는지 여부는 잘모릅니다. 하지만 하도 황당한 일이 자꾸 벌어지니까 의심을 하게되는 것이죠. 아마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간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