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시티 로비와 관련해 빙산의 일각이지만, 정대철 대표의 수뢰혐의가 드러나면서 정치개혁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대철 대표 개인으로 보자면 재수없이 똥 밟은 격이 되고 말았지만, 그동안 관행처럼 굳어졌던 정치자금의 탈법적 운영을 막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체육관 선거이후 6.29 민주화선언에 의해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에도 정치자금과 관련해서는 정치인들의 공공연한 탈법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지난해 대선자금으로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액수가 한나라당의 경우 224억, 민주당의 경우가 274억이라고 한다. 법정선거비용 제한액인 341억에 한참 모자라는 액수이다.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특검법 등을 만들어 검증의 주체를 만들고 면책의 가능성을 규정하는 것을 조건부로, 양당이 지난 대선자금을 `고해성사` 하듯이 사실대로 밝히자고 제안했다. 여야간 숱한 정쟁을 일삼으면서도 `정치자금`과 관련해서는 침묵의 암묵적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던 정치권을 향한 용기있는 제안이라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광복절 특사도 아닌데 실정법을 위반하고도 면죄부를 합의하자는 노대통령의 공공연한 제안은 납득하기 곤란하다. 죄지은 피의자끼리 모여, 법률제정의 주체라는 칼자루를 쥐고 공범적 연대를 형성하자는 제안에 다름아니다.
정치인들은 선거자금 법정한도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폐지를 주장하지만, 과연 투명하게 쓰여지고 있는데도 부족한 액수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최저임금액이 56만원이다. 현행법상 총액만으로 신고하도록 되어 있어 사용용도를 일일이 확인해 볼 수는 없겠지만, 영수증을 첨부해 보면 돈적다는 소리는 못할 것이다.
돈이야 있는 족족 쓰게 되어 있는 것 아닌가. 더구나 정해진 선거기간동안 많은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어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 정당의 기능이고 보면 많이 줘도 적기는 마찬가지다.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가 급선무이지, 돈 더 주는 게 문제가 아니다. 본말이 전도돼서는 안된다.
오늘 선관위의 정치개혁안이 국회의 입법회기내에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여론도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다. `매칭펀드’ 제도의 도입, 선관위의 실사권, 예비후보자의 후원회 조직허용 등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었던 다수의 문제들이 이번 개혁안에 대폭 수용되어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여야가 합의를 도출해내고, 국회가 회기내에 이 안을 입법화하지 않는다면 이번 문제도 무수한 논의만 거치고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만다.
이 문제를 매듭짓고, 정치개혁을 이뤄내는 것은 여야의 합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이지만, 국회가 자성의 목소리로 이번 개혁안을 조속히 입법화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정치개혁을 위한 여야의 합의를 도출해내기 위해 이번 대선자금의 공개는 필수불가결한 전제요건이다. 여야는 이제 정치자금에 관한 공범적 연대 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론이 아니라면 몇몇 뜻있는 의원들이라도 자성의 목소리를 높여서, 한나라당이 안한다면 민주당 혼자서라도, 우선 대선자금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여론이 거세지면 한나라당도 공개안할 수 없는 것이고, 결국 누가 먼저 매를 맞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둘다 죄지은 거야 온 국민이 다 아는 것이고, 용기있는 자, 먼저 매를 맞을 수 밖에.
그래야 진정한 정치개혁안도 국회에서 활발히 논의될 수 있고, 정치자금의 투명성에도 한 걸음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