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 安保의 잣대로 결판내자!
언제까지 ‘탄식’만 할 것인가?
민족의 명운이 걸린 4·15총선이 눈앞에 다가왔다. 정치권은 사생결단으로 총선 올인 작전으로 나오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걱정과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사람들은 깨끗하고, 능력 있고, 비전 있는 선량들을 뽑아서 이 나라의 오물투성이 정치를 바로잡고,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와 같은 섬뜩한 용어들을 이 땅에서 추방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안보를 튼튼히 해줄 선량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보가 없는 정치, 안보가 없는 경제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그동안 국내 도처에서 그 勢를 확장하고 있는 친북·반미·좌경세력들에 의해 자유민주주의 기치를 달고 항해하고 있는 ‘대한민국호’가 침몰하고 있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곳곳에서 한숨과 탄식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지난날 어떤 학자가 말했듯이 “우익은 죽었는가?”라는 질문에 고개를 내밀고 “안 죽고 살아있다”라고 반박할만한 세력들도 찾기 어려운 세태에 이른 것 같다. “탄식하는 憂國보다 행동하는 愛國”이 절박하게 요구되고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누가 ‘保守’이고 누가 ‘進步’인가?
얼마 전 육사교장이 생도들에게 한 눈물겨운 정신훈화가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젊은이들이여,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 세대의 눈물과 피와 땀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서독을 방문했을 때 지하 1000m 땅굴에서 석탄을 캐던 한국광부와 장작개비같이 뻣뻣한 독일인 시체를 하루 종일 닦으며 1달러라도 더 벌려고 이를 악물고 일하던 우리 간호사들을 부등켜안고 복받치는 울음을 터트리면서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 우리 후손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말자”고 다짐하던 이야기들이 계속 되었다고 한다.
어느덧 세월은 뒤바뀌어 조국 근대화 열차에 무임승차한 철부지들이 기관사와 승무원들에게 하차 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기성세대는 물러가라”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왔고 또 그것을 수호하려는 늙은이들은 지금 그들로부터 수구 ‘보수’세력으로 내몰리고 있다.
수백만 인민을 굶겨 죽이고 자유도 인권도 없는 김정일 정권을 흠모하고, 전 세계인이 버려버린 공산주의·사회주의를 동경하는 세력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진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내세우고 판을 치는 세상이 됐다.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기에는 때를 놓친 듯싶다.
자식교육 잘못시킨 어른들이 자업자득한 결과요, 큰 선거 때마다 우매한 유권자들이 저들의 음흉한 선전선동에 휘말려, 벌써 몇 번째 속아서 넘어간 결과가 오늘의 현실을 가지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속고 후회하고 또 속고 후회하는 우리는 아직 성숙한 민주역량을 발휘하기엔 함량 미달이란 평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번만은 더 이상 속지도 실수도 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제발 정신을 차려야 한다.
김일성 생일날 4·15에 좌익세력 결판내자
제17대 총선일이 민족의 전범 김일성 생일날인 4월 15일에 치러진다. 북한의 최대 명절이자 국경일날 친북·좌익세력들이 대한민국 국회를 장악하려고 획책하고 있다.
우리의 선대들이 피와 땀으로 이룩하고 지킨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뒤집히는 일은 막아야 한다.
건국·호국·안보세력들은 총 단결하여 총선에서 나라를 지켜야 한다. 안보가 무너지는 날 나라는 끝장이다.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안보에 危害요소가 있는 자는 철저히 가려져야 한다.
‘안보’의 잣대를 확실하게 세워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4·15 총선을 앞두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친북·좌경·반미·진보 인사들이 목청 높여 주장하는 그들의 안보관을 검증해 보자.
첫째, 이라크 파병은 용병인가?
천신만고 끝에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5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국익을 외면한 용병이라고 비판하며 반대표를 던졌다. 과연 그런가?
우리의 이라크 파병은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과 국익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 이유는 우선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당사자로서 상호방위조약의 정신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상호방위 조약 3조에는 “상대 당사국에 대한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인정하고….”로 되어 있다.
다음은, 6·25전쟁당시 UN의 지원을 받았던 나라로서 진 빚을 갚아야 한다.
미국은 6·25전쟁 당시 한국에 연인원 180만 명의 병력을 파병해 주었고 그 중에서 5만 4천여 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UN을 움직여 한국에 UN군 파병을 주도한 나라 역시 미국이다. 지금도 3만 7천여 미군이 우리 안보를 위해 이 땅에 주둔하고 있지 않는가?
또한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미국의 요청을 거절할 경우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냉엄한 현실이다.
미국 조야에서는 벌써부터 주한미군 철수론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사회일각에서는 주한미군 재배치 협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려 한다. 만약 추가파병 안이 부결되었더라면 이러한 움직임이 가속도를 갖고 추진되었을 것이 뻔하다.
미국이 지난번 이라크 파병을 거부한 독일 주둔 자국병력을 철수시켜 이라크에 투입하고 대폭적인 미군 감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自主’를 위해 미군은 철수해야 하는가?
당장 미군이 철수하면 우리에게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그동안 막강 전력으로 한반도의 전쟁억제 기능을 해왔던 미군이 철수함으로써 한반도의 안보상황은 매우 불확실해질 것이다.
안보가 불확실한데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한국에 투자했던 많은 외국인들이 투자금을 회수하려 할 것이며, 제일 먼저 한국은 주가의 사상 최대 폭락사태를 맞을 것이다. 금융이 마비되고 부동산이 폭락하여 제2의 IMF사태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미군 전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300억불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국방예산 3년분, 순수투자비만으로는 7년분에 해당되는 액수다.
군 복무기간도 상당기간 늘어나야 할 것이며, 미군에 고용되어 있는 1만여 한국인도 일자리를 잃게 된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직·간접적으로 한국에 지출하고 있는 연간 30억불 규모의 경제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1991년 미국은 필리핀 의회의 요청으로 필리핀 내 수빅만과 클라크 공군기지의 미군을 완전 철수했다.그후 필리핀은 어떻게 되었는가?
1988년 기준으로 미군이 필리핀에서 지출하던 경비가 연간 5억 3천만 불이었고, 기지 철수에 의한 고용과 수익손실을 합하면 10억불이 넘었다.
따라서 미군의 철수는 국내경제의 혼란과 국내정치의 불안을 가져왔고, 외국기업의 투자가 중단되었으며, 그 후에는 불황과 정쟁으로 시달려야 했다. 아직도 치안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필리핀은 최근에야 미군의 재주둔을 요청하고 나섰다.
셋째, 북한 핵은 남한에게는 사용하지 않을 것인가?
북한이 핵을 갖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남북간 군사력 균형의 와해가 불가피하다.
현재 남북한의 군사력은 숫적인 면에서 북한이 우세를 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질적 수준에서 우리가 앞서고, 여기에 주한미군의 전력을 고려할 때 충분한 억지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일단 핵을 갖게되면 이러한 재래식 무기의 균형은 그 의미 자체를 상실하게 된다.
또한, 東北亞에서 핵무장 도미노 현상이 가속화 될 것이다.
벌써부터 일본의 우익세력은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개진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핵무장의 명분을 찾고 있는 일본에게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리는 격’이 된 것이다.
핵보유국인 중국도 핵전력 강화를 서두를 것이고, 이것은 대만의 핵개발을 자극할 것이다. 남한에서도 핵을 개발하든지 미국 핵을 가져오든지 하라는 여론이 비등할 것이다. 따라서 동북아는 본격적인 핵개발 경쟁체제로 들어가면서 세계의 화약고로 변해갈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북한 핵이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핵무기는 핵탄두 자체개발 보다는 개발된 핵을 운반할 수 있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다 해도 이를 운반할 수 있는 기술은 초보적 수준에 불과하다.
지금 개발하고 있는 대포동미사일도 핵무기를 운반할 수준은 안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현재 북한이 개발하고 있는 우라늄 핵무기는 매우 무겁기 때문에 장거리발사에 더욱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북한이 핵무기를 발사한다면 북한의 운반기술 수준으로 볼 때 그 핵은 일본이나 미국이 아니라 한반도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때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던 20kt 정도의 핵무기가 서울에 떨어진다 해도 5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엄청난 참상이 벌어질 것이다.
넷째, 국가보안법은 통일의 장애물인가? 분명히 말하건대, 지금은 결코 보안법 개정을 논할 시기가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 보안법 개폐를 논할 정도로 시대상황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상 법은 그 시대의 거울이기 때문에 시대가 변하면 따라서 법도 바뀌어야 한다. 이때 보안법이 말하는 시대상황이란 남북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남북관계가 본질적으로 변했는가? 그렇지 않다. 아직 변화하려는 조짐만이 보이고 있을 뿐이다.
6·15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은 자체 사상교육을 더욱 강화하며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강성대국, 선군정치의 기치아래 우리의 주적개념을 비판하는가 하면 주한미군 철수 주장도 여전하다.
만약 당장에 보안법이 개정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국민들의 안보경각심은 더욱 이완될 것이다.
지금도 우리사회에 준동하고 있는 침투간첩, 고정간첩, 좌익세력들은 때를 만난 듯 활개 칠 것이다.그리고 머지않아 국보법 철폐주장으로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때는 누가 그것을 책임지며 어떻게 감당해 나갈 것인가?
국가안보에 시행착오란 있을 수 없다. 7천만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모험을 할 수는 더욱 없다.
보안법은 남북간에 군사적 긴장완화가 완전히 정착되고 북한이 적화통일 야욕을 포기했다는 것이 확인된 이후에 개정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특히 미국, 독일, 프랑스와 같은 세계 선진국도 전복활동통제법, 공산주의 통제법 등을 특별법으로 제정하여 유지하면서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다섯째, 宋斗律은 민주인사인가?
송두율에 대해 대통령은 “법적 처벌보다 포용해야 한다”. 법무부장관도 “송두율이 김철수라도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등 정부 관계관들의 언급은 매우 적절치 못한 것이었다.
이는 우리 사회 저변에 폭넓게 자리 잡고 있는 반공·보수세력의 존재를 과소평가한 결과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북한 김일성의 만행으로 인한 직·간접피해자가 수백만에 달한다.
송두율은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거액의 공작금을 받아 간첩활동을 해온 노동당 정치국 서열 23위다. 송두율이 민주인사라면 김일성 침략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500만 호국영령은 매국노란 말인가?
송두율 사건은 우리사회 각계각층은 물론, 정부 핵심요직에까지 민주와 진보를 위장하여 자유민주주의체제 전복을 꾀하는 친북·이적세력이 뿌리깊이 침투되어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송두율은 국가보안법으로 처단한 후 국외로 추방하고 간첩을 민주인사로 위장시킨 정부내 친북인사들을 퇴진시켜야 한다.
安保의 잣대는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 안보를 튼튼히 하기 위해 4·15총선에서 반드시 낙선시켜야 할 대상은 분명해 진다.
① 병역의무 기피자와 불법적 수단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자.
② 국익을 무시한 채 이라크 파병에 반대한 자,
③ 철부지 ‘자주’를 내세우며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반미주의자,
④ 북한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통일 후에 우리 것이 된다고 주장하는 맹목적 민족주의자,
⑤ 국가보안법을 통일의 장애물로 보는 친북·좌경분자,
⑥ 송두율을 민주인사로 둔갑시켜 온 반민주인사들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가치는 변화한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지고의 가치가 있다. 그것은 “안보에 우선하는 가치는 없으며, 안보를 경시하는 민족에게는 반드시 안보의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반만년 역사를 통해서 900여회의 외침을 받았던 우리민족. 불과 반세기전에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500만 인명의 희생을 보았던 우리나라. 이 땅에 또다시 전쟁의 비극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이 전쟁을 막고 평화스러운 자유민주주의를 이 땅에 우뚝 세우는 길은 무엇인가?
금번 4·15 총선에서 확고한 안보관을 가진 믿음직한 국민의 대표를 선택하는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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