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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 박정희 공인가? 국민의식 때문인가?

한나라당 대표에 박근혜 의원이 선출되었다. 그분에게는 뚜렷한 경력도 없다. 또 국민에게 내놓을 만한 업적도 없다. 오히려 아버지 밑에서 권력의 맛을 독특히 보았는지 대통령 출마를 위해 한나라당의 탈당까지 감행한 인물이다. 그가 무엇 때문에 당대표가 될 수 있었을까? 바로 전직 대통령의 딸이 아니었던들 선출될 수 있었을까? 세계각국을 살펴보면 전직 독재자의 딸들이 정치 전면에 많이 등장한다. 그 대부분의 국가가 정치 후진국이라는 특색이 있다. 우리나라도 아직 정치 후진국의 표출이고, 그 정당은 후진정당의 표시가 아닌가?.

그럼 우리의 경제발전이 박정희의 공인지 아니면 경제 제1주의를 지향한 국민의식 때문인지 한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박 전대통령의 인간적인 면을 살펴보면 그가 만주 까지 갔다면 만주 군관학교에 입학할 것이 아니라, 당연히 독립군을 찾아서야 했다. 만주군에서의 거의 역할은 무엇이었던가? 독립군을 염탐하는 정보장교가 아니었던가. 바로 독립군을 잡으러 다니든 사람이었다.

해방 후 여순반란 사건으로 그는 체포 되었다. 수많은 군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덕택에 좌익세력이 일망타진 되었기 때문에 살아 났다고 한다. 그런데 좌경조직의 특색을 살펴보면 조직 상호간 서로 모르게 비밀적으로 결사 되며 다만 상부의 핵심 인물만 그 조직을 알 뿐이다. 그 때문에 조직이 일망타진 되었다면 그가 어느 정도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는지 짐작이 간다. 그런 사람이 발칵 되자 제 살겠다고 모조리 불어 수많은 동료들 형장의 이슬로 보낸 사람이 그이다. 한마디로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

무엇 보다도 오늘날 박 전대통령을 받드는 취지도 경제개발을 들고 있다. 이것 때문이라면 무슨 짓을 하든 경제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그렇된 의식을 심어 사회 가치관 형성에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또. 청소년들의 물질 지상주의에 의한 사회 문제를 걱정 하든 때가 어저께 같은데 아예 내놓고 물질 지상 주의를 강조하니 개탄을 금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가 과연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까? 박정희의 경제 개발 계획은 과연 독창적인 것이었나? 제2공화국의 국토 종합 개발 계획과 다른점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 경제가 이만큼 성장한 것도 경제 지상주의를 추구한 국민 의식의 결과는 아닌가? 그렇다면 박정희가 국민 의식을 고취 시켰나? 이미 2공화국에서 경제는 강조 되었고 여론조사에서는 경제 지상주의가 1위로 나타났다. 국민 의식이 깨지 않고는 아무리 군사력을 동원 개발독재를 해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동남아, 중남미등에서 이미 실증되었다. 그곳에 진출해 있는 우리 업체에 따르면 일단 봉급을 받으면 돈이 떨어져야 직장에 출근 할 정도로 근로의식이 희박 했다고 들었다. 동남아가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였다. 우리가 이미 70년대에 의식이 깨어나 경제 성장을 시작 했듯이 동남아도 이에 자극받아 80년대에 국민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동남아에서는 정치인이 잘 해서 성장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성장을 시작한 70년대에는 유신독재가 기승을 부렸고, 학생데모 등으로 사회가 극히 혼란스러웠다. 해외에서의 한국 이미지는 극히 나빴고, 바이어들이 혼란스러운 우리를 외면하고 타국으로 발길을 돌리는 실정이었다. 사회가 안정되었고 민주정치를 지향 해외 이미지를 쇄신했다면 얼마나 더 경제가 성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차대전후 일본의 부흥을 두고 모두가 놀란다. 일본은 군사정부가 아닌 문민정부 였다. 일본과 우리근로자 모두 밤낮 가리지 않고 일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달랐다. 일본은 산업평화, 노사화합에 의한 자진 근로의 결과였고, 우리는 힘에 의한 타율의 결과였다. 한마디로 강제로 일 시켜놓고 해 먹기만 하면서 심심하면 자기들 공인 양 선전, 면책을 강요한 것이 권력 상층부였다. 오늘날 노사가 심한 불신에 빠져있는 것은 그때의 연장선상이다.

박정희 찬양론 자들 중에는 그가 청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박정희에 대한 과거 청산이 없었기 때문에 나오는 말일 뿐이다. 자기 밑에 사람들 마음대로 해먹게 놓아둔 사람이 왜 안 해 먹었겠는가? 원래 대한민국을 자기 것으로 생각했고 대통령을 평생 하려고 생각한 사람이니 당장은 해먹을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월남이 패망 할 당시 대통령이었든 티우는 금괴 수 트럭을 빼내 런던으로 도망친 것으로 알고있다. 박정희도 충분히 그럴 위치에 있었다. 참 수년 전 어느 월간지에서 스위스 은행에 고위측근을 통해 비자금을 관리 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찬양자들 중에는 당시의 통제된 언론의 일방적인 선전에 세뇌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또 그 자식들을 세뇌 시키고 있다. 박정희 시대에는 연 인플레이션이 30%가 넘어도 잘했다고 선전했다. 하물며 경제가 돌아 가지않아 사채 동결령을 내릴 정도였다.오늘날 개인이 가진 모든 빚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사채 동결령을 내린다면 금융시장은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채권금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금융시장은 마비되어 경제는 파탄이 날것이다. 그 정도의 위기 상황에서도 경제는 잘되고 있다고 선전했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IMF의 근본원인을 부정부패 때문이라고 평한다. 박 정권이 부정부패의 천국이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으며, 그 당시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는 물론GNP 대비 국제 수지 적자와 대외 부채 비율도 IMF 직전보다 훨씬 높은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IMF와 같은 위기가 초래하지 않은 것은 냉전의 최전방지대라는 특색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 마음대로 관세를 높여 국내산업을 보호할 수 있었고. 안되면 수입까지 금지 시킬 수도 있었다. 지난번엔 IMF 의 지원을 받아 위기를 넘겼지만, 10.26후 전두환 정권 초기 일본의 지원을 받아 위기를 넘긴 적이 있다. 그때 정부는 우리의 안보가 일본의 안보에 중요하므로 당연히 지원해 주어야 된다고 큰소리 쳤고, 일본은 어디까지나 도와주는 것이지 안보 때문이라고 우긴다면 지원 할 수 없다고 맞선적이 있다. 그러나 결국은 큰소리 치면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바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압력 때문이었다. 80년대후반 냉전이 무너지자 우리의 보호막도 사라졌다. 금융, 상품 등 시장개방 요구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서서히 무너져 지난날 IMF를 초래한 것이다. IMF직전 우리의 경제성장 율은 5%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난 시절처럼 서방의 지원이 있었고 우리 마음대로 수입을 통제할 수 있었던들 IMF를 가져온 외환위기는 없었을 것이고, 성장은 지속 되었을 것이다. 누가 그 당시 IMF를 맞지 않았다고 경제를 잘했다고 말하는가?

우리의 경제성장에 대해 대비되는 국가가 또 하나 있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중국 때문에 국제사회에 고립되어 있는 대만이다. 다같이 비슷한 군사정권 상황에서, 중국의 등장으로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보다 국방비의 비중이 더 높은 상황 하에서도,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상당히 높다.

그 이유는? 당연히 해먹기나 한 정권과 청렴한 정권의 차이점 이었다. 중국 대륙에서의 부패의 결과를 뼈저리게 느낀 장개석은 밀수에 관련된 자신의 사위를 사형 시킬 정도로 부정부패만은 철저히 척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민주적이고 청렴한 정권이 들어섰다면 산업평화와 노사화합은 자연적으로 이룩되고, 지난날 IMF 는 커녕 적어도 우리 경제수준이 대만을 넘 가 했을 것이다.

혼자서 오랫동안 집권 하다 보니 비교 할 곳을 제대로 찿지 못하다 보니 심심하면 자기 업적인양 선전 정치에 이용하려고 하는데, 한국을 망쳐 놓은 자들이 더 이상 경제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그렇된 의식을 심어 가치관에 혼란을 주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박 전대통령의 업적을 면밀히 평가하여 도덕성과 물질지상주의 사이에 혼돈을 막아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