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암묵적으로 항상 권력 주변에 혹은
중심에 암초처럼 기생하는 부정부패에 우리는
어느새 익숙해져버렸다. 일종의 '학습효과'처럼
"그래, 이전 정부보다야 깨끗한 편이지"
"그래도 이번엔 덜 해먹은 것 아니야"하면서
위안을 해왔던 게 아닌가 싶다.
소설가 복거일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DJ정권 시절 세 아들의 비리는
이전 정권에 비하면 세발의 피나 다름없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점점
확보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아주 낙관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이전 선거들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치른 지난 대선은 상대적으로 깨끗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자금 문제는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근원이란 점에서 좀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이전보다 좀 나아졌다고, 물이 좀 맑아졌다고
받은 돈의 액수가 줄어들었다고 부정부패의
고리가 끊기는 것은 아니다.
구시대적 정치문화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한
국회의원들은, 정치자금에서 가장 먼저 자유
로워져야 한다. 세월이 해결해주지도, 국민의
여론에 기댈 수만도 없는 문제다.
정치자금으로 인한 숱한 부정부패의 사슬을
끊기 위한 실정법의 합리적인 개혁이 필요
하다. 균형있고 정확한 법적 기준을 통해
이 문제를 냉정하게 해결하는, 구구한 논쟁과
소모적인 싸움의 방식이 아닌, 엄중하고 객관
적인 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