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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4일 (일)







찌뿌드한 날씨만큼 찌뿌드하게 일어난 아침

베란다 앞에서 일기를 쓰며 담배를 피운다



서태지 뮤직비디오 생각이 난다 980707

그리고, 040312라는 숫자 앞에서

그리고, 040415라는 숫자 앞에서

이 빽빽한 일상을 채워가야만 하는 나는

실로 힘들다 - 제발 이 말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오롯이 제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이

잠시 제 일을 멈추고 광장으로 뛰쳐나간 이

그리고 할 일 없이 일기만 쓰는 나

모두가 다 마찬가지이리라



이 빽빽하고도 찌뿌드한 날 아침

할 일도 많고 시국선언조차 버거운 말발

그래도 내게 침묵이라도 있어 견딘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전화를 걸었던 황지우 시인 생각이 나고

시론과 둘째 얘기로 답장을 전한 친구 생각이 나고

그리고 연락두절인 이들의 안부가 궁금하고

때로는 걱정스러운 아침에

이 우울하기만 한 아침에

그래도 나는



내 책장 수북한 저 문지와 창비들을 잠시 접고

지금은 새로 또 가야 할 길을 모색해야 하는가



민주주의여 이제 안녕

......

......

......



또 다른 벗들을 만날 때까지

내가 갈 길은 얼마일 지 모르나

언제고 그랬듯이

모든 일이 누군가는 나서야 할 법이므로



그게 잘난 척이든 만용이든 용기든간에

침묵보다야 나으니까



침묵보다 더 고요한 건 죽음이라 했던가

......

......

......



"학문적 양심" - 내가 만든 말

그것을 실천해야 겠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이 또 온다면

이제는 좀 그만 싸우고도 싶다

좀 더 편안하게 살아봤으면

- 늘 내가 듣던 말인데



내 베란다 앞 뛰어다니는 저 아이들

남의 아이이자 내 아이인 저들에게도

내가 보여주어야 할 세상은

결코 지금의 아닌 다른 것이기에



이 아침이 도로 찬연하기를 바라기에

우리가 다시 웃으며 만날 그날 때까지



내 벗들을 일고 지내온 시절만큼은

내 벗들을 도로 찾기 위해 떠나야겠지



......



청춘을 함께 늙어 온 친구들

내 선배들, 그리고 사랑하는 후배들

이제 함께 만나야지

함께 울어야지



......



언제고 소멸하는 것만이 아름답듯이

물끄러미 먼 곳 구름 위에 걸친

지난 밤 내 붉은 눈시울도

이제는 안녕이다



내게 주어진 길이 있다면

응당 그 길을 가야 할 법

서른 다섯이 될 동안 못 깨달았던

그 구도의 길은

그래서 더욱 험하고 때론 두려울 터이나



참된 시작만이 비로소 아름답듯이

"꿈"이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거니까 그래야만 하니까



......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이미 오후로 접어들 저 태양

- 그 빛을 기다리련다



- 온 방의 불을 켜둔 채라도







<단테의 시국단상은 여기까지로 한다>







P.S. 화이트데이란다

오늘의 선물은 영화 '박하사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