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소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용과 배려가
'인권' 옹호의 출발점이라는 걸 누구나 이해하면서도
정작 '병역'문제에 관한 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건 '한반도'라는 특수한
공간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건국 이후 병역 거부로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이
만여명에 이르는 데다 현재 갖혀있는 이들도
백명에 달하고, 앞으로 양심에 의한 병역 거부자
들이 늘면 늘었지 결코 줄 것 같은 상황에서,
이젠 '대체복무'라는 관용의 문을 열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합니다.
병역 거부자들은 대개 '여호와의 증인'같은
특정 종교, 그것도 기독교에서는 이단으로 불리는
이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다지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이들에게 '대체 복무'를 허락
한다는 것이 사회적 정서상 아직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종교도 그렇고 병역 문제도 그렇고
사람마다 각기 다른 신념과 기준이 있고, 설사
그 신념을 가진 이들이 소수라 할지라도
그 기준이 사회적 합의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그들을 감옥으로 몰아넣는 비인간적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또하나의 인권 유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징병제가 있음에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를 허락하는 나라는 무려 25개국에
이른다고 합니다.물론, 인간 개인의 사상과
신념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해온 유럽 나라들
이긴 합니다. 아시아에서도 대만에서 대체복
무제가 인정된다고 하더군요.
남북 대치라는 준전시상황에서 그들의 반항은
이상주의적인 몸짓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종교적 죽음이나 다름없는
총을 들게 하기보다 다른 방법으로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을
고려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대체복무를 허락하는 기준이 명확해야
겠지요. 또한 대체복무가 군생활보다 훨씬
힘들 수 있다는 것, 그럼으로 병역거부의 수단
으로 악용될 수 없도록 제도를 완비해야한다는
선행조건이 필요합니다.
당장 시행하기 힘들더라도 공론의 장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기를 바랍니다. 논의가
성숙될 수록 '인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겠지요.
참고로 전 여호와의 증인도, 기독교인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