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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링 현상과 형이상학적 존재와 우리사회

터널링 현상과 형이상학적 존재와 우리 사회



터널링 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물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복잡한 수식의 진행과정은 모를지라도 대체적인 현상에 대한 이해는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골수 문과 출신이거나 딴 세상 사람이리라. 아직도 첨 듣는다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터널링 현상에 대한 설명을 한다면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5 톤의 쇠로 된 공을 강호동이가 던져야만 그 공이 반대편으로 통과되는 콘크리트 벽이 있다고 하자. 통과되는 과정은 금이 생겨 그 사이로 공이 지나가는지 아니면 공이 공만한 구멍을 내어 그 속으로 통과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 공이 빛이 유리를 통과하듯이 통과하는지 그 통과 과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가정하자. 아무튼 5 톤의 쇠공을 강호동이가 던져야만 그 콘크리트 벽을 통과할 수 있다고 하자. 이 말은 5 톤보다 가벼운 쇠공으로는 5톤의 쇠공을 던질 때의 속도로 강호동이가 던진다고 해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가지 가정이 더 필요하다. 5톤 보다 가벼운 쇠공으로 충격을 받은 이 콘크리트 벽에는 아무 변화도 없다고 가정을 하자. 즉 이전 사건에 의해 콘크리트 벽이 조금씩 마모가 된다거나 내부적으로 균열이 생겼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고 가정하자는 말이다. 벌써 고전 또는 상식이 되어 버린 이 터널링 현상에 따르면 0.1톤의 쇠공을 강호동이가 반복적으로 예를 들어 백만 번정도 콘크리트 벽을 향해 반복적으로 던지면 그 중에 한 두 번은 그 0.1톤의 쇠공이 콘크리트 벽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반복적으로 0.1톤의 쇠공을 강호동이가 5톤의 쇠공을 던질 때의 속도로 백만 번을 던진다고 해도 전 사건에 의해 그 콘크리트 벽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이상 그 0.1톤의 쇠공은 그 콘크리트 벽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통과한다고 한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런 터널링 현상을 정설로 믿고 이용하는 분야가 있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반도체 분야이다. 에너지 상태가 다른 복수의 반도체 물질을 이렇게 저렇게 접합시키고 그 계면 사이를 전자가 왔다 갔다 함으로써 각양 각색의 반도체 디바이스들이 형성된다. 이 때, 전자들이 에너지 상태가 다른 복수의 반도체 물질 사이들을 통과하는 이유 중 하나에 대한 설명으로 위에서 언급한 터널링 현상이라는 물리학적 내용이 제시된다. 물리학적 에너지 측면에서 보았을 때 쇠공이 콘크리트를 통과하는 것과 전자들이 그 에너지 상태가 다른 반도체 물질의 계면 사이를 통과하는 것은 같은 현상으로 가정된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사이즈이다. 전자(former)는 우리 인간들이 현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의 세계에서 벌어져야 하는 것이고 후자(later)는 전자(electron)라는 있는지 없는지 알쏭 달쏭한 입자의 사이즈에서 벌어지는 사실 현상이다. 전자(former)는 우리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제시된 가정이 불변이라면), 후자(later)는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는 현상학적 사실이다. 하지만, 0.1 톤의 쇠공이 그 콘크리트 벽을 통과한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그 0.1 톤의 쇠공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그 콘크리트 벽을 통과해 가는지 눈과 소리와 냄새 등으로 인지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자(electron)가 물질들 사이의 계면을 통과하는 것은 현상학적으로 인식하면서도 그 통과되는 과정의 메커니즘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단지 통계학적인 전자의 통과 수치만을 가지고 이 현상을 이해할 뿐이다.



이렇게 현실 세계에서는 아주 아주 작은 입자들(엄청 작은 입자들이다.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입자들이다)의 물리학적 현상에 대한 메커니즘은 잘 파악이 되지 않는다. 단지 입자가 지니는 파동성에 입각한 양자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통계적 수치와 우리에게 결과론적으로 인식되는 현상만이 이 작은 세계(없음의 세계라고 해도 무방하리라)를 설명할 뿐이다. 하물며 전자보다 작은 미립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학적 사건에 대한 구체적 메커니즘은 말해 모하겠는가…..



우리 인간사에는 수 많은 형이상학적 존재들이 우리 인간의 관념 속에 있어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이런 형이상학적 존재들에 대한 증거는 형이상학적 존재에 대한 종교적 관점 및 인식 양식들이 개개인 또는 개개의 문화에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연역적으로 제시될 수 있다. 형이상학적 존재가 현상학적 사실이라면 그 형이상학적 존재에 대한 종교적 관점 및 인식 양식들은 형이상학적 존재를 향한 구체적 과정의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른다. 하나의 형이상학적 존재가 다양한 해석을 통해 현실 세계에서 그 구체적 과정의 메커니즘을 형성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양한 형이상학적 존재들이 각양각색의 메커니즘을 형성하는지 아니면 그 다양한 형이상학적 존재들이 하나의 메커니즘을 형성하는지 그 누구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단지 개개인이 단지 개개의 문화가 단지 개개의 국가가 그들만의 생각과 관념을 절대화 하여 그들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형상인 것이다. 전자(electron)의 터널링 현상에 비해서도 이 형이상학적 존재들은 더욱 미세한 아니 거의 없음의 상태를 지닌 존재들 일 수 있다. 사고의 전환을 이룬다면 아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거시적 존재의 발현일 수도 있으리라. 기껏 2미터도 안되는 2미터나 되는 인간들아 어찌 형이상학적 존재에 대한 구제적 과정 메커니즘을 그 2차원적 또는 3차원적 사유의 능력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 현세에서 최선의 선택과 최선의 논리적 사고를 해야 할 뿐이다. 내 입장을 고려해보고 타인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못할 논리적 선택의 길이 없지 않을 것이다.



작금 우리 나라를 휘젓고 있는 비논리적 사태들 한마디로 광신적 맹목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다.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여 구체적인 것은 밝히지 않겠다. 그것이 내 신조이고 나의 인생 철학이기 때문이다. 비록 나와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는 개인 집단이 있을지라도 그들에게 칼은 대지 않으리라 단지 동조를 못할 뿐이다. 그러면서 그들이 나의 신조와 나의 인생 철학에 칼을 들이 대지 않길 빌 뿐이다. 요즘 일어나는 일들이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 드는가?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우리는 그 살벌하다는 일제시대를 보냈고 그 말도 안 되는 군사 독재시대도 보냈다. 모가 부족하여 이렇게 더욱 말도 안 되는 일들로 아까운 우리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인가. 볼 책도 수 없이 쌓여 있고 생각해봐야 할 사고의 차원도 수 없이 우리 앞에 이렇게 깔려 있고 인간으로서 느껴봐야 할 감정의 예비자들이 이렇게 수 없이 우리 앞에 대기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를 이끌고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광신적 집단님들아 제발 그 광신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지구의 역사를 볼 때 인간의 사유 역사는 지극히 짧은 것이다. 어찌 그 짧은 역사 동안 형성된 인간의 철학 종교 관념을 절대 시 할 수 있다는 것인가. 과거의 많은 현인 및 성인들이 만들어 놓은 철학 종교 관념들이 절대적 일 수 있는가? 현재의 우리는 그들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 사이를 관통하여 현존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미래를 관통할 존재들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절대적인 것을 미리 상정하여 그것에 매달려 살아야 하는가. 아무리 말해도 씨알이 먹히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글을 써야 하는 마음. 씨알은 언젠가 발화하여 그만의 생을 살리라….



제발 좀 사유의 깨임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이 깨임이라는 것은 보편성 또는 일반성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보편적 일반적 사유의 삶을 살다가 명을 다한 후 형이상학적 존재들이 그대들을 심판하고 그대들의 방식이 틀렸다고 할지라도 그 형이상학적 존재들은 이해 하리라. 말도 안 되는 우격다짐 끝을 내기 바란다. 답답한 인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