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03년 7월5일자 산케이신문(産經新聞) 사설
KEDO 문제, 「북한」을 편드는 한국의 자세
북한의 핵개발(核開發) 문제를 둘러싼 日·美·韓의 국장급(局長級) 협의(協議)가 워싱턴(Washington, D.C.)에서 열렸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Korean Peninsul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에 의한 북한에서의 경수로(輕水爐) 원자력발전소(原子力發展所) 건설을 속행(續行)하는가, 아닌가」가, 대북(對北) 「압력(壓力)」의 일환(一環)으로서 초점(焦點)이 되었지만, 「계속은 곤란(困難)」이라고 하는 미국과 신중(愼重)한 한국의 보조(步調)가 다시 흐트러졌다. 한국의 북한 체제(體制)에 대한 자세에는 다시 한번 두렵고 걱정스러운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KEDO는 1994년의 美北 기본합의(基本合意)에 근거(根據)해, 1995년에 日·美·韓으로 설립(設立)되어 1997년에는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도 이사회(理事會)에 참가했다. 북한이 핵개발을 단념(斷念)하는 대신에, KEDO가 북한에 평화적 이용을 위한 경수로 원자력발전소 2기(基)를 건설하며, 1기의 완공(完工)까지 매년 50만 톤의 중유(重油)를 제공(提供)하려는 계획이다. 기초 공사가 거의 끝나, 여름부터 본체(本體) 공사가 시작될 단계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이 2002년 10월, 우라늄(uranium) 농축(濃縮)에 의한 핵개발 계획을 인정(認定)하고,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으로부터의 탈퇴(脫退)를 선언(宣言)해, 4월 베이징(北京)에서의 美·北·中 3국 협의시(協議時)에는 핵무기(核武器)를 벌써 보유(保有)하고 있다고까지 발언(發言)한 이상, 「북한의 핵개발 동결(凍結)의 담보(擔保)로서의 KEDO 사업은 의미를 잃었다」라고 하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중유 공급은 2002년 12월부터 벌써 멈추어 있다.
미국의 주장은 말하자면, 「상대가 약속을 깬 이상, 이쪽만 약속을 계속 이행(履行)해야 하는 이유는 없고, 오히려, 계속하면, 상대의 위반(違反)·부정(不正)을 증대(增大)시킬 뿐이다」라는 것일 것이다. 확실히, 美北 기본합의를 위반하고, 스스로 KEDO의 존립기반(存立基盤)을 부순 것은 북한측인 것이다.
이것에 대해,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체제에 지금도 융화(融和)의 「햇볕정책」을 계속하는 한국은, 건설 정지(停止)에는 신중 자세를 버리지 않고, 합의에 이르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의 북한에 대한 동포의식(同胞意識)과 민족협력(民族協力)이라는 생각은 최대한으로 존중(尊重)해야 하지만, 그것과 위험도(危險度)를 더해가는 김정일 체제에 대한 대처방침(對處方針)으로서 본연(本然)의 자세는 별개(別個)다. 독재체제(獨裁體制)에 대한 안이(安易)한 평화주의(平和主義)가 결국은 거대(巨大)한 비극(悲劇)을 부른 많은 역사(歷史的)인 사례(事例)를 잊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북한이 핵개발 문제에 관한 다국간(多國間) 협의를 받아들여 핵개발을 이전(以前)의 동결 단계로 되돌리고,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사건의 해결에 나올 때까지는, KEDO 사업의 일시(一時) 중단(中斷)이 현명(賢明)한 길일 것이다.
http://www.sankei.co.jp/news/030705/morning/editoria.htm
B. 2003년 7월4일자 산케이신문(産經新聞) 칼럼(column)
도쿄(東京) 시나가와(品川)의 「배[船]의 과학관(科學館)」에 전시(展示)되고 있는 북한의 공작선(工作船)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수상이 시찰(視察)했다. 거기서 해상경비(海上警備) 강화(强化)의 필요성을 강조해, 『세계는 선의(善意)나 호의(好意)만으로 성립(成立)되지는 않는다…』라고 감상(感想)을 말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일본국(日本國) 헌법(憲法) 전문(前文)의 반성(反省)[?]일 것이다.
한편, 도쿄도(東京都) 의회(議會)의 일반 질문에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지사(都知事)는 『[공작선을] 두어야 할 곳은 국회(國會)의 정원(庭園)이 아닌가』라며, 『거기가 안 되면 도청(都廳)으로 인수(引受)해도 괜찮다』라고 답변(答辯)했다. 공작선은 5월31일부터 전시되었지만, 벌써 견학자(見學者)가 3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뒤늦게나마 본인(本人)도 견학했다. 특별히 취재(取材) 허가(許可)를 받아 선내(船內)에도 들어가 보았다. 인양(引揚)은 침몰(沈沒) 후 263일이 지나서 이루어졌다. 약 10명의 사체(死體)가 뿔뿔이 흩어져 있던 선내는 자폭(自爆)의 흔적을 나타내는 철판(鐵板)이 위로 말려져, 생생한 구멍이 나 있었다.
싣고 있던 중장비(重裝備)의 무기(武器)에 눈이 휘둥그렇게 되었다. 로켓 발사기(rocket launcher), 2연장(二連裝) 기관총(機關銃), 휴대형(携帶型) 지대공(地對空) 미사일 등등 무서운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일본 미야자키현(宮崎縣)의 어선(漁船) 「메이세이마루(明成丸)」로 위장(僞裝)을 하고 있었지만, 양쪽으로 열게 되어있는 문안에 소형(小型) 함정(艦艇)을 격납(格納)해, 납치(拉致) 등 범죄 공작용의 배이기도 했다.
많은 일본인이 이것에 의해 인식(認識)이 깊어지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특히 반전평화(反戰平和) 시위(示威, 데모, demonstration)를 하는 사람이나 「대화」만 말하는 「위선적(僞善的) 문화인(文化人)」에게 보여주고 싶다. 얼마나 일본의 헌법 전문이 태평(太平)스럽게 계속 지껄이고 있는지, 얼마나 대북(對北) 「햇볕정책」이 뻔뻔한 것인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전쟁인가, 평화인가」 단순하게 물으면, 누구라도 평화를 선택한다. 그러나 헌법이 노래하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평화는, 완전히 환상(幻想)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전시 공작선은 가르쳐 준다. 앞서 본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비늘(scale)이 떨어져 새로운 시각(視覺)을 갖게 되면서, 시나가와의 「배의 과학관」 앞은 비늘의 산이 될 것이다.
http://www.sankei.co.jp/news/030704/morning/column.htm
C. 『무방비(無防備) 라는 것은 무섭다』 경비(警備) 강화를 강조
북한 공작선(工作船), 고이즈미 수상이 시찰(視察)
산케이신문 2003년 7월3일 조간(朝刊)
『세계는 선의(善意)나 호의(好意)만으로 성립(成立)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침략(侵略) 또는 공작(工作)하려고 한다. 마약(痲藥)으로도 하고, 각성제(覺醒劑)로도 하고, 괘씸한 패거리[連中]가 있다. 대응(對應)은 항상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수상은 7월2일 오후, 가고시마현(鹿兒島縣) 아마미오시마(奄美大島) 앞바다에서 인양(引揚)해 도쿄도(東京都) 시나가와구(品川區)의 「배[船]의 과학관(科學館)」에 전시(展示)되고 있는 북한의 공작선(工作船)을 처음으로 시찰(視察)한 후, 기자단(記者團)에게 이렇게 말해, 해상경비(海上警備) 강화(强化)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상은 약 20분에 걸쳐서 공작선 등을 시찰했으며, 2001년 12월22일 사건 당시(當時) 현장지휘(現場指揮)를 했던 해상보안청(海上保安廳)의 요코야마 데츠오(橫山鐵男) 경비구난감(警備救難監)으로부터 설명(說明)을 들었다. 공작선이 시속 60킬로로 항행(航行)한다고 설명을 듣자 『그렇게 빠른가』라고 놀란 것 외에, 통형(筒型)의 수중(水中) 스쿠터(scooter)를 보며 『이것으로 잠수(潛水)해서 가는 것인가』라고 때때로 질문하면서, 전시물(展示物)을 주시(注視)했다.
수상은 『이런 공작선에 대해서 무방비(無防備) 라고 하는 것은 무섭다. 순시선(巡視船)이 격침(擊沈)되지 않았던 것은 운(運)이 좋았다』라고 솔직하게 감상(感想)을 말한 후, 『그토록 장비(裝備)되어 공격받는다면, 확고(確固)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대응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공작선의 전시는 9월30일까지이며, 입장료(入場料)는 없다.
■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지사(都知事) 『국회(國會)의 정원(庭園)에 두자』며 전시의 계속 호소(呼訴)
7월2일 열린 도쿄도(東京都) 의회(議會)의 일반 질문에서, 9월말에 일반 공개가 종료(終了)되는 북한 공작선의 보존(保存)·전시가 다루어졌다.
자민당(自民黨) 의원(議員)이 『[북한에 의한 일본인의] 납치사건(拉致事件)이 해결될 때까지, 보존·전시하도록 도(都)가 협력해야 한다』라고 질문한 것에 대해,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는 『[공작선을] 두어야 할 곳은 국회(國會)의 정원이 아닌가. 만약, 거기가 안 되면 도청(都廳)으로 인수(引受)해도 좋다』라고 답변(答辯)했다.
지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에게 공작선의 인양을 강하게 호소한 경위(經緯)가 있다. 지사는 『국민적(國民的)인 인식(認識)을 가지기 위해서도, 어느 한 곳에 상시(常時) 전시하거나, 全 일본을 순회(巡廻)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해 보존·전시의 계속에 대한 이해(理解)를 나타냈다.
http://news.goo.ne.jp/news/sankei/seiji/20030703/NAIS-0703-03-02-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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