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설] 3·1절 85주년을 맞으며 에 대해서
(홍재희) ======== 방상훈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오늘 또 한 번의 3·1절을 맞는다. 1919년 기미년 그날로부터는 85주년, 광복 이후부터 따져도 58번째이다. 올해는 러일전쟁 발발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전쟁을 결말지은 포츠머스 조약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이 확립된 국치(國恥)의 문턱이었다. 그래서 오늘 의미가 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서양 제국주의를 앞질러 받아들였던 일제의 침략과 압제에 대해 독립 자존의 민족적 기개를 떨쳐 일어섰던 3·1운동의 민족사적 의의는 결코 세월의 흐름에 의해 가벼워질 수 없다. 그러나 그 한편으로 왜 3·1 독립운동이 있어야만 했던가라는, 3·1운동의 전사(前史)로서 우리가 밟아간 망국(亡國)의 계단에 대한 엄혹한 자기반성은 3·1절을 기념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다 함께 서양 제국주의 앞에 노출되었던 한·중·일 3국 가운데 유독 한국만이 일본이란 후발 제국주의의 먹이가 되었던 역사에서 우리가 오늘 되새겨야 하는 교훈이 무엇인가 하는 반성이다. 이 같은 반성은 지금 우리의 안팎 현실이 100년 전의 그때를 방불케 해, 더욱 절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시대 말기의 상황은 거대한 외세의 강요에 대해 불가항력적인 측면도 배제할 수 없으나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이끌려 다니게 될 때 겪게 되는 민족의 고통 그 자체 라고 볼수 있다. 3·1 독립운동은 그러한 뼈저린 민족적 아픔을 답습하지 않기 위한 자각운동이요 강탈당한 우리의 국권을 회복하고 되찾기 위한 숭고한 실천 이라고 볼수 있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어찌 보면 3·1운동은 국민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국가가 그 의무를 포기한 데 대해 국민들 스스로가 국가의 역할을 대신 떠맡아 일어서야 했던 참담한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근대 역사에서 망국의 위험 신호가 그렇게 끊임없이 울렸던 적도, 그리고 한 국가가 그렇게 그 경보에 귀를 막고 있었던 것도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1876년의 개항 이후 망국에 이르기까지 외국의 전쟁터가 된 것이 두 번이고, 국모가 외국의 깡패들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고 급기야 국왕이 외국 공사관에 몸을 의탁하는 사태가 잇따랐다. 이 상황에서도 정부와 지도층은 세계의 대세에 눈이 어두워 한때는 서양을 멀리하겠다는 척화비(斥和碑)를 세우더니, 이어 동맹을 찾아 미·일·청·노(美·日·淸·露) 사이를 떠돌다가 자강(自强)의 기회와 시간을 놓친 채 끝내 나라를 잃고 말았던 것이다. 이 가슴 저린 망국사는 오늘 우리에게 내부의 소이(小異)를 초월한 대동(大同) 자강의 길을 찾을 것과 함께, 자폐증(自閉症)에 시달리는 시대착오적 민족주의를 벗어나 글로벌리즘이란 세계 질서의 대전환 속에서, 국가를 보존할 동맹과 협력의 전략이 무엇이겠는가를 묻고 있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조선사설은" 자폐증(自閉症)에 시달리는 시대착오적 민족주의" 운운하고 있는데 조선일보야 말로 자폐증(自閉症)에 시달리는 냉전수구정치에 틀 속에서 1945년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 자폐증(自閉症)에 시달리는 시대착오적 민족주의" 와 반대편에서 문명세계가 지향하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인 일제잔재청산과 민주주의 발전 그리고 인권신장 . 분단극복을 위해 기여해온 한국사회의 양심적인 민주화 세력들을 탄압하는 정통성 없는 군사독재정권과 권언유착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의 목을 비틀어 왔다.
(홍재희) ======= 그런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자폐증(自閉症)에 시달리는 시대착오적 민족주의"는 바로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를 스스로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반면에 문명세계가 지향하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인 일제잔재청산과 민주주의 발전 그리고 인권신장 . 분단극복을 위해 기여해온 한국사회의 양심적인 민주화 세력들이야말로 글로벌리즘이란 세계 질서의 대전환 속에서, 국가를 보존할 동맹과 협력의 전략이 무엇이겠는가를 한국사회와 한민족공동체구성원들에게 제시해주고 있다고 볼수 있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지나간 쓰라린 역사가 그 역사를 지금 우리의 입맛대로 재해석한다고 씻기고 덮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3·1절 85주년을 맞는 오늘, 정부의 최고 지도자들은 국민을 분열에서 통합으로, 자폐적 민족주의로부터 열린 민족주의로, 자주(自主)의 망령으로부터 협력과 동맹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를 스스로 되물어봐야 한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독일에 대한 전후처리과정과 일본의 전후처리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볼수 있다. 독일은 스스로도 나치의 잔재를 청산하는데 엄격했고 나치의 피해를 입은 국가와 대상에 대해 물적 심적 배상은 물론 독일인들에 대해서도 나치의 치욕적인 역사를 교훈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나치의 점령 하에 있었던 프랑스의 경우도 나치부역자들에 대한 철저한 청산작업을 벌였다. 프랑스의 나치청산작업은 나치에 협조한 언론도 예외 없이 단죄를 받았다.
(홍재희) ======= 반면에 일본의 전후처리는 부실했다. 일본 내부에서의 일제잔재청산이 부실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식민지로 점령했던 피해국가들에 대해서도 진솔한 반성이 전제된 청산의 의미가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일제의 혹독한 식민지 지배의 고통을 겪었던 한반도에서도 분단을 통해서 형성된 기형적 전후질서 속에 일제잔재청산은 오늘에 이르기 가지 유보가 돼왔다. 일제가 패망한 이후에 분단을 통한 미소의 점령정책은 남한사회에서 친미반공이면 친일반민족행위자들도 건국공신이 되는 물구나무선 가치관이 활개치고 다녔다.
(홍재희) ====== 일제가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허용한 신문인 조선일보도 당시 방응모 사장이 일제시대에 독립군을 살상하도록 고사포를 직접 구입해 일제에 헌납하고 조선의 숫처녀들과 나이 어린 학생들을 일제의 총알받이와 성노리개로 내모는 나팔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온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이 들어서자 자랑스럽게 민족의 정론지라고 큰소리 떵떵 치며 오늘에 까지 이르렀다. 방상훈의 조선일보 에게 묻겠다. 일제가 한민족에 대한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에서 허가해주고 발행에 들어간 조선일보가 방씨 족벌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일제시대에 민족의 정론지 역할을 했다면 일제시대당시에 조선일보발행을 허용해준 조선총독부가 민족 정론지를 허가해줬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홍재희) ====== 이런식으로 일제시대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조선일보의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통일의 정체성을 조선일보의 입맛대로 재해석한다고 해서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지니고 있는 극복돼야할 가치관이 씻기고 덮이는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는 지난 세월 분단정치를 지향하는 군사독재정권이 지펴놓은 지역갈등의 불길을 향해 부채질을 해댔고 남북통합을 지향하는 민주화 세력들을 좌경용공세력으로 매도했다. 그러한 방씨 족벌의 조선일보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 자폐적 민족주의를 통해 열린 세계와 고립시키고 있다고 집권기간 5년 내내 비판해 왔던 김대중정권의 정점에 있었던 김대중 전대통령은 방씨 족벌 조선일보의 끊임없는 비방에도 불구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홍재희) ===== 노벨평화상은 국민을 분열시키고 , 자폐적 민족주의로부터 열린세계와 고립을 시키는 정치지도자에게는 수여하지 않는 상 으로 알고 있다. 그러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이 상징해주고 있는 햇볕정책을 지향했던 김대중 정권의 정체성을 이어받아 평화번영정책을 통해 나아가고 있는 세력들을 매도하는 조선사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조선일보 ? 이제 과거를 속죄하고 민족앞에 무릎꿇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조선일보도 최근에 세삼스럽게 느끼고 있듯이 앞으로 갈수록 조선일보의 친일반민족행위는 조선일보의 존립자체까지도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늦게 전에 조선일보는 민족앞에 겸허하게 무릎을 꿇어라. 우리열린 한민족은 문명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자폐증(自閉症)에 시달리는 시대착오적 민족주의" 운운하며 덮는다고 조선일보의 죄과가 덮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조선일보의 중대한 착각이라는 것을 우리 깨어있는 국민들이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다. 조선일보는 대답하라? 조선일보가 진솔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 한민족에게 두 번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사설] 3·1절 85주년을 맞으며(조선일보 2004년 3월1일)
오늘 또 한 번의 3·1절을 맞는다. 1919년 기미년 그날로부터는 85주년, 광복 이후부터 따져도 58번째이다. 올해는 러일전쟁 발발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전쟁을 결말지은 포츠머스 조약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이 확립된 국치(國恥)의 문턱이었다. 그래서 오늘 의미가 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서양 제국주의를 앞질러 받아들였던 일제의 침략과 압제에 대해 독립 자존의 민족적 기개를 떨쳐 일어섰던 3·1운동의 민족사적 의의는 결코 세월의 흐름에 의해 가벼워질 수 없다. 그러나 그 한편으로 왜 3·1 독립운동이 있어야만 했던가라는, 3·1운동의 전사(前史)로서 우리가 밟아간 망국(亡國)의 계단에 대한 엄혹한 자기반성은 3·1절을 기념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다 함께 서양 제국주의 앞에 노출되었던 한·중·일 3국 가운데 유독 한국만이 일본이란 후발 제국주의의 먹이가 되었던 역사에서 우리가 오늘 되새겨야 하는 교훈이 무엇인가 하는 반성이다. 이 같은 반성은 지금 우리의 안팎 현실이 100년 전의 그때를 방불케 해, 더욱 절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3·1운동은 국민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국가가 그 의무를 포기한 데 대해 국민들 스스로가 국가의 역할을 대신 떠맡아 일어서야 했던 참담한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근대 역사에서 망국의 위험 신호가 그렇게 끊임없이 울렸던 적도, 그리고 한 국가가 그렇게 그 경보에 귀를 막고 있었던 것도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1876년의 개항 이후 망국에 이르기까지 외국의 전쟁터가 된 것이 두 번이고, 국모가 외국의 깡패들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고 급기야 국왕이 외국 공사관에 몸을 의탁하는 사태가 잇따랐다. 이 상황에서도 정부와 지도층은 세계의 대세에 눈이 어두워 한때는 서양을 멀리하겠다는 척화비(斥和碑)를 세우더니, 이어 동맹을 찾아 미·일·청·노(美·日·淸·露) 사이를 떠돌다가 자강(自强)의 기회와 시간을 놓친 채 끝내 나라를 잃고 말았던 것이다. 이 가슴 저린 망국사는 오늘 우리에게 내부의 소이(小異)를 초월한 대동(大同) 자강의 길을 찾을 것과 함께, 자폐증(自閉症)에 시달리는 시대착오적 민족주의를 벗어나 글로벌리즘이란 세계 질서의 대전환 속에서, 국가를 보존할 동맹과 협력의 전략이 무엇이겠는가를 묻고 있다.
지나간 쓰라린 역사가 그 역사를 지금 우리의 입맛대로 재해석한다고 씻기고 덮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3·1절 85주년을 맞는 오늘, 정부의 최고 지도자들은 국민을 분열에서 통합으로, 자폐적 민족주의로부터 열린 민족주의로, 자주(自主)의 망령으로부터 협력과 동맹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를 스스로 되물어봐야 한다.
입력 : 2004.02.29 18:22 13' / 수정 : 2004.02.29 19:30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