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마음을 열고 평준화를 이야기하자 에 대해서
(홍재희) ======== 방상훈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고교 평준화가 학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고1 때 같은 실력이었던 학생들의 고2 때 성적을 비교한 결과 평준화 지역 학생들이 비(非)평준화 지역 학생들보다 전국 석차로 따져 10% 정도 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서만도 평준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연구로 지난번 서울대의 입학생 분석 결과에 이어 두 번째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을 거친뒤에 오늘자 사설을 작성했는지 궁금하다. 아래 내용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결과에 대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의 반론 글이다.
『비평준화지역 학업성취도 논란 '2라운드'
한국개발연구원 “상위 20%, 10%로 향상 ”
교육과정 평가원 “비교 방법 치명적 실수 ”
비평준화 지역 고교생들의 성적 향상도가 평준화 지역 학생들에 비해 높다는 연구 결과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나왔다. 그러나 기초자료를 ‘제공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즉각 “연구방법 자체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육개혁연구소는 23일 ‘고교 평준화 정책이 학업 성취도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실증 분석’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1년 실시한 교육성취도 평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비평준화 정책은 평준화에 비해 학생들의 성적을 0.3 표준편차만큼 끌어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표준편차가 0.3 오른다는 것은 학업성적 상위 20%인 학생이 1년 만에 상위 10% 수준으로 뛰어오르는 정도의 성적 차이라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연구소는 또 비평준화 정책이 평준화에 견줘 학생들의 성적 수준에 관계없이 전체 학생의 성적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김태종 한국개발연구원 교수는 “비평준화에 따른 학생별 성적 향상 효과의 크기가 표준편차로 따져 0.25~0.38 사이로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며 “이는 어떤 평준화 지역이 비평준화될 경우 정책 변화의 과실이 학생의 성적 수준에 관계없이 골고루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과정평가원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보고서는 고교 1년생이 1년 뒤에 성적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추적한 종단연구가 아니라 2001년에 고교 1년생과 2년생의 성적을 동시에 측정한 다음 ‘이 1학년이 1년 뒤에 2학년 학생들의 성적대로 될 것’이란 가정 아래 성적향상도를 재는 ‘치명적’ 실수를 했다”고 지적했다. 교육성취도 조사·분석을 담당하는 김경희 박사는 “평준화 지역에서도 고교에 따라, 비평준화 지역에서도 고교에 따라 성적향상도는 0.3 표준편차보다 훨씬 큰 차이가 나는데도 보고서는 이를 무시하고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을 비교했다”며 “한국개발연구원이 기초자료 가운데 일부만을 사용하고, 종단연구를 하지 않고, 고교간 성적향상도 차이는 무시한 연구결과를 공개 발표한 것이 오히려 의아스럽다”고 덧붙였다. 황순구 조성곤 기자 hsg1595@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 (자료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4년 2월23일자)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이 연구를 접하고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연구가 왜 이제야 나왔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가 하려고만 했다면 수능시험의 전국 자료를 토대로 평준화가 학력에 미친 공과(功過)에 대한 포괄적 분석이 언제라도 가능했을 것이다. 정부가 수능 성적자료를 무슨 큰 비밀처럼 움켜쥐고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평준화가 학력의 하향 평준화를 낳고 있다는 국민들의 감(感)이 사실로 입증되는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자료에 의하면 경쟁의 논리로 접근하고 있는 조선사설의 시각으로 접근해 봐도 평준화 지역의 학생들이 비 평준화 지역의 학생들 보다 더 높은 수능점수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조선사설이 어떻게 생각하나? 공신력 있는 조사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듯이 조선사설이 국민들의 이름을 팔면서까지 주장하고 있는 평준화가 학력의 하향 평준화를 낳고 있다는 얘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벌써 몇 차례 지적해 왔지만 이제 평준화에 대해 일체의 선입견을 버리고 냉철한 평가를 내려야 할 때가 됐다. 그러려면 교육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서의 덕성과 소양을 갖춘 인간으로 키워내고, 자기 적성을 찾아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며, 국민을 먹여 살릴 전문 지식의 인재들을 배출하는 세 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평준화는 인성교육·적성교육·학력교육이라는 세 가지 목표 중 어느 하나도 이뤄내지 못했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평준화는 인성교육·적성교육·학력교육이라는 세 가지 목표 중 어느 하나도 이뤄내지 못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입시지옥 이라는 한국사회의 이상과열교육 풍토를 통해서 무너져 내린 인성교육·적성교육·학력교육의 문제를 마치 평준화 제도 때문인 것으로 매도하고 있다. 입시지옥이라는 이상과열교육풍토에 한국사회가 지금까지 매료되지 않았다면 평준화도 지금과 같은 곤혹스러운 입지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입시지옥으로 상징되고 있는 경쟁체제는 평준화가 지향하고 있는 인성교육·적성교육·학력교육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무시할수 없는 걸림돌역할을 했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이런 상황을 벗어날 길은 학교를 다양화하는 방법뿐이다. 평준화를 완전히 허물어 전국 획일의 과거식 고교 입시로 가자는 게 아니다. 적어도 사립에 대해서만은 학생 선발과 교원 인사, 교육 과정의 편성, 수업료 책정 등에 자율을 허용해 개성 있는 학교가 개성 있는 인간을 길러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평준화는 조선사설은 사립학교에 대해서 최대한 자율을 허용해주라고 강조하고 있다. 조선사설에 묻겠다. 현재 대한민국의 사립학교가운데 자율적으로 학생 선발과 교원 인사, 교육 과정의 편성, 수업료 책정 등을 부작용 없이 정책적으로 추진해 나갈 능력을 갖춘 건실한 사학재단이 과연 몇 곳이나 되는지 조선사설은 한번 제시해 보아라? 그리고 고교교육은 대학교육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는데 현재 한국의 대학들이 개성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질적으로 향상된 교육을 하고 있는지 묻고자한다.
(홍재희) ===== 대학의 질적으로 향상된 교육이 뒷받침 되지 않는 고교교육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현 고교교육도 대학교육이 서열화된 가운데 학생들의 개성보다는 백화점식 대학운영이 필요로 하고 있는 몰 개성적인 입시경쟁에 함몰된 고교졸업생들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평준화라는 제도를 무력화 시키는 입시지옥의 폐단을 부채질했다고 볼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사학재단에 대해서 자율적인 역할을 맡기기 이전에 사학재단이 건실하게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부터 해봐야 한다. 현재 수많은 사학재단들이 세습족벌체제를 유지하며 문제를 계속 파생시켜 사립대학 학생들과 끊임없는 소모적 분쟁에 휩싸여 있는 현실속에서 사학재단에 자율을 허용한다면 그나마 학생교육을 망치게 될 것이다. 학생들에 대한 교육은 조선사설식의 실험용 도구 여서는 안된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인성교육을 우선시하겠다는 전교조 교사들이 뜻을 모아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멋있는 학교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저학력 학생들에게 중위권에 진입할 수 있는 실력을 붙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 학교가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국처럼 사관학교에 진학할 학생을 상대로 한 학교가 문을 열 수도 있다. 물론 세계 수준의 학력과 학습 의욕을 지닌 학생들이 세계와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초(超)영재학교도 등장할 수 있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다양한 형태의 학교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다양한 학교를 한국사회가 대안으로 선택하려면 먼저 조선사설이 전가의 보도처럼 지향하며 활용하고 있는 치열한 입시경쟁을 통한 서열화된 고교교육과 서열화된 대학교육부터 철저하게 바꿔놓고 접근해야한다. 오로지 서열화된 대학입학을 위한 치열한 경쟁만을 재촉하고 있는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접근한다면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멋있는 학교나 저학력 학생들에게 중위권에 진입할 수 있는 실력을 붙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 학교 그리고 외국처럼 사관학교에 진학할 학생을 상대로 한 학교 와 세계 수준의 학력과 학습 의욕을 지닌 학생들이 세계와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초(超)영재학교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영재교육이나 천재교육은 경쟁을 통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성질의 교육형태이다. 조선사설이 주장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대안학교는 오히려 입시지옥을 정책적으로 극복하고 난뒤에 평준화 제도 속에서 순리적으로 자라날 수 있는 대안학교들이라고 본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그렇게 다양한 교육 목표와 다양한 교육방법 그리고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립학교들을 만들어서 학부모와 학생들의 선택에 맡겨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학교들 사이에는 선의의 경쟁이 벌어질 것이고, 이 경쟁은 자연스럽게 교사들에게는 교수 능력의 경쟁을, 학생들에게는 학습 능력의 경쟁을 재촉할 것이다. 이것은 곧 학생 개개인에게 자신 속에 잠겨 있는 잠재력을 개발토록 해주고, 사회와 국가의 발전도 자연 따라오게 될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 학생 개개인에게 자신 속에 잠겨 있는 잠재력을 개발토록 해주는 교육은 학교들 사이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멋있는 학교나 저학력 학생들에게 중위권에 진입할 수 있는 실력을 붙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 학교 그리고 외국처럼 사관학교에 진학할 학생을 상대로 한 학교 와 세계 수준의 학력과 학습 의욕을 지닌 학생들이 세계와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초(超)영재학교등은 상호경쟁이 아닌 학생 개개인이 각기 지닌 개성과 자질등이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학생 개개인의 자아성취를 촉진 시킬수 있는 학문적 연구의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접근해 볼 때 조선사설이 주장하고 있는 경쟁의 의미는 죽기 살기식의 제로섬 게임일 뿐 각기 개성을 중시하는 학문적 업적을 통해 공존할 수 있는 대상일수는 없다고 본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그렇게 다양한 교육 목표와 다양한 교육방법 그리고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립학교들을 만들어서 학부모와 학생들의 선택에 맡겨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학교들 사이에는 선의의 경쟁이 벌어질 것이고, 이 경쟁은 자연스럽게 교사들에게는 교수 능력의 경쟁을, 학생들에게는 학습 능력의 경쟁을 재촉할 것이다. 이것은 곧 학생 개개인에게 자신 속에 잠겨 있는 잠재력을 개발토록 해주고, 사회와 국가의 발전도 자연 따라오게 될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사립학교를 통해 조선사설이 꿈꾸는 이상적인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 나가려면 최소한 사립학교들의 개성을 담보할 수 있는 열린 경영이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인데 현재 대한민국의 사학재단 치고 온전하게 정상 운영되고 있는 곳이 과연 몇군데나 되는지 조선사설은 제대로 파악이나 하면서 그런 무지개꿈을 꾸고 있는 지 묻고자 한다.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접근한다면 현대판 귀족들만이 다닐수 있는 사립학교를 설립하자는 얘기와 다름없다. 조선사설이 주장하고 있는 학생 개개인에게 자신 속에 잠겨 있는 잠재력을 계발시키는 것은 사립학교나 국 . 공립학교 이냐를 구분하며 차별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교육을 시키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지금 우리의 교육은 경쟁을 없애서 당장의 고통을 줄이자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이런 교육은 결국 교육 대상인 학생들을 맨몸으로 사회에 내보내 앞날에 더 큰 좌절과 고통을 겪게 할 뿐이다. 탁월한 한 명의 과학자 업적이 수만 명 혹은 수십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게 오늘의 지식 기반(基盤) 사회의 특성이다. 이 모든 것이 평준화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 탁월한 한 명의 과학자 업적이 수만 명 혹은 수십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게 오늘의 지식 기반(基盤) 사회의 특성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사설에 묻겠다. 조선사설이 지향하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대학교육의 서열 맨 위쪽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 중에 지금까지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통해 노벨상 수상자가 몇 명이나 나왔는지 한번 묻고자한다. 지금 한국교육의 문제는 평준화 제도 그 자체에서 파생된 것이라기 보다는 평준화 라는 제도를 무력화 시키고 있는 치열한 입시경쟁을 필요로하는 대학교육의 파행적 운영 때문이라고 본다. 조선사설은 그점을 지금 착각하고 있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모든 부모는 내 자식이 더 좋은 학교에 가기를 원한다. 그런 부모의 마음에는 내 자식이 못갈 바에야 그런 학교가 무슨 소용이냐는 심리가 자리잡게 된다. 이런 부정적 심리는 모든 인간에게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가, 교육자가, 교육단체가 이런 부정적 심리에 의존해 평준화를 지켜 나가겠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공멸(共滅)하는 길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는 영재나 천재성의 재능을 지닌 2세들이 유치원과 초 . 중 .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면서 치열한 입시경쟁의 포로가 돼 개개인의 독특한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둔재로 둔갑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조선사설의 인식은 매우 일천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사설은 마치 평범한 실력을 지닌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좋은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한계에서 비롯된 반발심리 때문에 고급두뇌들을 양성하는 학교의 필요성에 대해서 부정하고 있다고 매도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이러한 태도는 한마디로 비교육적이다. 조선사설과 다른 견해를 지닌 집단이나 개인에 대해서 열등의식에 젖은 피해망상환자? 취급하고 있는 조선사설의 비교육적인 사고력으로 교육에 대한 화두로 포장된 사설을 이어간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정말 이제는 우리 사회 전체가 마음을 열고, 이념의 안경을 벗어던지고,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우는 길이고, 지식과 능력 유무에 따라 주인과 머슴으로 갈려 나가는 이 세계화 경쟁에서 무엇이 우리 사회의 살 길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면 평준화에 대한 대안(代案)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히 들어오게 될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평준화에 대한 대안을 주장하며 이념적인 안경 운운하고 있다. 조선사설에 대해서 묻겠다. 평준화 제도는 방상훈의 냉전 수구적인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와 권언유착을 통해 정권을 탈취했던 군사독재정권들이 처음도입한 제도이다. 조선사설이 이념적으로 생채기를 냈던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정권때 갑자기 빨간 이념의 색을 감싸고 등장한 평준화 제도가 아니다. 이들 조선일보와 군사독재체제들이 도입한 평준화가 이념적 안경을 끼고 도입한 것이라면 조선일보야말로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홍재희) ====== 조선사설에 대해서 묻겠다. 조선사설은 " 지식과 능력 유무에 따라 주인과 머슴으로 갈려 나가는 이 세계화 경쟁에서 무엇이 우리 사회의 살길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지식과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미국에 대해서는 주인으로 섬기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머슴으로 인식하고 있는 조선사설이 지식과 능력 유무에 따라 주인과 머슴으로 갈려 나가는 이 세계화 경쟁운운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홍재희) ====== 방씨 족벌이 능력이 출중해서 지금까지 조선일보를 대를 이어 세습하며 소유하고 경영하고 편집권에 대해서 까지 제왕적으로 간섭하며 통제하고 있는가? 아닐 것이다. 조선일보의 소유와 경영이 지식과 능력에 따라 주인과 머슴으로 갈려나가는 시스템으로 돼 있었다면 방씨 족벌은 벌써 도태됐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 볼 때 조선사설은 "지식과 능력 유무에 따라 주인과 머슴으로 갈려 나가는 이 세계화 경쟁에서 무엇이 우리 사회의 살길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 라고 주장할 자격이 없다. 조선일보자체가 한국사회에 있어서 불공정 경쟁의 상징이고 모태이기 때문이다.
[사설] 마음을 열고 평준화를 이야기하자(조선일보 2004년 2월24일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고교 평준화가 학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고1 때 같은 실력이었던 학생들의 고2 때 성적을 비교한 결과 평준화 지역 학생들이 비(非)평준화 지역 학생들보다 전국 석차로 따져 10% 정도 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서만도 평준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연구로 지난번 서울대의 입학생 분석 결과에 이어 두 번째다.
이 연구를 접하고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연구가 왜 이제야 나왔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가 하려고만 했다면 수능시험의 전국 자료를 토대로 평준화가 학력에 미친 공과(功過)에 대한 포괄적 분석이 언제라도 가능했을 것이다. 정부가 수능 성적자료를 무슨 큰 비밀처럼 움켜쥐고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평준화가 학력의 하향 평준화를 낳고 있다는 국민들의 감(感)이 사실로 입증되는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벌써 몇 차례 지적해 왔지만 이제 평준화에 대해 일체의 선입견을 버리고 냉철한 평가를 내려야 할 때가 됐다. 그러려면 교육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서의 덕성과 소양을 갖춘 인간으로 키워내고, 자기 적성을 찾아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며, 국민을 먹여 살릴 전문 지식의 인재들을 배출하는 세 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평준화는 인성교육·적성교육·학력교육이라는 세 가지 목표 중 어느 하나도 이뤄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날 길은 학교를 다양화하는 방법뿐이다. 평준화를 완전히 허물어 전국 획일의 과거식 고교 입시로 가자는 게 아니다. 적어도 사립에 대해서만은 학생 선발과 교원 인사, 교육 과정의 편성, 수업료 책정 등에 자율을 허용해 개성 있는 학교가 개성 있는 인간을 길러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인성교육을 우선시하겠다는 전교조 교사들이 뜻을 모아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멋있는 학교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저학력 학생들에게 중위권에 진입할 수 있는 실력을 붙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 학교가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국처럼 사관학교에 진학할 학생을 상대로 한 학교가 문을 열 수도 있다. 물론 세계 수준의 학력과 학습 의욕을 지닌 학생들이 세계와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초(超)영재학교도 등장할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교육 목표와 다양한 교육방법 그리고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립학교들을 만들어서 학부모와 학생들의 선택에 맡겨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학교들 사이에는 선의의 경쟁이 벌어질 것이고, 이 경쟁은 자연스럽게 교사들에게는 교수 능력의 경쟁을, 학생들에게는 학습 능력의 경쟁을 재촉할 것이다. 이것은 곧 학생 개개인에게 자신 속에 잠겨 있는 잠재력을 개발토록 해주고, 사회와 국가의 발전도 자연 따라오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경쟁을 없애서 당장의 고통을 줄이자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이런 교육은 결국 교육 대상인 학생들을 맨몸으로 사회에 내보내 앞날에 더 큰 좌절과 고통을 겪게 할 뿐이다. 탁월한 한 명의 과학자 업적이 수만 명 혹은 수십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게 오늘의 지식 기반(基盤) 사회의 특성이다. 이 모든 것이 평준화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부모는 내 자식이 더 좋은 학교에 가기를 원한다. 그런 부모의 마음에는 내 자식이 못갈 바에야 그런 학교가 무슨 소용이냐는 심리가 자리잡게 된다. 이런 부정적 심리는 모든 인간에게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가, 교육자가, 교육단체가 이런 부정적 심리에 의존해 평준화를 지켜 나가겠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공멸(共滅)하는 길이다.
정말 이제는 우리 사회 전체가 마음을 열고, 이념의 안경을 벗어던지고,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우는 길이고, 지식과 능력 유무에 따라 주인과 머슴으로 갈려 나가는 이 세계화 경쟁에서 무엇이 우리 사회의 살 길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면 평준화에 대한 대안(代案)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히 들어오게 될 것이다.
입력 : 2004.02.23 18:50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