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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失明 학생 입학과 희망의 투자 에 대해서

조선 [사설] 失明 학생 입학과 희망의 투자 에 대해서














(홍재희) ======= 방상훈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서울대 법대가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실명 학생 최민석씨를 합격시킨 것은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모든 면에서 너무 열악한 우리 사회에 반성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뜻깊은 결정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앞으로 장애인이라는 표현보다는 장애우 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면 한다. 조선일보 사설은 앞을 볼 수 없는 학생 최민석씨를 합격시켜 받아들인 서울대의 결정을 뜻깊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서울대의 이번 결정을 미화하고 있다.














(홍재희) ==== 부연 한다면 조선일보 오늘자 사설은 앞을 볼수 없는 장애우가 역경을 뚫고 서울대에 입학한 사실을 가지고 장애우를 배려하는 듯한 논조를 생색내듯이 내보내며 내용적으로는 서울대에 입학한 장애우 문제를 이용해 서울대의 이미지 부각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 조선사설은 장애우문제를 빌미로 서울대를 미화하는 파렴치한 논조를 즉각 중단하라?














(홍재희) =====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국립대학인 서울대의 열악한 장애우 관련 시설에 대해서 오히려 부끄러워 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서울대가 하는 일이면 모든것이 뜻깊은 것이라고 해야하나? 조선일보는 항상 우리나라 입시의 문제점으로 가난한 집안의 자녀가 서울대 들어가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주장해 왔다.











(홍재희)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장애우들이 서울대에 들어가는 것이다. 장애우들에 대한 차별적 입시정책의 결과 때문이다. 그러한 차별적 관행에 도전해 앞을 볼 수 없는 학생 최민석씨가 신체적으로 장애가 없는 학생들과 당당하게 경쟁해서 대학에 입학하게 돼 이번 서울대의 장애우에 대한 배려?를 이끌어낸 것이 더 뜻 깊은 것이 아닐까?











(홍재희) ====== 신체적 장애가 없는 학생들과 경쟁해 합격했다면 국립대학인 서울대학측이 앞을 볼 수 없는 학생 최민석씨의 대학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해주는 것은 조선사설의 표현대로 뜻깊은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아닌가? 조선사설은 서울대에 대한 미화보다는 앞을 볼 수 없는 학생 최민석씨가 신체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보여준 도전정신에 더 뜻깊은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홍재희) =======조선사설은





" 미국 하버드대 행정대학원 ‘케네디스쿨’은 1997년 휠체어를 타는 한국인 장애학생 한 명을 위해 모든 건물의 출입문과 컴퓨터실, 주차장 출입구를 개조했다. 그 소식이 우리에게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안겼던 것을 생각하면, 서울대가 시각장애인의 학습여건과 편의시설에 들일 비용부담은 한국의 대표적 대학으로서 당연히 지불해야 할 몫이다. 그것은 한 학생에 대한 투자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 장애인에 대한 상징적 투자이기 때문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이번에 합격한 시각 장애우의 학습여건과 편의시설을 갖추는데 자족하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서울대에 도전하게 될 여러형태의 장애를 지닌 장애우들이 서울대에 진학해 서울대가 제공하는 학문연구 과제를 충분해 소화해 낼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체적인 장애가 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불합격의 좌절을 겪지 안도록 인간의 얼굴을 한 열린 입시제도를 적용해 장애우들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너무 높았던 서울대학교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놀라는 것 가운데 하나가 거리에 장애인이 드물다는 점이다. 교통시설과 건물들에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치밀하게 해놓는 선진국에 비해 우리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너무 빈약해서 집안에 갇혀 지내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도 장애우들이 신체가 건강한 사람들과 같이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여건과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우선 시급한 것은 장애우들의 높은 실업률 해소문제이다. 장애우들에게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제공해 주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고 본다.











(홍재희) ====== 장애우들이 일자리를 마련해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외부활동도 많이 하게 되고 한국의 거리에도 장애우들의 활기찬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볼수 있을 것이다. 한국 노동시장은 장애우들이 일할수 있는 유연성을 발휘해서 함께 하는 일터가 돼야한다. 일할 의욕이 있는 장애우들에게 일자리를 주어야 하는 것은 문명을 지향하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중요한 덕목이 돼야한다. 그래서 그들 장애우들이 국가의 예산을 일방적으로 받으며 수혜자가 되기보다 스스로 수입을 올려 생계를 유지하고 국가에 세금도 스스로 납부하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홍재희) ====== 그렇게 된다면 거리를 오가면서 장애우들이 불편을 겪는 문제점들 즉 교통시설등의 문제점들을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시정하고 고치며 배려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거리에 장애우들을 위해 아무리 편리하고 좋은 교통시설물들을 설치 해놓아도 장애우 들이 진입장벽에 막혀 학교에 진학할 수 없고 직장을 구할 수 없어 집안에서 수동적인 삶을 영위해 나간다면 거리에서 장애우들을 좀처럼 구경하기 힘들 것이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정부는 1998년에야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관련 규정을 마련했지만, 신축 또는 개축 시설에만 적용토록 돼 있는 데다 강제력도 한계를 지니고 있다. 장애인 특수학교가 주민 반대로 들어서지 못한 채 입지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 다닐 만큼 장애인에 대한 배타적 선입견이 뿌리 깊은 것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현실이기도 하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애우들을 위한 법과 제도의 운영이 효과를 나타낼려면 법과 제도가 적용되는 사회에서 장애우들에 대한 올바른 문화가 동시에 병행해서 정착이 돼야한다. 특히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주민들의 장애우들에 대한 전향적인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몇 년전에 강원도의 어느 국립공원지역에 있는 장애우들의 생활 터전이 국립공원 내에 장애우 시설이 들어설 수 없다는 행정부처의 퇴거 요청을 받았는데 바로 그 옆에서는 국립공원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러브호텔신축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던 것을 필자가 두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적이 있었다.














(홍재희) ===== 일반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장애우 시설이 들어서기 곤란해서 어쩔 수 없이 인적이 드문 외진 골짜기로 밀리고 밀려들어간다는 것이 명색이 국립공원지역이었다. 그때 장애우 시설관리를 맡고 있는 종교인이 러브호텔신축은 되고 장애우 생활터전은 안 된다는 감독관청의 이중적인 태도를 개탄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연하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이제 서울대가 어려운 예산 사정을 무릅쓰고 최씨를 위한 여건과 시설을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원할 일이다. 작년 4월 서울대에 다니는 장애인 학생들이 “뽑기만 해놓고 수업받을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며 1인 시위를 벌였던 일이 거듭돼서는 안 된다. 서울대가 장애학생을 위한 희망의 투자에 용단을 내린 것은, 국민이 장애인에 대한 열린 의식을 계발하는 데에 어떤 구호나 정책보다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자 조선일보사설의 서울대에 대한 낮 뜨거운 미화 작업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오늘자 조선사설을 통해서 잘 나타났듯이 앞을 볼 수 없는 학생 최민석씨는 시각장애우들에 대한 시설이 전무한 서울대 법대에 일반학생들과 당당히 겨루면서 지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해 입학하게 됐다.











(홍재희) ===== 그렇다면 오늘자 조선사설은 시각장애우들에 대한 학습을 도울 수 있는 시설이 전무한 서울대에 대해서 냉정하게 비판하고 한편으로 시각장애우들에 대한 시설이 전무한 서울대에 도전해 합격하고 학문탐구에 전념하겠다고 나선 학생 최민석씨의 도전정신에 차라리 뜻깊은 의미를 부여하며 장애우들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서울대의 열악한 장애우 시설에 대해서 미화가 아닌 비판적 대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홍재희) ===== 정부는 앞으로 전국에 있는 국공립대학들이 시설이 미비하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장애우들이 입시경쟁을 통해 합격가능한데에도 불구하고 불합격 시키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장애우들의 대학진학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립 대학들도 장애우들에 대한 입학문턱을 낮추게 하는데 정부가 동기부여를 하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안 그런가?











[사설] 失明 학생 입학과 희망의 투자(조선일보 2004년 2월5일자)











서울대 법대가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실명 학생 최민석씨를 합격시킨 것은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모든 면에서 너무 열악한 우리 사회에 반성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뜻깊은 결정이다.





미국 하버드대 행정대학원 ‘케네디스쿨’은 1997년 휠체어를 타는 한국인 장애학생 한 명을 위해 모든 건물의 출입문과 컴퓨터실, 주차장 출입구를 개조했다. 그 소식이 우리에게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안겼던 것을 생각하면, 서울대가 시각장애인의 학습여건과 편의시설에 들일 비용부담은 한국의 대표적 대학으로서 당연히 지불해야 할 몫이다. 그것은 한 학생에 대한 투자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 장애인에 대한 상징적 투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놀라는 것 가운데 하나가 거리에 장애인이 드물다는 점이다. 교통시설과 건물들에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치밀하게 해놓는 선진국에 비해 우리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너무 빈약해서 집안에 갇혀 지내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1998년에야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관련 규정을 마련했지만, 신축 또는 개축 시설에만 적용토록 돼 있는 데다 강제력도 한계를 지니고 있다. 장애인 특수학교가 주민 반대로 들어서지 못한 채 입지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 다닐 만큼 장애인에 대한 배타적 선입견이 뿌리 깊은 것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현실이기도 하다.





이제 서울대가 어려운 예산 사정을 무릅쓰고 최씨를 위한 여건과 시설을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원할 일이다. 작년 4월 서울대에 다니는 장애인 학생들이 “뽑기만 해놓고 수업받을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며 1인 시위를 벌였던 일이 거듭돼서는 안 된다. 서울대가 장애학생을 위한 희망의 투자에 용단을 내린 것은, 국민이 장애인에 대한 열린 의식을 계발하는 데에 어떤 구호나 정책보다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입력 : 2004.02.04 17:59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