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평준화를 이념투쟁 수단으로 삼지 말라 에 대해서
(홍재희) ======== 방상훈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엊그제 교육방송의 평준화 문제 토론회에서 전교조 정책실장은 특목고·자립형 사립고 확충 등 평준화 개편론에 대해 “(고소득층이 자녀들을) 저소득층하고 같이 (교육받게) 하기 싫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 방송토론에서 전교조 정책실장이 내세운 주장 가운데 어느 한부분만 뚝 떼어다가 앞 뒤 잘라내고 조선일보의 수구적인 편집의도에 따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그리고 현재 논의되고 있는 평준화 문제와 관련해서 다양한 문제제기 가운데 전교조 정책실장이 제기한 문제도 당연히 제기될 수 있다고 본다. 조선사설이 그런식으로 몰고간다면 지금까지 조선사설이 주장해온 평준화 제도 때문에 가난한 집 아이들이 신분상승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주장 또한 평준화를 이념투쟁 수단으로 삼는다는 얘기가 성립될 수 있다. 조선사설은 이러한 반론제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홍재희) ====== 조선일보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고교입시제도인 평준화와 관련해서 두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고교생들의 학습능력향상의 문제점이 평준화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정확하게 진단한다면 평준화 때문에 고교생들의 학습능력향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입학제도의 치열한 경쟁제도에서 비롯된 부작용 때문이라는 점인데 조선사설은 마치 평준화 때문인 것으로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 첫 번째 문제점이다. 현재와 같은 대입제도 하에서 비평준화제도를 도입해 고교 서열화를 촉진시킨다면 더욱더 치열한 과외를 부추겨 문제는 더욱더 심각해질 것이다.
(홍재희) ======= 두 번째 문제점은 조선사설은 한국의 고교생들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느냐 못하느냐로 평준화 제도나 한국의 고교교육의 가치기준을 삼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에게 묻겠다. 미국 교육당국의 고교 교육정책을 하버드대에 진학하는 미국고교생들의 현황을 기준으로 평가하는가. 영국의 교육당국의 고교 교육정책을 케임부리지 대학이나 옥스퍼드대에 진학하는 영국고교생들의 현황을 기준으로 평가하는가? 일본 교육당국의 고교교육정책을 동경대에 진학하는 일본고교생들의 현황을 기준으로 평가하는가? 아닐 것이다.
(홍재희) =====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 본다면 조선사설이 주장하고 있는 서울대에 대한 한국고교생들의 진학현황을 절대적 가치기준으로 해서 평준화제도나 한국의 고교입시제도의 문제점을 재단하는 것은 모순이다. 서울대의 교육행태가 그렇게 절대적으로 긍정평가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본받을만하게 운영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고 조선사설이 제기하고 있는 세칭 인류대의 의미로 접근해 봐도 서울대가 세계적으로 일류대학의 반열에 오르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사설의 논리대로 접근해도 더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
『누가 평준화 제도를 흔드는가?
최근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이 발표한 ‘누가 서울대를 들어오는가’라는 연구결과는 한국 사회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70년대 이후 서울대 사회대에 입학한 학생들의 인적 정보를 분석한 이 연구는 “저소득층 학생의 입학 가능성을 높이고자 도입된 평준화와 쉬운 시험이 반대의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평준화 때문에 우수 학생을 차별적으로 교육할 수 없어서 사교육을 받지 못한 저소득층 학생의 일류대 진학이 어렵게 된 까닭”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이런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기득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일부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평준화가 학력 세습을 불러온 원흉이라며 폐지론을 밀어붙일 호기를 만난 듯이 아우성을 쳤다. 이에 대해 안병영 교육부총리는 더이상 평준화 정책을 흔들지 말라고 경고했고, 교육부가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연 세미나에서도 과학을 가장한 궤변이라는 주장을 위시한 다양한 비판이 줄을 이었고 신문지상에서도 통계분석의 기본도 무시한 연구라는 가혹한 비판에서부터 이참에 평준화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지지 글까지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연구진들로서는 이런 비판들 가운데 상당수에 대해서는 억울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가 부족했던 터에 지난 34년간 사회대 입학생의 인적 정보를 최대한 집적해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지표가 계속 상승해왔고 지역적 불균형이 심각함을 확인한 것은 의미있는 작업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의미있는 작업을 왜 무리하게 평준화와 연결시켜 결론을 맺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발표논문을 보면 평준화의 유의미한 성과로 판단이 가능한 지표는 애써 무시됐음을 알 수 있다. 한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연구자들은 비평준화 시절인 70년대 60%에 이르던 서울지역 출신의 비중이 82년 이후 40% 수준에서 안정됐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평준화에 입각한 교육정책의 성과라기보다는 기타 광역시의 상대적인 위상 증가 덕분이라고 해석했다. 그렇지만 평준화 이전인 70년대에는 서울뿐만 아니라 위에 언급한 광역시에도 100여명 이상의 서울대 합격자를 내는 이른 바 명문고들이 존재했다. 그런데도 이 연구에선 이런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물론 왜 광역시의 위상 증가가 평준화 변수보다 서울 출신 비중 감소와 더 상관 있는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연구가 서울대의 공식 입장과 관계없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이 평준화 폐지론자인 정운찬 총장의 코드에 맞추기 위해 무리한 결론을 이끌어낸 게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연구의 기초자료가 지닌 여러 한계를 고려할 때 통계분석의 결과가 엄밀한 의미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갖는다고 주장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고백하면서까지 문제가 많은 연구결과를 언론에 대서특필되도록 공표한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교육부의 한 관리는 전면 실시 중인 중학교 평준화는 놔두고, 전면 실시도 안 된 고교 평준화에 대해서만 폐지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그것이 우리 사회 기득계층의 이해관계와 배치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교육지표 2002에는 한국이 부모 소득 격차에 따른 학생 성적 격차와 상하위권 학생의 성적 격차가 가장 적은 나라 가운데 속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교육부는 이런 결과가 현재의 평준화 제도가 교육에서의 불평등 구조를 어느 정도나마 완화해 주는 기제임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또 이번 연구에서 평준화가 저소득층 출신의 서울대 입학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지만, 가계소득 300만원 미만인 집단에선 70% 이상이 평준화 유지에 찬성하는 반면 5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에서는 찬성률이 50%대에 머문다는 조사결과도 있듯이 평준화를 누가 불편하게 여기는지는 자명하다.
이런 사실을 몰라서 학력 세습이 평준화 탓이라는 결론을 냈다면 연구자들의 불성실을 탓할 수밖에 없고, 알면서도 했다면 불순한 의도에 대한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권태선 편집부국장kwonts@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
(자료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4년 2월2일자)
[사설] 평준화를 이념투쟁 수단으로 삼지 말라(조선일보 2004년 2월2일자)
엊그제 교육방송의 평준화 문제 토론회에서 전교조 정책실장은 특목고·자립형 사립고 확충 등 평준화 개편론에 대해 “(고소득층이 자녀들을) 저소득층하고 같이 (교육받게) 하기 싫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면 평준화 논의가 이미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제대로 교육시킬 것인가 하는 교육 논쟁을 벗어나 우리 사회 특정 집단의 이념투쟁 수단으로 변질해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이 학생·학부모·교사 10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평준화 보완’이 60.5%, ‘전면 개편’이 30.9%인 반면, ‘평준화 현행 유지’는 8.6%로 나타났다. 한 신문의 신년 여론조사에서도 평준화 보완을 위한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 확충에 찬성한 의견이 59%로 반대한 29%보다 훨씬 많았다. 이들 다수의 국민이 부자라서 평준화 보완이나 전면 개편을 요구한다는 것은 사실도 아닐뿐더러 교육자가 입에 담을 말이 못 된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조사를 보면 평준화는 고소득층에 훨씬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사회대 입학생 중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자녀 비율은 1985년엔 인구 1만명당 8명 대 7명으로 차이가 없었으나, 갈수록 격차가 벌어져 2000년에는 37명 대 2.2명이 됐다.
평준화 개편 논의는 지식경쟁에 나라의 사활이 걸린 세계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략에 대한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학력을 통해 부(富)가 세습되지 않고 개인의 노력을 통한 자기 향상의 길을 넓힘으로써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느냐에 대한 모색이기도 한 것이다.
사교육에 돈을 쏟아부을 수 있는 고소득층에게만 유리하고, 없는 집 아이들은 내팽개쳐지는 지금의 평준화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렇다고 평준화 폐지로 고교 입시전쟁이 재연되고 과거식의 1류·2류 고교가 부활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어떻게 하면 그런 부작용을 피하면서 학교 및 학교 선택권을 다양화하고, 같은 학교 내에서의 교육을 다양화함으로써 공교육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지가 논의의 초점이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고소득층이 저소득층과 같은 학교 안 다니려고…’식의 주장은 교육자의 평준화 논의가 아니라 이념을 위해 아이들을 볼모로 잡는 정치투쟁가의 수법과 마찬가지다. 교육방송 토론에선 “대학도 평준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우리 아이들 모두를 잘 교육시키자는 평준화 문제점 논의를 정치투쟁으로 변질시키려는 것은 죄악이고 그 죄악에는 벌(罰)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런 빗나간 교육관의 최대 희생자가 바로 가난한 집 학생과 학부모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사태다.
입력 : 2004.02.01 18:05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