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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고통속에서 다시올립니다

미성년 성폭력 방식(본명방완식)꽃예술원장 이사람을 고발합니다.





이일은 진실이고 만일한점의 거짖이라도있다면 그모든책임을 질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남자이고 방식원장도 남자입니다.





동성애성폭행! 당해보셨습니까?





1985년10월 저는 대학로에위치한 방식꽃예술원장 자택에서 방식원장에게 더럽고도 추잡한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당시지방에서 고3이였던 저는 서울모대학예술대회에 참가차 서울에 상경하였고 저와 동료들은 모선배의 소개로 방식원장과 술자리를 함께하였습니다 (장소는 방식원장자택)당시 고3이였던 저는 순간의분위기에 음주를하였고 몇잔의술이 돈후 저는술에 취했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후 정신을 차렸을땐 주위 친구와선배는 보이지않고 저의 몸은 실오라기하나 걸쳐져있지 않았으며 ,술에취한 몸뚱아리를 누군가 짖누르며 덮치는대도 재대로된 저항한번 못했습니다,주위에 없는 친구와 선배에 대한 원망도 해보았지만 아무도없는 현실에 대한 공포와 그 악마와같은 힘앞에 무너지는 자신이 죽도록미웠습니다.





악몽같은 시간이흐른후 그는 누구에게도 비밀이라며 만일 발설시 너나 나나 둘다죽는다고 위협했지만 이일을 어찌누구에게 말하고 터놓을수있단 말입니까?





술자리전에 선배에게들었던 원장에대한 존경심(독일에서 꽃꼿이공부후 드라이플라워개척,독일 궁에서꽃꼿이활동,귀국후 문화방송꽃꼿이전속,대학로꽃꽃이 예술원개원,전국지부개설등 입지전적인분이라는등)은 한순간에 깨졌고 마치거대한 악마의 형상으로 변한 원장의 모습만이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저의 뇌리를 짖누르고 있습니다.





후에 알았지만 원장은 동성애자이고 당시에 혼자살았으며, 지금도 혼자인걸로 알고있습니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 왜이런글을 올리는지 의아해하실겁니다.





그이유는





그날의악몽후 십수년이 흘렀건만 저의 뇌리에서 그날의 악몽이 한시도 떠나지않고 있으며 한가정의 가장이 된후에도 ,두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도..배우자와 잠자리를 같이하려는 밤에도 그날의 악몽이 저를 괴롭히고 있기때문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평화속에 저의속내는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내가족과 유지해온 평화도 철저히 위장된 저의 미소도..이제는





진실로...





진실로 .....





돼찿고 싶기때문입니다.





제발 떨쳐 버릴수만있다면.......





그악몽같은 시간후 저의 마음은 황폐화 돼었고 .그날일을 짐작으로나마 눈치챈 친구들은 모두 떠낳습니다,어딘가 낯선곳에 동떨어진듯한 외로움속에 살아온 저의 인생도 이젠 지워 버리고싶습니다,





고통의날들속에서 어렵게만나 한가정을 꾸려준 배우자에 대한 미안함도 , 어렵게얻은 2세에 대한 사랑과 부모로서의 도리를 못한 자책감도 ...그날의 악몽에서 자유로워 질수있다면 모두 재자리를 찿을 수있을 것같습니다.





그날이후 저의 육신은 그의추잡한 육근이 지난후 병들어갔습니다





항문 한쪽이 찢기어 고름이생겼고 결국 2번에걸쳐 아내몰래..가족들몰래 1박2일입원해 수술을 받아야헸고 수술휴우증으로 항문 오른쪽을 약3센티미터 정도 절개해야했으며,지금도 오른쪽 다리는 무리해서 걸음걸이를 할때엔 약간의통증이오곤 합니다.이런 휴우증만이라도 없었다면 한순간의 악몽으로 잊고 살 수있었겠지만 계속해서 괴롭히는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때문에 지금도 잊혀지지않고 있습니다.





가족들몰래 치러야했던 고통의 시간 그누구에게도 얘기할수없고 위로조차도 받을수없었던 날들의 아픔을 이제는 끝내고싶습니다.





가족몰래치렀던 수술비및 치료비등의 금전적인 압박도 이제는 한계에 부딛쳤습니다.





저는 얼마전 (12월 초순경)지난날의 고통에서 벋어나고파 아직도 대학로에 위치한 방식꽃예술원을 찿아 편지로서 그간의 정황을 설명하였고 그간의 치료비와 정신적인 배상과 사과를 편지로 요구했습니다.





몇일후 그의 대리인으로 부터 종로모호탤 커피숖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고 만났습니다,





그러나 대리인은 깡패로 보이는 한사람을 동행하였고 (저의 정황상 대리인이 앉았던 자리에 대리인과얘기중일때 옮겨와 앉은사람인대 누가보아도 깡패로보이는 사람임)저는 자세한 이야기도 못한채 서둘러 자리를 떠야했습니다





그로부터 몇일후 대리인은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대충사정은 알겠다.조금의보상은하겠다.그러나 차후한번더 연락할때엔 가만있지않겠다"라며 협박하였으며.12월12일 방식꽃예술원 이름으로 제통장에는 100만원이입금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또한 한마디의 사과라도 기대했던 저로서는 결코 용납할수 없는일이기에 다시전화하니 방식원장이 그러더군요"당신법대로 해라,세월이그렇게 흘렀는대 법대로 됄줄아느냐?오히려 당신 을 사기및 협밥죄로 집어넣겠다"





한술더 떠 대리인은 "당신은 힘이없지만 회장님(방식원장지칭)은 힘이있다! 맘대로 해봐라! 우리도 가만있지않겠다!"라구요..





맞는말입니다.저는 힘이없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픈 두아이의 아빠이며,두아이의 재롱속에 환하게 한번 재대로웃고 싶은 지지리도 못난 작은 소망을 갖고있는 그래서 힘이없는 사람입니다





그날.... 악몽의그날이후 친구들마저 떠나고 주위에 힘이라도 될 수 있는 친구들마져 없는 한심하고 힘없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이렇게글을씁니다





네티즌여러분 !





십수년이 지난일입니다만





이렇게 굴복해야됩니까??





지난 세월의 고통을 또 가슴에 묻어야 합니까?





그들의 어이없는 협박에 또다시 가슴속을 피멍으로 물들어야합니까?





아무런 가진거 없고 힘없는 놈은 그들의 사회적인 지위앞에 이렇듯 무기력하게 쓰러져야합니까?





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기는 죽기보다싫습니다.





설사 그들의 말대로 세월이흘러 법률적인 증거가없어 제가 사기나협박죄로 감옥행을 간다해도 그날의악몽만을 지울 수 만있다면 그래도 좋습니다........





둘째 딸아이는 대장금을 무척 좋아합니다.어린 장금이가 나오면 마치 자신이 장금이인냥 한복을 차려입고 장금이흉내를내며 자랑합니다,





이얼마나 귀엽고 이쁜 내아이에게 진실로 나의 환한웃음을 보여줄 수 만있다면





감옥아니라 더한곳도 갈수있습니다.





이제는 그동안 미안했던 내가족 내가정으로 돌아가 떳떳한 가장이돼고 싶습니다.





제가여기서 쓰러진다면 제2 .제3의 피해자는 계속됄태고 그들은 사회적인 지위와 힘으로 계속 협박해나갈태니까요.아니 제2,제3,제4...의 피해자는 저처럼 아무말도못하고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한창 아름다운 시절이였습니다 .





가슴속에 상아탑을꿈꾸며 노력했던 학창시절이였습니다





그러나....





한순간의 저의실수(술에취해 저항못한)때문에 모든게 악몽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돌이키긴싫지만 지워지지않고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그손으로 꽃을 만지고 있으며..사람들은 그꽃을 아릅답다고합니다





한창피어나던 꽃을 꺽어버린 그 손으로 말입니다.

















위 내용을 청와대 사이버민원실에 비공개로 올려 2번이나 도움을 청해보았지만 지금껏 어떤답변조차 얻지못했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 이렇듯 네티즌 여러분께 깊은 조언을 구합니다





제가 어찌해야할지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요.





참고로 저의이메일은www.oungho@lycos.co.kr





방식꽃예술원www.bangsik.co.kr























****이글을 인터넷에 공개한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그들로부터 아직아무런답변조차 없었습니다.





그들의 사과를 받을때까지 계속해서 올리려 합니다.그들이 고소를해서 제가법적인 조치를받던지





어떻게든 법앞으로 가려합니다.법앞에서라도 진실은 가려지겠지요~!





하여 다시금올립니다.다소 불편하고 거북한내용이라도 읽어주셨다면 도움이됄만한 조언부탁드립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아무런 힘없는존재 ~! 이렇게라도 네티즌 여러분의 힘을 구할까하여





이렇게 무례를 범합니다.널리양해해주시고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13일에 수원지검 안산지청 법률구조조정센타에 출두하여 법적인조치를 요청하였으나


기간이많이 지나법적인조치는취하기 어렵다합니다,





살인죄도 10년이지나면 처벌하기어렵다하니 이를어떻게해야합니까?





제가 살아온 고통의시간이너무길었나봅니다.바보처럼요.





지금세상이야 동성애자도 대놓고 세상활보하는게 요즘이지만 저는 그누구에게도 터놓을수없었던 삶이라서..........주위손가락질이 두려웠고......가정을꾸린후에는 가정을지켜야했기에이렇듯시간이흘러버렸습니다,





그들은 그런법적인 룰을알기에 지금껐회피하고 사과한마디도없구요,





저 결심했습니다





지금글을올리는건 제가 명예회손죄로 법적조치를받을수있습니다





설령 그어떤법적인조치를 받더라도 사과는 받아야겠습니다.





그무슨수를써서라도 꼭법앞에세우겠습니다





이일로인한 스트레스로 신경성 폐결핵검사도받았습니다.결과가어떻게 나올런지는모르겠으나





피해자인저의 몸과맘은 이렇듯 병들어가고있습니다





이제 남은몸뚱아리마저 병들어가고 남은건없습니다





제가 명예가있겠습니까?권력이있습니까??





끝까지목숨까지라도걸고서라도 싸워서라도 ..기필코사과라도 받아내겠습니다.꼭!!!!!!!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수는없지않습니까?





지켜봐주십시요..





세밑에 이런글 올리는저를 용서하십시요





이글을읽으신모든님들가정에 2004년 복충만하길빕니다




















오늘(29일)귀여운 첫아이의 초등학교 취학통지서를 받았습니다





학부형이 된다는게 기쁘고 가슴벅찬일이될줄알았으나 저에게는 오늘이 가장슬픈 날로





기억돼게 돼었습니다.얼마전 받은 결핵검사에서 제가 아닌 배우자가 폐결핵에 걸렸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저의 금전적인 압박이 신경이 예민한 와이프에게 너무나도가혹한 형벌로 다가온거같아 괴로울 따름입니다.하루에도 몇번씩 걸려오는 은행권의 채무압박이 이렇게 큰 고통일줄이야 ...





저또한더러운 과거로인해 엇그제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를 떠앉아 자랑스런 학부형이아닌 신용불량자





부모를둔 초등학생을 맞이하게될줄이야...취학 통지서 받아들고 배우자와 함께 많이도 울었습니다





가슴에서 올라오는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길없이흐르는눈물을 참을수없었습니다.





와이프는 기뻐서 우는줄 압니다





그러나 저는 기쁨이뭔지 모릅니다.기쁨이..감격이뭔지 너무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이렇듯 떳떳하지못한 아빠가 .추잡한 과거를 앉고사는 남자가 무슨 학부형이될 자격이있겠습니까??





이 모든게 저의탓입니다





지지리도 못난 저의 탓입니다





모두 잊고 살고 싶습니다.그러나 앚혀지지않고 계속해서 ....시간이흐를수록 분노로살아납니다





무섭습니다,제가 어떻게 변할지 두렵습니다.





저또한 똑같은 악마로 변할지...배우자는 요사이 제얼굴이 달라졌다합니다





제얼굴에서 가끔씩 어떤 악의에찬 표정을 발견한다합니다





틀리다고는 말못했습니다."그냥힘들어서그래"라고 둘려댑니다.바보같은사람....





오늘,,지금이순간도 저의모습은 다른이들이본다면 분명선한모습은 아닐겁니다





그렇지만 .....





지금 이순간까지도 아무런 답이없는그들을 볼때면 어쩔수 없는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앞에서도말씀드렸지만 어떻게든 ....기필코 그들의 사과를 받아야겠습니다





한가정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줄을 몰랐습니다!





바보 같은놈..





큰아이는 친척이 선물해준 책가방을 가지고 학교에 간다고 들떠있습니다





이 행복을 깨고싶지않거늘....이순간을 기쁘게 맞이하고 싶거늘..





찿아온 행복마저도 느끼지못하는 자신이밉습니다











죄송스럽게도 그들의 행위에아무런 변화가업어 이렇듯 무례히 다시올립니다





언짢으셨다면 이해해주시고 도움이됄만한 조언이있다면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