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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에는 국민성부터 바꿔야

갑신년에 드리는 선물.





이 글은 이번 설에 가족 친지들이 모여 건설적인 화재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직접 열어갈 주인으로 태어나길 바라면서 드리는 글이다. 특히 지위와 나이와 경험이 많은 사람은 오늘날의 사회 전반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또한 일반 국민들은 삶의 관심사와 생활 내용과 자기 시간과 경제적 능력을 전체와 미래를 향해 전환하는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명절이 끝난 이후 직장과 가정에 돌아와서 그간 나눈 대화를 화제로 삼으며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실천하기를 기원한다.





대통령을 만난 것도 우리 운명.


2003년은 국민의 절대 다수가 고통과 실망과 분노와 체념과 한탄으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대통령의 책임이 절대적이며 새해 시작과 동시에 반드시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 나는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 개혁 방안을 직접 손에 건네주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내가 제시해준 방안과는 전혀 관계없이 원칙도 체계도 없이 막가버렸다. 이후 대통령이 "원칙과 기준"을 거론하는 것을 듣고 혼자 한참이나 웃기도 흥분하기도 했다.


나는 취임 2-3개월 지나서 장래 나라꼴과 대통령의 임기 이후의 비참한 결과까지 예견해서 여러 경로로 전달해주었다. 하지만 지금도 대통령과 측근들과 청와대는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어떤 인물이든 실패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범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은 곧바로 사과하고 사죄하면서 총체적인 지혜와 협조를 구해서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든다. 훌륭한 대통령이라면 설사 자신에게 직접적인 잘못이 없더라도 국가라는 총체적인 관점으로 보아서 도의적이고 포괄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렇게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사죄하더라도 국민들은 얼마든지 이해하고 판단하고 오히려 존경까지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무책임한 사람은 자기 책임이 확연한 가운데서도 다른 누군가를 기어코 탓하거나 외부 요인으로 돌린다. 이는 총체적인 국정 철학 부재와 그릇 자체가 작기 때문이며 심리적 열등감으로 인해서 잘못에 너무 민감 집착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반드시 여론이나 민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고 안달하기 마련이며 그 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과 한국 사회는 또 다시 중요한 기로에 처했다. 과거에도 대통령들(전, 노, 양김)의 입에서 "경제 살리기, 민생 챙기기"라는 말이 나오면 그 때가 중요한 국가적 갈림길이었다. 이 말은 개혁 실패, 보수 껴안기, 물밑 정치와 정치 흥정, 부정부패의 다리가 놓아질 것임을 알려주는 신호탄이며 곧 국정 실패로 연결된다.


특히 이 표현은 대통령이 그 동안에는 "민생과 경제를 챙기지 않았거나 소홀했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엄청난 표현이다. 마치 5공화국 이후 지금까지 "검찰 스스로 성역 없는 수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실 "민생과 경제"는 정치를 하는 목적이고 대통령의 의무이며 국가가 존립하는 이유다. 따라서 "민생과 경제"는 챙기고 안 챙기고 살리고 죽일 대상이 아니다.





"민생 챙기기와 경제 살리기"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때문에 만일 정상으로 개혁이 추진되는 과정이라면 절대 거론할 필요가 없는 표현이다. 따라서 개혁이 한참 진행되고 있어야 할 임기 중간에 소위 대통령의 입에서 상식 이하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무의식에서 개혁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개혁의 방향 상실과 향후 자신감까지 잃었을 때 궁여지책으로 나오는 표현이다. 특히 DJ 시절에는 입으로만 개혁을 진행하다가 실패할 때마다 "경제 살리기와 민생 챙기기에 역점을 둔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실정과 실패를 조금도 사과 사죄하지 않고 곧바로 "민생과 경제"를 거론한다는 점이다. 이는 이후로도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을 미리 국민에게 확인해주는 나약한 표현이다. 이 말이 끝나면 곧바로 행정부의 권한이 강화되거나, 그럭저럭 관행에 안주해서 임기를 보내거나, 말장난 수준의 정치와 전략과 게임들이 물밑에서 얽혀진다. 그러면 벌써 수십 년째 이에 익숙해진 주요 기관의 베테랑들과 언론의 자동적인 행태와 잘 길들여진 극소수 공직자들이 다시 진을 치고 암약하면서 잠재력이 급격히 허물어져버린다. 그래서 내가 강력하게 주장해온 것이 있다.


"만일 대통령이 취임 후 2-3개월 내에 총체적인 개혁 방안을 띄우지 못하거나, 방안을 띄웠지만 6-7개월이 흘러도 곳곳에서 자발적이고 구체적으로 개혁이 실행되지 못하면 실패로 끝난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다음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이처럼 난해한 개혁이 실패할 경우에는 반드시 국가 기반이나 저변이 허물어지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따라서 개혁이 절실한 나라에서 지도자가 개혁을 강조했지만 실패한 경우에는 나라를 망치는 역적과 다르지 않다.


결국 한국 역사에서 실패한 대통령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동시에 국가 기반이 허물어지고 국민의 삶은 참담해진다. 우리 한국은 대통령이 실패하는 것도 이미 관행화 되었으며 나름대로 통로가 만들어진 상태다.





노무현 대통령은 불과 1년도 못 넘기고 "민생 챙기기와 경제 살리기"를 거론했다. 이런 원리와 과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는 설이 지나면 한국 사회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노무현대통령을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원고를 준비중에 있다. 어쨌든 노대통령은 자기 자신과 나라를 동시에 망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노대통령은 임기가 끝난 훗날 나처럼 개인적 고통과 어려움을 감수한 채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조언하고 방안을 제시해준 사람의 진실을 무시(DJ도 마찬가지)하거나 미친놈쯤으로 취급해버린 측근들이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를 했는지 평생 후회할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참여정부"라는 허위나 거짓을 가장 먼저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당시 대통령 주변이 철부지 386이나 시위와 투쟁으로만 평생을 활동해온 사람들에게 둘러 쌓였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못했다.





특히 앞으로 시대는 노무현 대통령뿐만 아니라 급변하는 역사의 순리에 따르지 않고 각종 틈새를 통해 주도권이나 노려왔던 얄팍한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은 너나 없이 처참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이 뽑은 대통령이 개혁에 접근도 못한 채 실정과 분열과 실수를 되풀이해도 변명이든 단속이든 주장이든 제대로 말 한마디하지 않고 침묵으로만 일관했던 사람이 당의 대표가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약간의 진통이 예상된다.








최근의 우리 사회.


50-60년 현대사 내내 온갖 비난을 떠맡아온 정치권과 공무원은 그렇다고 해두자. 그럼 언론, 지식인, 시민단체, 종교계 등 누가 적극적으로 국민과 국가를 향해 진심으로 접근해보았는가. 그들 덕분에 우리 사회나 국민들은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국민들은 이들을 얼마나 존경 존중하고 있으며 기대하고 있는가.





그간 검찰과 법원은 법과 규정을 몰라서 법치주의에 공헌하지 못했는가?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과 기업가들은 법과 제도가 엉망이어서 법을 어겼는가?


법과 제도가 무시되는 나라에서 왜 모두들 법과 제도 개혁만 붙들고 난리인가? 법과 제도 개혁이 최선의 정치 개혁이며 국민의 바램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럼 그간의 법과 제도가 지켜지지 않았던 이유는 법과 제도의 책임인가?


다음에도 개혁이 실패하면 법과 제도를 아예 없애버릴 것인가? 아니면 법과 제도 역시 정치인들처럼 몽땅 물갈이해버릴 것인가?





개혁은 영(Zero)점 이하를 고치는 것이 개혁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란 아름답고 유쾌한 복지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월등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의식과 생활과 조직과 유기적 시스템으로 실현해 가도록 체계를 잡아가는 구체적인 방안이다.





주요 단체들이 너무 앞서가면 안 되.


한국인이면 너나 없이 같은 국민이고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일수록 사회에 공헌하기보다 무너지고 망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이는 그들을 탓할 문제가 아니라 공통된 국민성이며 동일한 의식구조로 보아야 한다.


때문에 정치나 정부의 잘못을 위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나 지식인이나 언론 역시 절대 특별한 입장이나 자격일 수 없다. 그래도 자신들이 직접 주인공이 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하고 싶다면 이후 발생되는 모든 상황과 문제에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문제가 수없이 터졌음에도 당사자와 관계자들만 바보 멍청이가 된 채 언론, 시민단체, 지식인층에서 반성과 원인 분석과 책임 인정은 없었다. 그런데도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흥분하고 공격하면서 그것을 이유로 국민을 제쳐버리고 주인처럼 나서거나 주인공이 되려고 하면 안 된다. 언론이 단지 언론일 따름인 언론은 전 세계 방방곡곡에 얼마든지 많다. 종교인, 지식인, 시민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솔직하게 우리는 자유 정의 평화를 거론할 자격이나 자질이 현저히 부족하다. 인류(문화, 문명)사에 공헌한 것이 전혀 없었으며 지금도 우리 스스로조차 해결하지 못한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내 눈에는 "한겨레 한민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위선자나 사기꾼처럼 보여질 때가 많다. 북한 인민들은 "겨레와 민족"을 강조하면 그만큼 이익이라도 있으며 빈곤 해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거액을 들여서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도 "한겨레 한민족"인 탈북 난민들에 대한 지원은 철저히 외면했다. 그래서 한 때 탈북 난민들 역시 한국 대사관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특히 우리는 지금도 작은 땅덩어리에서 이념대립, 동서갈등, 세대차별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이념 대립으로 분단되었지만 남한에서도 자유 평등은 오래 계속 짓밟혔다. 그 전에 이미 우리는 나라를 빼앗겼으며 그 전에도 수없이 얻어맞았다. 그러나 친일파를 청산, 감당, 해결, 정리, 마무리하지 못한 채 똑같은 수준과 방식의 친일파 논쟁만 60년째 되풀이해왔다. 심지어 실제로는 일제 물건을 선호하고, 일본으로 돈벌러 나가고, 우수한 일본 기계를 수입하고, 일본에서 배우고 있는데도 한편에서는 과거 사건과 기억 속으로 한국 사회 전반을 끌어가는 듯하다.


인류사는 서로 때리고 맞는 역사였기에 얻어맞아서 피투성이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때문에 과거사와 고통과 원한의 관점이 아니라 자유 평등 인권 복지 평화 등의 관점으로 접근해서 총체적인 과거사 정리를 통해 함께 미래로 나아가기보다 기어코 쪼개고 따지고 편을 나누고 공격하는 등 엉망을 만들고 있다.





만일 직접 총을 들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지만 해방을 보지 못하고 죽어간 독립군의 입장으로 돌아갔다고 해보자. 과거 친일파는 물론이고 나라를 잃고도 그럭저럭 눈치 살피며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국민들도 똑같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벌써 60년 동안 친일파 청산의 "ㅊ"자에도 접근하지 못한 채 수시로 시끄럽게 문제만 삼으며 갈기갈기 찢어진 사이 나쁜 후손들이 오히려 더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조상들이 목숨까지 바쳤음에도 후손들은 최상의 선진 일류 국가를 만들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수없이 망쳐버린 채 앞가림도 못한 수준에서 감정과 흥분으로 일관한 채 근본 대책에는 전무한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없는 후손들에게 채찍질이라도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특히 후손들이 모든 면에서 일본을 앞지르기보다 영원히 3등 국가에 머문 채 서로 치고 받고 사는 것을 보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친일 청산의 정의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이미 60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친일파들과 국민들이 이웃, 사돈, 선후배, 동료, 친구, 사주, 친척, 거래처, 부모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친일이 아니더라도 이후 6.25, 부마, 5.18 등 친일보다 더 비열한 비민주적, 비인도적, 비인간적인 사건들이 여러 차례 생겼다. 우리 민족의 수준으로는 언제 누구든지 이런 역사나 사건에 추종하는 것은 물론이고 방치, 묵인, 동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각종 분열과 감정 대립과 비난과 공격과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으며 이는 친일을 문제삼을 자격도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제 2의 기득권과 제 2의 친일파인 이유들.


첫째, 이런 근성들이 곧 친일 행위나 매국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채무자에게 전화, 방문으로 폭력에 가까운 빚 독촉으로 자살로 몰아버린 행위 역시 친일보다 못하다.





둘째, 친일파 청산이라는 말이 거론될 때마다 당시의 허약한 민족성, 세계관, 역사의식, 결핍된 휴머니즘 등에 대한 다양한 분석보다 항상 사람이나 행위만 문제를 삼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는 우리 역사가 법과 제도에 의한 사회가 아니라 왕권주의라는 인물 위주의 역사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사람의 탓으로만 여겨버린 후진적인 국민성 때문으로 여겨진다.





셋째, 물론 인물 청산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도 의식이나 문화나 인간적 접근 없이 온전히 인물 위주로만 친일 청산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 역시 우리 국민 중 일부를 벌모(희생자)로 삼는 비극적인 역사의 되풀이로 지속될 위험이 크다. 이미 모두 사돈네 팔촌에 이웃과 친척 동료가 되어버린 마당에 사람 위주의 친일파 청산은 또 다른 제 2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양산될 것이 뻔하다. 때문에 그로 인한 국가적 혼란과 국민적 손실에 대한 책임은 절대 면할 수 없다.





넷째, 이제 한국의 외교 역시 대미든 대일이든 평소에 연구해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외교로 나가야 한다. 평소 우리 앞가림도 못하고 분열과 대립으로 난장판을 이루다가 외부에서 문제가 터지면 발끈해서 흥분하고 비난하면 안 된다. 특히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반미나 반일로 쉽게 끌어들이는 공산주의보다 못한 최악의 범죄는 절대 되풀이되면 안 된다. 이는 어린이를 끌어들여서 선입견을 만들어주고 방치해버리는 무책임한 행위에 대한 토론회를 열어야 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다섯째, 지금도 특권과 기득권을 문제삼지만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과 후손의 장래를 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힘없는 국민이 고통을 당하거나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면 쉽게 무시하거나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국회의원이나 재벌이나 고위직에게는 엄청난 관심과 호감을 보이면서 태도가 달라진다. 이것이 한국에서 기득권과 특권에 대해 문제를 삼는 사람들의 태도다. 이는 일반 국민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특권과 기득권을 비난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서민들은 아주 하찮고 같잖게 취급하고 쉽게 무시하고 서로 질투하고 냉소적이다. 이처럼 한심한 시민의식이나 국민성 역시 친일파에 못지 않다.





여섯째, 어쨌든 절대 다수 국민이 우리 현실을 심각하게 여기면서도 또한 스스로를 우수하거나 인간적인 것처럼 착각하는 모순과 이중성을 지니고 산다. 이런 모순과 합리화 증세로 인해서 갈수록 장점은 줄어지고 문제는 악화되면서 나라를 등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 일부 집단에서는 더욱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똑똑함을 인정받거나 인기를 누리거나 실제로 출세를 보장받기도 한다. 이처럼 입만 가진 사람들, 생각만 하고 끝나버리는 사람들, 예리한 관점으로 분석해서 중요성만 강조하고 끝나는 사람들은 모두 역사의 위선자일 뿐 결국 세월이 지나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형식적인 참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야 하는 작품이며 다시 이곳 저곳을 손질해서 다듬어야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접 만들고 다듬기 위해서는 수고하고 땀흘리고 솔선수범 해야 하되 말과 생각에 그치는 사람은 외국 사람이나 똑같다. 때문에 말과 생각으로 거들거나 끼여드는 사람들 역시 제2, 제3의 기득권이거나 친일파와 같다. 왜냐하면 기득권과 특권에 빌붙어서 그의 영향력 범위 내에서 기생하고 지탱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약점은.


첫째, 인류에 공헌한 것은 거의 없는데도 선진국에서 누리는 외형을 쫓아서 혜택만 누리고 살려는 점이다. "흑인 동네에서 번 돈으로 백인 동네로 가서 살면서도 흑인을 무시하고 천하게 취급한다."라는 말이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라는 말로 마찬가지다.





둘째, 사회 공헌도와 관계없이 일단 큰돈을 벌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동산투기, 편법 상속, 일확천금, 부정부패도 가리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큰돈을 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에 공헌할 사람은 오히려 줄어드는 기묘한 사회다. 이는 전통적인 관념인 호의호식, 입신양명, 부귀영화라는 치욕스런 과거 의식이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자가 약자를 돌보고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군림하고 착취하고 탄압하는 비굴한 역사였다.





셋째, 쓰고 먹고 놀고 마시는 등 소비와 향락과 사치와 비교와 경쟁의 저주 속에 국민들의 관심사와 생활과 여력이 집중되고 있지만 아무도 조절 정리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모두들 제도권으로 진출해서 한자리 차지해서 편히 살려고 한다. 하지만 제도권이 아닌 일반 국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은 국민보다 국가가 부자이며 한국은 국가보다 국민이 부자."라고 한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상인들은 일본이 더 부자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1-3차 술집, 고도리, 포커, 경마장, 단란주점, 애경사, 동창회, 향우회 등 놀이, 과거 인연, 기존 관행 등에 시간과 생활과 경제적인 여력을 지나치게 허비해버린다. 때문에 국가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잠재력, 국제 경쟁력, 후손들에 대한 장래 책임에서 지극히 무책임하다. 잘 사는 것이 오히려 고통과 불행의 씨앗으로 바뀌면서 곳곳이 무너지는 지극히 기형적인 사회다. 이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공짜로 얻어서도 잘먹고 잘살았기 때문에 여전히 얻어서 편히 살 것만 찾을 뿐 힘들게 만들거나 씨앗이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많은 국민들이 과거 지향적이거나 추상적인 수준에 머문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명절, 제사 때 죽은 조상을 위해 상을 걸게 차린다. 그리고 이는 사회가 어려워도 마찬가지며 굶어죽는 어려운 이웃이 있어도 거의 상관하지 않는다. 이처럼 주위 현실을 외면하면서도 죽은 조상에게 바치는 음식과 정성을 인간미라고 합리화하고 평생 착각하고 산다. 심지어 키우던 애완견이 아프거나 죽으면 눈물을 흘리면서도 서민이 어려움에 처해서 자살하면 "그 정도로 무능하거나 나약한 인간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린 자녀와 함께 자살하다니 정말 너무하다."라고 자기 입장과 생각으로 쉽게 언급하고 취급하는 잔인하고 무지한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또한 엉망인 현실을 훤히 보면서도 죽은 사후 세계에 관심을 보이고 집착하는 추상적인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들은 세상 사람이나 현실이 마치 죄인이나 속물인 것처럼 취급하는 등 적반하장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이번 명절부터는 가족과 건전한 대화를.


첫째, 이번 명절에는 단지 마시고 놀면서 깔깔대고 웃고 고도리나 치다가 끝내지 말자. 이는 정치인들이 자기 멋대로 사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둘째, "정에 살고 정에 죽고,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복잡하고 유기적인 첨단의 현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이제 흥분, 원망, 갈등 등 감정 위주의 정서보다는 사소한 것도 직접 실천하고 함께 만드는 시대와 사회와 인생의 주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셋째, 국민을 계속 무지 속에 방치한 채 이용만 해먹는 집단, 시도, 인물부터 먼저 청산해야 한다. 갑신년 새해부터는 복잡한 문명에서 생기는 피상적인 문제나 겉 부분만 훑어서 자기 이익을 도모하고, 체면을 유지하고, 출세의 발판으로 여기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국민들이 전쟁을 벌여야 한다.





넷째, 우리 국민들 스스로 많이 달라져야 하고 끊임없이 반성해서 계속 발전해야 한다. 특히 "우리 국민은 우수하다. 아름다운 민족이다."라는 막연한 겉치레나 얄팍한 잔재주를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반대로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우수한 자질을 가지고도 빛을 보지 못한 채 왜 우리는 계속 이 지경인지를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





다섯째, 쉽고 편하고 간단하고 적당주의 사고나 생활을 전면 바꿔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귀찮다. 머리 아픈 것은 싫다."라며 단순하고 얄팍한 것을 마치 솔직 담백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이제는 자기 존엄성을 바탕으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미래를 향하도록 탐구, 개척,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적극 찾아서 지원해야 하며 믿고 존중해야 한다.





특히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거나, 괄목할 만하게 활약중인 사람들은 앞으로는 책임감이 동반된 스스로의 반성과 총체적인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참다운 능력과 공헌이란 사람들이 쉽게 하기 힘든 일이나 자신의 능력으로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민하며 추구하고 경험하고 탐구하고 개척하고 도전하는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인데도 항상 똑같은 모습과 수준으로 계속 TV에 얼굴을 내밀고서, 꼭 자신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들에 아까운 능력을 낭비하는 일 또한 없어졌으면 한다.


끝까지 읽어주신 점 감사 드리며 새해에는 더욱 건전한 대화 속에서 더욱 보람된 나날과 함께 항상 건강하시길 빌어드립니다.





한 많았던 계미년을 접고 갑신년을 맞으며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최익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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