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고품격 커뮤니티  ‘스브스프리미엄’

조선 [사설] 평준화의 사이비 종교에서 깨어나라 에 대해서

조선 [사설] 평준화의 사이비 종교에서 깨어나라 에 대해서














(홍재희) ======= 방상훈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 서울 강남 출신 수험생의 서울대 사회과학대 입학률이 전국 평균의 2.5배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득의 전문직 아버지를 둔 학생의 입학률도 일반 학생의 17배에 달한다고 한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이 낸 보고서의 내용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입학하는 고소득의 전문직 아버지를 둔 학생의 문제가 화두가 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언론매체인 조선일보가 이 문제를 논거로 해서 사설을 작성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서울대 사회과학대학만의 얘기일 리가 없다. 서울대의 다른 학부도 다를 바 없을 것이고, 소위 일류대라는 학교를 조사해보면 다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 전반적인 현실이라고 해도 이 문제가 쟁점화 되는 것 자체가 실소를 금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대학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서울대학교가 도대체 무엇이 길래 소란을 떨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사회의 저급한 현실을 노정 시키는 것 이상의 의미부여를 할 수 없다고 본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이 보고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교육이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의 우선적 목표는 개인의 타고난 인성을 함양해 지적·도덕적 능력을 향상시키고 정서적으로 건전한 인간을 키워내는 것이다. 다음으론 사회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인재를 키워 사회에 내보내는 일이다. 교육의 또 다른 의의는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력으로 이 조건을 바꿔갈 수 있는 상승의 사다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접근한다면 서울대학교가 교육의 우선적 목표인 개인의 타고난 인성을 함양해 지적·도덕적 능력을 향상시키고 정서적으로 건전한 인간을 키워내는 것과 함께 사회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인재를 키워 사회에 내보내는 일을 하고 있고 교육의 또 다른 의의인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력으로 이 조건을 바꿔갈 수 있는 상승의 사다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제대로 충실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조선사설에 묻고자 한다. 조선일보사설만을 놓고 본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의 교육목표가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으로 정해져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홍재희) ====== 이러한 조선일보의 인식은 대단히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등만 하면 된다는 비교육적인 동물농장의 야만적 경쟁의 가치 척도라고 볼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서울대학교가 지니고 있는 이미지는 질 좋은 교육의 장 이라기 보다는 일등주의에 함몰된 사회적 용구분출의 대상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곳이라고 본다. 조선일보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력으로 이 조건을 바꿔갈 수 있는 상승의 사다리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서울대에 응시해 낙방한 학생이 세계적으로 서울대 보다 더 지명도가 높은 조선일보가 선망의 대상으로 우러러보고 있는 하버드대에 응시해 합격한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우선 평준화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서 지금의 교육이 인성 함양에 제몫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양심적인 교사와 양심적인 교육행정가들이 있다면 대답을 해보라. 빠른 사회변화를 소화하지 못해 거친 품성으로 변해가는 아이들에 대해 학교는 그저 속수무책일 뿐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에 대해서 묻겠다. 평준화 이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교육을 통해서 인성 함양에 어느 정도 역할을 했었지 한번 제시해 보라? 그리고 학생들의 거친 품성을 평준화 교육의 부작용 탓으로 돌리는 조선사설의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빠른 사회변화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입시경쟁에 내몰린 학교교육과 사회전반의 교육에 대한 접근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평준화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그렇다면 교육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공급해주고 있는가? 서울대에선 입학식도 치르기 전의 신입생에게 특별 합숙훈련을 시켜야 하는 형편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서울대에선 입학식도 치르기 전의 신입생에게 특별 합숙훈련을 시켜야 하는 형편이다. " 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해방이후에 한국사회의 지도계층으로서 평범한 서민대중들이 본받아야할 도덕성을 보여줬는가? 한국사회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서 어느 정도 기여했는가? 정치 . 경제 . 사회 . 예술과 철학 그리고 과학등의 학문적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는가?











(홍재희) ======= 한국의 기초학문발전을 위해 서울대학교 출신 인재들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는가에 대해서 설득력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서울대학교 예찬론에 빠진 방상훈의 조선일보 사설이 한번 구체적인 자료를 근거로 해서 제시해 보라? 서울대학교 출신 인재들이 21세기 세계속에 한국을 빛내기 위한 긍정적인 역할을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 실사구시적인 예를 한번 들어 보시라?











(홍재희) ======= 조선사설은





" 교육평등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국경이 무의미해진 글로벌 세계에서 우물 안의 평등이란 이념적 자기 기만(欺瞞)일 뿐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아이들을 지금처럼 가르쳐 냉혹한 국제적 경쟁터로 내보내는 오늘의 교육은 갑옷도 차려 입히지 않고 사지(死地)로 내모는 무책임의 극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평등 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는 조선사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현재의 고교 평준화 교육은 인성교육과 함께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자질을 가르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교육의 형태는 조선사설이 주장하고 있는 교육평등이라는 의미와는 다르다고 본다. 그리고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국경이 무너진 글로벌 세계에서 서울대학교 라는 우물 안의 비상식적인 경쟁체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조선일보의 주장이야말로 우물안 개구리식의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홍재희) ====== 조선일보가 선망의 대상으로 접근하고 있는 서울대에 응시해 낙방한 학생이 전 세계적으로 서울대 보다 모든 면에서 더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하버드대학에 응시해 합격한 것을 보면 평준화 교육이 서울대에 응시하는데 에는 부적합해도 서울대 보다 더 지명도가 높은 글로벌 세계에서 속된말로 서울대 보다 더 알아주는 하버드대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 아닐까? 조선사설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의미에서 접근해 볼 때 한국사회의 서울대에 대한 비정상적인 지향이라는 폐쇄적인 집단최면에 빠진 현상을 놓고 봤을 때 국경이 무의미해진 글로벌 세계에서 우물 안의 개구리식 발상에 젖어있는 것은 아닌지 조선사설에 묻고자 한다. 조선일보는 하루속히 망국적인 서울대 신화론?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14억 인구의 중국은 4000만이 넘는다는 대졸(大卒) 인력이 예비군처럼 연구개발과 산업현장에 투입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1억4000만 인구의 일본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에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1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노벨상 예비후보가 줄을 서 있는 나라다. 이런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처지의 우리가 평준화라는 시대착오적 교육 시스템에 언제까지나 매달려 있는 한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 14억 인구의 중국은 4000만이 넘는다는 대졸(大卒) 인력이 예비군처럼 연구개발과 산업현장에 투입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라고 조선사설은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4000만이 넘는다는 대졸(大卒) 인력 모두가 한국의 서울대에 준하는 중국의 청화대나 북경대를 나온 사람들만은 아니다. 조선사설은 그 점을 호도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예를 들면서 기초과학 분야에서 1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노벨상 예비후보가 줄을 서 있는 나라라고 극찬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서울대 출신들 중에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예가 있었는지 조선사설에 묻지 않을 수 없다.














(홍재희) ===== 서울대 출신 혹은 한국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기초학문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예가 없다는 것은 고교 평준화 때문이 아니라 한국의 서울대학을 비롯한 한국 대학교육이 부실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더욱이 조선일보를 비롯한 서열위주의 대학들을 선호하는 집단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서울대에 진학하기 위해 고소득의 전문직 아버지를 둔 학생들이 고액과외 등의 불법행위를 통해 비교육적인 방법으로 서울대에 들어가는 행태 속에서 편법으로 서울대에 들어온 학생들이 순수한 학문적 업적을 쌓아 사회적으로 혹은 인류사회에 공헌을 하는 큰 인재들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이 나라의 평준화 교육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보다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는 청소년들에게 ‘다 같이’라는 족쇄를 채움으로써 자기 실현의 꿈을 앗아가고 있다. 이 나라에선 어려운 집안 출신의 학생이 각고면려(刻苦勉勵)를 통해 이 나라 각계의 지도자로서 활약하고자 하는 의욕을 아예 앗아가 버렸다. 공교육은 폐허화되고, 사교육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이 상황에서 어려운 집안 아이들이 어디서 자기의 실력을 기르고 무슨 꿈을 키워나갈 수 있겠는가. 이처럼 상승(上昇)의 통로가 봉쇄돼버린 사회에서 자라는 것은 좌절과 증오와 자포자기라는 독버섯뿐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평준화 교육을 무력화시키는 고액과외를 법과 제도적으로 막지 못하고 온정적으로 대해온 감독관청의 도덕적 해이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불공정 거래행위는 관계당국에서 철저하게 막아야 했다.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들 고액과외 등의 불공정 경쟁행위를 막지 못한 관계당국의 처사는 조선일보의 평준화 무용론을 부채질하는 공세에 빌미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러한 불공정 경쟁의 전형적인 형태인 고액과외를 근절할수 있는 강력한 의지와 법의 엄격한 적용을 통해 풀어나간다면 조선일보 식으로 접근해서 어려운 집안 출신의 학생이 각고면려(刻苦勉勵)를 통해 이 나라 각계의 지도자로서 활약하고자 하는 의욕을 되 살릴수 있다고 본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우리 교육을 이 지경에 몰아넣은 것은 평준화와 그것을 뒷받쳐주고 있는 철지난 맹목적 사회주의 이념이다. 교육의 목적은 우수한 학생을 더 우수하게, 그보다 못한 학생을 보통 수준으로 키워내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특출한 학생은 평범한 학생으로 주저앉히고, 뒤처진 학생은 아예 교육의 울타리에서 낙오하게 만듦으로써 교육의 근본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접근한다면 이미 수십년 된 고교평준화 정책을 통해 특출한 학생은 평범한 학생으로 주저앉히고, 뒤처진 학생은 아예 교육의 울타리에서 낙오하게 만듦으로써 교육의 근본을 파괴했다면 우수한 학생들? 만이 진학할 수 있다는 서울대도 한국사회에서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접근한다면 우수한 학생을 보통수준으로 키워내는데 우수한 학생?만을 받아들이는 서울대가 지난 수십년 동안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조선일보 안 그런가?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 볼 때 문제는 평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준화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지엽적인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측면과 한국사회의 교육에 대한 접근방법 등 의 문제가 중층적으로 얽혀서 나타났다고 본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이대로 가면 우리의 아이들도 좌절하고 이 나라도 주저앉을 뿐이다. 이제 결정을 내릴 때다. 서울대 사회과학원의 보고서도 “우리의 교육제도가 21세기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공급할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국민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교육이 서울대를 목표로 정해놓고 집중한다면 21세기의 시각으로 접근해 봤을 때 시대에 뒤떨어진 둔재들만을 양성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 시대는 세계로 열려있는 지구촌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대도 연 . 고대도 변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서열위주의 경쟁체제 속에서는 기초학문분야의 노벨상 수상의 꿈은 요원하기만 하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정치인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현실 속에서 세칭 인류대학인 서울대와 연 . 고대의 교육패턴은 열린 지구촌시대에 세계시민들을 리드해 나갈수 있는 지도계층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는 이미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이 아닐까? 이러한 현실은 고교평준화정책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대학교육정책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실사구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이제 길은 평준화란 사이비 종교의 주박(呪縛)으로부터 우리 교육을 해방시키는 것뿐이다. 교육자, 교육행정가, 학부모, 학생, 그리고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평준화의 맹목(盲目)에서 차례로 깨어나야 하는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이비 종교의 주박(呪縛)은 평준화가 아니라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아직도 중후장대의 장치산업에 필요한 대량생산 대량소비시대에 규격화된 기능을 지닌 일률적인 기능을 지닌 산업기능공?들을 대량으로 양산해 냈던 서울대 연 . 고대의 백화점식 교육관행 자체가 사이비 종교의 주박(呪縛) 인 것이다. 그러한 주박(呪縛)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 볼 때 조선일보 오늘자 사설은 한국의 교육문제에 대한 핵심을 잘못 짚고 있다.

















[사설] 평준화의 사이비 종교에서 깨어나라 (조선일보 2004년 1월26일자)














서울 강남 출신 수험생의 서울대 사회과학대 입학률이 전국 평균의 2.5배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득의 전문직 아버지를 둔 학생의 입학률도 일반 학생의 17배에 달한다고 한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이 낸 보고서의 내용이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만의 얘기일 리가 없다. 서울대의 다른 학부도 다를 바 없을 것이고, 소위 일류대라는 학교를 조사해보면 다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 보고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교육이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의 우선적 목표는 개인의 타고난 인성을 함양해 지적·도덕적 능력을 향상시키고 정서적으로 건전한 인간을 키워내는 것이다. 다음으론 사회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인재를 키워 사회에 내보내는 일이다. 교육의 또 다른 의의는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력으로 이 조건을 바꿔갈 수 있는 상승의 사다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선 평준화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서 지금의 교육이 인성 함양에 제몫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양심적인 교사와 양심적인 교육행정가들이 있다면 대답을 해보라. 빠른 사회변화를 소화하지 못해 거친 품성으로 변해가는 아이들에 대해 학교는 그저 속수무책일 뿐이다.





그렇다면 교육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공급해주고 있는가? 서울대에선 입학식도 치르기 전의 신입생에게 특별 합숙훈련을 시켜야 하는 형편이다.





교육평등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국경이 무의미해진 글로벌 세계에서 우물 안의 평등이란 이념적 자기 기만(欺瞞)일 뿐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아이들을 지금처럼 가르쳐 냉혹한 국제적 경쟁터로 내보내는 오늘의 교육은 갑옷도 차려 입히지 않고 사지(死地)로 내모는 무책임의 극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14억 인구의 중국은 4000만이 넘는다는 대졸(大卒) 인력이 예비군처럼 연구개발과 산업현장에 투입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1억4000만 인구의 일본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에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1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노벨상 예비후보가 줄을 서 있는 나라다. 이런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처지의 우리가 평준화라는 시대착오적 교육 시스템에 언제까지나 매달려 있는 한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나라의 평준화 교육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보다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는 청소년들에게 ‘다 같이’라는 족쇄를 채움으로써 자기 실현의 꿈을 앗아가고 있다. 이 나라에선 어려운 집안 출신의 학생이 각고면려(刻苦勉勵)를 통해 이 나라 각계의 지도자로서 활약하고자 하는 의욕을 아예 앗아가 버렸다. 공교육은 폐허화되고, 사교육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이 상황에서 어려운 집안 아이들이 어디서 자기의 실력을 기르고 무슨 꿈을 키워나갈 수 있겠는가. 이처럼 상승(上昇)의 통로가 봉쇄돼버린 사회에서 자라는 것은 좌절과 증오와 자포자기라는 독버섯뿐이다.





우리 교육을 이 지경에 몰아넣은 것은 평준화와 그것을 뒷받쳐주고 있는 철지난 맹목적 사회주의 이념이다. 교육의 목적은 우수한 학생을 더 우수하게, 그보다 못한 학생을 보통 수준으로 키워내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특출한 학생은 평범한 학생으로 주저앉히고, 뒤처진 학생은 아예 교육의 울타리에서 낙오하게 만듦으로써 교육의 근본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의 아이들도 좌절하고 이 나라도 주저앉을 뿐이다. 이제 결정을 내릴 때다. 서울대 사회과학원의 보고서도 “우리의 교육제도가 21세기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공급할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국민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제 길은 평준화란 사이비 종교의 주박(呪縛)으로부터 우리 교육을 해방시키는 것뿐이다. 교육자, 교육행정가, 학부모, 학생, 그리고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평준화의 맹목(盲目)에서 차례로 깨어나야 하는 것이다. 입력 : 2004.01.25 18:13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