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김대중칼럼] 미국도 변하고 있다. 에 대해서
(홍재희) ======== 방상훈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의 이사기자 김대중은 미국의 변화를 이제 인식하고 있다. 김대중기자의 미국에 대한 인식 그리고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은 적어도 15년 정도 뒤떨어졌다. 미국은 1990년 대 초에 국제적인 냉전이 붕괴되고 난 뒤에 이미 한국을 비롯한 세계질서 전반에 대한 재편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만이 특별하게 변화를 보인 것이 아니다. 최근에 한국과 미국이 합의한 서울 용산 미군기지의 경기도 평택으로의 이전문제도 이전할 구체적인 장소만이 최근에 최종 확정됐을뿐 용산 미군기지 이전문제는 1990년 대초에 노태우정권과 미국이 이미 이전하기로 합의한 내용이다.
(홍재희) ====== 김대중 칼럼은 용산기지 이전문제와 최근 한국외교부 미국담당관리들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항명사태이후의 참여정부가 미국을 '자주' 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김대중 기자의 이러한 인식은 시대착오적이다. 용산미군기지 이전은 조선일보와 김대중 기자가 사용하고 있는 '자주' 라는 얘기가 나오기 훨씬 이전에 노무현정권이 들어서기 훨씬 이전인 구 소련이 붕되 되면서 미국이 전 세계 주둔미군의 전략적 재배치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었던 문제이다. 그리고 휴전선 근방의 주한미 제 2사단에 대한 후방으로의 이동배치도 '자주' 라는 얘기가 나오기 이전에 미국의 전략적 고려에 의해서 적극 추진됐던 것이다.
(홍재희) ====== 김대중 기자는
" 겉으로는 관망하는 것 같지만 미국은 한국의 이런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것은 이것이 한·미관계뿐 아니라 미국이 아킬레스건으로 여기고 있는 북핵문제에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미국의 싱크탱크 쪽 사람들은 외교부 장관의 전격 경질을 ‘친미파(pro-U.S.) 대(對) 좌파성향(left-leaning)의 싸움’의 소산으로 보면서 『아마도 4월 총선의 결과가 한·미간에 어떤 결정적 계기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했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중 기자는 정체불명의 미국 싱크탱크쪽 사람들의 검증되지 않은 주장인 "외교부 장관의 전격 경질을 ‘친미파(pro-U.S.) 대(對) 좌파성향(left-leaning)의 싸움’의 소산" 이라고 전하며 김대중 기자의 속내가 담긴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대중 기자의 분석내용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 외교부장관의 경질이 의미하는 것은 친미 사대주의적인 냉전수구파와 탈냉전의 시대에 미국에 대해 합리적이고 전향적인 시각을 지닌 정권담당자들간의 마찰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한국의 외교관료조직들도 국제적인 냉전시대에 미국이 한국에 대해 일방적으로 펼쳐 놓은 외교안보 우산에 안주하며 수직적이고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주종의 수직적 한미관계에 안주해 한국의 안보와 외교를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던 숭 미 배타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할 때가 됐다.
(홍재희) ====== 조선일보 김대중 기자는 뭔가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용산미군 기지가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고 휴전선 부근의 미제 2사단이 후방으로 이동배치 된다고 해서 " ‘미국 없는 자주외교’에서 더 나아가 ‘미국 없는 자력(自力)경제’, 그리고 ‘미국 없는 자주국방’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서 떠날 날은 아직도 요원 하기만 하다. 미국정부가 용산기지를 경기도 평택으로 옮기는 중요한 이유 는 용산에 계속 주둔할 경우 미군철수 시위에 항상 노출돼 한국에 주한미군이 장기적인 주둔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판단해 이전한다고 미국이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곧 김대중 기자의 주장과는 달리 주한미군의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한반도 주둔을 의미한다고 본다.
(홍재희) ======= 이제 한국사회는 국제사회의 변화에 대한 냉정한 이해를 해야할 때가 됐다. 세계는 이미 15년 전부터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한반도 정세 또한 탈냉전의 국제정세의 변화 보다 10년 늦게 반응했지만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후에 적대적 공존에서 화해 협력의 시대로 이미 접어들었다. 좌 . 우의 대립적인 동서냉전이 무너지면서 탈냉전 . 탈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거쳐 이미 21세기의 첨단 정보 통신을 도구로 한 디지털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고 세계가 지구촌화 하며 열린 시민사회가 도래하며 오늘에 까지 이르렀다.
(홍재희) ====== 조선일보 김대중 이사기자는 20세기식의 시대착오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이념적 도그마의 경직된 사고방식인 보수 진영과 좌파세력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의 이분법적 관점으로 최근 한국정부와 한국인들이 미국을 바라보는 관점을 이해하고 있고 미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교조적이고 냉전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관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김대중 기자의 뒤떨어진 인식은 곧 대미 동맹파인가 자주파인가 라는 이분법적 냉전논리에 지난 수십년 동안 순치 돼 왔던 관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일보와 김대중 기자의 이러한 현실인식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홍재희) ====== 한국은 이제 국력에 상응하는 국제적인 역할을 해야한다. 한미간의 외교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을 필요이상으로 배척할 필요도 없지만 미국에 대해서 필요이상으로 스스로를 비하하고 들어갈 필요도 없다. 호혜평등의 정상적인 국가 간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노무현 정권은 그러한 한미관계의 새 틀을 만들어 가고 있는 과도기적 상황 속에서 집권하고 있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노무현 정권의 대미접근에 대해서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가 좌파적 접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조선일보와 김대중이사기자가 전형적인 냉전 수구적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합리적인 보수주의자에 가깝다고 본다.
(홍재희) ======= 김대중 이사기자는 노무현 정권이 한미관계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 ‘특별 관계’의 울타리를 벗어난 미국은 언제나 저들의 이익과 이해에 철저했다. 한·미의 연(緣)에 구애되지 않는 미국이라면 상황에 따라 북한과의 문제에서 놀라운 선택을 할지 모른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친미 사대적 대미 종속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한미관계에 적응하기까지 겪어야할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기자의 금단현상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홍재희) ===== 김대중 기자는 노무현 정권이 미국에 대해서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려하고 있고 또 용산기지를 완전이전 하는데 동의한 것에 대해서 미국과의 ‘특별 관계’의 울타리를 벗어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그것은 김대중 기자의 중대한 착각이다. 김대중 기자의 주장과는 달리 한미간에 ‘특별 관계’의 울타리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1950년대의 국제적인 냉전이 심화되던 시기에 맺어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서슬 퍼렇게 살아 숨쉬고 있고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이 여전히 미군에게 있다. 불평등한 한 . 미 주둔군지위협정 또한 요지부동이다. 이러한 현실은 노무현 정권이 새로운 한미관계의 틀을 만들어 가고 있지만 아직도 ‘특별 관계’의 울타리 안에서의 작은 변화에 불과 하다.
(홍재희) ===== 그리고 미국은 한국과 특별 관계’의 울타리를 유지하든 유지하지 않든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독자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김대중 기자는 그 점에 대해서 지금 오판을 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가 북한과 국경을 직접 접해 있기 때문에 미국이 독자적으로 북한을 움직일 수 없다. 그것은 조선일보와 김대중 기자가 생각하고 있는 것 보다 북한체제가 미국과의 유연한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홍재희) ======또한 미국의 일방적인 힘의 행사를 통해 북한에 미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절대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북 간의 화해협력구도는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일방적인 행동을 할수 없는 민족공동체의 친밀한 여건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한 북한의 지정학적 전략적 중요성이 김대중 기자의 주장과는 달리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이고 독자적인 행동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본다.
(홍재희) ====== 부시미국정부가 이라크전투를 조기에 일방적으로 매듭짓고도 조선일보나 김대중기자의 회망이나 기대와 달리 북한에 대해서 공격적으로 나오지 못하고 6자회담의 다자틀 속에 북한의 핵문제를 풀기 위해 들어온 것은 미국에게 있어서 북한은 이라크와 달리 막강한 전략 핵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에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 러시아와 북한이 국경을 접하고 있고 또 다가올 미래에 미국이 가상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중국 또한 북한과 국경을 접하면서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과도한 영향력행사를 중국의 안보에 대한 간접적인 위협으로 까지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대중 기자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의 대북 일방적인 행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한 정책의 변활르 추구하든 하지 않든 미국의 일방주의적이고 독자적인 대북 정책 추진은 탈냉전 시대의 한반도에서 더 이상 불가능 하게 됐다.
미국도 [김대중칼럼] 미국도 변하고 있다.(조선일보 2004년 1월 20일자)
우리가 독자노선 택한 만큼 … 이해다툼엔 '봐주기'가 없다
한국과 미국의 여러 상황을 종합하건대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국’ 없이 가는 독자(獨自)의 길을 준비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민의 의식이 그렇게 변하고 있고, 미국 역시 한국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단계에 들어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이미 오래전에 잉태된 것이다. 한국은 건국 이후 지금까지 ‘미국’이란 편식(偏食)을 해왔다. 그것은 6·25전쟁을 거쳐 냉전시대에 살면서 심한 이데올로기 싸움 속에 근·현대를 보내야 했던 한국으로서는 불가피한, 또는 강요된 선택이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하나의 가치 체계에 95% 이상을 의존해 왔다. 그래서 사고와 가치 체계의 다양성을 용인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변화는 그런 ‘일변도’가 초래한 결과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성의 문(門)을 열면서 우리 사회의 시계 추(錘)는 그 반대의 벽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보수·우파’ 타도의 전면에 부상하고 있는 것이 ‘진보·좌파’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미(對美)인식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변화는 여중생 사망 사건과 같은 작은 틈새를 비집고 나와 이라크파병, 주한미군 재배치 같은 현안에서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을 단순히 「노무현적(的) 현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미국이 북한보다 한국에 더 위협적인 존재’라는 최근의 여론 조사는 의식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노 정권은 바로 그런 변화를 타고 자주(自主)라는 깃발 아래 그것을 추종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겉으로는 관망하는 것 같지만 미국은 한국의 이런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것은 이것이 한·미관계뿐 아니라 미국이 아킬레스건으로 여기고 있는 북핵문제에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미국의 싱크탱크 쪽 사람들은 외교부 장관의 전격 경질을 ‘친미파(pro-U.S.) 대(對) 좌파성향(left-leaning)의 싸움’의 소산으로 보면서 『아마도 4월 총선의 결과가 한·미간에 어떤 결정적 계기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했다.
문제는 한국의 대미(對美)인식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의 대한(對韓)인식도 변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의 젊은 세대와 마찬가지로 미국인의 대다수도 세대가 바뀌어 이제는 한국전쟁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한·미관계를 당연한 기정사실로 간주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한국이 싫다면 우리가 굳이 남아 있을 이유가 무엇이냐』는 식이다.
이제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한국의 보수 진영이 ‘안보 위기’에 절망하건 말건, 일부 좌파세력이 미국철수에 환희하건 안 하건 상관없이 한·미관계는 재조정의 시대에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미국 없는 자주외교’에서 더 나아가 ‘미국 없는 자력(自力)경제’, 그리고 ‘미국 없는 자주국방’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그 길을 선택한 것이라면 우리도 이제까지의 자세를 고치고 마음을 다잡아 먹어야 할 것이다. 명분상으로는 그럴듯하게 「자주」를 얘기하면서 뒤로는 『그래도 뭐 달라지는 것이 없겠지』 하고 기대하는 이중적 태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예의주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미국이란 나라의 냉혹함이다. ‘특별 관계’의 울타리를 벗어난 미국은 언제나 저들의 이익과 이해에 철저했다. 한·미의 연(緣)에 구애되지 않는 미국이라면 상황에 따라 북한과의 문제에서 놀라운 선택을 할지 모른다. 한국이 변하는 이상 미국이 한·미관계에서 여전히 전통적 자세로 임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미국도 변하고 있다.
(김대중·이사기자) 입력 : 2004.01.19 17:42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