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민주노총, 시대적 開眼이 필요하다 에 대해서
(홍재희) ====== 방상훈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사설은 민주노총에 대해서 새로운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이어서 " 일 년 열두 달 시도 때도 없이 총파업과 가두 시위·집회를 벌여 국민들로부터 이방인 취급"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주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사 내용은 서로 상충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난해의 노동손실일수는 2002년 보다 20%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지난해의 노사분규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정부를 대표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직접 밝혔다.
(홍재희) ======= 조선일보사설은 노동자들이 "일 년 열두 달 시도 때도 없이 총파업과 가두 시위·집회를 벌여 국민들로부터 이방인 취급"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 노동운동은 지금 한국의 정치 변동 과정에서 핵심 세력으로 부상했고, 그들의 행동은 경제 영역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삶의 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올라섰다." 라고 앞 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
(홍재희) ====== 조선사설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정권 그리고 부패한 기업인들이 정 . 경 . 언의 삼각 권언 유착을 통해 한국경제를 거덜내는 IMF 위기를 불러들이자 노 . 사 . 정 합의를 통해 한국경제가 위기를 극복하는데 적극적인 공동체적 노력에 동참하며 위기를 넘기는 데 의미있는 기여를 했다. 조선일보의 눈에는 그러한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IMF 위기극복의 신화와 같은 감동적인 희생을 그때 목격하지 못했는가?
(홍재희) ======= 조선사설은 ‘준비된 총파업’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노동자들과 노동단체들의 활동에 대해서 객관적인 시각과 전향적인 접근을 통해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연한다면 민주노총과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이 '준비된 총파업’을 한다고 비판하기 이전에 왜 그들이 '준비된 총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조선일보의 접근도 필요하다고 본다. 조선일보는 민주노총의 변화를 촉구하기에 앞서 민주노총과 노동자들에 대한 조선일보의 무관심부터 비판받아야 한다고 본다.
(홍재희) ====== 2003년 바로 지난해 한국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대기업노동자가 분신자살하고 타워크레인에서 목을 목숨을 끊고 또 중소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분신자살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이어 분신 자살하는 등 한국의 노동계에 충격적인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사회적 항의가 지난 일년 내내 계속돼 한국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지만 조선일보는 지난 1년 내내 노동자들의 연쇄자살문제에 대해서 단 한줄의 사설도 내보내지 않으며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홍재희) =======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오늘자 사설을 통해 노동자들이 " 한국의 정치 변동 과정에서 핵심 세력으로 부상했고, 그들의 행동은 경제 영역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삶의 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올라섰다." 라고 주장하며 노동자들의 역할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의 정치 변동 과정에서 핵심 세력으로 부상했고, 그들의 행동은 경제 영역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삶의 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고 조선사설이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조선일보 사설은 왜 지난 한해동안 대한민국사회를 뒤흔들었던 노동자들이 자살하는 문제에 대해서 침묵했었는가?
(홍재희) ======= 조선일보사설이 한국사회에서 그렇게 중요한 사안에 대해 1년 내내침묵으로 일관하면서 한국사회에 대해서 정치권력에 대해서 할말은 하는 신문이라고 말할수 있겠는가? 조선사설이 그러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어떻게 사회작 목탁이요 공기라고 주장할수 있겠는가? 이러한 조선사설이 민주노총에 대해서 노동자들에 대해서 비판한다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홍재희) ====== 조선일보는 민주노총에 대해 비판하기에 앞서 민주노총이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진보를 위해서 헌신한 노력을 따라 배워야 한다. 그리고 조선사설은 민주노총이나 노동자들의 주의주장을 적극적으로 지면에 할애해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그들의 주장과 사회적 현실사이에 괴리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독자들과 함께 비판적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통해 노동자들에 대해서 바른 인식을 갖는데 노력한다면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가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침묵하고 국회에도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은 파업밖에 더 있는가? 조선일보는 그 점을 인식해야한다. 민주노총은 앞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 그리고 외국인노동자들의 문제 등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한다. IMF관리체제이후에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으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비정규직등의 열악한 노동시장의 모순을 극복하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지금보다 더 힘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민주노총도 이제부터 안티조선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야한다. 조선일보의 민주노총관련 사설이나 노동자관련사설은 한마디로 얘기해서 반 노동적 이다. 조선일보를 제대로 각성된 신문으로 탈바꿈시키는 시대를 만들어야 노동자들이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가 앞당겨 질 것이다.
[사설] 민주노총, 시대적 開眼이 필요하다(조선일보 2004년 1월19일자)
민주노총의 이수호 신임 위원장이 “(민주노총의) 투쟁과 저지 일변도 전략은 (성과도 없이) 조합원을 지치게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새로운 틀이 마련돼야 한다는 전제하에 그동안 민주노총이 거부해 왔던 노사정 위원회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일 년 열두 달 시도 때도 없이 총파업과 가두 시위·집회를 벌여 국민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기존 노선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노동운동은 지금 한국의 정치 변동 과정에서 핵심 세력으로 부상했고, 그들의 행동은 경제 영역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삶의 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세력이 그 힘에 걸맞은 행동규범을 익혔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대부분이다.
1980년대 후반 노동운동이 전면 개화(開花)한 이후 노동운동 지도부가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라는 구(舊)시대적 틀에 매몰돼 바뀐 시대에 걸맞은 자기 수정(修正) 과정을 밟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한 민주노총의 최근 노선변화는 그러나 여전히 ‘준비된 총파업’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결국 노동운동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 얼마나 부응할지는 여전히 의문인 상황인 셈이다.
민주노총의 새 지도부는 노조의 조직률이 1989년의 19.8%에서 2002년 11.6%로 추락하고, 일반 국민들뿐만 아니라 현장 노동자들까지 노동운동에 등을 돌리게 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는 결국 노동운동이 대기업 노조 중심의 노동세력 내부의 기득권 지키기로 변질된 탓이다.
민주노총이 진정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확실한 힘이자 중심세력’이 되고자 한다면, 국가의 현 상황을 냉철하게 살펴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새롭게 설정해 국민의 자발적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시대적 개안(開眼)을 이뤄내야 하는 것이다.
입력 : 2004.01.18 18:07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