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검 검사장님께 드립니다.
저는 현재 대구대학교 03학번 특수교육대상자로 도시 과학부에 입학한 이
종광의 엄마입니다.
20여 년의 세월을 모든 정성과 노력으로 혼신을 다했으며 저리는 설움도 삼
켜가며 이세상의 그 누구의 자식보다 아끼며 키워온 나의 소중한 아들입니
다.
대학교에 너무나 가고 싶은 소망으로 결코 높은 성적을 올릴 수 없는 신체
적 장애도 불구하고도 대학교에 입학 한 것을 얼마나 행복해 했는지 아시는
지요!
두렵고 경험하지 못한 사회의 부담도 있지만 새로운 환경을 누려본다는 대
학생활에 무던히도 맞추려 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2학기에 접어들며 정말 종광이가 가장 믿고 좋아했던 반 인제를 기숙사 룸
메이트 결정하여 생활하는 하루하루를 얼마나 행복해 하고 즐거워했는지 모
릅니다.
11월초부터 왜 전화하지 않느냐고 엄마가 채근 할 정도로 바쁘다고 통화 할
시간조차 내기 어려웠던 아이가 저녁마다 시무룩한 목소리로 “학교가 무
섭다”, 집에 가고 싶다, 다른 대학에 가고 싶다 는 등,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엄마가 가느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리곤
하여 아무래도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아 11월 13일 종광이에겐 알리
지 않고 대구로 가고 있는 도중에 종광이가 언덕에서 떨어져 119를 불렀다
는 소식을 접하고 어떻게 하양 성심 병원까지 왔는지 모릅니다.
사고의 연유를 물었지만 주위친구들과 조교의 눈치를 살피며 말하려 하지
않아 병실로 옮겨 안정시키고 달래면서 물으니 스스로 자살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경악했는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기숙사에서 칼로 손등을 그으며 시도했으나 무서워서 밖에 나가
뛰어 내렸다고 너무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무슨 이유냐고
계속 물으니 그날에는 친구들의 심한 장난과 학교 리프트 사용 중에 담당
봉사자의 부재로 수업 시간에 차례 지각하는 등의 불편함과, 세탁실에 요금
을 주며 의뢰를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언어가 잘 안 된다는 것을 이용하여
탈수 통에서 건조도 하지 않은 뭉친 상태로 옷을 찾아가게 하였고 5호관 기
숙사 조교의 무관심에 상처를 받았다는 일상적인 불편함만 이야기하였다.
병원에서 2주 진단을 받아 학교측에 제시하여 집에서 가료한 후 11월 24일
복귀하였다
같이 생활하는(룸메이트는 한 명이나 그의 친구2명과 종광이 방에서) 저녁
에 고기도 사 먹이고 노래방도 보내주며 종광이의 마음을 풀어주라는 부탁
을 하였습니다.
25일 안양 집으로 아무런 의심 없이 귀가하였으나 다음날 오전 8시 30분
경 종광이로 부터 설사와 두통, 어지러움과 손과 발에 경련이 일어난다는 전
화를 받은 후 다시 기숙사로 와보니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 같아 엄마와 같
이 자고 싶다는 의사로 진량에 위치한 사파이어모텔에 같이 투숙하여 아무
래도 정신적인 불안으로 인한 것 같아 다시 한번 마음을 달래고 안정시켜서
엄마에게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그제 서야 털어놓아 그 이유를 들어보았습
니다.
1. 10월 24일경부터 룸메이트인 반 인제, 서 홍대, 신현호( 4, 2층 기숙사
거주학생) 등이 같이 있는 종광이 방에서 홍대가 일본에서 구입해 온 여자
성기모양(종광이가 알고 있기는)기구(별첨)를 종광이의 항문에 주입하여 모
타의 진동을 변화 시켜가며 2- 3일에 한번씩 1, 2, 3분 간격으로 30여분에
걸쳐서 강제로 행했습니다.
3. 자는 종광이를 억지로 깨워 성기를 꺼내 놓고 세우라고 했으며 그렇게 하
지 못하면 군대식인 엎드려 뻗쳐 등 종광이의 능력으로 절대로 할 수 없는
채벌을 가 하는 등 비인간적인 짓을 장난으로 일삼았고
4. 한밤에 자고 있는 종광이를 억지로 깨워서 같이 놀자고 자지 못하게 하였
다.(앞의 성기사용)
5. 가끔 위의 행동으로 자존심이 상하여 친구들이 하는 게임에 “져라”,
“져라” 하고 말했다는 이유로 며칠을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무시 당하였
습니다.
6. 2학기초부터 시작하여 전날 물을 부어 놓았던 짜장 라면을 다음날 점심이
라며 종광이에게 배가 불러 먹지 못한다는 의사도 묵살하며 억지로 먹어라
강요하여 하는 수 없이 반 그릇을 먹었습니다
7. 장애인 진단서(지체장애 1급) 제출로 그나마 인심 써서 전기요를 쓸 수
있는 허락을 받고 깔고 자고 있는 종광이를 깨워 전기요를 빼앗아 자기들
끼리 깔고 자는 등의 비인간 적인 행위를 죄책감이나 반성의 단어가 무색
할 정도로 이런 일들을 반복하고 또 하였습니다.
8. 순살 튀김을 같이 나눠 먹고 남은 것에 무우 국물, 먹다 남은 콜라, 감자
튀김 등을 섞어서 먹으라며 핸드폰으로 촬영하기까지 하였으며, 다 먹지 못
하면 잠을 재우지 않는다는 협박,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지만 먹을 수
밖 에 없었습니다.
9. 종광이의 소모품들은 종광이의 양해도 전혀 없이 공동으로 사용(스킨, 로
션, 비누, 헤어젤, 양말, 노트북)하는 말할 것도 없이 선물로 받은 연필도 가
져갔고 학용품은 물론 자기 것을 쓰는 양 당연히 행하였습니다
10. 어느 날은 종광이의 바지를 반쯤 벗게 하여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기들
이 목욕하고 올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등 성적 희롱을 여사로 하였습니다.
11. 마포로 기숙사 바닥을 닦게 하고, 간식을 사와라, 담배를 사와라, 하물
며 콘돔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콘돔 등을 가끔은 돈도 주지 않고
사오라고 하였고
12. 수시로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고 기숙사에 들어오면서 걸리적 거린 다
고 차고 나갈 때 비키라고 차고 잠자리에서 젓꼭지를 꼬집어 아프다고 소리
치면 칠수록 아픈 강도를 더하여 아무리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게 하였습니
다.
13. 새벽에 인터넷 유료 게임시간에 맞추어 깨워달라는 세 명이 각각 2시,
3시,4시 등 그 시간에 맞추어 깨어야 하기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지샌 날이
허다했습니다. 혹 못 견디어 그 시간에 깨우지 못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부리
는 신경질이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4. 자기들은 씻지도 않고 자면서 매일 목욕을 강요(성적 노리개?)했고
세수하러 나가는 종광이에게 술 깨는 약을 사 오라고하여 기숙사에서 정문
바�� 슈퍼까지 반팔로 추운 것을 참아가며 사오기도 했습니다. (왕복 20분소
요)
15. 10월 24일 추석이 지난 후에는 강도를 더하여 11월 13일 자살을 기도
하기까지 하루도 제대로 자지 못하게 하여 입안이 5센티 가량 하얗게 헐어
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렇다는 핑계로 얼버무리곤
하였습니다.
16. 자기들은 장난이라고 하지만 종광이는 아니었다는 것을 표현 할 엄두조
차 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을 말을 하면 엄마가 가슴 아파 할까봐, 이런 대우를
받고 사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면 종광이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도 싫었고
친구들에게 왕따 당하는 것도 너무 싫었기 때문에 참다, 참다 11월 13일에
자살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3개월 동안이나 당한 이런 일들이 오죽 하였겠습니까!
우리 아들에게 일어났던, 당했던 이런 일들이 지금도 이 시대에도 행해지고
있는 것을 상상인들 할 수 있을 런 지요
다른 사람도 아닌 처음으로 객지에서 믿고 의지 했던 같은 학과, 룸메이트와
친구들에게 유린을 당 할 수 가 있나요?
어떻게 천사처럼 순수한 아이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 날 수 있습니까?
다른 아이들처럼 되고 싶어서 . 다른 아이보다 뒤떨어져 보일까봐, 정상인
다른 아이들이 1분이면 가는 거리를 10분씩 걸리면서도 따라가려는 그 고통
을 검사장님은 아십니까?
어떻게 장애인의 배움의 요람이며, 천국이라는 대구대 안에서 이런 일이 일
어날 수 있습니까?
이런 금수만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 할 수도, 용서 할 수도 없습니다.
피를 토하며 통탄 할 이런 일이 또 있을 수 있습니까?
한 아이. 한사람이 이렇게 한낱 강아지의 놀이게 보다 못한 이런 일이, 이
런 대우를 당하고도 살아 갈 수 있을 까요?
아무리 가슴을 헤집어서 그 이유를, 밤을 꼬박 새워서도 ,가슴을 쥐어짜면
서 아리게 아프도록 생각해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존경하는 검사장님!
죽어서도 풀지 못하는 이 한을!
제발 풀어주세요!
다시는 이렇게 당하는 아이가 없게 해 주 실 것을 간절히 믿습니다.
자신들이 무슨 일을 ,무슨 잘못을 했는지 조차도 모르는 그 아이들이 불쌍해
서 못 살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존재하고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에조차 관심도 노
력도 없는 대구대 안의 모든 관리자들의 안일함을, 타성 고발합니다.
11월 26일 밤 11시 30분 이후로 엄마인 나로서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 이 이야기를 털어놓자 마자 경련을 일으키는 종
광이를 감당 할 수 없어서 장애인 지원 센타 소장님과 비호 생활관의 책임
자인 손 동우 선생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여지없이 거절당하였고 119 구급차
의 도움으로 경상 병원 응급실로 올 수 있었습니다. 겨우 종광이가 안정되어
잠든 이후 저의 고통은, 고문은 시작되었습니다. 울 수조차 없어서 멍하니
앉아있는 저에게 새벽까지 보다 못한 병원 접수선생님께서 경찰서에 신고라
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 아야기를 들은 후에야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
면 내가 어떻게 될지 불안하여 경산 경찰서의 정보과장님을 찾아가 사건 개
요를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증거(아이들이 사용했던 기구)의 수색을 생활관의 손동우씨에게 도움을 청하
여 결과를 약속하였지만 지켜지지도 , 종광이가 털어놓은 이야기가 어떤 것
인지 관심도 가지지 않는 학교측의 무관심에 저는 다시 한번 절망의 구렁텅
이로 빠져야만 했습니다. 안타까워는 하였지만 얼마나 주요한 사안인지 여
기지 않는 형사반장님의 생각을 알고 서운함은 미루어 짐작하시겠지요.
성폭행, 인권유인이 자행되는 이 사실이 범죄가 아닌가요?
검사장님!
너무나 새롭고 행복했던,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캠퍼스의 생활을 접을
수 없는 종광이의 염원을 염두에 두어 주신다면 또한 그것보다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디 이 세상을 사는 이유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을 말을 하면 엄마가 가슴 아파 할까봐, 이런 대우를
받고 사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면 종광이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도 싫었고
친구들에게 왕따 당하는 것도 너무 싫었기 때문에 참다, 참다 11월 13일에
자살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3개월 동안이나 당한 이런 일들이 오죽 하였겠습니까!
우리 아들에게 일어났던, 당했던 이런 일들이 지금도 이 시대에도 행해지고
있는 것을 상상인들 할 수 있을 런 지요
다른 사람도 아닌 처음으로 객지에서 믿고 의지했던 같은 학과, 룸메이트와
친구들에게 유린을 당 할 수 가 있나요?
어떻게 천사처럼 순수한 아이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 날 수 있습니까?
다른 아이들처럼 되고 싶어서 . 다른 아이보다 뒤떨어져 보일까봐, 정상인
다른 아이들이 1분이면 가는 거리를 10분씩 걸리면서도 따라가려는 그 고통
을 검사장님은 아십니까?
어떻게 장애인의 배움의 요람이며, 천국이라는 대구대 안에서 이런 일이 일
어날 수 있습니까?
이런 금수만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 할 수도, 용서 할 수도 없습니다.
장애인이라는 미명 아래 이런 아이를 둔 죄로 아이와 싸잡아 무시당하는 일
들이 일부 부서에서 있었습니다.
30년 동안 장애인 학생을 영입. 배출 시켰다는 대구대의 기본적인 장애인에
대한 대우가 도움이 전무한 곳인지 알았다면 우리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특히 장애인의 배려가 완벽하다는 기숙사마저도 몸이 불편한 아이들의 배려
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시설들입니다.
첫째로, 편리한 장애인을 위하여 1층으로 방 배정을 해 준 것은 만족하지만
1층 이상은 올라 갈 수도 없는 구조의 건물이 왜 그대로 있어서 그 아이들
을 슬프게 하는 걸 까요?
장애인이라는 지울 수 없는 사실은 알지만 왜 똑같은 등록금과 비용을 부담
하면서 입학하여 처음 강의실을 찾지 못하고 헤 메다 겨우 도착 해보니 수
업이 다 끝나고 말아야 할까요?
우리아이가 장애인인지 잊은 걸까요?
왜 장애인이라는 것에 아무 준비도 해 주지 않은 상태에서 그 학생들을 받
고 있는지 학교 당국에 건의합니다.
언어도 어눌하고, 잘 걷지도 못하고 잘 볼 수도 없는 것을 알면서 대학이기
때문에 스스로 해야 한다고 방치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학의 전반에서부터 장애인들을 방치해 두고 있는 환경 때문에 학생들까지
도 위와 같은 인간이라면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자행되고 있는 게 아닙니까?
멀쩡한 부모도 어느 부서에서 물어봐야 하는지 찾을 수가 없는데 당사자의
고충은 어떠하겠습니까?
강의 시간을 어떻게 구성해야 되는지?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도시 과학부 선배들이 아니면. 친
구를 무작정 붙들고 애원하는 등 구걸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른이 나도 난감한 이러한 사안들을 도와 줄 수 있는 창구정도는 임시라도
개설 해주어야 장애학생을 책임지는 자세가 아닙니까?
대외적으로 알고 있는 장애 학생을 위한 고급인력의 양성을 위하여 유일한
대학이 이러하다면 장애학생 들은 희망은 접고 살아야만 하지 않을 까요?
존경하는 감사실장님!
오래 전부터 이런 문제를 호소하고 싶었지만 이 곳 마져도 없어진다면 장애
학생들의 배움의 조그만 기회를 잃어 버릴까하는 불안으로 가슴앓이 만 해
야만 했습니다.
개인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국가 기관에서 국가가 책임지는 이상적인 곳에서
살 수 있도록.약한 자들이 보호받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런 복지나라가
대한민국이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한 많고 가슴 아픈 고통을 감수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
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진정으로 사는 것을 가치 있고 인간임을 자랑하며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
시기 바랍니다.
2003년 11월 28일
탄 원 서 (2)
존경하는 대구지검 검사장님께 드립니다.
2003년 11월 28일 대구 검찰청에 직접 찾아가서 접수번호 1400번으로 탄
원서를 제출 한 바 있습니다. 아래 내용에 중복된 부분이 있으나 28일 탄원
서를 접수 후 못 다한 이야기가 첨부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대구대학교 03학번 특수교육대상자로 도시 과학부에 입학한 이
종광의 엄마입니다.
20여 년의 세월을 모든 정성과 노력으로 혼신을 다했으며 가슴 저리는 설움
도 삼켜가며 이세상의 그 누구의 자식보다 아끼며 키워온 나의 소중한 아들
입니다.
대학교에 너무나 가고 싶은 소망으로 결코 높은 성적을 올릴 수 없는 신체
적 장애도 불구하고도 대학교에 입학 한 것을 얼마나 행복해 했는지 아시는
지요!
두렵고 경험하지 못한 사회의 부담도 있지만 새로운 환경을 누려본다는 대
학생활에 무던히도 맞추려 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2학기에 접어들며 정말 종광이가 가장 믿고 좋아했던 반 인재를 기숙사 룸
메이트 결정하여 생활하는 하루하루를 얼마나 행복해 하고 즐거워했는지 모
릅니다.
11월 초 부터 왜 전화하지 않느냐고 엄마가 채근 할 정도로 바쁘다고 통화
할 시간조차 내기 어려웠던 아이가 저녁마다 시무룩한 목소리로 "학교가 무
섭다, 집에 가고 싶다, 다른 대학에 가고 싶다."는 등,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
였습니다.
엄마가 가느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리곤
하여 아무래도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아 11월 5일 종광이에겐 알리
지 않고 대구로 가고 있는 도중에 종광이가 언덕에서 떨어져 119를 불렀다
는 소식을 접하고 어떻게 하양 성심 병원까지 왔는지 모릅니다.
사고의 연유를 물었지만 주위친구들과 조교의 눈치를 살피며 말하려 하지
않아 병실로 옮겨 안정시키고 달래면서 물으니 스스로 자살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경악했는지 모릅니다.
2003년 11월 5일 20시(수능시험일)
처음에는 기숙사에서 칼로 손등을 그으며 시도했으나 무서워서 밖에 나가
뛰어 내렸다고 너무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무슨 이유냐고
계속 물으니 그날에는 친구들의 심한 장난과 학교 리프트 사용 중에 담당
봉사자의 부재로 수업 시간에 수 차례 지각하는 등의 불편함과, 세탁실에 요
금을 주며 의뢰를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언어가 잘 안 된다는 것을 이용하여
탈수 통에서 건조도 하지 않은 뭉친 상태로 옷을 찾아가게 하였고 5호관 기
숙사 조교의 무관심에 상처를 받았다는 일상적인 불편함만 이야기하였습니
다.
.병원에서 2주 진단을 받아 학교측에 제시하여 집에서 가료한 후 11월 24일
복귀하였고 같이 생활하는(룸메이트는 한 명이나 그의 친구2명과 종광이 방
에서) 저녁에 고기도 사 먹이고 노래방도 보내주며 종광이의 마음을 풀어주
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25일 안양 집으로 아무런 의심 없이 귀가하였으나 다음날 오전 8시 30분
경 종광이로 부터 설사와 두통, 어지러움과 손과 발에 경련이 일어난다는 전
화를 받은 후 다시 기숙사로 와보니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 같아 엄마와 같
이 자고 싶다는 종광이의 의사로 진량에 위치한 사파이어모텔에 같이 투숙
하여 아무래도 정신적인 불안으로 인한 것 같아 다시 한번 마음을 달래고
안정시켜서 엄마에게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그제 서야 털어놓아 그 이유를
들어보았습니다
1. 9월 중순(서홍대 등이 종광이 방에서 자기 시작 한날)부터 룸메이트인 반
인재, 서 홍대, 신 현호( 4, 2층 기숙사 거주학생) 등이 같이 있는 종광이
방에서 홍대가 일본에서 구입해 온 여자가 사용하는 성기모양 기구를 종광
이의 항문에 주입하여 모타의 진동을 변화 시켜가며 일주일에 4~5일씩 1, 2,
3분 간격으로 30여분에 걸쳐서 강제로 행했다.
2. 자고 있는 종광이를 억지로 깨워 성기를 꺼내 놓고 세우라고 했으며 그
렇게 하지 못하면 군대식인 엎드려뻗쳐 등 종광이의 능력으로 절대로 할 수
없는 채벌을 가하는 등 비인간적인 짓을 장난으로 일삼았고 서 홍대의 카메
라폰으로 촬영까지 했다.
3. 한밤에 자고 있는 종광이를 억지로 깨워서 같이 놀자고 자지 못하게 하
였다.(앞의 성기사용)
4. 가끔 위의 행동으로 자존심이 상하여 친구들이 하고 있는 게임에 "져라!"
"져라!"하고 말했다는 이유로 며칠을 말 한마디하지 않고 무시했다.
5. 어느 날은 종광이의 바지를 반쯤 벗게 하여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기들
이 목욕하고 올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등 성적 희롱을 여사로 하였다.
6. 자기들은 씻지도 않고 자면서 매일 목욕을 강요(성적 노리개?)했고
7. 2학기 초 부터 시작하여 전날 물을 부어 놓았던 짜장 라면을 다음날 점
심이라며 종광이에게 배가 불러 먹지 못한다는 의사도 묵살하며 억지로 먹
어라 강요하여 하는 수 없이 반 그릇이나 먹었다. 억지로 먹는 것을 보면서
즐거운 듯이 �S었다.
8. 순살 튀김을 같이 나눠 먹고 남은 것에 무우 국물, 먹다 남은 콜라, 튀김
등을 섞어서 먹으라며 카메라 폰으로 촬영하기까지 하였으며, 다 먹지 못하
면 잠을 재우지 않는다는 협박,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지만 먹을 수 밖
에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은 재미있다는 듯 �S었다.
9. 종광이의 소모품들은 종광이의 양해도 전혀 없이 공동으로 사용(스킨, 로
션, 비누, 헤어 젤, 양말, 노트북)하는 말할 것도 없이 엄마가 러시아여행에서
선물로 받은 연필도 가져갔고 학용품은 물론 자기 것을 쓰는 양 당연히 행
하였다.
10. 마포로 기숙사 바닥을 닦게 하고, 간식을 사와라, 담배를 사와라, 하물
며 콘돔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콘돔 등을 가끔은 돈도 주지 않고
사오라고 하였고
11. 종광이를 혼자 두고 외출하면서 저희들은 한번도 기숙사 청소를 한 적
도 없었으며 청소를 해 놓으라 하여 청소하였다.
12. 수시로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고 기숙사에 들어오면서 걸리적 거린 다
고 차고 나갈 때 비키라고 차고 잠자리에서 젓꼭지를 꼬집어 아프다고 소리
치면 칠수록 아픈 강도를 더하여 아무리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게 하였다.
13. 새벽에 인터넷 유료 게임시간에 맞추어 깨워달라는 세 명이 각각 2시,
3시, 4시 등 그 시간에 맞추어 깨워야 하기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지샌 날이
허다하였고 혹 졸음을 못 견디어 그 시간에 깨우지 못하면 아침에 일어나
서 부리는 신경질이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14.종광이 소유인 노트북에 밤에 자기들이 본 성인 싸이트를 깔아 놓고 수시
로 보면서 종광이가 지우라고 하니까 "네가 본 것으로 엄마가 알 것이므로
엄마에게 말 하면 엄마에게 혼난다."라고 협박하며 지우지 않았다.
15. 종광이가 사용하는 컵을 현호등이 쓸려고 종광이에게 씻어 오라고하여
(한번도 설것이를 해 본적도 없다) 물에 헹구어 오니까 다시 퐁퐁으로 닦아
오라고 하여 그렇게 하였으나 깨끗하지 않다고 다시 또 시켰다.
16. 세수하러 나가는 종광이에게 술 깨는 약을 사 오라고하여 기숙사에서
정문 바깥 슈퍼까지 반팔로 추운 것을 참아가며 사오기도 했다.(전동휠체어
로 왕복 20분소요)
17. 장애인 진단서(지체장애 1급) 제출로 그나마 비호 생활관에서 인심 써
서 전기요를 쓸 수 있는 허락을 받고 깔고 자고 있는 종광이를 깨워 전기요
를 빼앗아 자기들 끼리 깔고 자는 등의 비인간 적인 행위를 죄책감이나 반
성의 단어가 무색 할 정도로 이런 일들을 반복하고 또 하였다.
18. 잘 때 잠자리를 많이 차지한다며 항상 침대와 침대가 연결된 딱딱한 곳
에서 옆으로 눕게 하고 매일 자게 하여 그날 이후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다.
19. 아침마다 종광이에게 깨우라고 명령, 그렇게 하였고, 일어나기 싫으면
신경질을 내기가 일쑤고
20. 담뱃재를 털어야 한다고 매일 재떨이를 구해 놓으라 하여 쓰레기통을
뒤져서 컵 라면 담았던 그릇을 씻어다 놓았다.
21. 수시로 지나다니면서 수건으로 머리를 때리고 수건이 없으면 주먹으로
쥐어박았으며 "이 새끼. 이 새끼"하며 욕을 하였다.
22. 서 홍대가 심심하면 운동을 시킨다며 어깨에 힘을 주라 하고는 신발을
신은 채로 두 어깨를 발로 걷어찼다.
23. 음식을 먹는 것을 지켜보며 "참 잘도 쳐 먹는다."라고 빈정대기도 여러
번 했다.
24. 어쪄다 방귀를 끼면 "나가라 이 새끼야! 방귀 끼지 말고 참아라"하며
윽박질러서 이후에는 그 아이들이 있으면 나오는 방귀도 억지로 참아야 했
다.
25. 강의 시간에 ��추어 갈려는 종광이를 반 인재, 서 홍대 등이 자기들과
같이 가야 한다고 하여가지 못하고 수업시간이 끝난 후에 도착한 적이 3~4
번이나 있었다.
26. 종광이 전동휠체어에 종광이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제로 동승
하기 여러 번, 전동휠체어 고장으로 4일 동안 크러치로 다니다 넘어져 손가
락이 �어 지기도 하고 휠체어 제작회사인 대세에 맡겼으나 국내에서 고칠
수 없어서 원산지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임시모터로 다니고 있으
나 언제 고장 날지 불안해하며 다니고 있다.
27. 종광이는 불안하거나 싫은 일을 강제로 시키면 특이한 입 모양을 하는
데 그것을 흉내 내고 카메라 폰으로 찍기까지 했다.
28. 어쩌다 종광이가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어도 자기들이 필요하면 빼앗아
전혀 미안함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했으며 1학기 때 매일 하다 싶이
한 마이크로 고등학교 친구와 음성 채팅 하기는 엄두도 못 내고 자판연습을
위하여 하루 생활을 일기 식으로 엄마에게 보내라는 메일도 할 시간도, 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29. 아이들이 종광이에게 하는 짓들이 너무나 싫었지만 서 홍대, 반 인재등
이 때릴 것 같아 싫다는 말도, 거절도 못하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30. 기숙사에서 나오면 다른 사람들이 보니까 종광이에게 친절하게 어울려
놀아주는 척했고 위의 여러 일들을 하느라 종광이의 개인 생활은 있을 수
없었다.
정말 기숙사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다.
31. 자기들은 장난이라고 하지만 종광이는 그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아니
라는 것을 표현 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32.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을 말을 하면 엄마가 가슴 아파 할까봐, 이런 대
우를 받고 사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면 종광이 자신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도 싫었고 친구들에게 왕 따 당하는 것도 너무 싫었기 때문에 참다, 참다
11월 5일에 자살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33. 10월 24일 추석이 지난 후에는 강도를 더하여 11월 5일 자살을 기도
하기까지 하루도 제대로 자지 못하게 하여 입안이 5센티 가량 하얗게 헐어
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렇다는 핑계로 얼버무리곤
하였다.
34. 자살 기도 치료로 2주가 지난 11월 24일, 기숙사에 복귀하면서 엄마인
나로서는 그 친구들에게 일상적인 서운함을 느낀 종광이를 이해시키고 친구
들에게 잘 보살펴 줄 것을 부탁도 할 겸하여 삼겹살과 음료수 소주를 사주
며 반인제가 또 노래방에 가고 싶다고 하여 5만원을 반 인재에게 건내 주고
숙소인 사파이어모텔에 돌아왔다.
35. 그날 노래방이후 또 호프집에서 술을 먹으며 종광이가 듣고 있는데도
서 홍대가 반 인재에게 "종광이 젖꼭지 꼬집는 것 등은 종광이 엄마가 가고
난 다음인 화요일까지 참자."라고 이야기했다.
11월25일 오후 엄마와 헤어지면서 무언가 공포에 질려서 말을 하고 싶어했
지만 반 인재등이 계속 같이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울움을 참기도 했습니다.
11월26일 오전 다시 위의 일어났던 일들을 다시 또 당할 생각을 하자 공포
에 떨려 갑자기 소변을 보는 중에 설사와 두통과 어지러우며 경련이 일어났
다고 하였습니다.
같이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당했던 일이니 3개월이나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처음으로 객지에서 믿고 의지했던 같은 학과, 룸메이트와
같은 학과 친구인 그들에게 유린을 당 할 수 가 있나요?
지금 그들이 변명하는 바로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라고 하나 무의식
속에 까지 인간으로 대하지 안았다는 그 증거가 아닙니까?
사람이 이렇게 한낱 강아지의 놀이게 보다 못한 이런 일이, 이런 대우를 당
하고도 살아 갈 수 있을 까요?
그런 사람이 존재하고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에조차 관심도 노
력도 없는 대구대 안의 모든 관리자들의 안일함을, 타성 고발합니다.
11월 26일 밤 11시 30분 이후로 엄마인 나로서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 이 이야기를 털어놓자마자 경련을 일으키는 종
광이를 감당 할 수 없어서 장애인 지원 센타 소장님과 비호 생활관의 책임
자인 손 동우 선생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여지없이 거절당하였고 119 구급차
의 도움으로 경상 병원 응급실로 올 수 있었습니다.
겨우 종광이가 안정되어 잠든 이후 저의 고통은, 고문은 시작되었습니다.
울 수조차 없어서 멍하니 앉아있는 저에게 새벽까지 보다 못한 병원 접수선
생님께서 경찰서에 신고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 아야기를 들은 후에
야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될지 불안하여 2003년 11월 27
일 오전 6시 30분 경 경산 경찰서의 정보과장(구 자목: 011-526-9074, 사
무실: 053-811-4113)님을 찾아가 사건 개요를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였습니
다.
11월 26일 밤 종광이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 그래도 학교에 알려야겠기에
증거(아이들이 사용했던 기구)의 수색을 생활관의 손 동우씨에게 도움을 청
하여 결과를 약속하였지만 지켜지지도 , 다음날까지도 종광이가 털어놓은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관심도 가지지 않는 학교 측의 무관심과 성의 없음에
너무 서운했다.
2003년 11월 27일 오후 4시경에 비호생활관 팀장과 손 동우, 장애인지원
센타 소장(12월 현재는 다른 사람이 부임)이 서 홍대, 신 현호를 경산병원
종광이 병실로 데리고 왔으며 그 아이들을 보자 종광이는 경련을 일으키며
공포에 떨었고 그래서 홍대와 현호를 나가라고 하였으나 복도에서 안의 말
을 엿듣고 있어서 엄마로서 화가 나서 뺨을 서너대 때렸더니 "아줌마 내 애
기도 들어보세요"하며 덤비었다. 후에 인터넷(대구대 홈페이지)에 자기 변론
하는 글을 올리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무식한 엄마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경산경찰서의 구 자목 형사가 응급실로 찾아와 종광이와 대면하러 왔으며,
그때까지 기숙사를 수색했다는 학 측의 연락이 없어서 수색을 부탁하였으나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하며 오후 늦게야 학교 생활관에 오니 어제 방 수색
을 했다고 한다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전화가 왔습니다.
2003년 11월 28일
구 자목 형사를 믿을 수 없어서 오전 11시 이후 대구검찰청에 직접 찾아가
서 지검장님 앞으로 탄원서를 접수하고, 교육 인적 자원부 검사실장 앞으로
탄원서를 등기로 보냈습니다.
반 인재, 서 홍대, 신 현호 등은 아무런 제제도 없는 상황에서 평소처럼 학
교에 다니고 있고 26일 밤 이후 집에서도 종광이는 2-3 시간밖에 자지 못
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오후에 안양 집에 주말인 관계로 다니러 와서도 종광이는 악몽에 시달려서
잠도 들지 못하고 식사도 거르면서 불안 해 하고 있으며 그 아이들이 종광
이에게 한 서러웠던 일들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올라간 이유는 종광이의 사촌누나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궁금해하
여 개인메일로 보낸 것을 내용을 보고 화가 나서 자기의 까페에 올렸다고
하기에 다시 지우라고 하였으나 지우기 전에 잠깐사이로 보게 된 분이 대
구대 홈페이지에 올려 논란이 되고 있지만 어차피 밝힐 예정이었으니까 굳
이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2003년 12월28일 이후대구대 홈페이지에는 종광이와 엄마인 저에게 수없이
많은 비방의 글들로 다시 한번 종광이와 같이 유린을 당하는 것 같아 견디
기 힘듭니다. (전혀 종광이의 말을 믿지 않는 다는 의식으로 흘러가고 있음)
특히 같은 룸메이트 친구들이 종광이의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도 아랑곳하
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종광이를 죽음을 선택하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
니다.( 종광이는 어떻게 하면 정말 죽어지는지 조차 생각하지 못할 만큼 순
수합니다.)
2003년 12월 1일 경상병원으로 다시 입원하려고 경산으로 가는 중 경산경
찰서 수사과 형사인 김 형준(017-774-9104) 씨로부터 고소장을 접수하라
고 해서 오후 4시쯤 위 내용을 포함한 내용으로 고소장을 접수하였습니다.
오후6시경에 새로 부임한 비호 생활관의 관장, 학생처장, 장애인 지원 센타
소장 외 학교관계자 3명 등이 와서 입장의 차이라며 종광이의 이야기를 들
으려 하지 않아 며칠동안 종광이의 이야기를 적어두었던 메모지를 볼 것을
부탁하였고 생활관 관장은 종광이의 말은 믿겠다는 이야기 후 돌아갔고, 밤
에는 서 홍대, 반 인재의 엄마와 이모들이 병실로 찾아와 부모들은 몰랐으나
같은 아들을 기르는 입장으로 용서 해 달라는 소란을 피웠으며 종광이가 또
불안한 반응을 보여 억지로 병실을 나가게 하였다.
2003년 12월 2일
김 형준 형사와 수사과 형사 반장님이 피해자 진술을 받기 위해 병실로 찾
아와 5시간에 걸친 진술을 종광이에게 직접 듣고 기록해 갔다.
저녁에 또다시 홍대와 현호, 그의 엄마들이 찾아오는 등 괴롭혀서 면회사절
을 병원 측에 요구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2003년 12월 3일
대질 심문이 필요할지 모르니 집 근처에 가서 치료를 원하는 저에게 가해자
학생들의 조사 후 알려 주기로 하여 오후에 가해자가 성추행과 폭력을 인정
하여 좀 상이한 부분이 있지만 대질 심문이 필요 없다고 하여 안양 집으로
저녁 늦게 도착했다.
2003년12월5일
병원에서 조금 나아진 것 같아 약만 먹이고 있었는데 집에서 또 다시 악몽
과 불안하면 나타나는 경련과 식사도 하기 싫어하고 잠도 자려하지 않아 한
림대학교 성심병원에 정신과 진료를 다시 받고 입원실이 여의치 않아 약 처
방만 다시 받고 돌아왔습니다.
2003년 12월 8일
오전에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정신과로 입원하여
2003년 12월 12일 까지 입원했었습니다..
입원 중에 매일 반 인재 엄마가 전화하여 고소취하를 요구하였고 학교 측
행정대 학장이 만나고 싶다는 등의 전화가 장애인 지원 센타 소장을 통하여
연락이 왔고, 김 형준 형사에게 12월1일에 경상병원에서 받은 진단서와 5시
간에 걸친 임상심리검사 결과서를 보냈으나 검찰에는 진단서가 첨부될 예정
만 알리고 본인이 보관하고 있으며 검찰로부터 대질 심문을 하여 자세히 조
사해보라는 연락이 왔다며 이제 겨우 조금씩 안정을 찾는 종광이의 사정을
이야기하였으나 대질 심문을 하지 않으면 종광이가 불리하다는 등의 불쾌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김 형준 형사에게 검찰 측 담당자를 이 종찬 검사라
고 알려주었음)대질심문을 할 때까지 서류를 검찰에 넘기지 않는 다는 뜻으
로 들렸습니다,(지금 종광이에게 사용했던 기구도 증거물로 김형준 형사가
보관중임)
반 인재 등의 엄마들이 3천 만원 들여 변호사를 사서 명예훼손죄로 맞고소
준비중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제 겨우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는 종광이를 대질 심문을 받으러 대구로
다시 가면 그 아이들을 또 만나서 받는 상처는 어떻게 보상받아야 합니까?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여 맞벌이를 해야만 하는 우리 부부는 제대로 일
을 나갈 수도 없는 이 상황을 언제까지 끌고 가야 하나요?
처음부터 대구대와 같은 지역인 경산경찰서만을 믿기 어려워 밤을 새워 검
사장님께 탄원서를 썼으며 대구가 생전 처음인 그곳을 아무 것도 먹지 못하
고 물어 물어 찾아간 것인데 아직도 아무런 진행이 되지 않는 다면 어디에
또 이 울분을 알려야 합니까?
대구대의 입장은 검찰의 징계에 따라 학생들을 처벌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종광이의 다시는 대구대에 다니고 싶지 않다는 절규를 어떻게 해결 해 주어
야 할까요?
힘들게 들어온 대학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꿈도, 힘들지만 즐거웠던 다른
친구들과의 생활도 다시는 꿈꾸지 못하는 아직도 죽고 싶은 마음뿐인 종광
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고 답답할 뿐입니다.
존경하는 검사장님!
부디 서러운 이 인생들을 구해 주세요!
다시 한번 이렇게 절망적인 생활이, 그렇게 나쁜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 아니
라는 희망을 다시 가지며 살아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가끔 이런 일 들이 종광이 뿐만 아니라 사건화 하지는 않았지만 일어나고
있다는 애기도 종종 들었습니다.
비록 종광이는 아픈 상처로 남았지만 앞으로 이런 고통을 당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되기를 바라며 분명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하
며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고, 알릴 수 있는 모든 이들이 알고 방지하여야
하며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대구대의 장애학생처우 개선과 시설을 완
비하고 다른 사람과 같이 정정당당히 공부 할 수 있는 환경을 이 기회에
조성 될 수 있도록 했으면 또한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학교측은 사실 묵인을 원하는 듯하며 종광이에 대하여 아무런 보상도, 대책
도 없는 것이 너무 서운합니다.
2003년 12월 15일
종광이 엄마 강 미화 올림
저는 현재 대구대학교 03학번 특수교육대상자로 도시 과학부에 입학한 이
종광의 엄마입니다.
20여 년의 세월을 모든 정성과 노력으로 혼신을 다했으며 가슴 저리는 설움
도 삼켜가며 이세상의 그 누구의 자식보다 아끼며 키워온 나의 소중한 아들
입니다.
대학교에 너무나 가고 싶은 소망으로 결코 높은 성적을 올릴 수 없는 신체
적 장애도 불구하고도 대학교에 입학 한 것을 얼마나 행복해 했는지 아시는
지요!
두렵고 경험하지 못한 사회의 부담도 있지만 새로운 환경을 누려본다는 대
학생활에 무던히도 맞추려 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2학기에 접어들며 정말 종광이가 가장 믿고 좋아했던 반 인재를 기숙사 룸
메이트 결정하여 생활하는 하루하루를 얼마나 행복해 하고 즐거워했는지 모
릅니다.
11월 초 부터 왜 전화하지 않느냐고 엄마가 채근 할 정도로 바쁘다고 통화
할 시간조차 내기 어려웠던 아이가 저녁마다 시무룩한 목소리로 "학교가 무
섭다, 집에 가고 싶다, 다른 대학에 가고 싶다."는 등,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
였습니다.
엄마가 가느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리
곤 하여 아무래도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아 11월 5일 종광이에겐 알
리지 않고 대구로 가고 있는 도중에 종광이가 언덕에서 떨어져 119를 불렀
다는 소식을 접하고 어떻게 하양 성심 병원까지 왔는지 모릅니다.
사고의 연유를 물었지만 주위친구들과 조교의 눈치를 살피며 말하려 하지
않아 병실로 옮겨 안정시키고 달래면서 물으니 스스로 자살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경악했는지 모릅니다.
2003년 11월 5일 20시(수능시험일)
처음에는 기숙사에서 칼로 손등을 그으며 시도했으나 무서워서 밖에 나가
뛰어 내렸다고 너무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무슨 이유냐고
계속 물으니 그날에는 친구들의 심한 장난과 학교 리프트 사용 중에 담당
봉사자의 부재로 수업 시간에 수 차례 지각하는 등의 불편함과, 세탁실에 요
금을 주며 의뢰를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언어가 잘 안 된다는 것을 이용하여
탈수 통에서 건조도 하지 않은 뭉친 상태로 옷을 찾아가게 하였고 5호관 기
숙사 조교의 무관심에 상처를 받았다는 일상적인 불편함만 이야기하였습니
다.
.병원에서 2주 진단을 받아 학교측에 제시하여 집에서 가료한 후 11월 24일
복귀하였고 같이 생활하는(룸메이트는 한 명이나 그의 친구2명과 종광이 방
에서) 저녁에 고기도 사 먹이고 노래방도 보내주며 종광이의 마음을 풀어주
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25일 안양 집으로 아무런 의심 없이 귀가하였으나 다음날 오전 8시 30분
경 종광이로 부터 설사와 두통, 어지러움과 손과 발에 경련이 일어난다는 전
화를 받은 후 다시 기숙사로 와보니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 같아 엄마와 같
이 자고 싶다는 종광이의 의사로 진량에 위치한 사파이어모텔에 같이 투숙
하여 아무래도 정신적인 불안으로 인한 것 같아 다시 한번 마음을 달래고
안정시켜서 엄마에게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그제 서야 털어놓아 그 이유를
들어보았습니다
1. 9월 중순(서홍대 등이 종광이 방에서 자기 시작 한날)부터 룸메이트인 반
인재, 서 홍대, 신 현호( 4, 2층 기숙사 거주학생) 등이 같이 있는 종광이
방에서 홍대가 일본에서 구입해 온 여자가 사용하는 성기모양 기구를 종광
이의 항문에 주입하여 모타의 진동을 변화 시켜가며 일주일에 4~5일씩 1, 2,
3분 간격으로 30여분에 걸쳐서 강제로 행했다.
2. 자고 있는 종광이를 억지로 깨워 성기를 꺼내 놓고 세우라고 했으며 그
렇게 하지 못하면 군대식인 엎드려뻗쳐 등 종광이의 능력으로 절대로 할 수
없는 채벌을 가하는 등 비인간적인 짓을 장난으로 일삼았고 서 홍대의 카메
라폰으로 촬영까지 했다.
3. 한밤에 자고 있는 종광이를 억지로 깨워서 같이 놀자고 자지 못하게 하
였다.(앞의 성기사용)
4. 가끔 위의 행동으로 자존심이 상하여 친구들이 하고 있는 게임에 "져라!"
"져라!"하고 말했다는 이유로 며칠을 말 한마디하지 않고 무시했다.
5. 어느 날은 종광이의 바지를 반쯤 벗게 하여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기들
이 목욕하고 올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등 성적 희롱을 여사로 하였다.
6. 자기들은 씻지도 않고 자면서 매일 목욕을 강요(성적 노리개?)했고
7. 2학기 초 부터 시작하여 전날 물을 부어 놓았던 짜장 라면을 다음날 점
심이라며 종광이에게 배가 불러 먹지 못한다는 의사도 묵살하며 억지로 먹
어라 강요하여 하는 수 없이 반 그릇이나 먹었다. 억지로 먹는 것을 보면서
즐거운 듯이 �S었다.
8. 순살 튀김을 같이 나눠 먹고 남은 것에 무우 국물, 먹다 남은 콜라, 튀김
등을 섞어서 먹으라며 카메라 폰으로 촬영하기까지 하였으며, 다 먹지 못하
면 잠을 재우지 않는다는 협박,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지만 먹을 수 밖
에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은 재미있다는 듯 �S었다.
9. 종광이의 소모품들은 종광이의 양해도 전혀 없이 공동으로 사용(스킨, 로
션, 비누, 헤어 젤, 양말, 노트북)하는 말할 것도 없이 엄마가 러시아여행에서
선물로 받은 연필도 가져갔고 학용품은 물론 자기 것을 쓰는 양 당연히 행
하였다.
10. 마포로 기숙사 바닥을 닦게 하고, 간식을 사와라, 담배를 사와라, 하물
며 콘돔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콘돔 등을 가끔은 돈도 주지 않고
사오라고 하였고
11. 종광이를 혼자 두고 외출하면서 저희들은 한번도 기숙사 청소를 한 적
도 없었으며 청소를 해 놓으라 하여 청소하였다.
12. 수시로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고 기숙사에 들어오면서 걸리적 거린 다
고 차고 나갈 때 비키라고 차고 잠자리에서 젓꼭지를 꼬집어 아프다고 소리
치면 칠수록 아픈 강도를 더하여 아무리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게 하였다.
13. 새벽에 인터넷 유료 게임시간에 맞추어 깨워달라는 세 명이 각각 2시,
3시, 4시 등 그 시간에 맞추어 깨워야 하기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지샌 날이
허다하였고 혹 졸음을 못 견디어 그 시간에 깨우지 못하면 아침에 일어나
서 부리는 신경질이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14.종광이 소유인 노트북에 밤에 자기들이 본 성인 싸이트를 깔아 놓고 수시
로 보면서 종광이가 지우라고 하니까 "네가 본 것으로 엄마가 알 것이므로
엄마에게 말하면 엄마에게 혼난다."라고 협박하며 지우지 않았다.
15. 종광이가 사용하는 컵을 현호 등이 쓸려고 종광이에게 씻어 오라고하여
(한번도 설것이를 해 본적도 없다) 물에 헹구어 오니까 다시 퐁퐁으로 닦아
오라고 하여 그렇게 하였으나 깨끗하지 않다고 다시 또 시켰다.
16. 세수하러 나가는 종광이에게 술 깨는 약을 사 오라고하여 기숙사에서
정문 바깥 슈퍼까지 반팔로 추운 것을 참아가며 사오기도 했다.(전동휠체어
로 왕복 20분 소요)
17. 장애인 진단서(지체장애 1급) 제출로 그나마 비호 생활관에서 인심 써
서 전기요를 쓸 수 있는 허락을 받고 깔고 자고 있는 종광이를 깨워 전기요
를 빼앗아 자기들끼리 깔고 자는 등의 비인간 적인 행위를 죄책감이나 반성
의 단어가 무색 할 정도로 이런 일들을 반복하고 또 하였다.
18. 잘 때 잠자리를 많이 차지한다며 항상 침대와 침대가 연결된 딱딱한 곳
에서 옆으로 눕게 하고 매일 자게 하여 그날 이후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다.
19. 아침마다 종광이에게 깨우라고 명령, 그렇게 하였고, 일어나기 싫으면
신경질을 내기가 일쑤고
20. 담뱃재를 털어야 한다고 매일 재떨이를 구해 놓으라 하여 쓰레기통을
뒤져서 컵 라면 담았던 그릇을 씻어다 놓았다.
21. 수시로 지나다니면서 수건으로 머리를 때리고 수건이 없으면 주먹으로
쥐어박았으며 "이 새끼. 이 새끼"하며 욕을 하였다.
22. 서 홍대가 심심하면 운동을 시킨다며 어깨에 힘을 주라 하고는 신발을
신은 채로 두 어깨를 발로 걷어찼다.
23. 음식을 먹는 것을 지켜보며 "참 잘도 쳐 먹는다."라고 빈정대기도 여러
번 했다.
24. 어쪄다 방귀를 끼면 "나가라 이 새끼야! 방귀 끼지 말고 참아라"하며
윽박질러서 이후에는 그 아이들이 있으면 나오는 방귀도 억지로 참아야 했
다.
25. 강의 시간에 ��추어 갈려는 종광이를 반 인재, 서 홍대 등이 자기들과
같이 가야 한다고 하여가지 못하고 수업시간이 끝난 후에 도착한 적이 3~4
번이나 있었다.
26. 종광이 전동휠체어에 종광이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제로 동승
하기 여러 번, 전동휠체어 고장으로 4일 동안 크러치로 다니다 넘어져 손가
락이 �어 지기도 하고 휠체어 제작회사인 대세에 맡겼으나 국내에서 고칠
수 없어서 원산지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임시모터로 다니고 있으
나 언제 고장 날지 불안해하며 다니고 있다.
27. 종광이는 불안하거나 싫은 일을 강제로 시키면 특이한 입 모양을 하는
데 그것을 흉내 내고 카메라 폰으로 찍기까지 했다.
28. 어쩌다 종광이가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어도 자기들이 필요하면 빼앗아
전혀 미안함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했으며 1학기 때 매일 하다 싶이
한 마이크로 고등학교 친구와 음성 채팅 하기는 엄두도 못 내고 자판연습을
위하여 하루 생활을 일기 식으로 엄마에게 보내라는 메일도 할 시간도, 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29. 아이들이 종광이에게 하는 짓들이 너무나 싫었지만 서 홍대, 반 인재등
이 때릴 것 같아 싫다는 말도, 거절도 못하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30. 기숙사에서 나오면 다른 사람들이 보니까 종광이에게 친절하게 어울려
놀아주는 척했고 위의 여러 일들을 하느라 종광이의 개인 생활은 있을 수
없었다.
정말 기숙사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다.
31. 자기들은 장난이라고 하지만 종광이는 그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아니
라는 것을 표현 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32.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을 말을 하면 엄마가 가슴 아파 할까봐, 이런 대
우를 받고 사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면 종광이 자신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도 싫었고 친구들에게 왕 따 당하는 것도 너무 싫었기 때문에 참다, 참다
11월 5일에 자살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33. 10월 24일 추석이 지난 후에는 강도를 더하여 11월 5일 자살을 기도
하기까지 하루도 제대로 자지 못하게 하여 입안이 5센티 가량 하얗게 헐어
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렇다는 핑계로 얼버무리곤
하였다.
34. 자살 기도 치료로 2주가 지난 11월 24일, 기숙사에 복귀하면서 엄마인
나로서는 그 친구들에게 일상적인 서운함을 느낀 종광이를 이해시키고 친구
들에게 잘 보살펴 줄 것을 부탁도 할 겸하여 삼겹살과 음료수 소주를 사주
며 반 인재가 또 노래방에 가고 싶다고 하여 5만원을 반 인재에게 건내 주
고 숙소인 사파이어모텔에 돌아왔다.
35. 그날 노래방이후 또 호프집에서 술을 먹으며 종광이가 듣고 있는데도
서 홍대가 반 인재에게 "종광이 젖꼭지 꼬집는 것 등은 종광이 엄마가 가고
난 다음인 화요일까지 참자."라고 이야기했다.
11월25일 오후 엄마와 헤어지면서 무언가 공포에 질려서 말을 하고 싶어했
지만 반 인재등이 계속 같이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울움을 참기도 했습니다.
11월26일 오전 다시 위의 일어났던 일들을 다시 또 당할 생각을 하자 공포
에 떨려 갑자기 소변을 보는 중에 설사와 두통과 어지러우며 경련이 일어났
다고 하였습니다.
같이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당했던 일이니 3개월이나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처음으로 객지에서 믿고 의지했던 같은 학과, 룸메이트와
같은 학과 친구인 그들에게 유린을 당 할 수 가 있나요?
지금 그들이 변명하는 바로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라고 하나 무의식
속에 까지 인간으로 대하지 안았다는 그 증거가 아닙니까?
사람이 이렇게 한낱 강아지의 놀이게 보다 못한 이런 일이, 이런 대우를 당
하고도 살아 갈 수 있을 까요?
그런 사람이 존재하고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에조차 관심도 노
력도 없는 대구대 안의 모든 관리자들의 안일함을, 타성 고발합니다.
11월 26일 밤 11시 30분 이후로 엄마인 나로서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 이 이야기를 털어놓자마자 경련을 일으키는 종
광이를 감당 할 수 없어서 장애인 지원 센타 소장님과 비호 생활관의 책임
자인 손 동우 선생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여지없이 거절당하였고 119 구급차
의 도움으로 경상 병원 응급실로 올 수 있었습니다.
겨우 종광이가 안정되어 잠든 이후 저의 고통은, 고문은 시작되었습니다.
울 수조차 없어서 멍하니 앉아있는 저에게 새벽까지 보다 못한 병원 접수선
생님께서 경찰서에 신고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 아야기를 들은 후에
야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될지 불안하여 2003년 11월 27
일 오전 6시 30분 경 경산 경찰서의 정보과장(구 자목: 011-526-9074, 사
무실: 053-811-4113)님을 찾아가 사건 개요를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였습니
다.
11월 26일 밤 종광이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 그래도 학교에 알려야겠기에
증거(아이들이 사용했던 기구)의 수색을 생활관의 손 동우씨에게 도움을 청
하여 결과를 약속하였지만 지켜지지도 , 다음날까지도 종광이가 털어놓은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관심도 가지지 않는 학교 측의 무관심과 성의 없음에
너무 서운했다.
2003년 11월 27일 오후 4시경에 비호생활관 팀장과 손 동우, 장애인지원
센타 소장(12월 현재는 다른 사람이 부임)이 서 홍대, 신 현호를 경산병원
종광이 병실로 데리고 왔으며 그 아이들을 보자 종광이는 경련을 일으키며
공포에 떨었고 그래서 홍대와 현호를 나가라고 하였으나 복도에서 안의 말
을 엿듣고 있어서 엄마로서 화가 나서 뺨을 서너대 때렸더니 "아줌마 내 애
기도 들어보세요"하며 덤비었다. 후에 인터넷(대구대 홈페이지)에 자기 변론
하는 글을 올리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무식한 엄마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경산경찰서의 구 자목 형사가 응급실로 찾아와 종광이와 대면하러 왔으며,
그때까지 기숙사를 수색했다는 학 측의 연락이 없어서 수색을 부탁하였으나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하며 오후 늦게야 학교 생활관에 오니 어제 방 수색
을 했다고 한다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전화가 왔습니다.
2003년 11월 28일
구 자목 형사를 믿을 수 없어서 오전 11시 이후 대구검찰청에 직접 찾아가
서 지검장님 앞으로 탄원서를 접수하고, 교육 인적 자원부 검사실장 앞으로
탄원서를 등기로 보냈습니다.
반 인재, 서 홍대, 신 현호 등은 아무런 제제도 없는 상황에서 평소처럼 학
교에 다니고 있고 26일 밤 이후 집에서도 종광이는 2-3 시간밖에 자지 못
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오후에 안양 집에 주말인 관계로 다니러 와서도 종광이는 악몽에 시달려서
잠도 들지 못하고 식사도 거르면서 불안 해 하고 있으며 그 아이들이 종광
이에게 한 서러웠던 일들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올라간 이유는 종광이의 사촌누나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궁금해하
여 개인메일로 보낸 것을 내용을 보고 화가 나서 자기의 까페에 올렸다고
하기에 다시 지우라고 하였으나 지우기 전에 잠깐사이로 보게 된 분이 대
구대 홈페이지에 올려 논란이 되고 있지만 어차피 밝힐 예정이었으니까 굳
이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2003년 12월28일 이후대구대 홈페이지에는 종광이와 엄마인 저에게 수없이
많은 비방의 글들로 다시 한번 종광이와 같이 유린을 당하는 것 같아 견디
기 힘듭니다. (전혀 종광이의 말을 믿지 않는 다는 의식으로 흘러가고 있음)
특히 같은 룸메이트 친구들이 종광이의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도 아랑곳하
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종광이를 죽음을 선택하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
니다.( 종광이는 어떻게 하면 정말 죽어지는지 조차 생각하지 못할 만큼 순
수합니다.)
2003년 12월 1일 경상병원으로 다시 입원하려고 경산으로 가는 중 경산경
찰서 수사과 형사인 김 형준(017-774-9104) 씨로부터 고소장을 접수하라
고 해서 오후 4시쯤 위 내용을 포함한 내용으로 고소장을 접수하였습니다.
오후6시경에 새로 부임한 비호 생활관의 관장, 학생처장, 장애인 지원 센타
소장 외 학교관계자 3명 등이 와서 입장의 차이라며 종광이의 이야기를 들
으려 하지 않아 며칠동안 종광이의 이야기를 적어두었던 메모지를 볼 것을
부탁하였고 생활관 관장은 종광이의 말은 믿겠다는 이야기 후 돌아갔고, 밤
에는 서 홍대, 반 인재의 엄마와 이모들이 병실로 찾아와 부모들은 몰랐으나
같은 아들을 기르는 입장으로 용서 해 달라는 소란을 피웠으며 종광이가 또
불안한 반응을 보여 억지로 병실을 나가게 하였다.
2003년 12월 2일
김 형준 형사와 수사과 형사 반장님이 피해자 진술을 받기 위해 병실로 찾
아와 5시간에 걸친 진술을 종광이에게 직접 듣고 기록해 갔다.
저녁에 또다시 홍대와 현호, 그의 엄마들이 찾아오는 등 괴롭혀서 면회사절
을 병원 측에 요구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2003년 12월 3일
대질 심문이 필요할지 모르니 집 근처에 가서 치료를 원하는 저에게 가해자
학생들의 조사 후 알려 주기로 하여 오후에 가해자가 성추행과 폭력을 인정
하여 좀 상이한 부분이 있지만 대질 심문이 필요 없다고 하여 안양 집으로
저녁 늦게 도착했다.
2003년12월5일
병원에서 조금 나아진 것 같아 약만 먹이고 있었는데 집에서 또 다시 악몽
과 불안하면 나타나는 경련과 식사도 하기 싫어하고 잠도 자려하지 않아 한
림대학교 성심병원에 정신과 진료를 다시 받고 입원실이 여의치 않아 약 처
방만 다시 받고 돌아왔습니다.
2003년 12월 8일
오전에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정신과로 입원하여
2003년 12월 12일 까지 입원했었습니다..
입원 중에 매일 반 인재 엄마가 전화하여 고소취하를 요구하였고 학교 측
행정대 학장이 만나고 싶다는 등의 전화가 장애인 지원 센타 소장을 통하여
연락이 왔고, 김 형준 형사에게 12월1일에 경상병원에서 받은 진단서와 5시
간에 걸친 임상심리검사 결과서를 보냈으나 검찰에는 진단서가 첨부될 예정
만 알리고 본인이 보관하고 있으며 검찰로부터 대질 심문을 하여 자세히 조
사해보라는 연락이 왔다며 이제 겨우 조금씩 안정을 찾는 종광이의 사정을
이야기하였으나 대질 심문을 하지 않으면 종광이가 불리하다는 등의 불쾌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김 형준 형사에게 검찰 측 담당자를 이 종찬 검사라
고 알려주었음)대질심문을 할 때까지 서류를 검찰에 넘기지 않는 다는 뜻으
로 들렸습니다,(지금 종광이에게 사용했던 기구도 증거물로 김형준 형사가
보관중임)
반 인재 등의 엄마들이 1천 만원 들여 검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여 아이
들을 교육시키며 명예훼손죄로 맞고소 준비중이라고 합니다.
이제 겨우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는 종광이를 대질 심문을 받으러 대구로
다시 가면 그 아이들을 또 만나서 받는 상처는 어떻게 보상받아야 합니까?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여 맞벌이를 해야만 하는 우리 부부는 제대로 일
을 나갈 수도 없는 이 상황을 언제까지 끌고 가야 하나요?
처음부터 대구대와 같은 지역인 경산경찰서만을 믿기 어려워 밤을 새워 검
사장님께 탄원서를 썼으며 대구가 생전 처음인 그곳을 아무 것도 먹지 못하
고 물어 물어 찾아간 것인데 아직도 아무런 진행이 되지 않는 다면 어디에
또 이 울분을 알려야 합니까?
대구대의 입장은 검찰의 징계에 따라 학생들을 처벌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종광이의 다시는 대구대에 다니고 싶지 않다는 절규를 어떻게 해결 해 주어
야 할까요?
힘들게 들어온 대학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꿈도, 힘들지만 즐거웠던 다른
친구들과의 생활도 다시는 꿈꾸지 못하는 아직도 죽고 싶은 마음뿐인 종광
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고 답답할 뿐입니다.
존경하는 검사장님!
부디 서러운 이 인생들을 구해 주세요!
다시 한번 이렇게 절망적인 생활이, 그렇게 나쁜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 아니
라는 희망을 다시 가지며 살아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가끔 이런 일 들이 종광이 뿐만 아니라 사건화 하지는 않았지만 일어나고
있다는 애기도 종종 들었습니다.
비록 종광이는 아픈 상처로 남았지만 앞으로 이런 고통을 당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되기를 바라며 분명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하
며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고, 알릴 수 있는 모든 이들이 알고 방지하여야
하며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대구대의 장애학생처우 개선과 시설을 완
비하고 다른 사람과 같이 정정당당히 공부 할 수 있는 환경을 이 기회에
조성 될 수 있도록 했으면 또한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학교측은 사실 묵인을 원하는 듯하며 종광이에 대하여 아무런 보상도, 대책
도 없는 것이 너무 서운합니다.
2003년 12월 25일
2003년 12월 29일 월요일
김 형준 형사가 대질심문을 하러 안양까지 오기가 번거롭다하여 종광이의
부산에 사시는 이모와 인천에 사시는 이모가 함께 대질심문을 받는 조건으
로 새벽에 출발하여 경산 경찰서로 갔습니다.
오후2시에 시작된 대질심문은 오후 9시에야 겨우 끝났으며 식사도 거른 체
안양으로 왔습니다.
대질심문 중에 종광이의 일관된 주장과는 달리 서 홍대, 반 인재 등은 그런
사실은 있었지만 장난이었으며 종광이도 좋아했고 가끔 밖에 하지 않았다며
시종일관 부정하고만 있었다.
어쩜 그렇게 태연하며 무의식중에 행한 일이라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다
는 반 인재의 인간성에 치가 떨렸습니다.
종광이는 그들의 처벌을 원하였고 신 현호에게는 다른 아이들과 같은류의
친구로 오해 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을 전했고 현호가 없는 날에 주로 종광
이를 괴롭혔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대질 심문을 다녀 온 후로 또다시 모든 생각을 그 사건에만 몰두하여 직접
인터넷 싸이트에 성폭행 당했다는 이야기를 올리는 등 그 결과에 조바심을
치는 등 불안한 정신 상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겨우 진정하여 일상 생활에 적을 했던 아이를 예상했던 대로 다시 그 사건
에 시달리고 있어서 너무나 속이 상합니다.
종광이의 채근으로 2004년 1월5일 김 형준 형사에게 결과를 물었으나 아직
검찰에 보고하지 않았으며 검찰에 이 사건이 모두 넘겨 질 줄 알고 있었는
데 이후에도 계속 자기가 지시를 받아 일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는 이해 할
수 없는 이야기와 일을 지연시키는 듯한 인상이 강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해결을 원하는 종광이를 어떻게 진정 시켜야 하는지 답답할
뿐입니다.
국가 인권위원회에 도움을 청하였지만 어떻게 될지..
2004년 1월 7일
이 종광 : 850117-1231311 대구대학교 도시과학부
학번 : 20308794 (비호5호관 111호)
강미화
경기도 안양시 안양6동 532-3 한림시티빌 801호
연락처: 011-472-3644
e-mail : mihwa367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