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간 FTA협정 비준처리의 지연 때문에 해외통상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관료들의 깊은 우려표시가 여러 번 제기되고 있다고 하나 현재 우리 내부의 상황은 이를 조속한 시일 내에 해결하기엔 영 녹녹치 않을 것 같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우선 FTA협정이 체결될 경우 가장 큰 피해당사자가 될 농민들의 결사적인 반대에 부딪혀있는 상황이며, 또한 비준을 처리해야 할 국회 내에서는 농촌지역의 국회의원들이 4월 총선 때까지는 기를 쓰고 법안통과를 막아내려는 듯한 태세이기 때문이다.
농민들의 절박한 저항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농촌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해선 솔직히 회의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선 그들이 국제시장의 대세인 FTA협정을 영원히 거부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우선 당장 코앞에 닥친 총선의 이해득실을 따져본 결과, 궁여지책에서 나온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 주장일 뿐, 막상 당선이 되면 자연스럽게 통과시킬 것이 뻔히 보인다. 결국 농민들을 위한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서 설득해보려는 용기 대신 그저 성난 농심을 달래보려는 얄팍한 기회주의와 다름없어 보인다는 얘기다.
보도에 의하면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8일에 다시 비준안을 표결처리할 방침이라고 하지만 결과는 비관적이라는 전망을 함께 내놓고 있다.
참으로 딱한 상황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요즘처럼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자유무역주의 흐름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개방의 결과로 언제나 손해를 보는 쪽은 불행히도 농업과 같은 취약한 기반의 사양산업이 되고 만다. 가뜩이나 여러 요인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는 우리의 농촌현실을 비추어볼 때, 충분한 대책마련이나 제시가 없이 그저 국익에 크게 기여한다는 논리만을 내세워 무조건 대외개방에 동참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을뿐더러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잔인한 일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현재 FTA협정지연으로 앞으로 중남미시장에 우리의 막대한 고부가가치를 지닌 첨단산업제품들의 수출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할 우려가 높아진다는 정부의 거듭되는 경고는 거꾸로 보면 원만히 협정을 체결한다면 않는 것에 비해 더 큰 이익이 창출된다는 논리가 성립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만큼 증가할 이익으로 손실을 입게 될 농민들에게 합당한 액수만큼 보전해주어야 하는 것이 지극히 합당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하나의 새로운 사회변화가 해당 구성원들로부터 최종적인 인정을 받으려면 최소한 그로 인한 상대적 피해의식을 갖는 계층이 생기지 않도록 신중히 고려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이러한 원칙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관계로 농민들을 격렬히 분노하게끔 하였고, 이는 일방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라고 등을 떠미는 듯이 보이는 무책임한 정부 탓이라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약간의 오해도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정부는 물론이고 여야 각 정당들 역시 이같이 중요한 국가현안에 대해서 혹시나 불이익을 당할까봐 서로에게 떠넘기는 듯한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온 점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해야만 한다. 그리고 속히 자신들의 본분을 깨닫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참모습들을 보여달라고 재촉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