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해서 좋겠다"는 어른들의 인사치레가
민망한 시대다. 방학하면 마음껏 늦잠을 자고
싶다는 우리 딸은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빠른
시간에 학원 가느라 집을 떠났다. 올해
초등학교 가는 아들도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선행학습(?)을 받는답시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방학이 실종됐다.
방학하면 꼭 가겠노라고 수첩에 적어둔
전시회며 음악회 목록을 혼자 뒤적이다가
아이들 시간표와 맞춰보곤 이내 포기했다.
올 방학엔 스키 상급 레슨을 꼭 받게 해주겠다고
딸에게 큰 소리를 쳤지만 토요일까지 학원
스케줄이 차 있는 걸 보고 꼬리를 내렸다.
중학교 보내는 게 마치 대학보내는 것 보다
더 치열하고 불안한 심정이다. 딸 애 친구들이
어떤 과목을 수강하는지, 어떤 학원에 다니는지
궁금해진다. 중심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중심을 잡고 서있더라도 불안하긴
매 한가지이다.
딸애는 모든 과목을 이렇게 학원에서 공부해야
하냐고 불만스러워해서 한 과목 수강을 어렵게
뺐다. 그러면서도 "혼자 공부할 수 있겠냐"고
몇번씩 되물었다. 이렇게 자식을 못 믿다니
제대로된 엄마인가 자괴감까지 들었다.
집에서 잠시 빈둥거린다 싶으면 추천도서를
손에 쥐어준다. "책을 읽어야지 수능 언어영역
에 강해진다"며. 맘껏 게을러져야 공상도
하고 생각도 깊어질 텐데 하면서도 말이다.
생각과 행동이 정반대로 흘러간다. 방학이
괴로운 아이들...엄마들도 괴롭기는 매한가지다.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 불혹이 가까운 나이에도 이렇게
중심 없이 헤매는 나를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