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조간신문을 보던 중 아주 오래전
잠시 알고지냈던 사람의 부음을 접했습니다.
40대 초반쯤에 유명을 달리했으니, 참으로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떠난 셈이지요.
그를 떠나보낸 가족들의 슬픔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차마 헤아려보는 일이 두려울
만큼 죽음은 이렇게 삶의 언저리에 깃들어
있음이 새삼 무겁게 마음을 짓누르더군요.
얼마전 인터넷 신문에서 읽은 한 가족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심장병을 앓던 어머니는 수술 도중 사망하고,
아들은 어머니의 수술비를 갖고 병원으로 오는
도중 자동차에 치여 죽고, 평소 어머니가 죽으면
따라 죽겠다고 되뇌던 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답니다.
불과 이틀 사이 사랑하던 가족을 모두 잃은
일흔 살의 그 아버지는 난데없는 불행 앞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삶의 아득함 앞에서 이런 불행도 그저 삶의
여정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여야만 할 것인지.
지인의 죽음은 욕심과 번민에 물든 우리들에게
삶의 본질에 대한 잠시의 묵상을 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묵상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쉽게 풀리지 않는
질문이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인 것을.
살아간다는, 그저 살고 있다는 것으로 짊어져야할
그 질문들이 간혹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긴
하지만, 그래도 늘 새털처럼 가볍게 살다 떠날
것을 감히 바래봅니다. 그리고, 또하나 이런 소망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면 떠날 일이 그리 슬프지도
힘들지도 않겠지요.
"얘야,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사람들은 기뻐했다.
네가 죽을 때에는 사람들은 울음을 터뜨리지만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로빈 S. 샤르마의 《내가 죽을 때 누가 울어줄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