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사회의 그늘을 밝히는게 진짜 개혁이다 에 대해서
(홍재희) ======= 방상훈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는 사회의 그늘을 밝히는게 진짜 개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사회의 그늘을 밝히는게 언론의 참다운 역할이라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 볼 때 방상훈의 조선일보는 한국사회의 그늘을 밝히는데 지금까지 어떠한 역할을 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홍재희) ====== 조선일보 사설은 "15세 된 중학교 3년생이 홀어머니가 숨진 사실을 숨긴 채 집에서 어머니 시신과 함께 6개월을 살다 발견됐다." 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쟁점화 하고 있다. 어머니 시신과 함께 6개월을 살다 발견된 15세 된 중학교 3년생의 소년은 조선일보가 지향하고 있는 무한경쟁과 효율 그리고 탐욕스러운 자본의 이익극대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비인간적인 일상을 강요하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 사회 가 주변부로 밀어낸 한국사회의 영원한 '이방인' 일 수밖에 없었다.
(홍재희) ====== 방상훈의 조선일보는 반성해야 한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부채질하며 20 : 80 의 사회구조정착을 위해 조선일보는 자본의 편에 서서 서민대중들의 처참한 삶을 파생시키는데 앞장섰다. 15세 된 중학교 3년생이 홀어머니가 숨진 사실을 숨긴 채 집에서 어머니 시신과 함께 6개월을 살다 그나마 발견될수 있었던 것은 조선일보가 그토록 불신하고 있는 공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선생님 들의 노력에 의해서 였다.
(홍재희) ====== 그리고 조선일보가 비판하고 있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이 소년 가족의 근황을 파악하기 위해 나름대로 자기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소년의 가슴아픈 사연이 알려지기 까지 한국사회의 모자가정 문제라든지 한국사회의 극빈계층에 대한 심각한 문제점들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우리는 묻지 않을수 없다. 방상훈의 조선일보는 이러한 우리사회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공익적 차원에서 어느정도 조선일보 의 지면을 통해서 충실하게 반영했었는지 감히 묻지 않을 수 없다.
(홍재희) ======= 조선일보 사설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이어서 생활고와 함께 사회적 무관심 속에 어머니를 잃고 마음에 씻을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을 15세 된 중학교 3년생 소년의 마음에 또 하나의 커다란 대못을 잔인하게 꼿고 있다. 조선사설은
" “남에게 흉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는 이 소년의 비정상적 심리상태는 가족해체가 소년의 가슴에 남긴 깊은 상처이자, 소년이 앞으로 정상적인 어른으로 성장해 가겠느냐를 걱정하게 만드는 증상이기도 하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며 소년을 마치 정신적인 병을 앓고있는 증세가 심한 환자 취급 하고 있다. 비정상적인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소년이 아니라 조선일보와 한국사회라고 본다. 소년이 어머니의 주검에 대해 '남에게 흉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면에는 조선일보가 부채질하고 한국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황금만능주의와 일등주의 그리고 외면적으로 나타나는 가치추구에 의미를 부여하는 한국사회의 병적인 증세로 신음하고 있는 현실 세계로 부터 소년과 영원한 이별을 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노출시키기 싫은 오히려 병든 한국사회와 조선일보 보다 '건강한' 심리상태의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금할 길 없다.
(홍재희) ====== 그런 측면으로 접근해 본다면 소년에게 증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동물농장 속에 무한경쟁을 재촉하며 적자생존의 승자만의 가치를 최고로 부추기는 조선일보와 한국사회의 비정하고 몰인간적 가치추구의 도착적인 증세가 더 심각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가치추구 속에서는 더불어 사는 인간성은 병적인 증세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런 측면으로 접근해 본다면 심각한 병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 소년이 아니라 한국사회와 바로 조선일보 이다.
(홍재희) ======= 정부는 이번 소년의 경우와 같이 무너지고 있는 개개인의 인간안보를 보호해주는데 더 많은 신경을 써야한다. 마찬가지로 조선일보도 신경을 써야 한다. 지금까지 조선일보는 상투적으로 국가안보 만을 강조해 왔는데 이번 소년의 경우와 같이 국가안보가 무너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너지고 있는 국민 개개인의 인간안보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대안과 대책이 무엇인가에 대해 사회적 공기로서의 조선일보가 해야할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심각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
(홍재희) ====== 정부는 앞으로 이들 정부의 보호를 필요로 하고 있는 계층을 접근해 나감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사회복지사의 숫자를 대폭 늘려서 이들 이 정부의 보호를 필요로 하고 있는 가정과 정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무적인 관계 보다 더 깊은 인간적인 신뢰를 구축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복지정책을 추진해 그들 가족과 정부가 한가족 이라는 연대감을 심어줘 그들이 가정들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홍재희) ===== 그리고 정부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한계를 종교단체라든가 이타적인 사회단체들 그리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이 지금까지 보다 더 깊은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공익적 역할에 충실해야한다. 이번 소년의 경우에서 우리사회가 뼈져리게 느꼈듯이 물질적으로 공적인 부조의 미흡함에서 파생되고 있는 문제보다도 더 심각한 이 소년의 가족들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의 문제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
(홍재희) ===== 국가나 사회가 추진해 나가는 소외된 이웃에 대한 복지정책의 가장 중요한 정책의 우선순위는 물질적인 도움 못지 않게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이들 가족과 우리가 이웃으로서 단절 없는 의사소통구조를 형성해 나가는 열린 이웃의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사회복지정책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돼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우리들 마음으로 관심으로 풀어 나갈수 있는 숙제인 것이다.
(홍재희) ====== 조선일보 사설은
" 가족이 더 이상 사회보장과 보험의 구멍을 메워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국가가 책임져야 할 몫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친노(親勞)에 좌파, 포퓰리즘으로 상징되는 이 정권이 출범한 지 1년도 안 돼 사회적 약자가 갈수록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파이를 키우기보다 나누기가 중요하다며 외국인과 국내 기업의 투자의지를 꺾어버린 정책 실패의 최초·최대 피해자는 역시 가난한 이웃들이었던 셈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성격을 친노(親勞)에 좌파, 포퓰리즘으로 상징되는 것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조선일보 사설의 주장대로 노무현 정권의 성격을 친노(親勞)에 좌파, 포퓰리즘으로 상징되고 있었다면 올 한해 동안 농민들이 잇달아 자살을 하고 또 대기업 노동자 . 중소기업 노동자. 영세하청기업 노동자 . 비정규직 노동자등이 온몸에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하고 목을 매달아 죽어 가는 현실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었겠는가?
(홍재희) ====== 조선사설의 주장대로 친노(親勞)에 좌파, 포퓰리즘으로 상징되는 이 정권이 노동자 . 농민 . 그리고 헐벗고 굶주린 이 소년과 같은 계층을 위해 정책을 추진했다면 이러한 사회적 취약계층의 비극적인 죽음을 재촉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 들어서서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취약계층에게 파이를 나누기 보다는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파이를 키우는데 힘을 쏟았다. 그럼으로 해서 파생된 것이 오늘에 이러한 비극적인 삶의 고통을 살아 가야하는 사람들을 줄이기 보다 더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홍재희) ====== 조선일보 사설은 외국인과 국내 기업의 투자의지를 꺾어버린 정책 실패의 책임을 노무현 정권이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취약계층에게 파이를 나누었기 때문으로 매도하고 있지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조선일보 사설이 현실을 잘못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과 국내 기업의 투자의지를 꺾어버린 정책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최근 말썽이 되고 있는 불법 대선자금 사용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정경유착 이라는 부패구조 속에서 상대적으로 특혜를 받고 불공정 경쟁을 통해 반대급부를 얻어 고속 성장해온 한국의 재벌체제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위한 기회비용을 확보하기위해 신규투자보다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지속 하기위한 부패자금 확보를 위해 부정한 방법으로 천문학적인 분식회계등 불투명한 기업운영방식을 통해 국내외 투자가들에게 불신을 심어 줬기 때문에 한국경제에 대한 국내외의 투자의욕을 꺽는 중요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홍재희) ====== 그러한 재벌체제들의 정경유착구조를 지금까지 정당화 시켜주고 합리화 시켜오면서 지금까지 공생공존해온 것이 바로 조선일보이다.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 볼 때 조선일보가 분배우선정책의 최초·최대 피해자는 역시 가난한 이웃들이었던 셈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잘못된 것이다. 조선일보가 진심으로 소외받고 고통받는 이웃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의사가 있다면 사회 안전망이 부실한 가운데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에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을 해야한다.
(홍재희) ====== 조선일보가 부채질하고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으로 인해 양산되고 있는 극빈 계층의 증가를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제까지와 같이 계속 조장한다면 사회적으로 카드 불량자들이 대량양산 되고 동시에 안전망이 부실한 한국사회에 그마나 한정돼 있는 예산을 기존의 극빈 계층과 새롭게 편입되고 있는 극빈계층이 나누어 가져야 하기 때문에 소외받는 이웃의 고통은 더욱더 가중돼 15세 된 중학교 3년생이 홀어머니가 숨진 사실을 숨긴 채 집에서 어머니 시신과 함께 6개월을 살다 발견되는 일이 연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사설] 사회의 그늘을 밝히는게 진짜 개혁이다 (조선일보 12월 8일자)
15세 된 중학교 3년생이 홀어머니가 숨진 사실을 숨긴 채 집에서 어머니 시신과 함께 6개월을 살다 발견됐다. 봉두난발의 몰골로 발견된 이 소년은 “무섭기도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어디 연락할 곳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다. 소년이 세상과의 소통을 닫아버린 채 전기와 가스마저 끊긴 어둡고 추운 집에서 겪었을 두려움, 답답함, 막막함을 생각하면 누구라도 가슴이 턱 막혀버릴 일이다.
이 사건은 정부가 과연 우리 사회의 변두리에서 하루하루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기나 하는지, 혹은 관심이라도 갖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단둘이 살던 모자 가족에서 어머니를 잃고 혈혈단신으로 팽개쳐진 이 중학생은 ‘핵’마저 붕괴돼버린 핵가족의 마지막 잔해였던 셈이다. “남에게 흉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는 이 소년의 비정상적 심리상태는 가족해체가 소년의 가슴에 남긴 깊은 상처이자, 소년이 앞으로 정상적인 어른으로 성장해 가겠느냐를 걱정하게 만드는 증상이기도 하다.
가족이 더 이상 사회보장과 보험의 구멍을 메워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국가가 책임져야 할 몫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친노(親勞)에 좌파, 포퓰리즘으로 상징되는 이 정권이 출범한 지 1년도 안 돼 사회적 약자가 갈수록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파이를 키우기보다 나누기가 중요하다며 외국인과 국내 기업의 투자의지를 꺾어버린 정책 실패의 최초·최대 피해자는 역시 가난한 이웃들이었던 셈이다.
소외받고 고통받는 이웃들의 현장을 사회적 의제로 떠올리는 일은 이제 더 미룰 수 없다. 지금 거리에 넘치는 구호들은 서민들에겐 배부른 자의 공허한 고함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개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춥고 어두운 곳에 따뜻하고 밝은 빛을 보내는 것 말고 달리 무슨 개혁이 있겠는가. 정부도 사회단체들도 저 낮은 곳으로 내려가 그들의 고단한 하루를 보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입력 : 2003.12.07 17:4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