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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소외된 이웃에 아름다운 기부를 에 대해서

조선 [사설] 소외된 이웃에 아름다운 기부를 에 대해서














(홍재희) ======= 방상훈의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이 소외된 이웃에 대한 아름다운 기부에 대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조선일보가 오늘자 사설을 통해서 의미 있는 문제를 쟁점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감히 방상훈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 하고자 하는 것은 소외된 이웃에 대한 문제는 연말연시에 일과성으로 한번쯤 제기되고 지나가는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일년 내내 한국사회에 현존하고 있는 그늘 이라고 본다.














(홍재희) ====== 이러한 문제는 정부의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지속적인 정책추진과 정부의 힘이 부족한 부분은 언론과 사회가 정부의 소외된 이웃에 대한 합리적 정책을 촉구함과 동시에 공동체의 관심을 유발시키고 더 나아가 사회공동체들이 시간과 정성과 물질적 도움을 통해 그들 소외된 이웃들에게 고통을 참고 헤쳐나가면 사회적 관심과 자신의 노력이 합해져 그들 소외된 이웃들의 내일에 대한 희망이 분명히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부연한다면 이들 소외된 이웃에 대한 가장 커다란 도움은 일차적으로 그들에 대한 관심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은가? 그러한 인간이 사회적으로 소외됐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사회적 생명이 다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홍재희) ====== 이러한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은 2003년도 저물어 가고 있는 12월 하고도 3일날 조선일보가 연말연시를 맞아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반복적으로 내보내고 있는 상투적이고 통과의례적인 일회성 문제제기가 아닌 일년 내내 이문제가 조선일보의 지면 어느 한편을 장식하며 한국사회의 관심과 문제해결의 공론화를 통해 소외된 이웃의 문제를 전향적으로 접근해 나가야 하는데 조선일보는 그러한 측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














(홍재희) ===== 조선일보는 앞으로 광고가 나가고 있는 지면의 1/30 만이라도 고정적으로 소외된 이웃의 문제를 다루는 기사를 편집해서 내보내든지 그러한 기사작성의 소재확보에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면 공익광고 성격의 문제제기를 통해 소외된 이웃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단초를 제공해주는 언론으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 조선일보는





"미국 국민 한 사람의 1년 평균 기부금이 70만원인 반면 한국은 그 100분의 1도 안 되는 5800원에 불과하다(1999년)는 통계가 이를 잘 보여준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고 본다. 미국은 국민소득도 한국보다 높고 또 미국기업들은 한국기업들 보다 상대적으로 투명하기 때문에 정경유착을 통한 부패비용이 적게 들고 또 기업의 기부문화를 유통성 있게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마련해 놓았다 . 그러한 제도적 장치가 미국의 일반국민들 기부문화의 활성화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














(홍재희) ===== 반면에 한국은 정경유착의 문화가 뿌리내려 기부문화를 무력화 시키고 있고 정경유착을 통한 기회비용이 기부문화를 위해 기부할 수 있는 기업 지출의 한계를 파생시키고 있다. 그러한 한국의 현실은 일반 국민들의 기부문화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에는 돈이 필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홍재희) ===== 그렇기 때문에 조선일보 . 중앙일보 . 동아일보가 수백억원을 투자해서 독자확보를 위해 불법으로 뿌리고 다니는 고가의 자전거. 비디오. 텔레비전. 전화기 등과 심지어는 요즘에 대형할인매장의 상품권까지 뿌리고 다니는 불공정행위에 낭비되는 돈을 조 . 중 . 동이 주장하고 있는 소외된 이웃을 돕는데 사용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닌가? 그러한 돈이 조 . 중 . 동의 불공정한 종이신문 시장 쟁탈의 탈법적 경쟁체제에 남용한다면 한국 신문시장의 질서를 깨는 반시장적이고 부도덕한 행위가 되지만 소외된 이웃들에게 선의에서 이타적으로 사용하면 생명수와도 같은 위력을 발휘 할 수 있다.














(홍재희) ===== 그러나 돈이 아니라도 돈을 기부하는 것만이 아니라도 우리들 주변에서 기부할수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먼저 조선일보의 경우 좀 적게 번다고 생각하고 기부문화의 정착을 위해 지금까지 조선일보가 내보내고 있는 광고지면의 일정정도를 소외된 이웃을 위한 기사작성의 공간으로 기부? 하든지 아니면 소외된 이웃을 위한 지속적인 공익광고의 난으로 독자들에게 기부?를 하면 되지 않을까?














(홍재희) ====== 그리고 조선일보 임직원들도 보수를 많이 받고 있는 편이니까 돈을 기부하면 되겠고 그에 그치지 않고 어디를 가다가 몸이 불편한 노약자들이 차를 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같은 방향이라면 자신의 차에 태워주는 것도 기부이고 조선일보일 임직원들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어디를 가다가 휠체어를 타고 가는 분이나 목발을 짚고 비를 맞고 가는 분들 그밖에 장애가 있는 분들이 우연히 눈에 띈다면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 마치 비를 맞고 걷고있는 나의 가족들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듯이 우산을 받쳐주는 것도 소중한 기부행위이다 .














(홍재희) ====== 그들과 함께 같이 우산을 받고 가는 것도 돈으로 기부하는 것 이상의 소중한 기부행위가 될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가는 분이나 목발을 짚고 비를 맞고 가는 분들은 우산으로 비를 가릴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기부행위는 작은 것 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밖에도 기부행위는 꼭 돈이 아니라도 자신이 지닌 기능을 여가시간을 활용해 소외된 이웃을 돕는데 활용하는 것도 기부행위이고 시간내고 차량을 이용해 소외된 이웃을 돕는 것도 소중한 기부행위이다.

















(홍재희) ======= 조선일보 사설은





" 최근 몇 년간 우리 경제가 요동을 치면서 국가와 직장, 이웃으로부터 소외당한 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겨울밤 도심의 지하도에 몸을 눕혀야 하는 사람은 그 중 극히 일부일 것이다. 여름철 수해의 고통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이 거론하고 있는 ' 겨울밤 도심의 지하도에 몸을 눕혀야 하는 사람'은 노숙하는 분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조선사설의 주장을 접하면서 개들이 배설해 놓은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우리네 조상들의 속설이 떠오른다. 조선일보 사설은 겨울밤 도심의 지하도에 몸을 눕혀야 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당연하다 . 우리는 그들 노숙하는 분들의 문제를 절대로 도외시 해서는 안된다.

















(홍재희) ====== 조선일보사설이 이들 노숙하시는 분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도 노동자 . 농민들이 멕시코에서 대학로에서 수십미터 높이의 타워크레인 위에서 스스로 자신의 배를 가르고 몸에 불을 붙이고 목을 매달고 죽어가고 있는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조선일보 사설의 비참한 삶에 대한 관심과 처절한 노동자 . 농민들의 죽음에 대한 무관심한 이중적 접근태도는 개들이 배설해 놓은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우리네 조상들의 속설을 실감나게 해주고 있다.














(홍재희) ======= 조선일보 사설은





" 이들의 소외감은 따뜻한 사회적 배려를 받지 못할 경우 언제라도 사회와 이웃에 대한 적대감으로 변져 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지금 빈부 격차가 커지고 그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계층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것이 몰고 올 정치·경제·사회적인 파장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기도 하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IMF 위기체제를 지나오면서 극심한 빈부격차의 양극화 현상이 오늘에 이르기 까지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에 나타난 노동자 . 농민들의 연쇄적인 죽음도 그러한 사회적 변화를 통해서 자본주의체제의 건강성을 담보해주는 중산층의 급격한 붕괴현상으로 파생돼 기하급 적으로 늘어나는 빈곤층의 어려움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수 있고 또 그러한 빈곤선상의 경계선이라는 외줄 위에서 삶의 질 향상을 담보 받으려는 노동자 .농민들의 저항이 올 한해 동안 지속적으로 아스팔트 위에서 정부 공권력과 맞 부딪히는 격돌을 양산해 냈다고 본다.














(홍재희) ====== 조선일보와 정부는 이러한 노동자들과 농민들 서민대중들의 길거리항변이 정부정책에 대한 일부계층의 귀찮은 반대현상으로 바라보며 치부할수 있겠으나 이들 계층은 자신들의 운명이 겨울밤 도심의 지하도에 몸을 눕혀야 하는 신세로 전락 하는냐 아니면 목숨을 던져야 하느냐 하는 절박한 삶의 투쟁의 의미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 조선일보와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가운데 정부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고 있는 입안자들은 깨달아야 한다고 본다.











(홍재희) ======= 조선일보 사설은





" 소외받고 어려운 계층에 대한 도움의 손길은 이들에게 자신이 사회적 관심과 애정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줌으로써 스스로를 추스르는 재기(再起)의 용기를 주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공동체적 연대감의 출발이기도 하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이 지향하고 있는 정치경제 이데올로기적 관점이 다른 집단이라 할지라도 조선일보 사설은 노동자 . 농민 . 서민대중들의 목소리를 조선일보 사설난을 통해서 반영해야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대기업 노동자들이 무엇을 외치고 있는가? 중소 하청기업 노동자들이 무엇을 외치고 있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엇을 외치고 있는가? 농민들이 무엇을 외치고 있는가? 서민대중들이 왜 자고 나면 싸늘한 죽음으로 세상을 등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수 밖에 없는가?














(홍재희) ====== 노동자. 농민들이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떠밀려 나가고 있는가? 에 대해서 조선일보 사설은 지금까지와 같이 침묵으로 외면하지말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쟁점화 해서 문제를 풀어 나가도록 사회적 관심을 유발시켜야 한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모순속에서 조선일보 오늘 자 사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겨울밤 도심의 지하도에 몸을 눕혀야 하는 분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조선사사설은 유념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어떻게 생각하나. 그러한 조선일보의 관심이 소외된 이웃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고 기부라고 본다.




















[사설] 소외된 이웃에 아름다운 기부를(조선일보 12월3일자)











한국을 복지사회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회적 약자의 삶에 국가 정책과 제도의 보살핌이 미치지 못하는 구석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국가가 애를 쓰더라도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있게 마련이다.








국가의 손길이 제대로 닿지 못하는 곳을 민간의 기부문화로 채워나가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나눔의 방식이지만 우리 사회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미국 국민 한 사람의 1년 평균 기부금이 70만원인 반면 한국은 그 100분의 1도 안 되는 5800원에 불과하다(1999년)는 통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최근 몇 년간 우리 경제가 요동을 치면서 국가와 직장, 이웃으로부터 소외당한 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겨울밤 도심의 지하도에 몸을 눕혀야 하는 사람은 그 중 극히 일부일 것이다. 여름철 수해의 고통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의 소외감은 따뜻한 사회적 배려를 받지 못할 경우 언제라도 사회와 이웃에 대한 적대감으로 변져 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지금 빈부 격차가 커지고 그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계층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것이 몰고 올 정치·경제·사회적인 파장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기도 하다.





소외받고 어려운 계층에 대한 도움의 손길은 이들에게 자신이 사회적 관심과 애정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줌으로써 스스로를 추스르는 재기(再起)의 용기를 주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공동체적 연대감의 출발이기도 하다.





올 연말에도 각계에서 불우이웃 돕기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한 해를 마감해 가는 시점에서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크든 작든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공동체는 물론 스스로의 삶까지 아름답고 윤택하게 만드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