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流(한류) 열풍 北에 상륙
‘올인’ ‘왕건’ ‘네박자’ 北신세대에 인기
조선일보(朝鮮日報) 2003년 11월30일 17:07
우리 드라마 ‘올인’ ‘가을동화’ ‘겨울연가’ ‘태조왕건’ 등이 북한의 신세대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올인’의 주제가 ‘처음 그날처럼’과 송대관의 ‘네박자’ 등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한류 열풍이 동남아와 중국을 거쳐 북한에도 상륙한 것이다.
북한 내 한류 열풍은 아직은 평양·신의주·청진 등 외부 사회와의 접촉이 많은 지역에 한정돼 있다고, 북한 사정에 정통한 중국 소식통들이 전했다.
한국에서 히트한 드라마는 3-6개월 후면 평양·신의주·청진 등에도 퍼진다는 것이다. 남한 가수들의 잇단 평양 공연은 북한의 신세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남한가수 송대관의 ‘네박자’가 가장 히트했으며, 윤도현밴드는 너무 박자가 강렬하고 빨라 아직 북한주민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고 중국에서 만난 북한 관계자가 전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초 신의주 세관이 남한 비디오 대량 반입을 눈감아주다가 적발돼 당비서 등 관계자들이 해직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류 열풍은 북한의 장마당에도 퍼졌다고 한다. 값싼 중국산 물건 대신 한국 상품이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 고위층에서도 옷은 남한제가 최고이며, 전자제품도 일제 못지않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남한열풍을 잠재우려는 관계당국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영상물 압수수색을 벌이는가 하면, 남한상품 단속도 예전보다 더 강화하고 있다고, 최근 탈북한 한 보위부 관계자가 말했다.
( 강철환 기자 nkch@chosun.com )
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311/200311300239.html
■ 北주민, 당 충성 보다 돈에 관심
연합뉴스 2003년 11월28일 14:46
(서울=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 북한의 지난해 7.1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오히려 생활 형편이 더 나빠지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민들은 당과 조직에 대한 충성보다는 돈을 중시하는 실리적인 태도로 돌아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탈북자동지회 발간 '탈북자들' 11월호에 소개된 증언에 따르면 7.1 조치이후 월급을 올렸으나 상점이나 식당, 배급소에 물건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물건 값만 천정부지로 치솟음에 따라 주민들 사이에서는 국가에서 물건 공급을 못해주면 가격이라도 정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평이 일고 있다.
특히 7.1 조치 이후 장마당이 활성화되긴 했지만 규정 외 물건을 몰래 판매하다보니 물건값이 더 올라가 노동자 평균 월급이 1-2천원에 불과한데도 장마당에서는 쌀 1㎏ 200원, 소금 1㎏ 50원, 돼지고기 1㎏ 400원, 양말 한켤레 150원 등 생필품이 고가로 거래된다고 함북 청진에 거주하다 지난해 말 탈북했던 한 가정주부 출신 탈북자가 전했다.
이같은 생활고로 범죄가 많이 발생하고 노인 천대 풍조와 이혼 증가 등 도덕적 해이 현상이 일고 있으며, 돈만 있으면 성분이 나쁜 사람도 노동당에 입당하고 결혼도 잘 할 수 있으며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에 주민들이 입당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
실제로 90년대까지만 해도 군대에 가면 많이 입당했는데 2000년대 들어 40-50%는 입당을 하지 않은 채 제대하는 등 청년들이 입당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당과 간부들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도 안 좋아 간부들을 아첨으로 자리만 지키는 사람들로 평가하고 있고 김정일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 보다 못하다고 보고 있다.
또 상급기관에서 내려오는 지시가 밑에서는 잘 집행되지 않고 있고 사무원들의 출퇴근 시간은 아침 8시와 저녁 5시이지만 그나마 출근해도 하는 일 없이 도장만 찍고 제멋대로 나간다는 것.
탈북자 통제와 관련, 중국으로 탈출해 한국 사람을 만났거나 교회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주동’과 ‘피동’으로 나눠 ‘주동’으로 분류되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고 ‘피동’은 3년여간 징역을 산다.
특히 남한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져 대부분의 북한 청소년들이 한국 노래를 좋아하며 한국이 대단히 잘 살고 자유로운 국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
http://www3.yonhapnews.co.kr/cgi-bin/naver/getnews?142003112804000+20031128+1446
■ 최근 북한 사회 실상
탈북자동지회(脫北者同志會), 「탈북자들」 2003년 11월호 (통권 030호)
* 이 글은 정영숙(가명)씨와의 서면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정영숙 씨는 2002년 11월20일에 탈북을 했고 함경북도 청진에서 가정주부로 있었습니다. 시간 간격이 있기는 하지만 북한 사회의 실상을 이해하는 자료가 될 것입니다. 협조를 해 주신 정영숙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
▶ 7.1 경제관리 개선조치후의 생활형편과 주민들의 반응
경제관리 개선조치 후 주민들의 생활형편은 더 나빠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종전에 있던 가두판매점이 모두 없어지고, 국영상점이나 식당에서만 판매하도록 하기 때문에 물건 사기가 더 힘들다.
금년 들어 장마당(시장)을 합법화했다고 하는데 그 정확한 정보는 모르겠다.
당시에는 새로운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나왔으면 그에 따라 상점이나 식당, 배급소에 물건이 공급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월급만 올려놓았으므로 개인들이 마음대로 협정가격을 체결하여 장사함으로 물건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그래서 주민들은 물건 공급을 못해주면 국가에서 가격이라도 정해 주어야 할 것 아니냐고 불평들이 많았다.
[편집자 주] 가두판매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북한에는 생활필수품을 판매하는 8·3 인민소비품 상점이라는 곳이 있다. 이 상점은 보통 가내작업반을 통해 물건을 수급한다. 가내작업반은 여맹(민주여성동맹)과 각 공장에 조직되어 있는데 과제에 따라 소비품을 제작해서 소비품 상점에 납품을 한다.
납품 금액은 상점에서 물건이 팔린 후에 소매가로 지불이 된다. 보통 몇 개월씩 걸려서야 이 돈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두판매점은 8·3 인민소비품 상점으로 보인다.
▶ 장마당 활성화 이후 가격과 운영실태
당시(2002년) 장마당에서 원칙적으로 팔 수 있는 물건은 채소와 집짐승(가축)뿐이었다. 지금(2003년)은 아무 것이나 다 팔도록 한다는데, 문제가 없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에도 장마당에서는 모든 것을 다 팔았다. 다만 몰래 파는 것이다. 규정 외 물품을 팔다가 단속되면 전부 무상몰수 당한다. 그래서 몰래 장사하다 나니 물건값은 더 올라간다.
장마당 가격(2002년 4월 기준)은 쌀: 200원(1kg), 소금: 50원(1kg), 양말: 150원(1켤레), 팬티: 100-150원(1개), 식용유: 250원(1ℓ), 돼지고기: 400원(1kg) 정도였다. 따라서 돈 있는 사람은 살고, 돈 없는 사람은 굶어 죽는다. 실제로 굶어죽은 사람을 많이 봤다. 젊은 사람들은 좀 났지만 늙은이와 어린이들이 많이 죽는다. 장마당에서는 허가 받은 품목이외에 다른 품목들은 몰래 숨겨놓고 판다.
▶ 7·1 경제조치 이후 월급 지급 및 실생활에 필요한 금액
7.1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노동자가 받는 평균 월 생활비는 1,000원-2,000원이다. 2002년 9월에 동생이 첫 생활비를 탔는데 1,500원을 받았다. 그러나 쌀 1㎏에 200원이기 때문에 1,000원이면 5㎏밖에 살 수 없었다. 이것은 그전보다 더 못한 것이다.
[편집자 주] 7·1 경제조치 이후 실제 월급은 올랐지만 2-3개월 정도만 월급을 받았을 뿐 그 이후에는 받지 못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많다. 월급이 실제 인민들의 생활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조치 이전 노동자의 월급은 80-150원 정도 했다고 한다. 쌀은 국정가격으로 44원이지만 국가에서 공급하는 쌀이 거의 없다보니 비싼 값을 치르고 장마다에서 쌀을 사먹어야 한다.
▶ 주택의 개인소유 및 자체건축, 매매교환 실태
주택은 아직도 개인소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90년대 말에 약간 허용하는 듯 했으나 지금은 통제가 엄격하다. 다만 서로 바꾸는 것은 있다.
예를 들면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 올 생각이 있으면 아파트와 단독주택은 맞바꿀 수 있는데 아파트 값이 60만원이고, 단독주택이 30만원이라 하면 아파트로 들어가는 사람이 30만원이란 돈을 단독주택으로 이사 오는 사람에게 더 주고 교환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도 비밀리에 해야 한다. 만약에 발각이 되면 돈을 더 받아먹은 사람은 집을 통째로 내 놓아야 한다.
▶ 전력사정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석탄이 없어서 화력발전소를 돌리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조금씩 생산되는 전기마저도 큰 제철소나 공장, 기업소 등에 보내고 개인 집에는 하루에 3-4시간만 전기를 보내주었는데 2002년 하반기부터는 하루에 1-2시간 밖에 보내주지 않았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므로 수돗물도 역시 나오지 않는다.
내가 탈출할 때까지도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멀리서 샘물을 길어다 먹었다. 돈이 없는 집들에서는 아예 전등불이 없이 캄캄한데서 살고, 돈이 좀 있는 집들에서는 석유 또는 카바이드 불을 켜고 산다. 석유 1ℓ에 장마당에서 120원, 카바이드 1㎏에 50원 한다.
▶ 주민들의 사회일탈 실태 (살인, 강도, 강간, 절도, 조직폭력 등)
예를 들면 내가 2002년 7월 중국에서 체포되어 다시 이북에 호송, 구역 안전부 감옥생활을 한 달 가량 했는데, 그때 감옥 안에 있던 죄수들 중에 50-60%가 살인, 강도, 강간, 절도범들이었다.
내가 있던 감방에는 여자 3명이 있었는데, 한 명은 살인범이고 한 명은 절도범이었다. 구체적으로 잘 알 수는 없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범죄가 대단히 많은 것 같다.
▶ 주민들의 도덕적 해이 실태
살기가 힘들므로 걸핏하면 쌍욕을 하고 싸움질 또는 패싸움하는 광경을 많이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몹시 천대한다. 가정에서도 너무 살기 힘이 들어서 부부싸움을 많이 하며 서로 갈라져 사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아이들이 많이 버려지고 있다.
법적으로 이혼은 잘 해주지 않으므로 그냥 갈라서서 산다. 가정에서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현상은 너무 많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 당 및 근로단체 조직생활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매주 월요일에 김일성·김정일 학습, 주체사상 학습을 한다. 수요일에는 강연회, 목요일에는 주 당 생활 및 주 동맹생활총화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점점 더 형식적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잘 지키지도 않고 있다.
그리고 당 및 근로단체에서 조직하는 행사에도 잘 참가하지 않으려고 하며 짜증부터 내고 있다. 먹을 것이 없고 돈이 없으니 한 푼이라도 벌어서 먹을 생각밖에 없다.
▶ 최근에 주민들은 당에 입당도 잘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입당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이라는 인식이다. 왜냐하면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므로 돈만 있으면 아무리 성분이 나쁜 사람도 쉽게 입당할 수가 있으며 결혼도 잘 할 수 있으므로 입당 같은 것은 별로 관심이 없다.
지난 90년대까지만 해도 군대에 나가면 입당을 많이 했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40-50%는 입당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제대되고 있으나 청년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결혼에 있어서도 이전에는 성분과 함께 당원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큰 조건으로 되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은 전혀 따지지 않고 재산과 돈이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이 첫째 조건으로 되고 있다.
따라서 당원이라고 해도 존경을 받지 못하며 비당원도 돈만 많으면 존경을 받고 있다.
[편집자 주] 북한에서 노동당원이 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입신과 출세의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며, 가정적으로도 크나큰 경사이고 영광이었다.
젊은이들이 10년에서 13년에 이르는 군생활을 하려는 궁극적인 목적도 입당에 있었다. 사회적 기반이 없는 평범한 가정 출신자들이 입당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군에 입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사정이 악화되고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지자 주민들의 관심이 온통 경제력으로 쏠리면서 입당에 대한 인식도 변하게 된 것이다.
▶ 주민들의 간부들에 대한 인식 및 태도
주민들은 김정일이나 간부들에 대해서 내놓고 욕은 하지 못하고 있으나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심하게 욕을 하고 있다. 특히 김정일에 대해서는 김일성과 비교하면서 김일성보다 아주 못하다고 하고 있다. 또 간부들에 대해서는 거의 다 도둑놈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아첨으로 자리만 지키는 사람들로 평가하고 있다.
상급기관에서 내려오는 지시는 제대로 되는 듯한데 밑에서는 잘 집행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책임진 사람만 추궁을 받게 되므로 먹을 것이 있는 자리가 아니면 간부도 잘 하지 않으려 한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는 대체로 종업원들에게서 돈을 모아 가지고 장마당에서 사다가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 출근해도 직장에서 하는 일이 없다
노동자 사무원들의 출퇴근은 지금도 아침 8시 출근, 저녁 5시 퇴근으로 되어 있지만 출근해도 직장에서 하는 일이 없어 도장만 찍고 제 마음대로 나간다.
즉 집에 갈 사람은 가고, 직장에서 놀 사람은 놀고, 장마당에 가서 장사할 사람은 하고, 그것도 70-80%는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 북한 주민들은 한국에서 식량을 보내는 것을 알고 있으나 거의 다 군대가 먹는다고 생각한다
주민들은 북한 전체식량의 60-70%는 군인들이 먹는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식량을 보내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그것도 거의 다 군대가 먹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군인들도 잘 먹지 못하여 영양실조로 죽거나 집에 돌아와서 영양보충을 받고 다시 가는 경우가 많으며 배고파서 도주하는 군인들도 많다.
그래서 지금 부모들은 자식을 군대에 잘 보내려고 하지 않으며 청년들도 군대에 잘 가려 하지 않는다.
▶ 주민들은 사는 것이 고통스러워 빨리 전쟁하기를 원한다
주민들은 사는 것이 고통스러워 빨리 전쟁하기를 원하는데, 그것은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남한과 전쟁을 해야 하므로 할 바에는 빨리 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쟁이 나서 죽는 사람은 죽지만, 산 사람은 한끼라도 배불리 먹다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 주민들의 군인들에 대한 인식과 군대 징집에 대해
주민들의 군인들에 대한 생각은 매우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군인들이 배가 고프다 보니 주민부락에 가서 훔치거나 강도질하고 싸움질하고, 하여튼 군인들은 사정이 없다. 늙은이 건 젊은이 건 관계없이 마구 때린다.
내가 탈출할 때까지 군대 징집은 35살까지 하였다. 예를 들면 저희 동생친구가 27살인데, 그때 군대에 나가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35살이면 장가도 가고 애들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은 왜 군대에 뽑아 가는지 모르겠다.
[편집자 주] 북한 인민군 복무제도 변화 (출처: 조선일보)
북한당국이 2002년 10월 초 각급 군(軍)부대와 도(직할시) 시(구역)·군(郡) 군사동원부에 ‘국방위원회 명령’을 하달해 인민군의 복무체계와 복무연한·입대조건·감군(減軍) 등 군복무제도를 전면 개편했다는 증언이 있었다.
국방위원회 명령은 2003년 초부터 본격 시행키로 했으며, 2002년에는 10월부터 부분적·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국방위원회 명령의 대체적인 내용은 노동당, 청년동맹, 인민반 등을 통해 주민들에게 통보됐다고 한다. 아마도 이 방침에 의해 35세까지 징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북한에선 대학생과 출신성분 불량자 등은 초모(招募, 입대)에서 제외됐다. 입영방식이 형식상 모병제에서 징병제로 전환되고, 입대 요건이나 복무기간도 달라지는 등 군복무제도가 새롭게 바뀌게 된 것은 90년대 중반의 식량난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초모할 대상들이 아사를 했고 또 많은 숫자가 탈북을 했기 때문에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로 보인다. 언제까지 이런 방식으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민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만큼 김정일의 종말도 가까워질 것이다.
▶ 탈북자 통제실태
탈북했다가 한두 번 잡히면 죄과에 따라서 처벌 또는 용서를 하는데, 그것은 중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활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여자의 경우, 중국 사람에게 시집가서 농사짓는 사람과 한국 사람을 만나서 도움을 받는 사람, 또는 중국 사람에게 팔려 가는 여자들, 이렇게 여러 가지다.
그러다 보니 순수 시집을 간 여자들과 팔려갔던 여자들, 그리고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중국에서 체포되면 보위부에 넘겨져 심사를 받고 다시 안전부로 넘긴다.
안전부에서는 다시 자기 거주지 노동단련대로 보내서 6개월 이상 무보수노동을 시키며 6개월이 끝나면 집으로 보낸다. 집에 와서도 또 얼마간 감시 받는 기간이 있다.
그러나 중국으로 탈출하여 한국 사람을 만났다거나 교회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주동(主動)과 피동(被動)을 갈라서 주동으로 분류되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고 피동은 한 3년 간 징역살이를 시킨다.
보위부에서 조사 받을 때 주는 음식은 멀건 국수 죽(강냉이 국수로 죽을 쓴 것) 반 그릇이고, 안전부에서는 통강냉이 반 그릇을 준다. 그래서 몸이 약한 사람과 늙은이들은 조사 받다 죽는 사람이 많다.
내가 잡혀서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은 때에도 60대 할머니가 사망하는 것을 보았다. 만 16세 이하 아이들을 먹일 식량이 없기 때문에 며칠만 가두어 놓고 있다가 내보내 버린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시 중국으로 탈출하는데 심지어 60-70번을 탈출했다 잡힌 아이들도 보았다.
▶ 주민이동 및 통행증 단속 실태
아직도 마음대로 가고 싶은 데를 다닐 수 없다. 우선 교통이 불편해서 다니지 못하는데 청진에서 회령까지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도 이틀 동안 걸어서 가야 한다. 통행증 역시 제 마음대로 뗄 수 없다.
특히 평양, 나진, 두만강 등 국경연선(국경지대)에 가려면 위에서부터 승인번호가 내려와야 통행증을 뗄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걸어서 나진이나 국경연선까지 가고 있으며 운이 좋은 사람들은 기차를 타기도 하는데, 청진에서 나진까지 가는 기차 비는 450원이기 때문에 왕복을 하자면 차비만 해도 900원이 든다. 나진 선봉은 특구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많은 장사꾼들이 왕래하는데 그들은 중국 사람들과 접촉해서 장사를 한다.
나진 선봉 같은데 가서 장사하면 10,000원어치를 거래할 때 순이익이 1,000원 생긴다. 그러나 장사로 다니다가 여행증이 없으면 무조건 단속이 되는데, 이때에 돈을 쓰면 대부분 빠져 나올 수 있다.
그런데 그 돈의 액수가 왕복 차비보다도 더 비싸다. 그러니 재수 없어 안전원(경찰)에게 걸리는 날에는 장사하고 남은 돈뿐만 아니라 원금까지 날리는 수가 있다.
▶ 이산가족 상봉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이산가족 상봉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실제로 당사자들이나 신경을 쓰지 다른 사람들은 제 먹고사는 데만 신경을 쓰고 다른 사람들이 가족을 만나든 말든 아무 상관을 하지 않는다.
다만 남쪽의 친척들이 물건이나 돈을 준다는 소문이 있어서 몹시 부러워 할뿐이다.
▶ 일반주민들은 경제특구나 금강산 관광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신의주 및 개성 특구에 대해서도 일반주민들은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하고 있으며 금강산 관광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 단속이 무서워서 라디오 같은 것은 들려줘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외부소식은 매우 듣기가 힘들다. 간부들은 어떨지 몰라도 일반 주민들은 중국에서 나온 사람들이 이야기 해줘야 알고 있고, 단속이 무서워서 라디오 같은 것은 들려줘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편집자 주] 단속도 단속이지만 전기 때문에도 라디오를 잘 듣지 못한다고 한다.
▶ 일반주민들도 한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비디오테이프 같은 것도 더러 돌아가는 모양인데 만약에 보다가 들키게 되면 무상몰수와 함께 징역에 갈 수도 있기 때문에 무서워서 하층주민들은 잘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을 통해서 한국노래 녹음테이프는 많이 들어오는데 하층주민들은 한국 노래인 줄 모르고 중국 노래이거나 중국 조선족 노래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되면 역시 무서워서 잘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한국노래를 참 좋아하고 나도 더러 들었다. 그래서 총체적으로 보면 이제는 하층주민들도 한국에 대한 인식이 옛날보다 많이 달라졌다. 즉 한국이 발전되고 대단히 잘 사는 나라라는 것, 또 자유로운 국가라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http://nkd.or.kr/html/bulletin/2003/view_detail.php?kwon=200311030&no=377
■ 北 신세대 한류 열풍 확산
연합뉴스 2003년 11월30 07:00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장용훈 기자 = 남북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북한 신세대들 사이에서 ‘한류’ 열풍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30일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 신세대들의 남한 열풍은 상품, 드라마, 가요, 패션으로 요약된다.
특히 고위층이 밀집한 평양을 중심으로 신세대들은 남한을 ‘아랫동네’로 지칭하면서 남한 상품을 으뜸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
한 북한 소식통은 “북한 지역 장마당에서는 남한에서 생산된 라면, 화장품, 전기밥솥 등이 남쪽 상표를 버젓이 붙인 채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며 “장마당을 통제하는 인민 보안성 요원들도 속수무책”이라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주민들은 인민보안성 요원들이 남한 상품을 단속하려하면 ‘대한민국이라고 쓴 쌀자루(쌀포대)가 도처에 굴러다니는데 어떠냐'고 대꾸하는가 하면 ’그래도 유.에쓰.에이(USA) 쌀자루 보다는 같은 민족의 것이 낫지 않냐'고 반문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입국한 한 탈북자는 “북한 주민들은 대한민국이라고 쓰인 쌀포대를 비옷 대용으로 즐겨 사용하고 있다”며 “비가 새지 않고 질이 좋아서 인기가 아주 좋다”고 전했다.
신세대들의 남한 열풍을 주도하는 것은 단연 드라마.
지난해 ‘가을동화’와 ‘겨울연가’에 이어 최근에는 ‘올인’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경 일대와 해외 출장자들을 통해 흘러드는 남한 드라마·영화 비디오와 CD는 북한 전역을 삽시에 휩쓸어 버린다고 북한 소식통들은 전했다.
드라마 주제가도 최근 남한 가요의 열풍과 더불어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에는 트로트가 북한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면 이제는 ‘올인’의 ‘처음 그날처럼’과 ‘겨울연가’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등 인기 드라마 주제곡이 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남한 가요 열풍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난해 9월 ‘2002 MBC 평양특별공연’과 지난 9월 북측과 공동으로 선보인 SBS의 ‘류경(柳京) 정주영체육관 개관기념 통일음악회’를 계기로 더욱 확산되고 있다.
다른 북한 소식통은 “북한 신세대들 사이에서 가수 조용남은 ‘편안한 아저씨’로 통한다”면서 “어눌한 말투에 북한 가요 ‘심장에 남는 사람’을 멋지게 부른 조용남은 북한 젊은 세대의 우상”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 여성들 가운데서 윤도현에 대한 인기와 남북 노래자랑에서 ‘네박자’를 부른 송대관, 북한가요 ‘휘파람’을 부른 주현미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밝혔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11.20)도 “남측의 남성이라고 하면 가수 윤도현씨를 꼽는 (북한)시민들이 아직도 많고 특히 지금도 여성들에 좋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소식통들은 신세대들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탤런트들의 옷차림, 헤어스타일, 심지어 머리 염색 등의 패션을 경쟁적으로 모방하고 있으며 “평양 젊은이들 사이에서 중국제 의류는 촌스럽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북한 전문가는 “김일성 주석 시대의 구세대와 달리 20-40대 사이에서는 개혁과 변화에 대한 욕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며 “이같은 사고를 가진 젊은 세대들이 북한을 이끈다면 향후 북한 체제는 자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시장 경제를 추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http://www.yonhapnews.co.kr/news/20031130/221700000020031130070118K3.html
(끝)